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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자료는 "비지팅아트"(Visiting Arts) 제공 <캄보디아 컬추럴 프로파일>(The Cambodia Cultural Profile)의 내용 중, 해당 부분을 발췌하여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캄보디아 컬추럴 프로파일>은 "캄보디아 문화예술부"가 협력하고 미국 "록펠러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이 재정을 지원하여 만들어진 정보이다. |
캄보디아 문학사
간추린 크메르 문학의 역사
1. 초기의 캄보디아 문학
캄보디아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서사시와 전설들이 구전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자생적 형태의 문학류는 오늘날에도 이 나라 북부와 북서부의 소수민족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진) <마하웨산따라 자따까>의 표지
산스끄리뜨어(=범어)로 쓰여진 최초의 문헌은 앙코르 시대(9세기-13세시)의 것으로 야자수 이파리에 적혀져 있다. 11세기에 이르면, 불교의 논서와 자따까(Jatakas, 본생담)들이 정형적 형태로 발행된다. 크메르어로 쓰여진 가장 오래된 작품은, 인도의 고대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의 캄보디아 판인 <리엄꺼>(Reamker)이다. 이 작품은 전국에 걸쳐 절과 탑(pagoda)(역주1)에 새겨진 부조나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진) 츠밥의 사본
수 세기 동안 이 작품은 여러 전통적인 예술 장르들에 생생한 영감을 제공했고, 오늘날에도 고등학교에서 가르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리엄꺼> 사본은 비록 초기 앙코르(크메르) 시대 사본을 필사한 것이라 생각되긴 하지만,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간행된 것이다.
17세기 이후로는 "츠밥"(chbap: 행위의 규범)이라 불리는 운문(시) 작품들이 나타나는데, 이는 주로 불교의 승려들이 신자들에게 도덕적 규범을 가르치기 위해 저술한 것이다. 이들 시가들은 아기자기한 복합어들과 복잡한 운율을 가진 크메르 시가의 엄격한 형식을 지키고 있는데, 사원(절) 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한 것이다.

(사진) 한문권의 소학(小學)이나 명심보감(明心寶鑑)과 마찬가지로, 크메르 문화권에서 행위의 도덕적 규범을 다룬 문학류가 "츠밥"이다. 이러한 문헌에 대한 전통은 오늘날의 캄보디아 출판계에서도 남아 있어, 속담과 우화를 곁들인 교훈적 간행물들이 발간되고 있다. 사진의 우측에 있는 책은 소녀들의 행위규범을 다룬 <츠밥 스라이>이다. ☞ 확대사진 바로가기
동 시기에 "희열론"(satra lbaeng: 사뜨라 르바엥) 류의 작품들도 출현하는데, 이는 고대 <자따까(본생담)>의 이야기들을 운문 형식에 가까운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다.1990년대 초반 "캄보디아국립도서관"의 후원 하에, 이 작품들 중 일부가 보존처리되어 마이크로필름화되었다.
민간 설화의 다수는 문헌의 형태로 기록되진 않았지만, 잘 암기되어 구술되곤 했다. 이 장르는 도덕적 교훈을 주는 이야기나 <토끼 재판관>과 같은 동물우화, 그리고 수수께기 등을 포함한다.
"[프놈펜] 불교학연구소"(역주2)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이런 류의 이야기들을 수집해 출판했고, 최근에는 각종 NGO들이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동화책 형태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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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1) 본문에서 "탑"의 원어는 "파고다"(pagoda)인데, 이는 원래 붓다의 진신사리(화장 후 남은 빛나는 물체)를 모시는 장소였으나, 이후 불탑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서울의 탑골공원의 옛 명칭 역시 "파고다공원"이었다). 그런데 캄보디아 사람들의 일상화법을 가만히 살펴보면, 한국의 불교도들이 "절"이란 말을 사용하는 맥락에서, 그들은 "왓"(태국어: 와트)이란 말보다 이 "파고다"라는 용어를 더 자주 사용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마도 불탑신앙에서 발전한 대승불교와 어떤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초기 대승불교도들에게는 탑이 곧 하나의 종교적 사원이자 훈련장이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듯이 현재의 캄보디아 불교가 단순한 남방상좌부 불교(소승불교) 전통이 아니라, 역사적 요인에서 기인한 대승불교의 영향이 생각보다 훨씬 더 깊숙히 자리한 것은 아닐런지 생각해본다.
(역주2) 캄보디아 인문학과 문헌학에서 프놈펜에 소재한 <불교학 연구소>의 위상은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며, 역사도 오래 되었다. 일례로 현대에 출판되는 모든 크메르어 사전은 이 연구소의 <크-크 사전>을 정본으로 보고 출판을 하고 있고, 이 연구소가 소장한 장서 역시 가치 있다고 전해진다. |
2. 프랑스 식민통치기의 캄보디아 문학
비록 여전히 고전적 주제들을 다루기는 했지만, 현대적 형식에 기반한 것이라 할만한 작품들이 19세기부터 출현했다. 하지만 아마도 1908년 이전의 일일텐데, 이런 작품들 가운데 크메르 문자로 인쇄된 최초의 작품은 <빤딴 따 마>(Pantan Ta Mas: "마" 할아버지의 권유)였다.

