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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불패 신화 1. = 국방대 논산 유치
2007년 12월 11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체회의장. 이민원 위원장이 국방대 이전 결정지역을 최종적으로 발표하는 순간이었다. 세 시간 동안의 피 마르는 격론과 표결이 진행된 후였다. 회의장은 긴장된 침묵 속에 빠져 들었다.
논산으로의 국방대 이전에 찬성하는 측이든 반대하는 측이든 앞으로는 표결 결과에 순순히 따라야만 하는 운명적인 순간이었다. 이민원 위원장의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국방대학교 이전지가 충청남도 논산으로 결정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완구 지사를 비롯해서 충남도 공무원들의 심장이 감격으로 벅차올랐다.
이완구 도지사에 있어 국방대학교 논산유치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도지사 임기내내 거대한 충남도 조직을 장악하고 공무원들이 지사를 믿고 따라 오느냐 마느냐의 터닝 포인트 같은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사안이었다.
이것이 실패라도 한다면 ‘강한 충남’이란 캐치 프레이즈로 민선 4기를 시작한 이 지사에 있어 치명적인 오점으로 지사의 지도력은 큰 상처를 입고 임기내내 그의 발목을 잡을것이 뻔한 것이었다.
사실 도지사 선거 과정에서 논산에 국방대학교를 유치 하겠다는 공약을 믿는 유권자는 전무했다.
지사 취임후 몇일 지나지 않아 간부회의에서 논산으로 국방대학교를 유치하자는 제안속에 꼭 해야 한다는 의미의 지시를 하자 겉으로야 반대를 할수 없는 충남도 실.국장 간부들이었지만 그들의 속 마음은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안되는 것을 가지고 왜 하라는 건지 이해 할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어쩌면 이완구 지사 당선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일부 공무원들은 쾌재를 불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디 되나 안되나 두고 보자” 안되길 바라는 심정들 이었을 것이다.
국방대 이전 문제는 이완구 지사가 도지사에 당선되기 이전인 2005년 6월 24일 국가균형발전을 목적으로 「공공기관지방이전계획」계획속에 국방대학교의 이전지역은 ‘각 軍 본부가 소재하는 충남’이라고 명시되면서 시작된 것이다.
당연히 충남도와 논산.계룡 시민들은 논산으로 국방대학교가 이전되는 것이 기정 사실이고 그렇게 될 줄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국방대는 중앙정부의 계획에 조직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했다.
국방대 측은 서울에 그대로 남기를 원했고, ‘국가균형발전’이라는 국가 정책에 의해 이전해야 한다면 그 대상지로 행정중심복합도시를 원하고 있었다. 국방대 측의 이와 같은 행동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정부정책의 큰 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국방대 측은 물론이고 군 원로들 마저 반발 움직임을 보이자,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국방대 이전 지역을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수정하고 당시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 건설교통부 등 관계부처들이 구두합의에 까지 이르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변경은 균형위에서 국방대 측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인데, 그것은 국방대의 반발이 타 이전기관으로까지 확대될 것을 우려한 당국자들의 미봉책에 불과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충남도에도 이런 계획 변경을 그대로 수용하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충남도 관할구역 안으로만 국방대가 이전한다면 그런대로 만족할만 하다는 것이 충남도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급반전 된 것은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국방대 논산·계룡 이전’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이완구 후보가 당선되면서 부터 이다. 처음에 공무원들은 국방대 논산이전이라는 선거 공약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충남도의 균형발전을 이루려는 李지사의 의지를 누구도 꺾을 수는 없었다.
“국방대 이전이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인 만큼 이전 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충남 서남부 지역이 되어야 하고, 특히 각 軍 본부, 육군훈련소, 항공학교와 연계 발전될 수 있도록 논산지역으로 이전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李지사의 의지는 곧바로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먼저 해야 할 작업은 대통령과 총리, 정부 부처 인사들을 만나면서 국방대 논산 이전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기본 입장은 “한 번 정해진 입장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중앙 부처에서는 국방대 행복도시행을 확정하고 그 사실을 공표하기 직전이었다.
따라서 우선 급한 것은 국방대의 행복도시 이전이 균형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결정되는 것을 일단 유예시키고 시간을 버는 일이었다.
때마침 국방대의 이전지를 결정하게 될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임기가 만료되어 새로운 위원회를 구성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李지사는 타 시·도지사의 양해를 얻어 균형위 위원을 자청하였고, 2007년 4월 3일 균형위 전체회의에 참석하여 당시 회의에 참석한 각 부처 6-7명의 차관들에게 “오늘 이것이 통과만 되면 모두들 감옥에 보내겠다”는 협박아닌 협박등을 통해국방대의 행복도시 이전 결정을 일단 유예시키는데는 성공하였다.
이날 일로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단에 이 지사의 이날 발언이 전해지면서 이 지사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에게 소위 찍히게 되었다.
이후 이완구 지사는 행자부장관을 만나 국방대 행복도시행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그중에서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국방대 행복도시 이전이 심각한 법률적 결함을 안고 있다는 점이었다.
