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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삶이 힘들 때는 사람 사는 맛이 가장 진하게 풍기는 곳을 찾아가 두리번거립니다. 그렇게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 보면 '아, 이렇게들 사는구나!'하는 생각에 그동안 내가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식목일은 아직 멀었지만 지금쯤 나무를 사다 심는 것이 좋을 듯하여 제주 오일장에서 나무를 살 겸, 사람 사는 구경도 할 겸 조금 먼 길을 나섰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니 오일장에는 봄내음이 물씬 풍깁니다. 꽃들의 행렬과 씨앗들이 시장의 가장 앞자리에 자리하고 앉아 있는 것을 보니 봄은 봄입니다.
'그래, 예쁜 꽃들은 가는 곳마다 예쁜 향기로 행복을 전하고, 작은 씨앗들은 뿌려지는 곳마다 예쁜 싹을 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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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볼거리가 많지만 무엇보다도 오일장에서는 사람 구경이 최고입니다. 오일장에서는 시골냄새가 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이 지긋하신 분들의 거친 손과 주름진 얼굴들을 가까이 마주할 수 있고, 다 팔아야 몇 천 원 될 것을 좌판도 벌리지 못한 채 발품을 파는 이들까지도 넉넉하게 안아주는 풍경이 있으니 시골냄새, 사람 사는 맛이 오일장에는 스며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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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어린 시절 오일장에 가시는 부모님들을 졸라 모란 오일장을 가곤 했습니다. 갖가지 볼거리도 좋았지만 오랜만에 생기는 군것질거리가 더 관심사였습니다. 호박엿이나 번데기 같은 것들도 좋고 눈깔사탕이나 시장어귀에서 튀기던 뻥튀기도 최상의 것이었습니다.
아내에게 점심시간도 안되었는데 옥수수를 사먹자고 합니다. 다 큰 사람이 옥수수를 맛나게 먹으며 이리저리 기웃거려도 타박하는 사람이 없는 곳, 그 곳이 바로 오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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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우리 집에서 만든 된장팝니다'라는 품질보증서(?)가 붙은 메주, 그리고 전통과자(?)라고 불리는 것을 만났습니다. 어린 시절 한번씩은 먹어보았던 과자들입니다.
고물을 모아두었다가 엿장수 아저씨의 가위소리에 소쿠리를 들고 뛰어나갑니다. 그러면 마음씨 좋은 아저씨는 소쿠리가 그게 뭐냐고 하시며 큰 것을 가져오라고 하시고, 어떤 아저씨는 너무 큰 것을 가져왔다고 면박을 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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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청국장 뜬 것과 갖가지 젓갈과 장조림들이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습니다. 한 두 개 집어먹어도 타박을 하지 않습니다만 이것저것 다 맛을 볼 수가 없으니 아내에게 우리의 솜씨를 벗어나는 것 두어 가지 사자고 합니다.
그렇게 장에서 산 반찬들은 어김없이 그 날 저녁 반찬으로 나오고, 그 날 저녁은 아주 맛나게 먹습니다. 집사람이 샘을 낼 정도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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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생선가게를 지나칠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생선이라지만 어린 시절에는 그 비린내가 얼마나 그리운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연탄불에 고등어라도 한 마리 구울라치면 온 동네에 퍼지는 고등어 냄새에 미안하기도 했고, 생선머리는 물론이고 뼈까지 바싹 구워 알뜰하게 먹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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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오일장에는 옛 향수를 물씬 담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 곳 제주는 항아리의 쓰임새가 많이 있으니 제법 항아리를 파는 곳도 큽니다. 그리고 기능성 항아리들과 자잘한 소품들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예쁜 것들이 많습니다.
모두가 흙으로 빚어진 것이요, 뜨거운 풀무가마를 거쳐 완성된 것입니다. 부드럽던 흙이 물건을 담는 항아리가 되기까지에도 수많은 이야기 거리가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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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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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각종 농기구와 공구들도 오일장에 나왔습니다. 각종 농기구와 공구들은 사람들의 손이나 힘에 의해서 움직이면서도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합니다.
닭과 앵무새도 새 주인을 기다립니다만 조금은 지친 듯합니다. 공구나 농기구나 닭이나 새나 모두 새 주인을 기다린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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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허리띠는 '골라 5천원'이고, 제주의 갈옷은 가격까지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리 비싸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일장에도 가격이 붙어있습니다만 그것은 정가가 아니라 아주 싼 가격입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또 에누리가 있는 장사를 합니다.
현대식 매장처럼 깔끔하지도 않고, 잘 정돈된 것도 아닌데 오일장에 왔다 가면 기분이 좋습니다. 따스한 봄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재래시장이나 시골 오일장으로 나가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 보시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