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북스에서 나온 책입니다. - 니나 브라운 베이커 지음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내세우는 남미의 정신적 지주인 볼리바르를 알고 싶은 차에 운좋게 빌려 읽은 책입니다.
권하고 싶습니다.
이거 쓰느라고 체게바라 평전을 다시 펼쳤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역사란,,, 혁명이란.... 운동이란////
장면 하나!
남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는 스페인과만 연락을 취하고 교역해야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팔 수 없었고 실어 나를 배도 없었다. 외국 배가 들어올 수 도 없었다. 제품가격은 스페인이 임의로 책정해서 생산자들의 이익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중개무역으로 생기는 엄청난 이윤은 스페인 본국의 몫이 전부였다.
식민지에서 나고 자란 2등국민 크리올들은 이런 배경 속에 스페인 본국과 ‘반도인’의 불합리한 대우와 차별 등으로 불만을 품고 살아왔다. 식민지에서는 인쇄기를 소유하는 것조차 법으로 금지했다.
크리올들은 식민지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스페인 혈통의 백인으로 부유한 지주계급을 포함하여 목사, 의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종인까지를 한데 일컬었다.
스페인은 크리올들이 성장하는 것을 막고자 항상 본국에서 관리와 장교를 파견했다. 하지만 파견된 자들의 신분은 크리올 계급보다 낮았다. 본국의 귀족들은 힘들고 외로운 식민지 관리직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줄을 쳐 투우장의 일등석을 차지하고 사치성 행사의 비용을 추렴하게 하는 본국 관료, 장교들의 불합리적인 사회적 특권은 크리올들의 불만을 점차 고조시켰다.
장면 둘!!
혁명의 바람은 영국을 몰아내고 새로운 사회를 세운 북아메리카에서 불어왔다.
모든 혁명의 시기가 그렇듯 젊은 크리올들은 새로운 신사상에 피를 끓어댔고 혁명을 울부짖었다. 이 때 영향을 미친 사상가들은 루소, 몽테스키외, 토머스 페인들로 ‘인간의 권리’, ‘자유, 평등, 박애’라는 구호가 젊은이들을 흥분시켰다. (혁명 시기에는 젊은이들의 교육열이 먼저 들불처럼 일어난다. 학습과 토론을 통해 준비하고 조직하고 투쟁한다. 러시아 혁명도 그랬다. 우리도 80년대에 직접 비슷한 경험을 했다.)
전 세계 지식인들이 지목하는 북아메리카의 미합중국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유의 물결이 전 세계에 불어 닥치고 있었다.
볼리바르는 워싱턴 장군을 적극 추종하였다.
그의 혁명에 대한 신심과 미래사회에 대한 비젼의 밑불은 바로 워싱턴이었다.
장면 셋!!!
19세기 초, 독립전쟁이 발발하기 전 남아메리카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은 1822년에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군주제를 거쳐 공화국으로 거듭났다.
스페인은 멕시코시와 부에노스아이레스 두 곳에 기지를 설치하고 식민지를 통치했다.
왕을 대신한 총독 밑으로 총사령관들이 파견되어 각 도시들을 다스렸다.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는 부왕령을 이루고 있었고 이들 나라에는 산 마르틴이라는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다. 시몬 볼리바르의 무대는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볼리비아,페루가 있는 남미의 북부와 북서부였다. 그는 베네수엘라, 누에바그라나다, 에콰도르를 합병해 콜롬비아 연방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후에 누에바그라나다만 남아 콜롬비아가 되었다.
7척의 작은 배로 아이티를 떠나 경계를 뚫고 베네수엘라의 오리노코강을 거슬러 육로를 통한 왕래가 불가능한 험한 산세의 안고스투라로 들어간 볼리바르의 군대는 고작 250여명에 불과했다. 이 장면은 그란마호라는 작은 요트에 82명의 대원을 태우고 쿠바에 잠입한 뒤 1백3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악지대, 시에라마에스트라에 들어갔던 피델과 게바라의 모습과 무척 닮았다.
장면 다섯!!!!!
안고스투라에는 아일랜드인들과 영국군들로 주로 장교들이 합류했다. 이들은 열렬한 자유주의자들이었다. 벨포드 윌슨은 저명한 의원의 아들이었고 프란시스 버넷 오코너는 아일랜드 애국군의 이름난 지도자였다. 존 데버루 장군은 천명의 아일랜드인들을 끌고 왔다. 이 대목에서는 자유를 위한 열정으로 남의 나라 전쟁인 스페인 내전과 그리스 전쟁 등에 참전했던 유럽의 양심적 지식인들의 발걸음이 절로 떠오른다.
장면 여섯!!!!!!
독립전쟁을 위해 베네수엘라로 들어온 지 3년이 지난 뒤, 세텐타 회의에서 볼리바르는 주위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1819년, 안데스 원정을 결정한다.
한니발이 카르타고인을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로 진격한 이래, 세계사에 똑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볼리바르는 1811년 처음으로 독립을 선언한 후 15년만에 그 몽상을 실현시켰다.
장면 일곱!!!!!!!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도 1812년부터 혁명이 진행 중이었다. 호세 데산 산마르틴은 볼리바르와 같은 귀족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총독이었다. 그는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해방시켰다. 볼리바르와 산 마르틴은 서로 잘 알았고 서로 존경했다. 산마르틴이르헨티나와 칠레를 독립시키고 페루를 향해 진군한 때 볼리바르도 페루를 향해 눈을 돌렸다. 이 때 볼리바르가 산마르틴을 초대했다. 칠레 해군 전함 마케도니아호가 과야킬에 닻을 내렸을 때 볼리바르는 직접 페루의 보호자를 마중나왔다. 다음날 두 영웅은 1시간의 독대를 했다.