국방대를 행복도시로 이전하게 되면 행복도시특별법에 명시된 국비지원 한도액 8조 5천억 원을 초과(국방대 이전경비 : 약 6천5백억 원) 하게 되어 예산경정을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한데, 이는 사실상 여야 간 합의가 불가능하다는 논리였다. 그 결과 행자부의 의견이 충남도의 입장에 동의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충남도의 행동은 다각도로 이루어졌다. 논산 이전을 밑받침하는 논리도 개발되었다.
국방대가 행복도시로 이전하려면 행복도시 특별법상 행복도시 입주기관을 변경 고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주민공청회를 거쳐 관계 장관 협의, 심의위원회 심의, 대통령재가, 재고시 등 다섯 단계의 복잡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 그것이었다.
이후, 국방대를 논산으로 이전하려는 도지사와 논산시, 시민들의 힘겨운 노력이 계속되었다.
李지사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의 신분으로 국방대 논산 이전의 필요성과 필연성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설득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李지사의 노력에 발맞춰 논산시장과 논산 시민들도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논산 시민들은 ‘국방대유치 논산 시민 추진위원회’ 발족식을 갖고 범시민결의대회(2006. 9. 18)를 개최했다. 또 1만 3천여 시민이 참여한 탄원서를 청와대, 국방부, 건설교통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국방대학교 등에 발송했다.
그리고 논산시장을 비롯한 추진위원들은 생업을 뒤로 미루고 국방대와 균형위, 건설교통부를 수십차례에 걸쳐 방문(30여 회)하고 국방대 논산 이전의 타당성과 논산 시민의 간곡한 뜻을 전달하였다.
이런 충남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방대 논산 이전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논산시민들의 유치 노력이 멈출 수는 없었다. 해를 넘겨서도 논산시민들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졌다.
논산 시민들은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여름철인 3개월(2007. 5. 21~8. 14)동안 균형위 앞에서 1인 시위(350명 참여)를 이어가는 한편, 논산시민 810명의 서명을 받아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2007. 7. 10)하였다. 행정과 도민의 일치 속에 가능한 모든 방법이 동원되어 유치활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러한 충남도의 논리와 논산시민 등의 유치노력에 위기감을 느낀 중앙부처는 국방대 행복도시행에 대한 문서화 작업에 돌입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이견이 나오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가 표면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충남도와 논산시는 대통령과 국무총리에게 충남의 입장이 가진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한편 도지사는 국방대를 방문하여 교수 및 간부직원들과 집중적인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충남도의 거센 반발과 유치 작업은 정부부처와 균형발전위원회 측의 새로운 이전 논리를 끌어냈다.
2007년 3월. 국방대학교의 행복도시행이 법률적 문제와 예산상의 난관에 부딪치자 국방대는 본관은 행복도시로, 기숙사 등의 부속 건물은 인근 연기군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충남도가 예산상의 문제를 제기하자 “8조 5천억에 저촉 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방대를 이전하겠다는 전술로 그 문제점을 피해가려는 생각이었다.
충남도로서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상한 국방대 이전, 머리 따로 몸통 따로’ 라는 李지사의 비판이나, 언론의 비판적 기사도 그다지 큰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럴즈음 균형위 성경룡 위원장이 부친상을 당하자 이완구 지사는 상가가 있는 진주까지 밤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문상을 갔다. 어떻게 해서든 돌부처 같은 성경룡 위원장의 마음을 돌려 놓기 위해 천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진주까지 문상을 다녀와야 했던 것이다.
문상을 다녀 왔다고 하여 결정이 번복되지는 않을거라 생각은 했지만 국방대 논산 유치 문제는 한발짝도 나가질 않고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결정적 기회가 찾아온 것은 우연이었다.
2007년 9월경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하는 태안기업도시 기공식에 도지사가 참석하라는 청와대의 연락이 왔다. 아무리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라지만 도내에서의 행사시 당연히 있어야 할 도지사의 축사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불참하겠다는 통보를 하자 청와대 직원들이 받은 불쾌감은 컷으나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태안기업도시 기공식 당일 09:00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기공식 자체를 무기 연기하라는 지시를 함으로서 얼마나 기분이 상했을지는 미루어 짐작이 갈만했다.
이후 대통령은 2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다녀왔고 이를 두고 한나라당과 보수단체에서는 연일 비난의 강도를 더해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시 태안기업도시 기공식을 하니 도지사가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도지사의 축사는 빠져 있었고 이 지사는 또다시 불참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대통령과 도지사간의 날카로운 신경전은 사실 보좌하는 직원들에 있어 피를 말리는 것이었다. 청와대에서는 도청 비서실에 하루에도 수십번씩 전화하며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자 지금은 자리를 떠난 정병희 비서관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를 간파한 이완구 지사는 정 비서관에게 “더이상 까불지 마라”는 메모를 하게 하고 그대로 청와대에 전하라고 지시 했다.
