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에서 해돋이
서천에 가면 갈대밭과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수가 있다고 wife가
말을 걸어 온다. TV를 보다가, 서천의 갈대밭과 일출, 일몰에 대한
르포(현장 취재)를 본 것 같았다. 서천군 신성리에 있는 갈대숲,
금강하구언의 철새떼, 그리고 馬粱里의 일출, 일몰과 동백나무숲을
TV화면으로 멋지게 나타낸 모양이다.
그러는 바람에 마음이 끌린 것 같았다.
나도 지난번에 일출, 일몰을 보러 당진 왜목마을에 갔다가 날씨가
고르지 못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왔든 것이 아쉽게 남아 있기도
해서 갈 뜻을 비쳤다.
그리고 나서 일기예보에 신경을 꼰두 세우고 들었다.
일기예보상으로는 가는날은 날씨가 오후부터는 해가 들어선다고 한다.
그 다음날은 오후부터 구름이 있을것이라고 예보를 했다.
그러면 갈대숲과 금강하구언 철새떼를 보고 돌아오는 하루일정으로
생각을 하기로 하고 서로의 말을 맞추었다.
그 다음날 아침 출발전에 wife가 혹시 모르니 하루 자는 것을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해 가지고 가자고 한다. 그 다음날이 대통령선거일이지만
아침 일출을 보고 와서 투표를 하면 된다고 wife의 말을 받으면서
준비를 했다. 그런데 나도 같은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wife가 먼저
그렇게 제안을 하니까 쉽게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진 셈이다.
그곳 사정과 손쉽게 가는길을 알기 위해 서천군청 공보과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해보니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부여쪽으로 오면 많이 돌게 되니까, 논산, 강경, 황산대교를 건너,
한산모시 전수관 방향으로 코스를 잡으라고 알려준다.
한산모시 전수관 조금 못미쳐서 신성리라는 이정표를 따라 가면
갈대숲을 쉽게 찾을수 있다고 알려준 것을 그대로 따라서 찾아가니
손쉽게 찾을수가 있었다.
그 서천군 신성리에 자리잡고 있는 갈대숲은 장관이였다.
큰 강을 바로 옆으로 해서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말 그대로 대단했다.
폭이 한 100여 미터 가깝고, 길이로는 그 끝을 볼수가 없는 장소에
3미터나 되는 갈대가 입추의 여지 없이 빽빽하게 깔려 있으니 장관이
아닐수 있나!
나는 갈대 하면 냇가에서 혹은 산자락에서 무더기 무더기로 자라고
있는 갈대만 보아온터라 보통 생각에 그보다 조금 더 크게 자리잡고
갈대숲이 형성되고 있으려니만 생각하고 있었기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
되여 버리고 말은것이다.
그 갈대숲을 서천군에서 관광자료로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다.
갈대숲 체험장을 조성해 놓았고, 안내판도 만들어 놓아 갈대에 대한
상식도 알려주고 있었다.
실제로 갈대를 직접 보니, 그 종류도 많고 그 쓰임새도 다양한 모양다.
펄프원료도 될 수 있고, 약용으로도 쓰일수 있다고 한다.
갈대의 줄기 상단에 있어서 바람으로 날려 퍼지기 쉽게 되여있는 가벼운
부푸러기 모양의 종자씨의 모양도 여러 가지다. 어떤 것은 수수모양
으로 고개를 숙인것도 있고 어떤 것은 하늘에 고개를 반짝 쳐들고 햇살을 받고 하얗게
반짝이고 있는것도 있다. 그러다가 농익었을때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종자를 퍼트리고 있는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많은 갈대가 생겼겠지.
그 갈대숲을 사이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걸어 보았다.
한번 갈대숲길에 들어서면 갈대의 높이가 너무 크고 조밀하게 자라고
있어서 서로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배경으로 해서 한국영화 ‘JSA(공동경비구역)’이 이곳에서
촬영이 된 모양이고 그 사실을 사진으로 크게 만들어서 갈대숲 홍보자료로 입구에 세워놓았다.
신성리 갈대숲을 빠져나와 근처에 있는 한산모시 전수관을 찾았다.
이곳은 서천군이 지자체의 정체성을 알리고 관광객 유치차원에서 몇 년
전에 공사할 때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완공이 되여 그
내부를 관람할 수가 있었다.
관람료가 일인당 \1,000이다.
굴종의 세월을 보내며 여인의 한을 씹고 삼키며 한올 한올 실타래를
만들어갔을 것을 되새기면서, 그곳에 여러 가지를 형상화 해서 보관해
놓은 것을 둘러보았다.
