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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장: 레지오의 수호 성인들(209-222면)
최경용(베드로)신부님)
레지오의 수호 성인들은 레지오의 기도문 중 시작 기도와 마침 기도에 나뉘어 호도되고 있는데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성 요셉, 사도 성 요한,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 대천사 성 미카엘과 성 가브리엘, 성모님의 천상 군단인 모든 천사들, 세례자 성 요한,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이다.
1) 성 요셉(교본:209-210면)
레지오의 기도문에서 성 요셉의 이름이 첫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는 그분이 성모님의 배필이고 성가정의 가장이며 예수님의 양부이기 때문이다. 성 요셉은 보편 교회의 수호 성인일 뿐만 아니라 성모님과 함께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 성인이다. 교회는 3월을 성 요셉 성월로 정하고 3월 19일을 성 요셉 대축일로 지낸다.
요셉(Joseph)은 '하느님이 보태 주신다', '하느님을 돕다'라는 뜻이라 한다. 성 요셉은 다윗의 후손 야곱의 아들이다. 그는 같은 다윗의 후손인 마리아와 약혼하였는데 결혼도 하기 전에 약혼녀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요셉은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였다. 그는 하느님을 굳게 믿는 의인이었다. 미혼모 마리아의 일을 공개하여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조용히 파혼하기로 작정했다. 만약 파혼했다면 예수님은 사생아가 될 뻔하였다. 다행히 요셉은 꿈에 천사의 지시를 받고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였다. 성령의 힘으로 구세주를 잉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요셉은 하느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과 마리아에 대한 신뢰로 극심한 심적,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였다. 그때부터 그는 구세주의 양부로서 마리아처럼 결혼한 독신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일생 동안 성모님과 예수님의 보호자로서 무거운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살았다.
호구 조사에 응하려고 만삭이 된 아내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갔고 그곳의 어느 마구간에서 출산한 아내를 도와주어야 했으며 아기를 죽이려는 헤로데를 피해 한밤중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사막을 거쳐 이집트까지 고생하며 피신하였다. 그 후 이집트에서 다시 나자렛 고향으로 돌아와 목수로서 가난하게 살았다. 예수님이 열두 살이었을 때 부모 몰래 예루살렘 성전에 남아 있는 바람에 사흘 동안 찾아 헤매며 고생하기도 하였다.
성 요셉은 예수님과 성모님의 영광에 가려 드러나지 않은 분이다.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의 예수님 탄생 기사에만 성 요셉이 언급되지만 그가 직접 발설한 말은 한마디도 없다. 그는 드러나지 않는 후원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아들과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선종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가 되었다.
우리는 요셉 성인의 겸손과 숨은 생활을 본받아야겠다. 세상살이에서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과 역경을 당하더라도 성 요셉처럼 굳센 믿음으로 하느님 섭리의 손길에 맡겨야겠다. 그리고 우리도 묵묵히 자신의 일과 가정에 성실해야겠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늘 요셉 성인에 대해 마음을 쓰셨고 성인이 두 분을 모시느라 쏟은 온갖 정성과 노력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셨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도 성 요셉께 존경과 감사를 드리며 교회에서 다음과 같이 정해준 '성 요셉에게 바치는 기도'를 해야할 것이다. "우리 주 예수님을 기르신 아버지시요 정결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시며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께 간절히 청하오니 하느님께 빌어 주시어 저희가 예수님을 사랑하며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또한 죽을 때에 저희를 지켜 주소서. 아멘."
2) 사도 성 요한(교본:210-211면)
사도 성 요한은 "예수의 사랑 받던 제자"(요한 13, 23)로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8)라고 역설하며 사랑의 일생을 보낸 분이다. 이 분은 갈릴래아의 어부로서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야고보의 동생이다. 이 두 형제는 시몬 베드로의 동업자로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제자가 되었다. 사도 요한은 열 두 사도 중에서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의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킬 때, 당신의 영광스런 변모 때, 게쎄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이 세 제자만을 따로 데리고 가셨다. 성 요한은 하늘 나라에서 차지할 높은 자리 문제로 다른 사도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냉대에 보복하는 말을 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베드로 사도와 더불어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파견을 받기도 하였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아침에 베드로 사도보다 먼저 예수님의 무덤에 달려갔으며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발현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알아보았다.
