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용사 훈련학교 설립 배경 및 경위
대 부흥과 대 추수를 준비하는 강한 용사 훈련학교 이것은 현재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 성도 운동에 대한 꿈
여러 해 전의 일로 기억됩니다. 울산 삼산교회를 배경으로 하는 꿈을 꾸었는데, 그것은 단지 울산 삼산교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유명한 빌 해몬 박사가 예언한 앞으로 다가올 '성도 운동'(saints movement)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그 후 삼산교회 장지복 목사님에게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 꿈 얘기를 해드렸더니 "꿈 얘기를 듣는데 손에 전기가 막 옵니다. 성령께로부터 온 꿈이 분명합니다"하고 기뻐하셨습니다. 그 꿈의 상당 부분은 삼산교회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씀드릴 수 없고 단지 그 꿈의 뒷부분을 조금 얘기하려고 합니다.
꿈의 마지막 부분에 제가 사람들에게 안수 기도를 해주면서 교회의 맨 뒷좌석까지 갔는데 거기에 앉아 있던 온 어느 외국인 예언사역자가 저를 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지금은 주께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주시고 있는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영성 집회에 참석하십시오. 그러면 계속해서 기름부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혼자 가지 마시고 목사님 교회의 신학생들을 데리고 가십시오."
꿈에서 깨어 일어난 후 나는 다소 혼란스러웠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데, 하나는 영성집회는 주로 서울에서 열리기 때문에 성도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 꿈을 꾸고 얼마 안 있어 신기하게도 가까이에 있는 부산에서 영성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래서 실제로 성도님들과 함께 그 집회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신학생들을 데리고 가라고 했는데 우리 교회에는 신학생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 "우리 교회는 신학생들이 없는데요?"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제 영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모세를 통해 여호수아를 키웠고, 엘리야를 통해 엘리사를 키웠고, 바울을 통해 디모데를 키웠다. 여호수아에게는 모세가 신학교였고, 엘리사에게는 엘리야가 신학교였고, 디모데에게는 바울이 신학교였다. 그리고 12제자에게는 내가 신학교였다. 본래 신학교란 제도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이 곧 진정한 신학교이다. 그러므로 네가 바로 신학교이다. 나는 너를 하나의 신학교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희 교회의 성도들이 곧 신학생이다. 그들과 함께 영성 집회에 참석하라!"
★열린교회 신동우 사모님이 본 환상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진영식 목사님이 시무 하시는 소리교회를 빌려서 "사무엘 리 박사 초청 대 부흥을 위한 신년 대 성회"를 하던 셋째 날이었습니다. 사랑이 많고, 신유와 예언의 은사가 강하여 제가 존경하고 있던 열린교회 신동우 사모님이 평소처럼 밤에 교회에서 기도하다가 저에 관하여 환상을 보았습니다.
환상 중에 보니, 제가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고등학교 선생이고 우리 교회 성도들은 고등학생이더랍니다. 그런데 대학을 보여주시면서 "지금은 불신자가 이것을 소유하고 학장 노릇을 하고 있는데, 변 목사가 이 대학을 취해 학장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교육과 행정으로 이것을 취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랍니다. 당시 저는 열린교회 사모님이 환상 속에서 들은 "교육과 행정으로 이 대학을 취하라!"는 주님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모님에게 여쭤 보았지만 사모님 역시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시고자 하는 대학을 취하려면 교육과 행정 분야를 준비해야 합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대학이 해야 할 모든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준비합니까? 방법은 하나, 학교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교육과 행정이 절로 준비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꿈만 꾸고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절대로 교육과 행정이 준비되지 않습니다
★ 전에 성도들이 꾸었던 꿈
열린 교회 사모님이 본 이 환상을 전해 듣고, 비로소 저는 전에 성도들이 꾸었던 꿈과 환상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 가운데 어떤 분은 꿈에 교회 끝이 뒤로 끝없이 확장되면서 하늘에서 의자가 내려와 착착 늘어서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저는 당연히 그것이 장의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공부할 때 앉는 의자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집사님은 우리 교회가 크게 지어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들어가 보니 학교더라는 것입니다. 훗날 그 집사님은 젊은 목사님들이 학장님이 어디 계시냐고 찾는데 저를 보더니 학장님이라고 부르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닌데? 우리 교회 목사님인데?' 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전에는 그런 얘기를 들어도 그냥 지나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열린교회 사모님이 본 환상을 전해 듣고 비로소 그 꿈들이 미래의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아마 이런 일이 있으려고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교회의 환상을 잘 보는 믿을 만한 집사님이 "목사님, 어제 꿈을 제가 꾸었는데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육군사관학교더라고요. 그리고 운동장에서 운동회를 하는 것 같은데 목사님이 교관이 되어 학생들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라고 꿈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 학교를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감동과 환상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일 후, 갑자기 저에게 학교를 시작하라는 주님의 싸인이 떨어졌습니다. 교회를 건축하고 이전한 후에 성도 운동에 대비하여 성도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강한 용사 훈련학교'를 시작하라는 감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에 영안이 열린 집사님들을 모아놓고 이 문제에 대해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중보기도자 중 한 사람인 제 동생이 이런 환상을 보았습니다.
