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고신선교대학원 원문보기 글쓴이: 이종수
전문인 선교의 성서적 근거와 해석(解釋)
- 전문 직업 선교사들의 정체성 회복을 위하여 -
요즘 선교단체나 교회마다 선교라는 말을 꺼낼 때 빠짐없이 함께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면 '전문인 선교'라는 말일 것이다. 필자가 선교지로 나가기 전인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한국교회에서 전문인 선교라는 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당시는 전문인 선교사로 나간다고 하면 교회에서도 이해를 못하여 “신학교부터 가라”고 하며 파송을 보류하던 시절이었다. 신학교 졸업장이 하나의 파송을 위한 전제조건이요 자격증처럼 인식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신학교 졸업장을 받고 목사 안수 후 파송받은 사람들의 목회적 자격이 선교부의 기대만큼 선교지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징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학교를 한 번도 운영해본 경험이 없는 목사가 선교지에 가서 학교를 세우고 운영할 때 부딪히는 어려움과 시행착오는 선교사 자신과 선교부, 현지인들 모두에게 있어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이다. 사실상 효율적인 학교 운영을 위해서는 그 학교를 운영해 본 경험과 영성이 겸비된 전문인이 가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문인 선교사가 갖는 사역적/목회적 전문성은 건물로 말한다면 기초 분야에 해당된다. 모든 선교사들은 기본적으로 사역적/목회적 전문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교사로 파송받을 수 없다.
그러나 전문인 선교사는 사역적/목회적 전문성 이외에 사업적/직업적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역적으로 잘 준비된 선교사가 현지에서 사역을 잘 해나가는 데는 큰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사역적 전문성만 갖춘 전문인 선교사가 소위 사역 외적인 일(직업적 전문성 / 고아원, 학교 운영 등)에 부딪히게 될 때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그 사역은 장기적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전문인 선교사 - 그 정체성 회복의 시작
전문인 선교사들이 자신의 올바른 정체성을 갖고 사역을 해나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정체성의 혼란은 필연적으로 자신감의 결여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 자신이 올바른 정체성을 가지고 전문인 선교를 해 나갈 때 그 선교전략은 힘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성서적 배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이러한 사역의 기초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필자가 속해있는 인터서브 선교회는 선교사가 되기 위하여 반드시 목사안수를 받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터서브 선교사가 되려면 최소한 1년 이상의 신학훈련을 받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는 전문인 선교사들이 사역시 간과하기 쉬운 올바른 교회관, 성경 해석, 문화인류학적, 선교적 안목 등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신학은 파송받기 전에 해도 좋지만 첫 임기동안에는 대부분 본격적인 사역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오히려 첫 임기를 마친 후 본격적인 사역에 들어가기 전 훈련받도록 권장될 때가 많다. 첫 임기의 사역을 뒤돌아보며 신학적 재평가를 시도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인 선교는 전문인이라는 말과 선교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이 두 단어가 모두 성경에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너도나도 전문인 선교를 외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전문인 선교가 하나의 성공한 선교전략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시점에 전문인 선교전략이 올바른 성경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검토해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일 것이다.
전문인이라는 용어
전문인이라는 용어는 “업(業)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사도행전 18장 3절의 Tentmaker(skenopoios)라는 사도바울의 직업을 현대의 의미에 맞게 변형시켜 사용한 것이다.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로 들어갔을 때 거기서 이달리야로부터 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게 되는데 우연히도 이들의 직업은 바울과 같은 직종인 장막을 만드는 업이었다. 이로써 바울은 이를 접촉점으로 삼아 이들과 함께 장막(천막)을 만들며 일을 했고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며 복음을 전파하였다.
후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바울의 훌륭한 동역자가 되었으며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도를 자세히 풀어 설명한 뛰어난 인물이 되었다. (행 18:26) 이후 바울은 이 천막제조 기술을 가지고 다니며 전도여행 기간 동안 선교활동을 하며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되었다.