(사진) 캄보디아에서 출판된 프랑스어 문헌.
당시에는 문자에 대한 신비적-종교적 관념이 있었기 때문에, 불교의 승려만이 행하던 캄보디아 출판을 세속인이 담당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종교적 모독행위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출판은 캄보디아 문학이 자신들의 모국에 서서히 출현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후가 되었고, 그것이 바로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이뤄진 것이다.
1930년대나 1940년대만 하더라도 문학이 하나의 예술장르라는 인식이 부족했고, 단편이나 희곡, 그리고 장편소설들은 대부분 잡지에 수록된 형태로 출현했다. 바로 이 즈음에 "문학"이라는 의미의 크메르어 단어 "악서-사"(aksara saastra)(역주3)란 표현이 사용돼기 시작했다.
이 시기 현대 풍의 캄보디아 소설 중, 림 낀(Rim Kin)이 <소팟>(Sophat: 영웅의 이름)을 1938년에 출간하고, 곧이어 희곡으로 각색하여 대중적인 극장공연으로 흥행을 하였다. 또한 낌 학(Kim Hak)은 <뜩 떤레 삽>(Tek Tonle Sap: 떤레 삽의 물)을 "불교학연구소"에서 발행하던 저널인 <깜부자 소리야 매가진>(Kambuja Surya Magazine)에 크메르어 및 프랑스어로 연재하였다.

(사진) <소팟>의 표지.
처음에 "캄보디아 왕립도서관"(the Royal Library of Cambodia)이란 이름으로 출범한 "불교학 연구소"는 '프랑스 극동학원'(École Française d'Extrême-Orient, 遠東博古院: EFEO)이 설립했는데, 출판할 문헌의 선정이나 크메르어 연구에 있어서 프랑스 학계가 깊숙히 관여한 기관이다.
전쟁 전의 시기에 비교적 널리 읽힌 작가로는 녹 템(Nhok Them), 밋 쏘콘(Mith Sokhon), 그리고 노우 핫(Nou Hach)과 같은 작가들이 있는데, 노우 핫의 경우 지금도 여전히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 (역주3) "악써싸"(aksara saastra)는 산스끄리뜨어(=범어) "악샤라"(akshara: 문자, 글자를 의미)와 "샤스뜨라"(shaastra: 논서 혹은 학문을 의미)의 복합어를 자모 대 자모 1대1로 자역(字譯, transliteration)한 것인데, 크메르어 발음법의 특성상 "악써 싸"로 발음된다. 따라서 크메르어 표기법을 잘 관찰해보면, 고전 산스끄리뜨어의 일상적 용례를 명료히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마치 고대 중국어 이해를 위해 일부 학자들이 북경어보다는 광동어나 한국어의 어휘를 연구하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이 점은 앞으로 서남아시아학(인도 주변 지역학) 연구를 위해 크메르어 연구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주목되는 부분이다. 오늘 날 "샤스뜨라"의 크메르어 식 용어 "싸"(saastra)는 여러 학문분야 혹은 과목을 표현할 때 접미사로 사용되곤 한다. 여기서는 한국어의 "학"(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
3. 현대 캄보디아 문학의 출현
1938년부터 1972년 사이에, 탐정소설에서 신비적인 모험소설, 역사물과 연애소설 등 1,000종 이상의 소설들이 간행됐다.

