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02하늘과 땅의 권세6.hwp
2010.11.2(복음안의교제) 권오수 목사
<하늘과 땅의 권세 6>
삼층천의 실상
♡♥:*:...:*:♥♡계시록21:1~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은 무대를 만드시고 아들의 영광을 위한 창조의 역사를 베푸셨는데 그것이 바로 창1:1의 창조의 역사입니다.
아들의 영광을 나타내는 센터가 교회이고 완성된 아들의 영광을 위한 나라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늘과 땅의 구조 속에는 세 개의 하늘이 있습니다.
3층천 - 하나님
2층천 - 천사
1층천 - 마귀
1. 삼층천은 안의 세계입니다.
안의 세계에서 삼층천을 열어야만 마귀로 말미암아 닫힌 하늘을 열 때 땅의 공허를 하늘의 충만으로 채울 수 있게 됩니다.
하늘이 없이는 땅의 문제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안에서 하늘이 열리지 않으면 잠시 괜찮아 보일뿐 하나님이 보실 때는 공허입니다.
마지막 심판 때가 되면 다 드러나고 없어지고 맙니다.
우리가 몸을 입고 있는 동안 우리 안의 세계에서 삼층천을 열어서 하늘로 땅을 이기며 살아야 합니다.
보이는 충동과 몸의 본능을 따라 살면 땅을 지배하는 마귀와 세상을 이길 수가 없는데 안에서 하늘을 열고 삼층천이 열린 사람은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현재적으로 맛보고 동시에 세상과 마귀를 이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2. 삼층천은 성도의 하늘주소입니다.
이 땅의 삶은 나그네와 같습니다. 하늘에는 영원한 우리의 문패가 달려 있습니다.
3. 삼층천은 진정한 예배를 누리는 현장입니다.
예배는 모든 복을 누리는 근원적인 축복입니다.
예배는 안의 세계를 열어서 찬송과 말씀과 기도 가운데 땅의 모든 것을 이기고도 남는 복을 얻는 시간입니다.
4. 삼층천은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현장입니다.
삼층천이 열린 사람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용하여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만리 끝에서 지켜보시면서 원격조종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친히 믿는 자 안에 오셔서 그 사람과 연합하여 그 사람의 인격을 통해 나타나 지금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5. 삼층천은 세상을 이기는 현장입니다.
이 세상 임금이 마귀이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것으로는 세상의 것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신 분만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삼층천 보좌 우편에 있는 주님의 능력으로만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6. 삼층천은 성화를 이루는 현장입니다.
하늘을 열어 삼층천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길 때 성도는 성화되어갑니다.
한번 은혜 받고 떨어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성화는 단지 내가 율법주의처럼 결심하고 혈서를 써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성화는 안의 세계에서 하늘이 열릴 때 예배의 축복을 누릴 때 성화를 이루는 힘이 하늘로부터 부어집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비면 무엇으로든 채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꾸 집착을 하고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7. 삼층천은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는 현장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과 성도들이 영원히 함께 있는 곳입니다.
이 땅에서는 내 믿음의 의식만큼 함께 하시는 것을 누리기도 하고 빼앗기기도 합니다.
누릴 때는 문제가 축복의 통로가 되지만 함께 하시는 것을 누리지 못할 때는 갈등과 쓸데없는 생각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해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는 감격이 영원히 계속되는 곳입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사망이나 병이나 가난이나 힘든 것이나 지치는 것이 없습니다.
이 땅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가 죄로 사람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슬픔과 괴로움과 피곤함이 계속됩니다.
슬프고 괴롭고 피곤한 것은 다 사망으로 연결됩니다. 그래서 열린 하늘이 없다면 이 땅에서는 허무밖에 없습니다.
땅에 있는 집은 다 임시거처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모하고 들어가야 하는 집은 바로 삼층천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이 땅은 잘해도 문제, 못해도 문제 이러나 저러나 욕먹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며 제가 내린 결론은 “왕들이 불쌍해요.”입니다.