이 장막을 만드는 직업은 흔히 Tentmaker로 영역(英譯)되며 헬라어로는 σκηνοποιο"(skenopoios) 즉, 단순히 장막을 만든다[σκηνη(a tent) + ποιέω(to make)]는 단어의 합성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의 직업이 정확히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가에 대한 것보다도, 직업을 갖는 것이 당시의 랍비(교사)들에게 있어서 보편적인 것이었는가 하는 점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다. 바울은 랍비인 동시에 천막제조업자였기 때문이다. 이방인 지역 선교를 하는데 있어서 직업을 갖는 것은 회당 중심의 선교를 지향했던 사도 바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William Barclay는 당시의 랍비들이 “가르침에 대한 보수를 받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면서, “우리는 방앗간 주인, 제화공, 양복장이, 빵 굽는 사람, 대장장이, 목수, 그리고 온갖 종류의 직업인이었던 랍비들에 관하여 읽을 수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랍비의 신분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20세 또는 21세가 될 때까지 철저한 구약성서 연구가 수반될 때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의 명예직이었으며, 바울은 복음을 전하거나 사람들을 가르치고 보수를 한 푼도 받지 않은 것을 항상 자랑하였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학자로서 랍비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은 랍비의 신분을 가지지 못했으며 또한 그들은 학자 출신의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오히려 낮은 신분이었던 자신의 직업들을 포기한 채로 사도직만을 수행하고 있었다.
당시 랍비였던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을 전파하면서 보수를 받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도들이 전적으로 후원을 받으면서 사역했던 것과 마땅히 차이를 두어야 하는 것이다. 즉 그들은 랍비가 아니었기 때문에 직업을 가진 채로 일을 하면서 복음전파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참으로 위대한 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장인(匠人)이었으며, 또한 이방인 선교를 위한 준비된 선교사였다.
전문인 선교는 전문직업에 종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전문직업을 통해 타문화권 선교를 시도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러나 Tentmaking이라는 단어가 한국에 정착되면서 오늘날은 대부분이 전문인이라는 용어를 직업과 사역에 있어서의 전문가라는 양자(兩者)의 내용을 절충시키게 되었고 여기에서 전문인 선교라는 단어가 생성되었다. 전문인 선교라는 단어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은 GMTC(Global Missionary Training Center; 한국선교훈련원)의 원장인 이태웅 박사가 《선교연구》18호(1992.1)와 《직업선교》의 추천 서문(1991)을 쓴 1992년을 전후해서이다. 그 이후 이 용어를 채택하는 단체들이 늘어났고 오늘날에는 보편적인 단어가 되었던 것이다.
전문인 선교에 대한 오해들
전통적 선교의 개념이 지배하던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말을 꺼내기가 어색하던 전문인 선교라는 말이 어떻게 그 짧은 기간에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는 보편적 단어로 바뀌게 되었을까?
사실상 이 영역된 Tentmaker라는 말이 오늘날 한국 선교계에서 전문인선교사라는 말로 번역이 되어 정착되는데는 나름대로의 혼란스러운 과정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천막제조업자로 번역하여 부르기에는 새 시대의 새로운 전략적 개념을 담아내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서구에서는 통일되어 불려지던 이 Tentmaker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그 개념과 강조점에 따라 평신도 선교, 자비량 선교, 직업 선교,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 전문인 선교 등으로 혼용하여 사용되고 있었다. 이처럼 영어의 한 단어가 한글로 번역되면서 개념에 따라 다양하게 불려진 배경에는 한국 선교계의 전문인 선교에 대한 개념의 혼란도 그 오해를 증폭시키는데 큰 몫을 차지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로, 전문인 선교는 평신도 선교라는 오해이다. 평신도 선교사들을 단순히 전통적 선교사를 돕는 보조 선교사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전통적 선교사는 정규/전임/타비량 선교사이고 전문인 선교사는 평신도 선교사이기 때문에 비정규/비전임/자비량 선교사로 분류하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평신도 선교사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목회자 선교사를 포함시키지 않은 선교사를 의미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은 만인제사장설을 외치며 종교개혁을 시도했던 루터의 견해와 상반되는 것이며, 종교개혁 이전의 시대로 회귀하자는 것과 같은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교회 곳곳에는 아직도 로마 카톨릭의 계층적 요소들이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아직도 목사 출신의 선교사와 평신도 출신 선교사의 선교비 모금액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보편적 현실은 한국 교회 목회자, 장로들의 변화와 결단이 필요함을 역설해주고 있다. 