(사진) <께올롱 께올라이>(Keolong Keolai)의 표지.
독립 후 캄보디아에서 문학은 정규 교과과정에 편입되었다. 1956년 "크메르 작가협회"(Khmer Writers' Association)가 결성되면서, 작가들이 본성적으로, 그리고 크메르 문학을 조직화함으로써 보다 온전히 문화적 공헌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크메르루즈"(Khmer Rouge) 시대(1975-1979)에는 문학적 활동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창조적 글쓰기는 크메르 루즈의 선전용 노래 가사에서 예술적 파생물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대중적인 극장용 공연이나 포크댄스를 위한 음악적 형식이었다. 이 시대의 고통에 대해서는 해외에 살고 있던 캄보디아 출신 작가들의 소설이나 자서전을 통해 알 수 있다. 아마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딧 쁘란(Dith Pran)의 기념비적 작품 <킬링 필드>(The Killing Fields)인데, 훗날 영화화된 작품이다.

(사진) 영화 <킬링필드>의 타이틀.
1980년대 "캄푸치아 인민공화국"(PRK) 집권기 동안, 정부는 문자해독률에 높은 가치를 부여했고, 문맹으로부터 대중을 "해방시키자"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그리하여 공식적으로 허가된 전쟁이나 사회주의적 재건과 같은 주제를 다룬 소설, 시, 노래, 드라마에 포상을 하였다. 이런 분위기 하에서, 하나의 도피처로서 소설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마오 섬나앙(Mao Samnang)이나 뻘 완니랏(Pal Vannirath)처럼 인기있는 작가들은 작품을 정식으로 출판하지 않고도 유명세를 탔는데, 이들의 작품은 손으로 필사한 등사용지나 청사진으로 배급되어 시장의 좌판 같은 곳에서 팔려나갔다. 여러 상을 수상한 혁명적인 작가 뻘 완니락은 12편의 낭만소설을 썼지만, 책의 형태로는 별로 발행된 것이 없다.
1989년부터 틀에 박힌 검열이 철폐되었고, 정부가 국영기업들을 민영화하기 시작했다. 오락으로서의 독서는 텔레비전과 비디오에 자리를 내어주었고, 소설가들도 영화나 비디오를 위한 일거리로 방향을 바꿨는데, 이는 잠재적으로 보다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사진) 캄보디아 대중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명인 마오 섬나앙(사진의 하단부)과, 그녀의 대표작 2편의 표지사진들(상단).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프랑스와 미국에 살고 있던 캄보디아 출신 작가들도 크메르어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 중 많은 수가 크메르 루즈 치하에서 생존한 회고담으로, 당시를 살았던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어느 정도는 "사회적 사실주의"(social realism)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 기간에 해외에 있던 캄보디아 공동체들은 캄보디아 문화를 보존하고 육성할 조직들을 설립했다. 컨내티컷(Connecticut)의 "크메르학 연구소"(Khmer Studies Institute)와 텍사스의 "캄보디아 재단"(Cambodia Foundation), 그리고 파리에 설립된 "크메르 문명 정선 문헌센터"(CEDORECK)가 바로 그러한 기관들이다.
이들이 발행한 저널 가운데는 망명객들이 연재한 소설도 포함되어 있었고, CEDORECK는 전쟁 전 시대의 고전적 소설인 <소팟>(Sophat), <꼴랍 빠일른>(Kolap Pailin: 빠일른의 장미), <프까 스로포운>(Phka Srophoun), 그리고 <멜리어 두옹 쳇>(Melea Duong Chet)을 재발간하기도 했다.