모시라는 것이 값에서 현대의류들과 경쟁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웁고,
세탁등 관리하기가 힘들어서 그 전통의 맥을 이어나가기 어렵겠다고
wife와 말을 주고 받았다.
이어서 바로 금강하구언으로 향했다.
좀 달리다 보니 금강하구가 보인다. 철새들이 무더기 무더기 물위에
떠있는 것이 저 멀리 있어서 유의해서 보아야만 식별이 갈 정도로
조그마한 것들이 물위에 떠있다.
하구언을 지나 강가에 설치해 놓은 의자에 앉아서, 하릴없는 듯이
유유히 나르며 하늘을 맴돌고 있는 새들을 보며 잠시 쉬고 난후에
점심을 먹으러 자리를 떴다.
점심을 먹으면서, 여기까지 왔으니 마량리에 가서 뜨는해 지는해도,
天時가 도와줄지 모르지만, 보고 가자고 서로의 뜻을 모았다.
마량리까지 그곳부터 한 30분정도 소요된단다.
馬粱里,
서천군에 속해 있으면서 서해끝으로 빠져나와 있어 반도의 모양을 하여
바다쪽으로 돌출하고 있다.
어선인 듯이 보이는 배가 많은 것으로 미루어 어촌을 이루고 있는
모양이다.
이곳도 서해안의 특징인 밀물과 썰물의 차가 많은 듯, 물이 들어 왔을
때와 빠져 나갔을 때, 갯벌이 넓게 드러났다. 김인지 파래인지를 걷어
들여 가공공장으로 운송해가는 작업이 한창이다.
우선 숙소를 정하기로 하고 여관이나 모텔을 찾아보았으나 눈에
뜨이지 않고 민박이라고 간판이 걸린 가옥이 두어채 보일뿐이다.
민박에 들기로 하고 부르는 값 \30,000에 정하고 키를 받아 들어갔다.
새해 일월일일에는 벌써 하룻밤에 \150,000원으로 예약을 마쳤다고
자랑이 벌써다.
민박을 전문으로 해서 집을 지은 모양으로 방에 호실까지 부쳐놓았다.
방이 네 개다. 방에 들어서니, 썰렁하다. 불을 넣어달라고 하고,
바닷바람을 쏘이러 밖으로 나갔다. 전문적인 민박은 처음으로 들어 본
셈이다. 바람이 차고 쎄서 옷에 달린 모자를 써야 했다.
바닷새들이 찬바람속에 한두 마리 날고 있고, 일하는 어부들의 일손이
부산하고, 낚시대를 드리우고 앉아있는 서넛이 눈에 들어온다.
방파제등이 잘 조성되였고
,
여기저기 공사장이 널려있는 것으로 보아 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길가에는 제철이 비켜갔음인지 횟집들이 철수를 해서
너저분한 임시가옥들이 그곳 모습을 썰렁하게 하고 있다.
다만 몇집만이 불을 밝혀 장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방파제에 올라 잔잔하고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가슴 시원하도록
바라보며 붉은빛으로 저멀리 바다밑으로 사라져갈 해가 보이길
기다린다.
그러나 시간은, 해가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붉은노을로 아시운듯
여운을 남기면서 서녁하늘로 쉼터를 찾아 들어갈 시간은, 다가오는데
구름이 먹장이다.
4시 40분 정도부터 지는해의 장관을 기대했는데, 시간이 5시 반이 다
되여도 하늘은 붉은빛 하나 없다. 해가 일찍부터 쉬러 들어간 모양이다.
방파제위로 올라온 다른 사람들도 실망의 말들이 세찬 바람속에
흩어진다. 그러나 넓은 바다, 무변망대한 바다는 많은 것을 일러주고
있는 듯 조용하기만하고, 가슴은 드넓은 바다를 받아 시원스레
고요하다.
모든 시름 그 넓음으로 감싼 듯이 말이다. 슬슬 발걸음을 돌렸다.
저녁은 먹어야 하겠기에...
값을 따라갈수 없는 음식내용이다. 썰렁한, 그리고 매끄럽지 못한
사람들의 손에서 나오는 저녁을 먹고, 쉼터인 방으로 찾아들었다.
따뜻한 바닥에 등을 부치고 누우니 언몸이 녹아든다.
간간이 차소리만이 고요를 깨고 들려 올뿐 한적함을 맛보게 한다.