지금은 목사와 평신도들이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다. 서로 협력하여 마지막 선교의 시대를 열어가야 하는 때이다.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목사와 평신도는 서로 우열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능에 따른 협력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전문인 선교는 자비량 선교라는 오해이다. 자비량 선교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고린도전서 9:7에서 찾아볼 수 있다.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자비량 선교는 물질의 자급자족의 측면을 강조한 것으로 점점 늘어가는 선교비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며, 물질에 구애받지 않고 직업의 현장을 통하여 사역을 해나갈 수 있는 선교 전략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자비량 선교를 한다고 해서 100% 본국의 후원을 거절할 수는 없는 것이 현대의 선교적 상황임을 이해해야 한다.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어 교수로 전문인 사역하는 경우 받는 월급은 불과 30~50불 수준이다. 이 월급으로 가족이 집세와 비자비 등을 내며 생활하기란 아예 불가능하다. 오늘날 선교지에서 직업을 갖는 것은 꼭 필요하지만 본국의 후원을 받지 않을 정도로 월급을 많이 받는 직업을 찾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사도였던 바울은 한때 고린도 교회로부터 사도권에 대해 의문을 제기당한 적이 있다. 이유는 왜 다른 사도들처럼 전임 사역을 하며 사례비를 받지 않고, 바울은 직업을 가진 채로 사역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사도로서 다른 세속인들처럼 직업을 가지고 사역을 해나가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본 글의 뒷부분에서 언급하겠지만) 바울의 경우처럼 전문인 선교사는 선교지 상황에 따라 본국으로부터 후원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유연성(flexibility)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로, 전문인 선교는 직업 선교라는 오해이다. 직업 선교는 직업적 측면을 강조하여 타문화권에 나가서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직업을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수단으로써의 직업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 단어는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World Christians)의 개념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기업체를 통해 해외근무하거나 해외 거주 그리스도인들을 다 전문인 선교사로 인정하자는 개념이다. 만약 그리스도인 해외 근무자들을 전부 전문인 선교사로 인정한다면 선교사 숫자는 파격적으로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교사’라는 단어가 주는 진정한 의미를 놓칠 수 있다는데 깊은 우려가 존재한다. 선교사라는 단어는 파송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인 선교사, 그들은 누구인가?
전문인 선교에서 중요한 것은 용어가 아니라 그 의미이다. 우리가 용어자체에만 매달리다 보면 본래 사도 바울이 Tentmaking하고자 하였던 본래의 의미를 상실해 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용어가 아니라 사역의 내용이다. 바울은 자신이 자비량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영적인 사역을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그는 직업을 가진 채로 일했지만 그에게 있어서 영적 사역의 우선순위는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그가 전문인의 전략을 사용한 것은 사역의 효율성 때문이지 결코 자비량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다.
Herbert Kane 교수는 Tentmaker를 “무릇 해외에 나가서 일을 하되 그 직업을 통한 일반적인 부르심을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는 헌신적인 크리스찬”으로 정의하였으며, Andrew Dymond는 “Tentmaker란 실행적인 면에 있어서는 엄연히 선교사로되 생활면에 있어서는 완전히 자비 부담을 하는 크리스찬이다.”라고 정의 하였다. 또한 Dr. Ted Ward는 Tentmaker를 “생산적인 해외 취업 기간 중에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으로 정의하였으며, Don Hamilton은 “타문화권에서 일하는 그리스도인을 뜻하며, 그 문화권에서 ‘성직자’는 아니지만 그의 헌신, 소명, 동기, 훈련 면에서 분명히 ‘선교사’인 사람”을 Tentmaker로 정의하고 있다.