성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선교 활동을 하였으며, 사도 바오로는 요한을 교회의 기둥으로 여겼다. 요한은 44년경 헤로데 아그리파의 박해를 피해 사도들이 각지로 흩어질 때 예루살렘에 계시던 성모님을 모시고 에페소로 갔고 그곳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묵시 1,4 참조)를 지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년 재위) 대박해 때에 파트모스 섬에 유배(묵시 1,9 참조)되었다가 다시 에페소로 돌아가 100년경에 90세의 일기로 선종했다고 전해진다. 파트모스 섬에서는 묵시록을, 에페소에서는 복음서와 서간 3개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요한과 그 형 야고보는 불같은 성질이 있어 '천둥의 아들'로 불렸다. 그러한 성격이기에 예수님께서 '고난의 잔을 함께 마실 수 있겠느냐 '라고 물으셨을 때 그들은 서슴지 않고 마실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께 수난이 닥치자 심지어 베드로와 야고보까지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피했다. 오직 요한만이 성모님과 함께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예수님께서는 그 보답으로 십자가 곁에 있는 성모님과 요한을 모자 관계로 맺어 주셨고 성모님의 여생을 요한에게 맡기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여인이여,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 분이 네 어머니이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 26-27).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유언으로 성모님을 인류의 어머니로 선포하셨고 사도 요한은 성모님 자녀들의 대표자가 되었다. 이 때문에 레지오에서는 사도 요한을 수호 성인들 중에서 성 요셉 다음 자리에 두고 공경한다.
사도 성 요한은 한평생 예수님과 성모님을 위해 희생하면서 선교와 봉사 활동에 온 힘을 쏟았으므로 순교자와도 같은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는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에 대한 신심의 표본이었고 성모님을 끝까지 모신 성모님의 후원자였다. 특히 레지오의 영적 지도자들은 사도 성 요한을 특별 수호 성인으로 삼아 본받아야겠다. 그리고 레지오 단원들은 성 요한처럼 죽을 때까지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사랑과 존경을 드려야 한다. 사도 성 요한의 축일은 12월 27일이다.
3)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교본:211- 212면)
레지오의 영성과 성모 신심은 프랑스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가 저술한 [거룩한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이란 책에서 유래한다. 이 성인은 이 책에서 레지오 마리애가 출현할 것을 예언하였다(114항 참조).
이 성인의 이름을 레지오의 시작 기도문에 삽입하기로 한 다음과 같은 결의문으로써 이 성인은 레지오의 특별 수호 성인이 되었다. "어떤 특정 성인이나 지역의 수호자를 레지오의 수호 성인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결정에 비추어 볼 때 몽포르의 복자 그리뇽을 포함시키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레지오 발전에 이분만큼 큰 역할을 한 성인이 없다. 레지오 마리애 교본은 이분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고 레지오의 기도문은 바로 이분이 하신 말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분은 사실상 레지오의 스승이므로 레지오가 이 성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거의 도의적으로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면 이 성인의 생애를 알아보자.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St. Louis Marie Grignion)은 1673년 1월 31일 프랑스 렌느 교구의 몽포르(Montfort)라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는 18명의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으나 첫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었기 때문에 맏아들 노릇을 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모상 앞에서 자주 기도하여 성모 신심이 각별해진 것인지 견진성사 때 세례명인 루도비코에다 마리아라는 이름을 덧붙였다.
그는 어느 날 가르멜 성당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에 사제직에 대한 소명을 깨달았다. 20세 되던 1693년에 사제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갔다. 2년 간 고생 끝에 성 슐피스 수도회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700년 6월 5일에 성품성사를 받아 수사 신부가 되었다. 당시 그는 캐나다의 원주민을 대상으로 선교하고 싶어했으나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시립 병원의 원목이 되었다. 도시 빈민들을 수용하고 있는 그 병원에서 마리 루이즈 뜨리세라는 동정녀와 함께 '지혜의 딸들' 수녀회를 창립하였다.
성모 신심을 권장하는 그의 활동이 얀세니스트(Jansenist)들의 방해를 받았다. 얀세니즘은 교회 안에서 엄격주의를 표방하고 특히 성모 신심을 거부하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그들의 방해를 받아 사면초가에 직면하였다. 1706년 봄에 그는 걸어서 로마까지 가서 교황 클레멘스 11세를 알현하고 도움을 청하였다. 교황의 지시에 따라 그는 프랑스 서부 지역의 선교사가 되어 하느님의 백성을 지도하고 가르쳤다.