"3층 짜리 건물이 보이는데 건물 앞에는 십자가가 높이 달려있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구름이 임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건물이 교회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건물로 들어가는 원형 모양의 계단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큰 책들을 몇 권씩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건물 둘레로 넓은 원을 그리며 오른 손에 긴 창을 든 천군들이 그 학교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다른 중보기도자도 이와 유사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시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더 분명한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 릭 조이너의 책을 통해 말씀하시다
그러던 중 저자신의 깊은 회개와 변화를 위해 릭 조이너가 쓴 "21세기를 위한 예언적 비전"이라는 책을 세 번째 읽는 도중이었습니다. 책을 읽어나가고 있을 때 1998년에 그가 본, 교회에 대한 가장 중요한 환상 중에 하나인 "부르심"이라는 환상이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환상 속에서 나는 커다란 평원을 바라보며 높은 산 위에 서 있었습니다. 내 앞에서는 넓은 전선(前線)에 걸쳐서 어떤 군대가 행진하고 있었습니다. 제일 앞쪽에는 열두 개의 사단(師團)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뒤쪽에서 그들을 따르는 무수한 숫자의 다른 군인들과는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이 사단들은 다시 연대, 대대, 중대, 그리고 분대들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각 사단들은 각각의 군기(軍旗)를 통해 구분되었고 연대들은 각기 다른 색깔의 군복으로 구분되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들은 남자와 여자, 노인과 젊은이, 그리고 모든 인종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굳은 결의가 서려 있었지만 긴장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는데도 나는 그 군대에서 깊은 평화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다가오는 전투를 두려워하는 병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다가갔을 때 느낀 영적 분위기는 그들의 외모만큼이나 장엄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군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색깔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모든 병사들은 계급장과 훈장들을 달고 있었습니다. 장군들과 다른 장교들이 열 가운데서 다른 군인들과 함께 행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계급이 높을수록 더 큰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아무도 자신의 계급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계급이 높은 장교로부터 말단 사병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모두 친밀한 친구들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은 전례가 없이 훌륭하게 훈련된 군대였지만 그들은 또한 단지 하나의 커다란 가족처럼 보였습니다.
내가 그들을 살펴보니 그들은 사심이 없는 듯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정체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이 누구이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그들 모두가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만 빠져 있지도 않았고 남에게 인정받기를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그 군대의 어디에서도 야심이나 교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서로 독특하다는 사실 때문에 매우 놀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완벽하게 발을 맞추어 행진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런 군대는 일찍이 지구상에 존재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에 나는 그 선두 그룹 사단들의 뒤쪽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수백 개의 사단들로 이루어진 훨씬 더 큰 무리의 군대가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 무리들은 각기 크기가 달랐습니다. 가장 작은 무리는 약 이천 명이었고 가장 큰 무리는 수십만 명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이 그룹은 첫 번째 그룹처럼 날카롭고 생기 있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단지 그 크기 때문에 장엄한 군대였습니다. 이 그룹도 군기(軍旗)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첫 번째 그룹의 군기들보다는 턱없이 작았고 그렇게 인상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군복을 입고 계급장을 달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완전히 갖추어진 갑옷을 입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많은 이들은 아예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갑옷과 무기들은 첫 번째 그룹이 가지고 있던 것들에 비해 제대로 닦이지도 않았고 광채도 훨씬 덜했습니다.
