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조명, <시인이 뽑은 대표시>
쑥대밭 외 4편
김신영
골프 컨트리클럽
넘치는 21세기
저 푸른 초원 위에
쑥대밭이 없다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지천으로 땅에 깔린 것이 쑥인데
여기에는 쑥대같은 어머니가 없다
퉁퉁한 허리를 질끈 동여매고
머리에 수건을 얹어
모자를 쓰고
쑥밭에 앉아
쑥을 뜯으시며
쑥떡을 해먹고
쑥밥을 해먹고
쑥을 말려 약을 해먹던
쑥덕쑥덕 모여살던
쑥대밭이 없다
달콤 쌉싸름한 어머니
저 푸른 초원 위에 삼천리마다
넘쳐나던 어머니가 없다
오호 여기 쑥 한 뿌리 심어야 하겠다
뿌리에서 뿌리로 이어지는
어머니의 인생을 심어야 하겠다
머지않아 이 언덕
쑥대밭이 될 것이다
먼짓길에서 고속도로까지
아직도 먼짓길을 가는데
흰머리가 귀밑에 돋았다
갑자기 마음이 굳어진 나는
보폭을 넓히고 재빠르게 두 팔을 내저으며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해는 서산에 걸리고
거칠게 불타오르던 햇빛마저도 숨어들었는데
고속도로에 진입하지 못한 나는
흰머리를 뽑아 버렸다
나를 오라하던 사람들이 멀리서
손을 흔들어대었고
나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들을 놓칠까봐 무척 애를 쓰고
더 처지지 않으려
먼지를 뒤집어쓰고 안간힘을 쏟았다
순간, 두통이 일기 시작하더니
내 열정이 눈꺼풀 위에 내려앉았다
눈을 뜰 수가 없어 버둥거렸다
쉬었다 갈까 모퉁이에 앉았는데
모든 도로들이 일어서고
건물들이 나를 향해 덮쳐오고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향해 쏟아져 오고
두려운 햇살마저 서산에 넘어가고
어둠 깊은 밤이 재빨리 찾아오고 있었다
아직도 도로에서는 사람들이
휙휙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사막의 꽃
상처를 잊은 지 오래
너를 잊은 지 오래
네가 사막의 바람을 맞다
사라진 시간보다 더 오래
오늘을 기다려 왔다
드디어 폭풍이 밀려온다
나는 그저 모래바람이 실어오는 폭우를
너를 잊어버린 내 가슴구멍에
하늘 가득 퍼 놓으면 된다
삼천일*을 거침없이 기다렸다
언제 다시 태풍처럼 불어 닥치는
이 거센 바람을 만날지 모른다
나는 젖은 모래 속에
황급히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일주일이 채 되기도 전에
재빠르게 꽃대궁을 밀어 올렸다.
일주일이면 충분하다.
일곱째 날이면 마른 바람을 맞으며
다시 씨로 돌아가
언젠가 오늘이 되기까지
나의 나됨을 지우고
너의 기억조차 모래 속에 묻어 버리고
사막의 비바람을 기다릴 수 있다
시간 속에 나를 묻고
한차례 폭우가 몰고 올 환희의 그 날을
그 언젠가 꽃이 되는 일주일을
쓸쓸한 지 오래도록
오롯이
기다릴 수 있다
*8년 80일의 나날.
가벼운 섬·1
기꺼이
신神에게로 가까이 가고 싶다
친구여,
내가 가질 수 없는 엿장수의 가위적的 장치를
물결 이는 밤마다 요술처럼 마술처럼
내보이며 꿈꾸며,
무거운 고요의 바다
첨벙이며 흔들리며 살찐 하늘 가 보고 싶다
여기 황폐한 문지방이며 무너진 흙담을
일으키어 내 출렁이는 바닷가 별들과
유성이 되어도 좋은 밤을 맞고 싶다
눈비 쏟아지는 겨울에서
비바람 부대끼는 여름에도
미씨개꽃 씨알 뼈에도 귀대고
나는 섬에서 솟아나는 온기溫氣를 느끼고 싶다
신神이 오는 바닷가에 드리운 내 얼굴
그 섬에서 나의 불가사의를 씻고
내가 피워올리는 향기로운 촛불로
밝혀진 궁전에서, 비어있는
가슴 가슴을 채우고 싶다
그렇게 기꺼이 신神에게로
가까이 가고 싶다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척박한 땅을 밀어올리며 영양을 섭취하였다
엽록소 없는 구차한 기생으로 나의 생존을 이루어간다
동물도 식물도 아닌 균류의 일종으로 살아가는
내 치졸하고 왕성한 분해 능력을 그대 혹시 보았는가
낙엽과 땅과 그대의 생살,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나무를 무너뜨리고 땅을 갉아먹고
그대를 불태우는, 그대가 모르는 나의 뒷면
비가 오나 해가 비치나 사람들 모르게
세상을 변절시키는 것이 내 생이라면
그대 내게서 멀리 떠나 내가 없는 곳에 살라
내 화려한 망사나 필수 비타민보다 질긴 생존 능력을,
그리고 나의 균사, 뻗어나가 숲을 침식시키는 부당함을
강력하게 논하여다오
나의 자실체 공간을 배회하지 못하도록,
나를 겨울 같은 눈 속에 가두어다오
아니아니 저 건조한 사하라 사막에,
티벳의 고원에 나를 두어
사방에 뻗어가는 나의 썩음증
나의 물질 분해 끝이 나도록
거듭되는 순환의 고리 끊어다오
큰 나무도 단순히 부후* 일으키는 죽음의 나락
왕성한 나무의 니그린 제로로스,
헤민 제로로스를 힘없이 부수어내는,
너의 인대 백색 갈색으로 우주의 숲에 쓰러뜨리는 이 망할 것
나의 이율배반, 녹아내릴 것 같은 운명의 비는 유기물 형성하고
산소를 부르고 나의 생명을 부르고 그만 또 너의 호흡을 부른다
고요한 아침마다의 부후, 나의 정원, 화려한 망사.
