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절이 지난지가 몇일 안됐다.다행히 그동안 따뜻 했었고 좋았는데 요 며칠은 많이 추었다가 오늘은 포근 하건만 영동 지방과 경북 일대엔 폭설이 내린다니 안타깝다.부디 아무 일 없기를 바라는 바다.이곳 서산은 지금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옛말에 봄비는 "잠비" 라는 말이 있지만 일찍 점심을 먹고 나서 굼굼하길래 뭐 주전부리 하고 싶은 생각에 궁리를 하다가 마침 창고에 묵은 쌀이 있어서 설탕 한 숟갈 넣고 볶아 먹으려 다가 냉장고에"설" 때 사다놓은 만두가 생각이 나서 얼개 위에다 여나믄개 쪄서 잠시 다니려 온 성용이와 방금 먹다 보니 옛날 생각이나서, 가슴 아리게 추억하다가 몇자 적어 본다.
내가 만두와 짜장면을 처음 먹어 본 것은 초등학교 4학년때다.지금은 미국에 계시는 당시 고등학생이였던 세째 형님을 따라 진영 읍내 읍민관 극장 가는 골목 근처에 있는 목욕탕에 갔을 때 였지 싶다.그때가 아마도 추석이 가까웠던가보다.
형님따라 읍내 목욕탕에 갔는데 목욕탕에 들어 갈때 형님은 몇가지 주위를 주었는데
첫째 "촌놈 같이 손으로 꼬치 가리지마라."
둘째 "목욕탕 바닥이 미끄러우니 첫발 디딜 때 조심 해라."
세째 "남의 꼬치를 힐끔 거리지 마라."
네째 "조용히 해라." 또" 탕안에서 때밀지 말고,"
등의 요목 교육을 받고서야 옷을 벗고 탕에 들어 가는데 문을 여는 순간 짙은 수증기와 열기 때문에 잠시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나만의 가슴 두근거리던 추억이다.마침 탕속에서 내 또래의 두어명 녀석들이 나보다 훨씬 새련되게 목욕하는 것을 보고는 아마도 읍내 사는 놈들인가보다 하고는 은근히 부러웠던 시선을 두던 나도 마침내 기죽을 새라 당당하게 맨 꼬치 내놓고 두팔 흔들며 탕 바닥을 발가락을 고추새우고 걸었던 기억이 난다.마치 이제야 나도 촌때를 벗은 양 말이다.우리가 언제 이런 목욕탕에서 때 벗겨 본적이 없다.기껏해야 도장안에 있는 소죽 솥에 두어말 물 붓고 물 끊여서(데워서), 내 앞에 서열 높은 누님이 한분 정도 하시고 물이 차가워지면 또 더 붓고 둥둥 뜨는 때는 건져내고 나서 내가 호명을 받고 들어가면 우선 도장문을 안에서 잠구고 나서야 솥에 들어가면 엄마가 바야흐로 밑에다 불을 땐다. 이때 솥 밑바닥이 뜨거워져 발바닥,엉덩이가 델 새라 작은 판때기를 깔고 않으면 등짝은 어김 없이 시리지만 엄마의 거철은 손바닥이 내 몸 구석 구석을 밀어주면 시원 하면서도 말려나오는 국수(?)가락에 일종의 승리감과 쾌감을 동반한 엄마의 사랑에 무한 감동을 만끽 했던 그리움을 잊을 수가 없다.내 뒤에는 동생이 어김 없이 또 삶겨(?) 졌을 것이고, 이렇게 시간반 정도의 목욕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형님이 수고 했다고 뭐 먹으려 가자면서 진영 읍내 역전에 있는 "구강춘"중국집으로 갔는데 처음으로 보고,또 먹어 본 짜장면과 만두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내 평생 그렇게 맛있는 먹거리는 그때 처음 이었다.세상에 이렇게 맛이 있는 음식이 존재 한다는 자채가 경이였으니 말이다. 잊을 수가 없었다.짜장면은 말 할 것도 없지만
특히 어른 주먹만한 만두를 베어 먹는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고 그야말로 붕 뜨는 기분에 짜장 국물(?)을 딸딸 긁어 먹고 남은 국물에 만두를 찍어 먹는 맛이야 말로 오후청 팔진미가 있다해도 이보다 맛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 "구강춘" 창가에 앉아서 내려다 보는 진영 역전 마당이 까마득히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잊을 수가 없다.
그 뒤에 구름 다리가 생겼지만 "구강춘" 에 들어 갈 때는 분명 일층이었는데 창가에 앉고 보니 삼층 높이의 정경이 가슴 떨릴 정도였고 그 컸던 진영 역전 마당이 손바닥 만한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난장이(?) 만한 것이 두고두고 신기 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름다운 추억은 오래 기억되고 그리운가보다.그 시절 형님 따라가서 목욕탕에 간 것도 자랑거리였지만 짜장면 하고 큰 만두를 먹은 것도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동네 또래들과 학교 동무들에게 은근히 자랑 했을 것이다.
지금은 진영역도 그자리에 없다.또 구름다리도 없을 것이고,역 밑에 있던 성냥 공장도,대흥학교와 주차장 사이에서 철하로 빠지던 지하에 있던 어둡고 혼자 다니기가 약간 겁이나던 하수도 굴 길도 없을 것이다.
물론 목욕탕도 그 자리에 없겠지? 이렇게 세월이 억수로 흘렀나 보네.
지금도 밖에는 겨울비가 새 봄을 재촉하고 있다.입춘도 지났으니까 곧 새봄이 오겠지?
크게 기지개를 켜고 새봄을 맞이하자.
모든 지인과 옛 동무들아! 너거는 언제 짜장면과 만두 먹어는 보았나?!
첫댓글 절사 편안하게 잘 지내셨어요 오랫만입니다 이렇게 어릴때 모습을 미화 시키지도 않고 적나라하게 써 주시는 글 재미있습니다 짜장면과 만두는 형님 덕분에 일찍 드셨군요 구강춘은 아버지 단골이였지요 ㅎㅎ 소죽 솥 목욕탕 ㅎㅎ물이 식으면 뜨거운 불을 지피던 그때 겁이 먼저 났었지요 ㅎㅎ형제 자매들 순서대로 씼고 나오던 목욕탕 이야기 도 좋았습니다 봄이오거던 함 내려오시고 건강하세요
조경식씨 이와는 어떤 관계이신지,,,,?
경식이와는 바로 옆집에 살았던 형제 같은 이웃사촌이자 먼 친척이랍니다.
지금도 그때 그 구름다리는 있습니다.
성냥공장은 없어졌구요, 다리가 많이 낡아서 올라보니 불안하더라구요.
학교다닐때 많이 오르내리던 다리라서
진영간 김에 그쪽으로 가봤거던요 옛 역전도 그렇고 버스주차장도 그때는
사과를 줄로 묶어서 엄청많이 팔고 했는데.....
사과 팔던 마산댁이 밀양댁이 주야 엄마등 그분들 생각이 많이 납니다.흑흑
마부산 오가던 차창 밖에서 사과 엮어 팔던 진영 아지매들 다들 어디로 가셨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