그는 무려 2만 5천㎞를 걸어 다니면서 7개의 교구를 재복음화시켰고 100개 이상의 본당을 변화시켰다. 그는 십자가의 길 14처를 곳곳에 세우고 성모 경당을 복구하고 묵주기도를 권장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를 강조하였다. 또한 신자들로 하여금 세례 때의 서약을 갱신하고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께 완전히 봉헌하는 생활을 하도록 가르쳤다. 그는 '마리아 선교 수도회'도 창설하고 훌륭한 저서들도 남겼다. 마리아를 통한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을 영위한 그는 1716년 4월 28일 생 로랑에서 선종하였고 그곳 슈르 쎄브르 성당의 성모 경당에 묻혔다.
레지오 단원들은 이 성인의 훌륭한 생애와 영성을 본받고 이 성인이 가르쳐준 참되고 완전한 성모 신심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성인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짓도록 권장해야 할 것이다.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축일은 4월 28일이다.
4) 대천사 성 미카엘과 성 가브리엘, 성모님의 천상 군단인 모든 천사들(교본:213- 219면)
레지오의 수호자들 중에는 천사들과 대천사들도 있다. 천사는 지력과 의지를 지닌 영적 존재로서 사람을 보호하고 돌보아 주는 역할도 한다. 교회에서 인정하는 대천사들의 이름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이다. 이들의 축일은 9월 29일이다. 이들 중 미카엘과 가브리엘이 레지오의 수호자가 되었다. 왜냐하면 미카엘은 악의 세력에 맞서서 사람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레지오의 활동에 도움을 주며 가브리엘은 성모님의 수호자로서 레지오를 보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동방 전례에서는 늘 이 두 대천사를 함께 묶어서 부른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상본을 보면 예수님 곁에는 성 미카엘, 성모님 곁에는 성 가브리엘이 그려져 있다.
미카엘(Michael)은 '누가 하느님과 견줄수 있느냐?'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만군의 주님 사령관으로서 악마들을 무찌르는 대천사이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호자이다. 레지오는 유다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미카엘 대천사의 전구와 도움을 받고자 한다. 특히 레지오는 성모님과 더불어 미카엘의 지휘와 도움을 받아 악의 세력과 끊임없이 싸우는 사업을 계속 펼쳐 나간다. 레지오 단원들은 다음과 같은 '성미카엘 대천사에게 드리는 기도'를 바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성 미카엘 대천사님, 싸움중인 저희를 지켜 주시고 악마의 사악함과 속임수에서 저희를 보호해 주소서. 저희는 하느님께서 그를 묶어 버리시기를 간청하나이다. 오, 천상 군대를 지휘하시는 분, 하느님의 힘으로, 영혼들을 멸망시키려고 세상을 쏘다니는 사탄과 모든 악령들을 지옥으로 내던지소서. 아멘."
가브리엘(Gabriel)은 '하느님의 영웅'이란 뜻이다. 이 대천사는 즈가리야에게 세례자 성 요한의 탄생을, 동정 마리아에게는 구세주를 잉태하게 되리라는 소식을 전하였다. 그는 성삼위께서 마리아에게 보내시는 인사를 전달하였고 삼위일체의 신비를 처음으로 인간에게 알려 주었다. 성자께서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신다는 사실과 성모님의 원죄 없는 잉태를 선포하여 묵주기도의 첫 번째 신비를 밝혀 주었다. 레지오는 성 가브리엘이 성모님을 보호하였듯이 레지오도 보호해줄 것으로 믿고 있다.
성 가브리엘은 회교와도 관련이 있다. 회교도들은 이 대천사가 그들에게 회교를 알려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회교 경전 코란에는 예수님과 성모님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두 분은 회교 안에서 아무런 직능이나 역할이 없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은 회교도들에게 그들이 친근함을 갖는 가브리엘 대천사의 역할을 설명해 주고 코란에 나오는 예수님과 성모님의 중심적인 위치를 상기시켜 주고 회교에 없는 구원 사업에 대한 교리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성모님은 천상(天上) 레지오인 모든 '천사들의 모후'이시다. 천사들도 군단을 이루고 있다(마태 26,53 참조). 천사들은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성모님의 병사들이다. 그래서 레지오는 "성모님의 천상 군단, 모든 천사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라고 기도한다.
레지오 기도문에는 맨 처음부터 대천사 성 미카엘과 수호 천사들의 도움을 바라는 호도가 들어 있었다. 이 호도를 통하여 레지오는 바른 길로 인도를 받았다. 천사들은 레지오의 싸움을 지원하는 하늘나라의 동맹군이다. 레지오의 싸움은 천사들이 사탄과 그 부하들을 대적하여 싸워 왔던 큰 싸움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레지오 단원에게는 그 곁에서 싸움을 거들어 주는 든든한 천사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어려울 때 천상 군단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이다. 천상 군단의 축일은 10월 2일이다.