*버섯이 일으키는 썩음증.
<시인의 최근 신작시>
콘크리트 키드 외 4편
벽에서 향기가 난다
향기마다 바람에 실려
별밭으로 내려간다
어머니의 고향 같은 향기
내가 실려갈 어느 바다 같은 향기
내 살이 콘크리트 향을 풍긴다
오래도록 콘크리트로 집을 짓고 살아
콘크리트에 담긴 것이 내 생각이며
내 생각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고 반듯한 길을 간다
하여, 반듯한 벽이 무너질리 없다
벽을 닮은 내가 무너질리 없다
백년을 가도 단단한 콘크리트를
무엇에 비길 수도 없다
하여, 내 인생은 콘크리트를 소망한다
백년이 가도 단단한 살을 소망한다
염생하다
저토에 떨어져 분해를 시작하니
새로운 생이 시작된다.
바다가 막혀 갯벌이 마른 땅에
소금기를 마시며 정화를 꿈꾸니
담수의 꿈이 날개를 편다.
퇴적물이 씻기어 환생할 수 있다면
단절된 물줄기를 찾을 수 있을 텐데
서식처없이 떠도는 뿌리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붉은 땅에서
넓고 붉은 이파리를 밀어 올리며
굵은 목줄기의 영혼을 척박한 땅 깊이 밀어
자양분을 얻어낸다
간이 들어 염분이 결정을 이루는
염수액이 진해
자주 수로가 막히고
현기증은 산통을 부르지
적막한 통증은 하얗게 소금끼를
토해 내며 생의 염분 아래
목조여 오는 습생은
쓸모없는 땅에서 외로움으로
염장되지
메신저 네트워크
이역만리 타국에 있는 네게
쪽지로 문자를 보내는 밤
엠피쓰리MP3 속에 세느강이 있고
화면 앞에 모네의 연꽃 밑그림에
불어들이 떠오른다
이쪽에서 이름을 부르면
저쪽에서 대답을 보내온다
즐거운 음악이 귓가에 있고
보고 싶은 사람이
화면에 글로 나타나고
어머니도 엔터키 한번에 편지를 받고
나도 어머니의 엔터키에
깊은 사랑을 받는다
사진을 올려놓고 자랑하다가
밤이 사라진다
멀고 먼 지구 반대편
이역만리 떨어져 있다 해도
화면 앞에 앉으면 지척이 되는
메신저 네트워크
강변은 사람들 그림자 넉넉하고
낭만의 곡조가 흐르고
행복에 박자를 맞추어 답장을 하고
다시 돌아온 메시지의 감격시대
외로움과 그리움에 기진하여 잠이 들 오늘이
행복에 겨워 잠이 들 오늘로 변하여
소식 못 들어 애닳던 우리들의 편지가
구절구절 행복으로 다가오는 연서이다.
황금을 쪼개어
갑자기 컴퓨터가 다운되어 논문을 쓸 수 없어
황금을 쪼개어 피시pc방엘 갔다 40-50석 모두 한글이 없단다
포연처럼 연기 가득한 공간 위로 새로운 가수의 음악이 떠올랐다
몇 군데 남지도 않는 좌석에 사람들이 어디에서
이렇게 눈빛을 굴리면서 자리를 찾아 앉아 있는지
나는 다른 몇 군데를 거친 후
간신히 한 피시pc방에 자리를 잡았다
40석 멀리 금연석이지만
동굴 속 포연을 피할 길은 없다
시간은 금을 실감하면서 예상시간만큼
돈을 지불하였다 게임도 정말 많구나
20대의 청춘들이 여기에 있구나
갑자기 나는 아찔한 현기증에 통증을 느낀다.
한두 시간에 이렇게 많은
청춘의 거선들이 피시pc방에서 연기를 뿜으며
황금을 쪼개고 있다니
집에서도 피시pc방에서도 온라인 게임에 미쳐
거선에서 연기가 넘쳐나다니
어디를 가도 청춘들의 연기가 넘치는
황금을 쪼개는 너희들에게
내 기꺼이 한 마디 하고 싶구나
청춘의 금을 그렇게 쪼개어 쓰다니
이 나라의 청춘을 피시pc방에서 태워 보내다니
무엇이 너희를 피시pc방으로 내몰더냐
황금을 쪼개어 해야할 일을
모래를 쪼개어 땅에 뿌리는 구나
미안합니다
우리 사이에 얼마나 많은
강물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세월이 흐르고 강물이 흐르고
두 번 다시 그 세월에
그 강물에 갈 수 없다는 아쉬움이
머리를 짓누릅니다.
언제 우리가 만나서 즐겁게 웃었던 밤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고
다시 눈내리는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왔어도
다시 우리는 강물에 함께 발 담그는 세월을 낚지 못합니다.
갈 수 없어 미안합니다.
보고 싶어 꽃잎을 띄우며 잎차를 마시지만
아직 정리되지 못하고 잉태를 기다리는
뜻모를 날개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좋은 밤이 오면
언젠가 다시 같은 강물에
발 담그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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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 시인 프로필│
충북 중원 출생
2007년 중앙대학교 국문과 박사
1994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출 간│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시집, 문학과지성사, 1996)
『불혹의 묵시록』(시집, 천년의 시작, 2007)
『현대시, 그 오래된 미래』(평론집, 한국학술정보, 2007)
활동사항│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원
시산맥, 시의 지평 동인
계간 『아시아 문예』 편집장
계간 창작21 편집위원
홍익대, 협성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