한편, 한국전문인선교협의회(KAT; Korea Association of Tentmakers)의 웹페이지(http://www.kat.or.kr)에 보면, 전문인 선교를 “전도종족을 포함한 창의적 접근지역(Creative Access Area)이나 여타 선교지역에 개인 신분 고유의 기능이나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교회 개척 사업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수행하면서 자기의 직업이나 기능에 속한 문화 분야를 기독교적으로 변혁시키는 일련의 사역행태”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전문인 선교사는 “전문인 선교의 개념을 가지고 특정 선교지에 대한 비거주 혹은 중장기 거주형태로 선교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을 일컬으며 “원칙적으로 본국에서의 파송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평신도뿐만 아니라 정규 신학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도 전문인 사역 형태를 띠고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면 이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KAT의 정의는 전문인 선교사를 반드시 창의적 접근지역에서 일하는 선교사로만 한정시키지 않고, 이미 선교사 허입이 허용되거나 현지 교회가 활성화되어 있는 곳에서도 사역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전문인 선교사에 대한 정의들을 종합하여 보면, 전문인 선교사는 “본국에서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후 타문화권에 가서 비거주 혹은 중장기 거주 형태를 가지고 세속직업을 사용하여 복음전파와 제자양육 등 교회개척 사역을 시도하되 영적인 사역에 우선순위를 두며 선교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 바울과 자비량의 이유들
참으로 이상한 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는 직업을 가지고 자비량(self-supported)해서 주님을 섬기도록 하셨지만, 베드로 등 다른 사도들에게는 완전히 그의 직업을 떠나 전임(full-supported)사역을 하도록 요구하셨다. 베드로를 포함한 사도들이 그들의 전도 여행에 필요한 재정을 전적으로 후원받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예수님은 몇몇 어부들에게 그들의 직업을 영원히 떠나라고 명령하셨다(눅 5:1-11; 고전 9:5). 하나님께서는 왜 바울에게 자비량할 것을 요구하셨을까? 바울이 과연 필요하지도 않은데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스스로가 천막 깁는 직업을 끝까지 고수했던 것일까? 그가 안디옥 교회나 다른 교회의 지원을 받아서 베드로처럼 전임사역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이렇게 한 이유는 다른 사도들과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목표와 자질, 은사, 사역지와 사역의 패턴 등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바울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텐트제조업’을 하나의 이방인 선교 전략으로 삼았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상황화(contextualization)에 대한 것이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9) 그는 계속해서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 같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율법 없는 자들에게는 율법 없는 자 같이,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자신을 변화시켰다고 밝히고 있다.(고전 9:20-22) 그 이유는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하기 위해서였다. 복음의 본질은 변화시키지 않은 채로 효과적인 복음전달을 위하여 청중(receptor)들의 겉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적 요소에 자신을 적응시켰던 것이다. 직업을 가진 전문인 선교사에게 있어서의 위험성은 직장을 단순히 생업과 전도의 수단으로만 여김으로, 성경공부와 예배 등에만 치중하여 직업의 현장에서 건전한 삶을 통한 복음전파의 중요성을 간과해 버리는 것이다.
선교사는 복음의 전달자로서(communicator) 적절한 매체(skill)를 통하여 현지인(receptor)에게 그 메시지(복음)를 효과적으로 전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적절한 매체라 함은 좁은 의미로는 효과적인 의사전달에 있어서의 여러가지 신호체계들을 말할 수 있겠으나, 넓은 의미로 전문인 선교사들에게 있어서는 바로 여러 종류의 신분을 가진 다양한 직업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전문인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직업현장의 삶은 항상 복음전파의 수단이요 효과적인 의사전달의 수단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문인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늘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인데, 그 첫째는 항상 그 메시지를 현지인 중심(receptor-oriented)으로 전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로 선교사와 현지인들과의 복음전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메시지를 전하는 선교사 자신의 삶이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을 구분지어 생각하는 이원적인 삶은 전문인 선교사들에게 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해 준다.
기독교 상황화는 그 사람의 메시지와 사역과 말씀과 올바른 하나님의 뜻을 잘 전달해 주는 도구라고 할 수 있으며, 상황화는 언어와 비언어(verbal and nonverbal)의 영역을 다 포함한다. 또한 그것은 성경번역과 그 해석, 적용 등을 통하여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성육화된 삶, 복음증거, 기독교 교수(christian instruction), 교회개척과 성장, 교회 조직, 예배 형태 등의 결정을 가능하게 해 준다. 고대(古代)의 바울은 이러한 상황화의 원리에 자신을 적응시킴으로 자신의 직업과 더불어 효과적인 이방인 선교 사역을 수행할 수 있었다.