진정한 창조는 하늘의 집에 들어갈 때 비로소 완정됩니다.
우리가 들어가야 할 하늘의 집이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는 진짜 좋은 것이 없습니다.
하늘 영원한 우리 집만이 정말 좋은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하늘처소를 예비하고 계십니다.(요14:2,3)
믿으면 하늘에 들어가긴 다 들어가도 누리는 부분이 다 다릅니다. 상급이 다르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내 몸을 움직인만큼 ‘나’가 만들어집니다.
이 땅에서는 육의 운동력을 통해서 형체를 만들어내고 심은 대로 거둡니다.
하늘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의 운동력으로 심은 것은 땅의 것으로 거두지만 나의 썩어질 육의 운동력이 아니라 내 안에 오신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로 말미암아 움직여서 사랑으로 믿음으로 심은 것만 하늘의 집으로 연결됩니다.
세상에서 내 이름 내고 상 받은 것은 하늘나라에 하나도 연결이 안 됩니다. (박용규 목사, 현신애 권사)
이 땅에서 내 안에 계신 예수의 생명력으로 움직이는 것은 나 하나 은혜 받고 치료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몸을 벗고 영원히 누릴 하늘의 것으로 연결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예수 생명으로 움직이는 모든 것이 하늘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들려주시는 이유는 우리도 그렇게 하늘의 것을 쌓는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풍성한 상급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15장 5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
우리의 작은 수고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 것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에 끌리거나 헛된 욕심에 매이지 말고 하늘의 집을 짓기 위해 주께서 감동한 일을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8. 삼층천은 참 기쁨의 현장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기쁨을 추구합니다. 사람이 죄를 짓는 이유 중 하나는 죄가 주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가 주는 기쁨은 참 기쁨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순간의 기쁨을 위해서 일생을 마치는 줄도 모르고 달려가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알콜중독 섹스 중독 등 중독에 걸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허전하니까 기쁨을 찾다보니 그런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기쁨은 굉장한 힘이요, 능력입니다.
하늘의 기쁨이 있고 땅의 기쁨이 있습니다.
땅의 기쁨은 잠간입니다.
이 세상의 기쁨은 보이는 것을 통해서 마귀가 주는 것으로서 순간적이고, 정욕적이고, 충동적인 것입니다.
그 순간은 참 좋은데 지나고 나면 없어지는 허상입니다.
사람은 발전욕망이 있어서 갈수록 더한 것을 원하게 되는데 세상기쁨은 허무와 고통이 따라오고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안겨주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요15:10,11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은 주님의 기쁨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의 기쁨은 땅이 것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내 안에 오신 예수의 인격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기쁨은 예수님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참 기쁨이요, 자유요, 일체의 비결입니다.
성도의 기쁨은 주님으로 기뻐하는 것이요, 환경을 뛰어넘는 기쁨입니다.
하늘의 기쁨은 전염성이 있습니다.
땅의 기준으로 보면 ‘항상 기뻐하라’는 명령은 참으로 부당한 명령입니다.
우리가 땅의 기쁨의 기준을 버리지 못하면 이 땅에서 참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성도는 참 기쁨을 아는 자입니다.
때로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지만 성도의 기쁨은 변함없는 하늘의 기쁨입니다. 진정한 기쁨의 기준을 안다면 우리는 핑계할 것이 없습니다.
살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삼층천으로부터 오는 기쁨입니다.
고후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삼층천이 주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행5:41,42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를 전하다 능욕을 받은 것을 예수쟁이로 인정받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팔복 마지막 부분을 보면 마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삼층천 하늘의 진정한 복을 모르면 아무리 말씀을 잘 전하는 것 같고 능력이 많은 것 같아도 마귀에게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사역의 근거, 기쁨의 근거가 삼층천 하늘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안의 세계를 활짝 열어 그 기쁨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