내가 이 군대를 더 자세히 살피자 나는 그들이 모두 결심을 한 자들로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첫 번째 그룹이 가지고 있던 초점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이 군인들은 자신들 및 자신들 주위에 있는 자들의 계급에 대해 훨씬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이것이 그들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고 초점을 흐리게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또 군대 내에서 야심과 질투를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도 물론 그들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이 두 번째 그룹이 아직도 지상의 어떤 군대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헌신과 목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것 역시 대단히 강력한 군대였습니다.
이 두 번째 군대 뒤에는 세 번째 그룹이 있었는데 그들은 처음 두 군대들보다 너무나 뒤에 처져서 행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자신들 앞에 있는 두 그룹을 볼 수나 있을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이 그룹은 첫 번째 그룹과 두 번째 그룹을 합한 것보다 몇 배나 더 컸습니다. 아마도 수백만, 수천만 명의 사람들로 구성된 것 같았습니다. 내가 멀리서 보았을 때 이 군대는 거대한 새떼처럼 서로 다른 방향들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방향으로 우르르 움직이다가 잠시 후에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결코 한 방향으로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산만한 움직임 때문에 그들은 처음 두 그룹들로부터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이 군인들을 보니 그들은 넝마처럼 된 우중충한 회색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은 깨끗하지도 않았고 다림질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군사들은 거의 모두 피투성이거나 부상을 입고 있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은 행진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다른 사람들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향해 천천히 걷고 있었습니다. 열(列)들 중에서는 끊임없이 싸움이 일어났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다쳤습니다. 병사들 중 어떤 이들은 그들의 열 가운데 흩어져 있는 낡아빠진 군기들 가까이에 머물러 있으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군기들 가까이에 있는 이들도 명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깃발에서 저 깃발로 끊임없이 옮겨 다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 번째 군대에 있어서 내가 놀란 것은 그들 가운데는 오직 두 가지계급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장군들과 병사들입니다. 단지 몇 사람들만 갑옷의 일부를 착용하고 있었고 장군들만이 모조 무기들을 휴대하고 있었을 뿐 나는 그 어떤 사람도 진짜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장군들은 마치 무기들이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기를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심지어 열들 중에 있는 자들도 그 무기들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슬픈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열들 중에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정말로 따라야할 지도자를 간절히 찾고 있던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장군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야망이 없는 듯했습니다. 이것은 첫 번째 군대처럼 그들이 사심 없는 자들이었기 때문이 아니고 다만 그들을 돌보는 자들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그룹에 만연해 있는 지리멸렬보다는 두 번째 그룹에 존재하고 있던 야망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의 장군들은 자신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또 그들은 군기들 주변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항상 벌이고 있던 싸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길 좋아했습니다. 그 때 나는 열들 속에서 벌어지는 싸움들 때문에 이 그룹이 시시때때로 방향을 잘못 바꾸고 사람들이 대규모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그룹의 수백만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아무리 그들의 수가 많다 해도 그들은 실제로 군대에 힘을 보태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군대를 약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실제로 전투가 벌어졌을 때 그들은 힘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짐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군대의 전투력에 보탤 수 있는 가치보다는 그들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음식과 방어에 훨씬 더 큰 비용이 들 것 같았습니다. 첫 번째나 두 번째 그룹의 한 병사가 아마도 세 번째 그룹의 여러 장군들보다 더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심지어 앞의 두 그룹들이 왜 이 그룹이 자신들의 뒤를 계속 좇아오도록 내버려두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군인들이 아니었습니다.
후에 나는 심판 자리 앞에 있는 심판의 홀 안에 서 있었습니다. 주님은 지혜(Wisdom)로서 나타나셨지만 나는 그분의 감정이 그토록 맹렬한 것을 결코 본 적이 없고 또 그분의 말씀이 그처럼 장엄하게 들리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너는 이미 너의 마음속에서 이 군대를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내가 임명하는 지도자들이 이제 이 군대를 지휘할 것이다. 나는 너를 많은 지도자들 가운데 보낸다. 너는 그들에게 무엇이라 말하겠느냐?"