둘째는 모범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살후 3:7-9) 이러한 바울의 모범이 음란하는 자와 우상숭배자와 간음하는 자와 탐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와 술 취하는 자와 후욕하는 자와 토색하는 자들을 개종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바울의 모범은 아마도 개종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도 바울처럼 열심히 일하면서 타인에게 모범을 보이는 삶을 살도록 그 효과가 전가되었을 것이다.
셋째는 교회의 자립(自立), 자치(自治), 자전(自傳)의 전략에 관한 것이다.(행 13:49; 19:10; 살전 1:8 참조) 순회전도자였던 바울은 도시의 회당 중심으로 선교하면서 그 지역을 떠나기 전까지 반드시 지도자를 세웠으며, 각 교회들이 자립하여 그 지역의 복음화를 감당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그의 전략은 혼자 전도한 것에 비한다면 상당히 빠른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지 교회의 자립능력을 키워주고 성숙한 현지인에게 리더쉽을 이양해 주는 것은 한국 교회의 성격상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원리이다.
초창기 한국 교회가 불과 100년 만에 급성장한 배경에는 사도 바울과 네비우스의 자립, 자치, 자전의 원리를 수용한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 창의적 접근지역의 대표격인 이슬람권 선교에서는 무슬림이 기독교로 개종할 때 직업이 박탈당하게 되고, 이어 개종한 현지인에게 상당한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이때 선교사의 간절한 마음은 조금이라도 그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이겠지만, 여기에서 선교사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짐으로 단호하게 그 도움을 거절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아프겠으나 그들이 더 이상 선교사를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급자족하면서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넷째는 복음전파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고린도전서 9:12) 그는 결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유대의 상황은 구약의 제사장 제도의 영향으로 사도들이 회중으로부터 보수를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이방 지역의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서는 전문인의 모본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바울의 직업은 이방선교를 위한 하나의 효과적인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전문인 선교의 성서적 배경
사실 타문화권에 거하면서 세속직업을 가지고 Tentmaking의 방법을 사용하여 여호와 신앙과 복음을 전파하였던 성경상의 예는 구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만큼 오래된 것이다. 타문화권인 이집트에 가서도 그의 신앙을 전파하였던 요셉, 바벨론 술관원이자 총리의 신분이었던 다니엘, 바사왕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 신분이었던 에스더, 유다 사막 드고아의 목동 출신 아모스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구약의 인물들은 대부분 의도성을 가지고 국가나 회중의 파송받아 선교 활동을 했던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스스로 자비량하면서 신앙을 전파하였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의 전문 직업은 이방인 선교 전략을 위한 수단이었다기 보다는 당시의 자연스러운 관습을 따른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따라서 그들에게 현대의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여 그들을 파송받은 전문인 선교사로 분류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따른다.