5) 세례자 성 요한(교본 219-221면)
세례자 성 요한은 사제 즈가리야와 성모님의 친척 엘리사벳의 아들로서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아인 카림에서 출생했다. 요한은 '주님은 은혜로우신 분', '주님은 고마우신 분'이란 뜻이다. 그가 세례자로 불리는 것은 요르단 강에서 예수님께 직접 세례를 베풀었고 군중에게도 회개의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하느님께 바쳐졌고 구세주의 선구자로서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청년 시절에 광야에서 기도와 고행을 하면서 자신의 할 일을 준비하였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장차 오실 메시아의 증인이 되었고 메시아의 길을 미리 닦아 놓았다. 그는 예수님께 직접 세례를 베풀 정도로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예수님에 대해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라고 말하고 선구자로서의 사명을 다하였다. 그후 그는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가 제수 헤로디아와 결혼하였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이 화근이 되어 사해의 동쪽 마케르스 요새에 투옥되었고 죽임을 당하였다.
그는 생전에 예수님으로부터 위대한 예언자로 불렸고(루가 7,28 참조),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 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마태 11, 11)라는 극찬을 받았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세례자 요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요지의 유명한 강론을 남겼다. 요한은 나이 많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그리스도는 나이 어린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 요한의 아버지는 요한이 태어나리라는 것을 믿지 않았으므로 벙어리가 되었고 동정 마리아는 자신으로부터 그리스도가 태어나리라 믿었으므로 주님을 잉태하였다. 요한은 신약과 구약을 나누는 경계선이다. 그는 구약을 대표하고 신약을 예고한다. 요한은 태어나기 전 동정 마리아의 방문을 받았을 때 어머니의 태중에서 기뻐 뛰놀았다. 그래서 요한은 태어나기 전부터 예언자로 간택되어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보시기 전부터 그리스도의 선구자로 드러났다. 그가 마침내 태어나 자기 이름을 받았을 때 그 아버지의 혀가 다시 풀렸다. '외치는 이의 소리'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요한은 잠시 동안 외치는 '소리'이고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시는 영원한 '말씀'이시다.
세례자 성 요한은 모든 레지오 단원들의 모범이다. 그는 선구자로서 주님의 길을 고르게 하였고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쳤다. 그리고 성모님이 엘리사벳의 가정을 방문한 것은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처음으로 보여주신 활동이었고 성 요한이 첫 번째로 그 혜택을 입었다. 레지오가 펼치는 모든 활동은 성모님의 중개자 역할에 협력하는 것이므로 성 요한은 레지오 활동의 특별 수호자임이 드러난다.
단원들은 세례자 성 요한을 본받아 용기와 겸손과 책임감을 가지고 레지오 활동을 이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직분에는 소홀하면서 명예심 때문에 단장직이나 간부직을 내어 놓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다면 세례자 성 요한처럼 욕심 없는 일꾼이 되어 자신은 작아지고 남들은 더 커지기를 바라야 한다.
세례자 성 요한은 전례력에서 두 번 기념하는데 탄생 대축일은 6월 24일이고 수난 기념일은 8월 29일이다.
6) 성 베드로(교본 221면)
레지오 마리애는 교회의 지도에 따라 성모님과 교회 사업에 협력하는 단체이므로 교계 제도에 충성심을 드러낸다. 레지오를 설립할 때에도 교회 당국의 승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따라서 레지오는 교계 제도의 으뜸인 교황 중에서도 초대 교황인 성 베드로를 수호자로 삼아 공경하고 있다. 레지오는 베드로 사도에게 호칭 기도를 바침으로써 로마 교황에 대한 충성을 표현한다. 교황은 로마 대교구의 교구장 대주교이고 세계 주교단의 단장이며 현세 교회의 최고 사목자로서 바티칸 시국(市國)의 국가 원수이다. 교황은 교도권, 신품권, 통치권이 있으며 사도단의 으뜸인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이다.
사도 성 베드로의 생애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갈릴래아 지방 티베리아 호수에 인접한 마을인 베싸이다 출신이다. 아버지 요나와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어부로서 생활하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시몬이었지만 예수님께서 그에게 '바위', '반석'이란 뜻으로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다. 예수님은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라고 하심으로써 그의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신 것이다.
