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회] 조선판 브리태니커, 임원경제지 |
▣방송 : 2009. 8. 1(토) 20:0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엄지인 아나운서 ▣연출 : 나 영 PD ------------------------------------------------------------------------
19세기 조선에 세계적 수준의 백과사전이 있었다?
농업, 건축, 요리, 의학, 공학, 상업 등 당시 조선사회가 축적한 모든 지식의 총아(寵兒)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임원경제지의 정보는 1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행형이다. 21세기에도 유용한 임원경제지의 정보와 문제의식을 역사스페셜에서 조명해본다.
|
|
|
세상의 모든 지식, 임원경제지! 어떤 지식을 담았나 |
임원경제지는 당시의 지식을 농업, 기계, 과수, 어류, 식물, 천문, 요리, 건축, 의학, 수학, 천문, 음악, 그림, 관혼상제 등 16개의 분류로 정리했다. |
▶집은 어떻게 지을 것인가 서유구는 한옥을 발전시키고 진화시켜야한다는 입장에서 글을 썼다. 그는“... 바람이 스며들고 비가 새는 걱정과 참새가 구멍을 뚫고 쥐가 파고드는 우려며, 뱀이 서리고 고양이가 뒤척이는 걱정을 피할 길이 없다.”고 한옥 지붕구조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오늘날 건축가들도 임원경제지에서 제기된 여러 문제의식을 받아들여 현대의 상황에 맞게 개선, 진화시키고 있다. |
▶삼각함수를 이해하다 임원경제지에는 오늘날 사용되는 수학원리들을 소개하고 있다. [設如正方體積一百二十五尺, 開立方, 問每一邊線長, 幾何] 이 문장은 [ⅹ³ =125]를 표현한 것으로 x의 세제곱이 125일 때, X는 얼마인가를 계산하는 법을 다룬 임원경제지의 수학부분이다. 그리고 sinx, cosx, tanx를 나타내는 정현(正弦), 여현(餘弦), 정절(正切)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여 삼각함수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
▶약주의 기원 약산춘을 만들다 우리가 흔히 “약주 한 잔 하자”라고 할 때, 약주의 어원은 임원경제지에 등장하는 약산춘이다. 약산춘은 보통 술과는 다른 누룩을 써서 발효하기 어려운 겨울철에도 안전발효를 할 수 있다. 과학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임원경제지에만 소개되어 있는 특이한 술도 있다. 술이 만들어졌을 때, 연꽃향이 난다고해서 이름 붙여진 하향주, 부드러우면서 향이 좋다. |
|
[하향주 빚는 모습] |
[임원경제지에 기록된 제조방법에 따라 복원된 전통주들] |
임원경제지에 소개된 240여 가지의 전통주 제조 방법은 전통주를 복원하는데 지침이 되고 있다. 복원과 더불어 전통주를 현대화한다면 충분히 상품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여진다. |
▶조선시대에도 카스테라를 먹었다? 임원경제지 정조지에는 각종 음식, 밥, 죽, 구이 등 당시 한 성인 남자가 알았다고 보기에 믿기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음식 정보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외국의 음식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서양의 카스테라를 만드는 법과 양귀비가 즐겨 먹었다는 동남아 과일 여지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서유구의 지적 관심이 얼마나 다양하고 넓은지 알려준다. |
이 책 한권으로 조선시대 의식주를 완전히 자급자족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서유구가 임원경제지에 전하는 지식은 현실 속 관찰을 통해 수집된 정보였던 것이다. |
|
임원경제지는 농업백과사전이다 |
임원경제지에서 농업을 다룬 본리지는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토질, 논의 종류, 수리, 곡식의 종류, 곡식의 재배 시기와 절차, 농기구 사용법 등 당시 조선에서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모든 지식이 담겨있다. 양반 사대부가였던 서유구가 농업에 관심이 많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서유구는 정조 때 규장각 초계문신을 지내며 개혁정치의 핵심에 있었다. 정조의 어명을 좇아 농업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정조의 죽음 후에도 화성유수를 맡아 정조의 뜻을 계승해 국영시범농장을 경영하고 적극적으로 발전시킨다. 임원경제지는 19세기 조선의 농업을 혁신하려했던 정조의 이상이 스며든 책인 것이다. |
|
임원경제지 완성의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
[서유구 영정] |
18세기 유럽에서 편찬된 백과사전은 당시 유럽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고양된 대중의 지적 수준은 근대 시민혁명의 토대가 되었다. 영국의 브리태니커, 프랑스의 백과전서는 당시의 계몽주의자들이 공동집필한 저서였다. 유럽 최고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전문지식을 기고해 편집한 것이다. 그런데 서유구는 혼자, 그것도 손으로 써서 113권에 달하는 임원경제지를 완성했다. 물리적으로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렇게 방대한 양의 정보를 모으고 분류하는 것은 인터넷이 발달한 현재에도 어려운 일인데, 서유구는 이 일을 어떻게 해냈을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