신약에서도 이방인 선교를 시도했던 평신도들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타난다. 사도행전 8:1에 나타난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진 “사도 외”의 인물들과 8:4의 이방지역으로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던 “그 흩어진 사람들”은 동일인들이며, 빌립을 포함한 그들의 신분은 바로 평신도들이었다. 이런 면에서 이방인 선교에 있어서의 평신도의 역할은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문성일 선교사는 〈평신도 전문인 선교의 역사적 고찰〉에서 예수를 어떤 면에서 평신도로 분류하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까지 목수로서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예수가 기도 후 택한 제자들도 대부분 제사장 계급이 아니라 어부, 세금징수원 등 평범한 세속직업을 가진 평신도들이었다고 주장한다. 초대 교회의 많은 사도들, 선지자들, 전도자들, 교사들과 다른 사역자들도 평신도였으며(고전 12:1-30), 바울의 동역자들의 대부분도 헌신된 평신도(행 18:26; 21:9; 롬 16장)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와 바울, 그리고 다른 사도들을 제외한 사람들을 그들이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전문인 선교사로 부를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왜냐하면 선교사(missionary)라는 단어는 원래 헬라어 사도(άπόστολος)의 라틴역으로써 보내심을 받은 자(one sent forth)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어원적인 의미로 볼 때 선교사의 명칭은 파송받는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도(άπόστολος)라는 단어는 전치사 απο(from)와 동사 στελλω(to send)의 합성어로 히브리서 3:1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묘사할 때와 누가복음 6:13과 9:10에서 예수께서 특별한 훈련을 위하여 선택하신 열 두 제자들을 지칭할 때 등에 사용되었다. 또한 예수를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히 3:1)이라고 묘사한 것으로 보아, 예수도 역시 보냄을 받은 자(사도), 즉 선교사였다고 볼 수 있다. 예수도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에 사역을 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히 3:1)
요한복음 20:21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직접적으로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이후 공식적으로 교회와 성령의 파송을 받아 이방인 선교의 문을 열었던 것은 사도행전 13장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초대 교회 당시 바울을 제외한 사도들은 자신들의 소명과 은사에 따라 예루살렘 중심의 사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났을 때(행 8:1)조차도 그들은 남아 있는 신도들에 대한 신앙을 독려하기 위해서라도 예루살렘에 머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 경우가 달랐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바나바와 사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 다함께 성령과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았다. 여기서 바나바는 레위족 출신의 사도(사도행전 4:36; 14:4)로서 선교사 파송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가 정확히 바울과 더불어 1차 선교여행 기간 중에 직업을 가진 채로 전문인으로서 선교 활동을 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바나바와 함께 파송을 받은 사도 바울은 그의 전 선교여행 기간에 걸쳐 직업을 포기한 적이 없었으며, 늘 전문인 선교사로서 선교 활동을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비교해 볼 때, 오늘날 타문화권 창의적 접근지역 선교를 시도하는 전문인 선교사들도 역시 사도 바울처럼 지역 교회나 선교단체로부터의 선교사 파송식을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함이 마땅할 것이다. 또한 세계복음화를 위한 하나의 선교 전략으로써의 전문인 선교도 역시 사도 바울의 자비량에서 그 기원을 찾아야만 한다. 이런 면에서 바울의 전문인 선교를 연구하는 것은 전문인 선교의 성서적 기초를 다지는데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의 문제는 성서로부터가 아닌, 경험으로부터 교리를 만들어 낸다는데 있기 때문이다.
전문인 선교사는 자신의 직업 그 자체를 목표로 두지 않고 자신의 직업을 복음전파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두면서 사역하는 전임(full-time)사역자이다. 사도 바울이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직업을 가진 채로 사역을 해야만 했던 이유는 그가 전임(full-supported)사역을 거부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함”이었다. 또한 바울은 필요에 따라 재정후원을 직접 받기도 하였다.(빌 1:5; 4:10-20) 반면에 대부분의 사도들이 이방 개척지역의 선교를 소홀히 하고 있을 때, 당시의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하여 자신의 소명을 피력하였고(갈 2:7-10; 롬 15:16-21), 이방 개척지역의 선교를 위한 효율적인 방법은 직업을 통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하여 잠시 동안 바울의 사도권이 도전을 받기는 했어도(고전 9장),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사도권이 전적으로 침해받았던 적은 결코 없었으며, 오히려 성경은 그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였음을 누누히 증거해 주고 있다. 