(사진) <꼴랍 빠일른>의 표지.
비우 처이 리엉(Biv Chhay Lieng)이나 솟 뽈른(Soth Polin) 같은 개별 작가들도 자신의 오래된 작품들을 거주 중인 해외에서 재발간했다. 1960년대에는 당시 파리에 거주하던 뻿 선와완(Pech Sanwawann)이 신작을 발표했고, 1970년대에는 보다 젊은 작가인 쭛 커이(Chuth Khay)와 미국에 살고 있던 두엉 라타(Duong Ratha) 같은 이들이 활동했다. 이 시기에는 영어와 불어로 발행된 생존 회고담들도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국내에서는 1990년대부터 사설 신문들이 급격히 증가하여 크메르 문학에 영향을 미쳤다. 이 중 대다수는 영세한 신문사였고, 경영을 위해 지면을 연재소설로 채워 독자들을 자극했다. 주제는 주로 애정물이나 괴기물, 그리고 범죄 스릴러였다.
이 당시 대다수 작품들은 센치멘탈한 주제를 다루었고, 사실 상 얇은 천조각 하나만 달랑 가린 포르노그래피에 진배없었다. 1993년부터 1994년에 걸쳐 연재된 오욱 분토은(Aok Bunthoeun)의 <스러이 바 끄러몸>(Srey Bar Kramom: 처녀 바걸)은 국제연합 캄보디아 과도행정기구(UNTAC) 군대의 출현과 더불어 일어난 급격한 사회적 변동에 대한 반응물이었다. 생산량도 엄청나서 <레아스마이 껌뿌찌어(캄푸치아의 빛) 데일리>(Rasmei Kampuchea Daily)의 전속 소설가였던 서이 쿤(Say Khun)의 경우, 1993년부터 1994년 사이에만 6편의 연재소설을 집필할 정도였다.
이 기간 동안, 1992년에 "불교학연구소"가 프놈펜에 있는 왓 오우날롬(Wat Ounalom)에 다시 설립되었고, 후에 바쌋(Bassac) 강가에 있는 전용 건물로 이전했다.
4. 오늘날의 캄보디아 문학
대부분의 캄보디아 작가들은 작품으로만 생활을 영위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에는 잘 알려진 작가들도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를 위한 글을 쓰는데, 이렇게 하는 편이 수입 면에서 보다 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이나 창조적 저술을 장려하는 제도적 장치들도 마련되어 있다.
"캄보디아 문화예술부"(MCFA) 내 "문화기술국"에는 "문화출판독서과"라는 부서가 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수상제도를 관리하여 매년 정기적으로 원고 제출을 장려하고 있다. 이러한 상으로는 "앙코르 상"(Angkor Prize), "쁘레아 리엇 삼피어 상"(Preah Reach Samphear Prize), "쁘레아 수라마릿 상"(Preah Suramarit Prize), "인드라데위 왕후 상"(Queen Indradevi Prize), "훈센 총리 상"(Samdech Hun Sen Prize)이 있다. 또한 여러 NGO들에서도 수상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1993년에 "크메르 작가협회"가 하나의 독립된 NGO로서 재결성됐는데, 이는 이전에 존재하던 두 단체의 연합이다. 2002년 무렵에 이 단체의 회원은 거의 200명으로, 전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 절반에 미치지 못 할 것이다. 요우 보(You Bo)가 회장을 맡고 있는 이 단체는 자체적으로 작가 워크샵이나 경선대회를 치뤄 새로운 작품이 산출되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러한 경선대회는 왕궁(쁘레아 시하누크 상 Preah Sihanouk Prize)과 총리실(1.7 상)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이 2종의 수상제도는 최근에 재정문제로 중단되었는데, 성황을 이뤘던 처음 5년 동안 매 대회 때마다 100명 이상의 참가자들이 운집했다.

