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의 하늘이 드높고 구름 한점없이 맑은 가을날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슴을 넓게 펴는 것만으로도 절로 행복감에 젖는다.
석수역에는 반가운 얼굴 네분이 먼저 와 계신다. 길을 건너서 역 맞은 편에 등산로가 있다. 입구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일행들을 기다리며 즐거운 표정들이다. 이렇게 좋은 가을날에 산행을 하기란 충분히 마음 들뜨는 일이고 말고. 산행 초입은 시골의 산길처럼 풋풋하고 순박하다. 맑은 바람까지 한몫하니 마음은 더없이 상쾌하고 모두의 상기된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관악산에 아우러져 알려진 호암산에 오르면 금천구의 시가지가 코 앞에 있고 멀리 인천의 문학경기장까지 눈에 들어온다. 오늘처럼 청명한 날에는 서울도 참 살만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 높지않은 정상부근엔 호암사라는 작은 절이 있고 그 옆에 한우물이라는 통일신라의 유적이 있다. 높은 산 위에 넓은 연못처럼 큰 우물이 있는 게 참 신기했다. 더더구나 통일신라의 유적이라니 놀랍다. 전설에 의하면 나라에 큰 전쟁이 있거나 재난이 있으면 우물이 바닥을 드러내고 마른다는데 6.25때 정말로 우물이 말랐었다는 이야기를 산행대장님이 전한다.
건너편 봉우리에 국기봉이 보인다.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바위를 결국 나는 못오르고 민망하지만 중간에서 포기한다. 국기봉을 지나 삼성산, 안양유원지가 오늘의 산행코스다. 두어시간 걸었나보다. 오후 1시, 드디어 신나는 점심시간이다. 산행 후에 먹는 맛있는 도시락, 산이 있고 유쾌한 사람들이 있어 더욱 흥겨운 순간이다.
삼막사를 지나서 안양예술공원 까지 1시간 30분 4시면 하산이다. 오늘 산행은 가을소풍처럼 경쾌하고 즐거웠다. 끊임없이 웃고 재잘대고 깔깔거리며 걸었더니 가슴 속이 시원해진다. 아마도 웃음의 마력일 게다.
안양예술공원은 2005년에 조성 된 걸로 안다. 예전의 유원지를 새로 단장하고 그 곳에 전시공간을 만들어 설치물들을 곳곳에 배치해 문화공간의 운치를 더했다. 자연 속에 표현된 미술품의 가치를 짧은 나의 식견으로야 감히 평할 순 없어도 정말 좋구나 하는 느낌이다.
특히 <파라다이스 살리>라는 오환희의 설치미술은 남다른 감회를 준다. 몇 해 전 TV에서 본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프랑스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화가인 그녀는 1978년생으로 안양이 고향이다. 2001년 미국여행에서 만난 태국의 화가 반딧과 2004년에 결혼하여 다음해 이 작품을 부부가 같이 제작하여 고향에 기증했다.
<살리>는 태국말로 정자란다. 태국의 정자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는데 만남과 소통 공존의 의미가 담긴 포괄적인 장소라는 것, 광장의 의미와도 통하는 것 같다. 8각 정자의 천정화를 오환희가 그렸고 개천 석벽의 꽃잎들은 그녀의 남편 작품이다. 정자의 천정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있는 소소한 식료품점 비디오점 휴대폰가게 옷가게 신발집등등 일상의 소소한 풍경이 그려져 있고 그 중심에 상상 속의 파라다이스를 그려 놓았다. 그녀의 작품은 무엇을 의도하였을까. 매일의 일상 속에서 내가 추구하는 낙원을 찾길 바라는 건 아닐까.
파란 하늘과 맑고 투명한 개울 예쁘고 정갈한 거리 그리고 사람들, 모두가 서로 어우러져 행복한 풍경을 만든다. 가을에 어울리는 미술전시와 실내악공연 아기자기한 식당과 소박한 주점들 이 길을 걸을 때면 이젠 우리도 문화를 누릴 수준이 되었구나 하는 자긍심이 든다.
이렇게 가까이에 늘 보석처럼 아름다운 것들이 숨겨져 있다. 그러나 나는 항상 너무 멀리서 인생을 찾아 왔던 건 아닌가. 오환희의 뜻처럼 낙원은 일상 속에 존재하는 것을...파라다이스를 꿈꾼다면 작지만 아름다운 나의 일상을 사랑할 일이다.
첫댓글 진숙씨 얼굴 자주보니 좋네요 언제한번 같이 산에 오를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요
반겨주시니 감사하구요...가을가기 전에 소풍 한번 가면 좋을 듯한데 다들 시간이 어찌 되실지...한번 뵙자구요...모두모두 건강하게 지내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