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맥불변(菽麥不辨) - 쑥맥
답답한 사람을 일컬어 우리는 흔히 ‘쑥맥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원래 쑥맥 이란 말은 ‘숙맥불변(菽麥不辨)’이란 한자에서 나왔다. 숙맥이 쑥맥이 된 것은 강하게 발음하려는, 우리말의 경음화현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숙맥
불변에서 숙은 콩숙(菽)이요, 맥은 보리맥(麥)이라, 즉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숙맥인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숙맥불변에서 ‘숙맥’만 살아남았으니 머리만 남은 꼴이 되었다. 하지만 숙맥이라 해도 여전히 그 의미가 통하는 것을 보면 여간 신통하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콩과 보리를 구별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만큼 콩과 보리의 중요성을 언급한다고 생각된다.
조선시대에 이익이라는 실학자가 있었다. 그분은 실학자 가운데서도 특별하게 콩의 실용성을 언급하였다. 택리지를 지은 이중환이나 목민심서를 지은 다산 정약용은 모두 성호 이익의 제자들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대사간을 지낸 만큼, 양반 중의 양반이었지만 직접 농사를 지었을 정도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을 그대로 실천하신 분이었다. 이익선생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백성을 살리는 데는 콩의 힘이 가장 크다“라고 하였다. 조금 더 인용해보면 ”콩은 오곡 중 하나인데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곡식이 사람을 살리는 것을 주로 한다면, 콩의 힘이 가장 크다.
후세 사람들 가운데 잘 사는 사람은 적고, 가난한 사람들은 많다. 가난한 백성이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콩뿐이다“라고 하였다.
조선시대는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지만 콩의 영양에 대한 언급은 그분의 사물을 꿰뚫어보는 안목과, 실제 경험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콩은 만주와 한반도 일대가 원산으로 동남아가 원산인 쌀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했던 곡식이다. 쌀은 조선 초기부터 오곡에 합류했지만 콩은 선사 이래 오곡이었던 식품이다. 삼한시대에는 콩, 보리 ·기장 ·피 ·참깨가 오곡이었고, 쌀은 고려시대부터부터 오곡에 들어가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오곡이라면 쌀, 콩, 보리, 조, 기장을 말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조나 기장 대신 수수, 팥이 들어가기도 한다. 사실 콩을 곡식이라 하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다. 곡물의 주성분은 탄수화물이지만 콩의 주성분은 단백질이다. 현대 영양학에서는 콩은 두류로 따로 분류하고 있다. 물론 두리뭉실하게 얘기할 때는 콩 역시 곡식이다. 일찍이 콩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 중국, 인도 등에서도 항상 중요한 오곡이었다.
콩을 사랑하고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현대의 ‘숙맥’이란 콩을 가까이 두고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특히 단백질의 부족으로 체력이 저하되어 있거나, 골밑도가 약해 약골로 불리는 사람들은 ‘숙맥’이란 말을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또 고혈압이나 유방암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어떻게 얼마만큼 콩을 먹고 있는지 점검해 볼일이다. 콩은 이익선생이 살았던 조선시대에서나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서나 여전히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중요한 음식이다.
우리는'쑥맥'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어찌 콩과 보리를 구분 못하고 아무 돈이나 냉큼냉큼 받아챙겨 끝까지 숨기지 못하고 발각되어 창피스런 추태를 부리는가? 잘 나가던 품위 여지 없이 구겨지고 정치생명도 단절되는 비극을 자초하는 정치인이 보인다.
먹을 것, 못 먹을 것 가려 먹지 못하는 '쑥맥'이 널려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