"주님, 이것은 큰 군대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세 번째 그룹의 상황에 대해 슬퍼하고 있습니다. 나는 심지어 왜 그들이 당신의 군대의 일부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허락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들이 더 멀리 가기 전에 첫 번째와 두 번째 군대들이 돌아서서 이 세 번째 그룹을 멀리 내쫓아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정말이지 거대한 수의 어중이떠중이들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네가 오늘 본 것은 아직도 미래에 속한 것이다. 내가 지금부터 행하려는 사역들을 통해 나는 이 군대를 모으고 그들을 무장시켜서 네가 본 그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지금으로선 나의 거의 모든 군대가 세 번째 그룹의 상태에 있다. 내가 어떻게 그들을 쫓아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백성들 중 이 군대의 두 번째 그룹만큼 만이라도 제대로 모습을 갖추고 있는 자들을 아직 본 적이 없던 것은 사실이지만 주님의 그 말씀은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님, 저는 이 그룹에 대한 당신의 분노를 느꼈습니다. 만약 거의 모든 당신의 군대가 지금 그런 상황이라면, 저는 당신이 그들 모두를 파괴하지 않으신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제가 이 세 번째 그룹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저는 그들의 통탄할만한 상황이 훈련과 장비 그리고 비전의 결여뿐만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행해 주는 십자가를 그들이 끌어안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느꼈습니다."
얼마 후 나는 더 이상 심판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위에서 다시 군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지혜(Wisdom)께서 내 옆에 서 계셨습니다. 그분은 단호했지만 나는 전에 느꼈던 고통과 분노는 더 이상 느끼지 않았습니다.
지혜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에게 미래의 것을 조금 보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나는 너를 내 군대를 준비시키고 지도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은 자들에게 보낸다. 이들은 산 위에서 싸우고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참소자의 군대를 맞아 계속 신실함을 지키고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내 백성을 돌보며 자신들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내 군대의 지휘관들이 되기 위해 부름을 받았고 마지막 때의 큰 전투에서 싸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두려움 없이 모든 어둠의 세력들에 대항해 서게 될 것이다."
"네가 보다시피 이 군대는 지금 행군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야영을 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야영을 하는 일은 행군하는 일 만큼이나 중요하다. 지금은 계획을 세우고, 군인들을 훈련시키고, 기술들과 무기들을 갈고 닦을 때이다. 지금은 또한 첫 번째 그룹에 있는 자들이 두 번째 그룹 사이에서 걸어야 할 때이고 두 번째 그룹의 지도자들이 세 번째 그룹 사이에서 걸어야 할 때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부르심을 입을 수 있는 자들을 찾을 것이다. 네가 할 수 있을 때 이 일을 행하라.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11:1-2("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이 실현될 날이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면서도 나의 길을 걷지 않는 자들은 사람들의 발 밑에 짓밟히게 될 것이다. 마지막 큰 싸움이 시작되기 전 나의 군대는 내가 거룩한 것처럼 그들도 거룩하게 될 것이다. 나는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과 나의 의를 떠받들지 않는 지도자들을 제거해 버릴 것이다. 마지막 싸움이 전개될 때면 네가 여기서 보는 세 번째 그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 군대가 야영을 할 때는 대부분의 시간들을 낭비했었다. 나는 항상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내 백성을 앞쪽으로 인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내 군대에게 야영을 하라고 할 때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행군하고 있는 군대의 힘은 그들의 진영의 질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들이 잠시 동안 발을 멈추고 야영을 해야 할 때, 그때는 내 백성들에게 내 길을 가르쳐야 할 때이다. 군대는 싸움에 임했을 때나 평화시에나 항상 군대이다. 너는 어떻게 야영을 하고, 어떻게 행군하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네가 그것들 중 어떤 것 하나만을 잘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너는 그것들 모두를 잘해야 한다."