오늘날로 말한다면 사도 바울은 목회자 전문인 선교사(Tentmaker)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위와 같이 바울의 경우를 살펴볼 때, 직업을 복음전파의 수단으로 하여 이방 지역의 선교를 시도하고 있는 모든 전문인 선교사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지만, 그 신분이 본국에서 전적으로 후원을 받는 full-supported 사역자일 수도 있고, 전혀 후원을 받지 않는 self-supported 사역자일 수도 있다는 유연성(flexibility)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물질의 현지 조달이 충분하다면 본국에서 보낼 필요가 없을 것이요, 부족하면 채워 주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복음전파와 교회개척, 제자양육에 그 최종적인 목표를 두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바울은 최종적인 목표를 영적인 사역에 두었다. 그러나 또한 모든 전문인 선교사들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자신이 full-time 사역자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즉 대부분의 활동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자신의 직업을 통해 건전하게 세속적인 삶에 참여함으로써 현지인들의 문화에 점차로 적응해 들어가 결국은 그들의 핵심부에 내재되어 있는 세속적인 세계관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대치시켜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 어(結 語)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교회의 분위기는 말씀만을 가르쳐야 할 목회자가 어떻게 평신도처럼 직업을 가진 선교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세계 선교의 움직임은 신학교를 졸업한 후 모든 자격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안수 자체도 거부해야 할 정도로 선교지의 상황이 급변해 가는 것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즉 과거의 폐쇄된 국가에서는 대부분 현지인들이 가지고 있는 선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해서 ‘선교사’라는 신분을 감추어야 했는데, 최근 선교지의 상황은 전세계가 지구촌화 되면서 ‘목사’라는 말이 기독교를 대변하는 단어처럼 비춰지게 되어 이제는 현지인들이 목사라는 말 자체에도 상당히 민감해져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전문인의 신분으로 나가야만 하는 창의적 접근지역 선교에 있어서는, 그가 아무리 목사 후보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할지라도 목사안수를 받지 않고 나가는 것이 더 안전할 것으로 권장될 때가 있다.
목사안수 받기를 거부하던 사람이 결국 파송받기 전에 안수 받는 이유는 파송 교회 담임목사의 권유와 후원의 문제가 손꼽힌다. 아직까지도 한국 교회의 풍토는 목사 중심의 계급적 성격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성서보다도 전통을 더 중시하는 데서 나온 결과이며, 구약의 제사장 제도에 한국 고유의 유교적 정신이 가미되어 나타난 혼합주의적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에 이르면서 한국 교회는 두 가지 모순되는 숫자적 통계에 봉착하게 된다. 첫 번째는 지난 100여 년간 고공행진을 하며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오던 한국 교회 교인의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는 같은 기간 동안 발생한 한국 선교사의 숫자적 증가에 대한 것이다.
1980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2/3세계의 상위 10대 선교국에도 들지 못하였었다. 그러나 불과 8년 후인 1988년에 이르러 한국 교회는 선교사 숫자상으로 2/3세계의 10대 파송국에 들게 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무려 829.23%의 DGR(Decadal Growth Rate, 10년간 평균성장률)의 폭발적인 수치이다. 그런데 2003년 현재 한국 선교사의 숫자는 1만 명이 넘어섰고 미국에 이어 세계 제 2위의 선교 파송 대국의 명예와 책임을 동시에 지게 되었다. 전문인 선교사의 증가가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선교대상 지역의 상황변화에 따라 이제는 전통적 방법을 통한 선교보다도 전문성을 지닌 직업적 선교가 선교를 주도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에 평신도 선교사의 숫자적 증가도 주목할만한 일이다. 평신도 선교사는 KWMA의 통계에 따르면 1992년 419명(전체 2,576명의 25%)에서 1999년 5월 3,083명(전체 5,398명의 57%)으로, 2003년 현재 7,097명(전체 10,422명의 68.1%, KRIM의 2003년 자료)으로 급격한 성장을 해왔다. 하지만 7,097명의 평신도 선교사들 가운데 21.5%인 1,525명만 직업을 가진 ‘진짜’(?) 전문인 선교사로 분류되고 있다.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의 증가 현상은 특히 미전도 지역에 대한 선교지의 상황이 전통적 선교사들의 입국이 거부되고 있는 선교지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선교는 전통적인 선교사보다도 전문인 선교사의 숫자가 계속적으로 증대될 전망이다.
세계 교인들의 99.8%는 평신도이다. 전문인 선교가 곧 평신도 선교는 아니지만 평신도 전문인은 선교에 있어서 무한한 우수 인력을 공급할 수 있는 보물창고와 같은 존재임에 틀림없다. 이 보물창고 안에서 안주하며 살아가던 탁월한 전문 직업 크리스찬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선교에 헌신하기 시작한다면 21세기의 선교는 또다시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다. 성령님이여, 이 문을 열어 주소서!
인터서브 김선철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