(사진) 셈 포니어리의 <위빠디 사라이>(2000년)의 표지.
지난 10년 간의 수련 워크샵을 통해, "크메르 작가협회"는 성공적으로 새로운 세대의 창조적 작가들을 배출하였다. 소설가 오웃 우터(Ouch Vutha), 우옴 니롯(Uom Niroth), 호우 얏(Hou Yath), 응웻 서폰(Nget Sophorn), 그리고 시인 속 소톤(Sok Sothon), 뽈 삐쎄이(Pol Pisey), 욱 사우 볼(Uk Sau Bol), 음 사롬(Eum Sarom), 솜 소피어린(Som Sophierin), 히 낌 시업(Hy Kim Siep) 등이 바로 그들이다. 또한 1999년 이후로 옘 섬나(Yem Samna), 와 사맛(Wa Samart), 운 속 히엥(Un Sok Hieng), 푸 얏(Phu Yaat), 그리고 셈 포니어리(Sem Phoneary) 같은 작가들도 출현했다.
재정결핍으로 더 이상 경연대회를 지속할 수 없자, 동 협회는 최근들어 시나리오 제작과 같은 수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수련생들이 "캄보디아 텔레비전 네트워크"(CTN)나 BBC 등의 방송국으로 진출했다.
최근의 새로운 작품들은 보다 작은 규모로 자력출판의 형식으로 발행된다. 그 규모는 2,000-3,000부 정도이고, 가격은 미국 달러로 50-75센트 정도 하는 2,000-3,000 리엘 정도에 팔리고 있다. 최근에 출판된 2종의 산문 소설인 히 낌 시업의 <위어스나 보파 룽끄루>(Veasna Bopha Rungkruh: 한 여인의 불행)과 셈 포니어리의 <위빠디 서레이>(Vipady Sarei: 후회)가 모두 이런 방식으로 출판됐다.

(사진) 호우 얏의 <뽀우 뽁 크마우> 표지.
비록 대중잡지(Pracheaprey)가 간혹 인기 작가의 연재물을 실어주긴 하지만, 불행하게도 신문은 더 이상 소설에 지면을 할애해주질 않는다.
비록 더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하고 있지만, 전쟁 전의 고전적 소설들이 지배하는 시장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과거에의 향수만을 암시해줄 뿐이다. 그런 작품들이 쓰여지던 시절처럼, <꼴랍 빠일른>(Kolap Pailin: 빠일른의 장미)에 나오는 계급없는 사회에 관한 비전이 지금도 라디오 연속극으로 흘러나오고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고등학교 및 대학의 문학 수업을 통해 "계급투쟁"이란 사회주의적 주제가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
5. 소수민족의 문학
소수민족의 문학은 본성 상 구전의 형태이다. 자라이족(Jarai), 라데족(Rhade), 그리고 프농족(Pnong)이 특히 많은 양의 서사시를 보존하고 있다.

(사진) 소수민족 이야기꾼의 모습.
이들 작품은 세대에서 세대로 구전되며 고대 예술형식인 이야기 창가 형식으로 전해내려온 것이다. 영혼을 통해 고대의 이야기를 배운 마을의 원로는, 축제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이러한 시가들은 도덕적 교훈을 가르쳐줄 뿐만아니라, 각 부족 공동체에 전해진 다양한 속담과 신화, 전설, 그리고 우주론을 영구히 보존시켜주는 작용도 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러한 예술 형식이 이미 많은 곳에서 단절되었고, 지금은 일부 오지 마을들에서만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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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현지인이 아니면 문학사를 이해하기가 힘든 부분중에 하나로 생각됩니다. 읽으면서도 이해는 안 되지만 이렇게 체계적으로 정리하시는 지기님의 능력에 감탄할 뿐입니다.^^*
일단 초보적인 스케치만 한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면 좀더 들여다보면 좋을듯도 한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