"너는 미래에 나의 군대가 지금 네가 보는 것과 똑같은 상황일 때를 만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나의 불타는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세 번째 그룹의 상황에 처해 있는 자들과 더 이상 함께 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때가 되면 나는 모든 군대의 행진을 멈출 것이고 이 그룹의 사람들을 훈련시켜서 그들이 군인이 되든지 아니면 흩어버리든지 할 것이다. 나는 두 번째 그룹에 속한 자들을 훈련시켜서 자신들의 악한 야망들을 모두 내던져 버리고 오직 나와 나의 진리만을 위해 살게 만들 것이다. 그런 다음 나의 군대는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주기 위해 앞으로 전진할 것이다. 나는 원수들을 짓밟아 이 군대의 발아래 두기 위해 그들 중에 함께 있을 것이다. 나는 만군의 주가 되기 위해 오고 있다!"
나는 21세기에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 세 군대들 중 하나 속에서 행진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들 각자가 이들 중 어디에 속하게 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될 요소들 중 하나는 우리가 그 이전에 얼마나 잘 훈련을 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계획을 세우고, 훈련을 받고, 기술들과 무기들을 연마해야할 때입니다.
전에는 환상 뒤에 릭 조이너가 덧붙여 놓은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그 글이 제 눈에 들어오면서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이 일이라는 것을 제 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단순히 내가 직접 집회를 인도하거나 직접 사역함으로써 맺혀지는 열매가 아니라, 일꾼들을 길러 냄으로써 앞으로 전세계적으로 맺히게 될,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 혼자 사역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열매들을 통해 나를 판단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당장 내가 거두려고 하기 보다 다른 사람들을 준비시켜서 그들을 통해 미래에 맺히게 될 그 열매들을 통해 나의 사역을 평가하실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나는 거룩한 야망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자! 주님 보시기에 진정한 큰 일을 행하는 자가 되자!'
★ 상북제일교회 정영미 사모님을 통한 확인
그 후 2003년 9월 25일 저녁, 상북제일교회 박창열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사모님이 기도를 하는데 주님이 "오늘날은 삯꾼이 너무나 많고 내가 기뻐하는 종은 별로 없다"고 탄식하시더라 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큰 교회를 목회하는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이 생각나서 이런 목사님도 있지 않습니까? 했더니 예수님이 "그가 온유하고 겸손한 것은 사실이나 그는 자기의 왕국을 세우고 있다. 그것을 내가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에 "그러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종이 되려면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하고 여쭈었더니 "네 교회 내 교회 그런 구분을 가지지 말라. 그런 것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성도가 많고 적고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성도가 적더라도 일꾼을 길러내는 교회가 내가 기뻐하는 교회이다" 라고 말씀하시더랍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평소 '혹시 학교를 시작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유익을 위한 이기심에서 하나님의 때가 아닌 데 시작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어 주저하면서 확인 받기를 원했던 터라, 박창열 목사님께 "사모님께 학교를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한 번 드려주십시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학교에 대한 계획을 듣고 집사람이 기도를 했는데 기도 중 '변 목사가 학교를 시작하려는 것은 그의 생각에서 난 것이 아니고 나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내가 기뻐하는 일이다'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답니다."
이것은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상북제일교회 사모님의 영성에 대해 굉장한 신뢰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중보기도자들을 통한 재확인 작업
원래 제 성격이 그렇지는 않은 데, 최근 저의 부족을 심각하게 느끼고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있었기 때문에 또 다시 확증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우리 교회의 심야기도회 때 중보기도자들에게 기도를 시킬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인도하심인지 지난 번 기도 때 학교에 관한 환상을 본 동생이 원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심야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래서 선입견을 가지고 기도할까봐 정영미 사모님 얘기는 일체 하지 않고, 학교를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 특별히 그 시기가 지금 이때인지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해달라고 합심해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동생에게 전에 환상 중에 보여주신 그 학교 건물을 다시 보여주셨습니다.
"공중에 흰 구름 위에 전에 본 학교 건물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때가 아직 안되었나 보다' 그런 생각을 했는데, 학교 건물에 여러 개의 창문이 있었는데 그 창문마다 금빛 안개가 새어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공중에 금빛 안개로 글씨가 쓰여졌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그와 동시에 학교 건물 아래로 빛 같은 것이 비취면서 곧 착륙을 하는 듯한 형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밑을 내려다보았더니 아래에는 넓은 땅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그 둘레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손을 모으고 하늘을 쳐다보면서 그 건물이 착륙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본 이 환상 외에도 다른 성도님들도 환상을 보았는데 모두 학교를 위해 넓은 땅이 예비되어 있으며 학교를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환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하나님께서 저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학교의 교육 지침을 말씀하시다
학교를 시작하는 것은 저의 비전이 아닙니다. 이것은 제 머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해 나에게 조금씩 보여주신 결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토록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저에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마음을 확정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마음에 온전한 확신을 갖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위해 기도한 것도 아닌데 내가 기도하고 있는 내용과 상관없이 갑자기 하나님께서 내 영에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학교를 시작하라거나 말라는 이야기를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학교를 통해서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길러야 되는 지에 대해 아주 명료한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아래에 정리해 보았습니다.