베드로는 사도들 중에서 으뜸가는 사도였다. 성경에서 그의 이름은 항상 사도단에 가장 먼저 나오며 빈번히 복음서에 나타난다. 그는 언행에 실수도 여러 번 있었지만 사도들의 대표 역할을 했으며 예수님의 주요 행적에 항상 함께하고 있다. 특히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 16,19)라고 하심으로써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며 수위권이 있음을 드러내셨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천사가 여인들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 주면서 먼저 베드로에게 전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베드로는 열두 사도를 채우기 위해 유다의 후계자를 뽑는 모임을 마련하였으며 한번의 설교로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그는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참석한 예루살렘 공의회를 주관하고 논쟁을 잠잠하게 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신약성서에 기록된 그 밖의 숱한 일화에서 베드로의 지도자적 역할을 알 수 있다. 그는 세 번이나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요한 21,17)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예수님의 모든 양들을 돌보는 교황권을 행사하였다. 그는 43년경 헤로데 아그리빠에 의해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로 피신하여 소아시아와 안티오키아에 선교하였다. 초기 전승에 의하면 그는 네로 황제의 박해 중인 67년경 로마의 바티칸 언덕에서 십자가형을 받았다. 순교 직전에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로 알려진 예수님의 발현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그의 무덤은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 있다.
교황께 충성을 바치는 레지오 단원들은 초대 교황인 성 베드로에게 전구를 청해야 하며 현 교황(264대, 요한 바오로 2세)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교황 주일에만 교황을 위해서 기도할 것이 아니라 미사 중 성찬의 전례에서 사제가 교황과 주교를 거명할 때에도 정성들여 기도해야 할 것이다.
7) 성 바오로(교본 221-222면)
레지오 마리애는 선교 단체이므로 탁월한 선교사인 성 바오로 사도를 수호 성인으로 모시고 단원들이 그의 선교 열성을 본받도록 하고 있다.
바오로 사도는 기원후 5년경 로마 속령인 길리기아의 타르소에서 베냐민 지파의 유다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 사울은 이스라엘 초대 왕의 이름을 본뜬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해외 거주 유다인들의 관습에 따라 희랍 이름도 가졌는데 그 이름은 바오로였다. 청소년기는 예루살렘에 와서 보냈는데 바리사이파로서 율법학자 후보생이 되었다. 그는 백성의 존경을 받던 율법학자 가믈리엘의 제자였으며 신생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미워하고 그 신봉자들을 박해하였다.
그는 36년경 그리스도교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가던 중에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는 소리를 듣고 회개하여 개종하였다. 사도행전은 이러한 다마스커스 개종 사건을 세 번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다(9장, 22장, 26장 참조). 그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면 그리스도를 박해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은 하나의 신비로운 몸을 이루고 있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신비체의 머리이시며 그리스도교인들은 신비체의 지체로서 서로 한 몸을 이루므로 비신자들도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야 구원받을 수 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바오로는 비신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아 구원받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회개는 사도로서의 소명을 의미한다.
그는 39년경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사도들을 만났고 바르나바의 도움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그 후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에 가서 선교하였고 거기서 교리 교사로서도 활약하였다. 이것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선교의 시초가 되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불린다. 그는 세 번에 걸쳐 외국의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긴 선교 여행을 하였다. 첫 번째 선교 여행은 45-49년, 두 번째는 50-52년, 세 번째는 53-58년 사이에 있었다.
그는 49년경에 개최된 예루살렘 사도 공의회에 참석하여 이방인 신자들에게는 모세의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음을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이 회의에서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가 유다교 종파가 되는 것을 방지하고 그리스도교의 보편성 확립에 기여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제3차 선교 여행으로 유럽까지 복음을 선포한 후 예루살렘에 돌아와 체포되었다. 그는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여 60-61년 사이에 말타 연안을 따라 로마에 끌려가 감금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에페소, 마케도니아, 그리스 등지를 재차 방문하고 스페인까지도 갔었고 트로아스에서 다시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었다고 한다. 그 곳에서 67년경 네로 황제의 박해 때 참수형을 받았다. 그의 무덤은 로마의 성 바오로 대성전에 있다. 그는 신약성서 13권을 집필하였다. 그의 공식 축일은 베드로 사도와 함께 6월 29일이고 개종 축일은 1월 25일이다.
레지오 단원들은 선교에 몸바친 바오로 사도의 생애를 본받고 "복음 전파는 의무이므로 자랑거리가 될 수 없고 오히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미칠 것"(갈라 2, 8 참조)이라고 한 그의 가르침을 명심하여 늘 선교 활동에 앞장서야 할 것이고 1주일에 2시간 이상의 활동 의무를 기꺼이 채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