과야킬에 상륙한 지 채 40시간도 지나지 않아 산 마르틴 장군은 남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페루로 가서 보호자 칭호를 반납했고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조국이 수여한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 프랑스로 갔다. 그는 28년 동안 은둔 생활을 하다 1850년 불로뉴에서 생을 마감했다. 회의에서 무슨 말이 오갔단 말인가? 두가지 중요한 문제가 논의됐다. 첫 번째, 대륙의 남부와 북부의 스페인과의 전쟁을 어떻게 하면 빠르게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을 것인가. 두 번째, 전쟁이 승리로 끝난 후 무엇이 해방된 남아메리카의 새 질서가 되어야하는가.
마지막으로 남은 페루의 해방을 누가 할 것인가? 이것을 결정하려면 둘 중 하나가 상대방이 자신보다 훌륭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했다. 볼리바르는 열렬한 공화주의자였고 산 마르틴은 왕정주의자였다. 그들에게 남미의 미래 질서는 공화국과 왕국, 둘 중에 하나여야 했다. 산 마르틴은 아메리카 국가의 해방을 바랐지만,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왕실과 같은 유럽의 왕실에서 왕자를 모셔와 나라를 다스려야한다고 생각했다. 브라질은 국왕을 모셨고 멕시코의 아고스틴 이투르비데는 황제 등극이 예견되어 있었다.
두 영웅은 의견을 조율하지 못했고 또 조율할 수 없었다.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해야했다. 누가 남미의 지도자가 되어야하는가, 그리고 어떤 질서를 세울 것인가?
산 마르틴 장군은 지쳐있었다. 그는 일생을 전투에 바쳤다. 스페인군에서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고, 이후 수년간 조국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는 거의 50살이 다 되어갔고 천식을 앓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내 젊음을 스페인에 바쳤고 내 중년은 조국에 바쳤다. 이제 내 노년을 즐기고 싶다.’ 위대한 군인이자 신사였던 산 마르틴은 자유라는 대의를 믿을 만한 타인의 손에 맡기고 떠났다.
볼리바르는 남미의 통합을 위해 불철주야 몸을 던지다 숨을 거둔 반면 남미의 미래를 젊은 이에게 맡긴 산 마르틴은 노년을 편안히 보냈다.
첫댓글 사색기행의 어느 부분엔 이런 부분이 있어요. 스페인이 남미를 침입하기 시작하면서 했던 논쟁에 대한 것이죠. 아메리카 인디오들을 사람으로 볼 것이냐 동물로 볼 것이냐하는 논쟁을 벌였다고 하더군요. 결론은 좀 영리한 동물로 결론 내리고 마구잡이로 죽이고 심지어 잡아 먹었다는 군요. 잡아 먹어보니 손발이 제일 맛이 좋아서 인디오 여인들에게서 아이들을 빼앗아 손발을 잘라 고기에 주린 사냥개들에게 주었다고 합디다. 저들의 잔학성에 놀랐고, 그들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던 기독교에 또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인간이란 것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저들이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한 아니 그건 북미 대륙도 마찬가지
스페인이나 에스파냐 식민주의자들의 행태를 읽다 보면 차라리 일제의 만행이 더 신사적이지는 않았나. 그래도 우리민족은 좀 덜 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생길 지경이었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잉카나 마야 문명의 주인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찬란한 문화를 도둑질해서 자기들의 것인냥 살고 있는 저 백인들 말입니다. 하늘은 결코 선한자의 편이 아닙니다. 악한자의 편이지.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런 생각밖엔 드는 것이 없습디다.
첫댓글 사색기행의 어느 부분엔 이런 부분이 있어요. 스페인이 남미를 침입하기 시작하면서 했던 논쟁에 대한 것이죠. 아메리카 인디오들을 사람으로 볼 것이냐 동물로 볼 것이냐하는 논쟁을 벌였다고 하더군요. 결론은 좀 영리한 동물로 결론 내리고 마구잡이로 죽이고 심지어 잡아 먹었다는 군요. 잡아 먹어보니 손발이 제일 맛이 좋아서 인디오 여인들에게서 아이들을 빼앗아 손발을 잘라 고기에 주린 사냥개들에게 주었다고 합디다. 저들의 잔학성에 놀랐고, 그들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던 기독교에 또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인간이란 것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저들이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한 아니 그건 북미 대륙도 마찬가지
스페인이나 에스파냐 식민주의자들의 행태를 읽다 보면 차라리 일제의 만행이 더 신사적이지는 않았나. 그래도 우리민족은 좀 덜 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생길 지경이었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잉카나 마야 문명의 주인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찬란한 문화를 도둑질해서 자기들의 것인냥 살고 있는 저 백인들 말입니다. 하늘은 결코 선한자의 편이 아닙니다. 악한자의 편이지.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런 생각밖엔 드는 것이 없습디다.
옳소!!!!!!!!!!!!
아직도 이런 내용 들으면 미치것다 ~~~ 눈물이난다 인간에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자꾸만 눈물이 난다 ! 옳고 그름을 몰랐으면 선과 악을 몰랐으면 눈물샘도 안생겼을까!!! 영리한 동물이 아니었으면 사랑이란 감정을발견 못했다면~~ 입장봐꿔 생각 할줄 몰랐다면~~ 분노를 몰랐다면~~ 눈물샘이 퇴화됐?을라나~~~!
이 책을 읽다 고등학교 지리부도를 가져다 자세히 지도를 살폈다. 남미 대륙이 제대로 보였다.
우린 평생 글을 써야 할 운명들인가 봅니다. 남준이 선배 눈물이 나신다니... 저도 눈물이 날려고 합니다. 남준이 선배님 눈물에 제가 동화돼서..
남준이성 글은 쓰시는가요? 똘이는 요즘 제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