에베소서 4:11-12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오중 사역자들을 세우신 것은
1. 성도를 온전케 하고 2.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3.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입니다.
이 명백한 계시적인 말씀에 입각하여 우리는 학교를 통하여 세 가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 우리는 학생들을 온전케 해야 합니다.
창세기 17:1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와 같이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고 말씀하셨고, 우리 주님도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한 요구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어떤 사람은 '어떻게 사람이 온전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겠지만 이것은 행위의 온전함이 아니라 내적 온전함, 즉 동기와 중심의 온전을 뜻합니다.
마태복음 5:43-48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말씀을 문맥으로 보면, 우리가 사랑의 폭을 넓혀 형제와 이웃뿐 아니라 원수와 핍박자에게 이르기까지 사랑하는 것이 주님이 요구하시는 온전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사랑이 온전입니다(롬 13:8-13).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주님의 말씀과도 일치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학생들을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람들로 만드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바울이 이곳에서 묘사한 사랑 즉, 온유하고 겸손하고 거룩하고 인격적이고 마른 뼈들 속에서 군대를 볼 수 있는 선지자의 눈을 가진 그런 사랑의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 본교의 목적입니다. 즉 본교는 단지 지적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을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데 역점을 둘 것입니다.
2. 우리는 학생들을 일군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우리는 학생들을 봉사할 수 있는 일꾼으로 양육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보다 더 우선적인 것이 온전케 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온전케 되는 일이 없는 봉사로는 참된 부흥을 일구어 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봉사는 일반적인 봉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봉사가 아닙니다. 자기 은사를 발견하고 은사를 개발하고 활성화시켜 그 은사를 사용하여 봉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베드로전서 4:10-11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또한 학생들의 은사개발에 역점을 두어야 합니다. 어느 날 설교 도중 성령께서 제게 '오늘날 주의 일을 하는 자들은 많으나 잡부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전문인력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대다수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성도들 뿐 아니라 심지어는 목회자들까지 대다수가 잡부'라고 탄식하셨습니다. 즉 단순히 설교하고 기도하고 심방하고 그저 목회를 하면서 자기의 부르심이 사도인지, 선지자인지, 복음 전하는 자인지, 목사인지, 교사인지, 그것도 모르는 채 그냥 잡부로서 주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시대의 교회가 안고 있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의 부르심과 은사를 분명히 이해하고, 성령세례를 받고, 은사 접목과 성령의 은사를 활성화시키는 사역을 통해 '하나님을 위한 전문 일꾼들'을 양성하는데 역점을 둘 것입니다.
3. 우리는 학생들을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자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일을 한다면서 자기의 왕국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어두워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 같아 결국 모두 무너질 것입니다.
우리는 학생들이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자가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교회나 조직 등 자기 왕국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데 전력하는 일꾼들로 키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조직이나 벽돌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지체 즉 거룩한 성도들로 세워지고 커집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 자기 속에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즉 마귀가 잡고 있는 부분들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께 굴복하여 자신의 전 존재를 주님의 다스리심 안에 두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다른 사람을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들을 온전하고, 봉사의 일을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일에 주력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와 학생들을 통해 일어나는 부흥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부흥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극적으로 확장시킬 강한 용사들을 키우는 것 이것이 바로 본교의 교육 목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 중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계시가 있은 후 저는 비로소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 이것이 현재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지금 내가 주력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학교의 개교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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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패션님 감사합니다. 멋지네요^^
제 네이버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검색 당하길 바라면서~ ^^*
하하..검색당하길 바라면서? 참 재미난 표현이네요 주님! 패션님을 영육간에 축복해 주세요! ^^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
대구에서도 신은교회에서 준비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