준비해간 박완서의 ‘두부’를 몇장 읽다가 ,
내일 움직일 생각을 하고 잠을 청해 보지만 잠들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된 노릇이 윗풍이 심하고, 요가 워낙이 얇고 보잘것이 없어
등이 아플정도다. 미리 이불을 더 청해보았지만 요즘은 두터운 이불을
사용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고 미리 선수를 치고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윗풍 때문에 어깨는 차갑지, 바닥은 딱딱하지, 쉽게 잠을 이룰수가 없다.
다시 책을 펴고 몇장을 더 읽는둥, 겨우 잠이 든 모양이다.
눈을 떠보니 4시가 좀 지난 모양이다. 초벌 잠이 깬것이다.
두 번째 잠을 자고 눈을 뜬 것이 6시 반경.
대충 준비를 하고 두툼하게 옷을 입고 어둑어둑한 밤에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어지간히 차고 세차다.
희미하고 어슴프레한 빛으로 바닷물, 물빠진 갯벌위로 비스듬이 누운 배,
어둠속에 검게 날으고 있는 새들, 간간히 서서 길을 밝혀주고 있는
가로등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불빛이 차가웁다.
머리뚜껑을 깊게 눌러쓰고 방파제로 걸어나갔다.
이곳 마량리는 당진의 왜목마을과는 달리
한곳에서 일출과 일몰을 다 볼수가 있다.
눈만 돌리면 되는것이다. 한쪽에서 뜨고 한쪽에서 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출역시, 구름띠가 바다수면위로 높지막하게 깔려 있는것이 떠오르는
해를 보여주지 않을 모양이다
.
해가 떠오를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서, 바닷물위 구름띠를 넘어서,
엷은 구름속으로 붉은빛이 黎明처럼 드리운다.
하기는 지금같은 날씨에 이만큼도 감지덕지다.
다소곳이 내밀며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붉은해는 아니지만,
바닷물위로 붉은해를 본다는 기분은 낼수가 있으니 말이다.
해가 한참을 올랐을때는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해가 높이올라 아침으로 밝아지고, 물이 빠진 갯벌은 저만치 넓어지고,
출어나가는 배들의 고동소리가 조용한 어촌을 깨우고 있다.
아침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아침먹을 마음이 내키지 않는것이다.
어제의 저녁음식이 떠오른것이다.
차를 몰고 가까이 있는 동백정으로 향했다.
5~600년의 풍상을 겪은 동백들이 한 70여수가 된단다.
잘키우고 잘가꾼 樹形이 때깔을 곱게하고 늘어서있다.
긴세월과 더불어 나이를 한것인 만큼 그 밑의 둥치가 우람하다.
한그루의 동백이 몇그루를 뭉쳐서 자라고 있는 듯이 커다란 둥치를 이루고 있다.
두어나무가 붉게 꽃을 맺고 있었다.
정자 또한 그곳에 맞게 자리하고 있어서 바다를 향해 있다.
아침먹을곳이 마땅치가 않아서 어제 점심에 요기를 한곳으로 와서
소머리국밥으로 아침을 하고 집으로 향해 느긋한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아침 햇살이 청명하게 빛을 내고 있다.
투표만 없다면 다시 유하면서 바다위로 지는해, 뜨는해를 보고 갔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는 날씨다.
가서 나라를 생각하고, 나보다는 우리 후대를 위해, 지금 정부의 너무많은
엉터리를 짚고 넘어갈수 있는 인물에게 투표를 해야지 하고 말이다.
이곳 마량리,
서해안에서는 드물게 한곳에서 뜨는해, 지는해를 볼수 있는 地利를 얻어
사람들은 모여드는데,
이곳에서도 나는 天時를 얻지 못해 짙은 구름으로 뜨는해, 지는해를 감추었으니,
이곳 사람들의 人德이 地利를 따라가지 않음을 보고 가니, 사람들의 넉넉함이
아쉬웠다.
글쎄다. 세상살이가 힘이 들어서인지, 天時, 地利, 人德의 조화속에
그 넉넉한 아름다움이 있고, 모든 것을 매끄럽게 하는 것을 우리들은
언제나 알수 있는 철이 들것인가 하는 아쉬움이 관광명소에 오면
느껴 지는 것은 나만의 마음일까.
이에서 나는 오늘도 여기에 그 가르침을 찾아본다.
순간 순간이 스승이요, 가르침이 그곳에 있으니 말일쎄.
나이 들어가면서 철이 들었으면 하이.
글이 장황하게 길었지?
그곳 사진 몇장 보내겠네.
좋은해 맞이하기를 기원하겠네.
또 봅세. 허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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