이런 피말리는 신경전속에 기공식 하루전에 도지사 축사를 넣을테니 참석하라는 최후 통첩이 왔다.
그럼 가겠다고 답변한 이완구 지사는 대통령의 심기를 한껏 건드려 놓았으니 막상 대면 했을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2007년 10월 24일 대통령은 당초 헬리콥터를 이용할 예정이었으나 이날 안개 때문에 기차를 타고 내려와 홍성역에서 내렸다. 영접후 대통령은 의전차를 타고 지사는 자신의 승용차를 타려는 순간 “이지사 내 차 같이 타시죠”하는 대통령의 제안에 에상치 않은 동승을 하게 됐다.
차에 타자마자 노무현 대통령은 연신 담배를 피우며 그 연기를 차안에 뿜어 내고 있었다. 단단히 화난게 전혀 풀리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순발력하면 따라갈 사람이 없는 이완구 지사의 뇌리를 스친 것은 남북정상회담 문제를 가지고 화두를 꺼내는 것이었다.
“저도 김대중 대통령을 모시고 평양에 다녀 왔습니다만 이번 정상회담은 먼 훗날 역사가 평가 할 것입니다, 저도 한나라당이지만 이번 회담을 가지고 계속 문제 삼는 것은 좀 심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대통령의 굳은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확 풀리기 시작 했다.
이때를 놓칠리 없는 이완구 지사는 “한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그렇게도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노력하시는데 저도 균형발전 조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논산에 국방대학교를 유치 할수 있도록 도와 주셔야 겠습니다, 아끼시는 안희정이 논산 출신으로 안희정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합니다”
화색이 돈 대통령은 비서에게 국방대 문제를 메모 할 것을 지사하는 것도 모자랐는지 호주머니에서 직접 메모지와 펜을 꺼내 “논산 국방대”라고 적었다.
이날 이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성경륭 국가균형위원장이 李지사를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이완구 지사와 정재근 기획실장은 성경륭 정책실장을 만나 이제 정부방침이 결정된 만큼 장관으로 구성된 정부측 국가균형발전위원들이 논산이전을 적극 찬성하여 표결보다는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건의하였다.
그러나 국방대 측의 완강한 태도 때문에 결국 국방대 이전은 정부 방침에 대한 당사자들의 자발적 동의라는 순리를 거치지 못하고 균형위원회의 투표라는 반강제적 절차를 거치게 되었다.
2007년 12월 11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는 국방대 이전지 결정을 위한 투표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피 말리는 설득전이 진행되었다.
충남발전연구원장과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등 간부공무원들은 민간 위촉직 균형위원들을 다시 한번 일일이 만나 설득하였다. 충남도의 7급 공무원(주사보)들까지도 중앙부처 직원들을 찾아가서 충남도의 정당성을 피력하였다.
도지사는 회의에 참석하여 논산 이전을 위한 마지막 노력을 쏟아 붇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로 향하는 李지사에게 급한 연락이 날아들었다. 사상 초유의 서해안기름유출사고 현장에 대통령이 방문한다는 연락이 왔던 것이다. 李지사는 불가피하게 태안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균형위 사무실에서 기다리던 공무원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었다. 업친데 덮친격으로 균형위 위원인 김영관 대전시의회 의장마저도 한나라당 대통령 선거 유세 일정이 겹쳐 참석이 어렵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이 소식을 들은 李지사는 김영관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한시가 급하니 서둘러 균형위에 참석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김영관 의장이 KTX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여 균형위 회의장에 도착한 것은 회의 시작 직전. 그나마 빠른 교통편이 있어 다행이었다.
충남도 기획관리실장과 국방대 총장이 충남도와 국방대를 대표해서 각자의 논리를 설명하고 퇴장한 상태에서 비공개 토론이 진행되었다. 균형위원들의 난상토론에도 의견이 일치되지 않자 결국 표결이 진행되었다.
국방대의 의견과는 달리 균형위의 투표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국방대 논산 이전’이라는 안건에 대해 전체 참석위원 22명 중 19명이 찬성하고 3명이 반대했던 것이다.
이 표결 결과는 중앙 정부의 일방통행식 행정 결정에 맞서 지방 정부가 그 잘못된 정책결정을 바로 잡은 좋은 선례가 아닐 수 없었다. (2009.5.4 시골촌놈)
다음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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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논산 국방대 유치에 이렇게 어렵고도 험난한 과정이 있었으며, 대통령에게까지 맞서면서 까지 의지를 굽히지 않은 지사님의 추진력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
본인이 내뱉은 말 그것이 크건 작은 약속이든 꼭 지키시는 지사님! 국방대 논산이전은 논산시민 가슴에 희망을 심어줬습니다..
틀린것은 바로잡고 맞는것은 밀어주고 .... 지사님의 판단력과 추진력에 박수를 드리고 싶네요~~~
와1 완전 드라마 같네요.... 이렇게 충남을 위해 지혜를 짜내시고 헌신하시는 지사님 을 우리도민 들은 알고들 계시는지 .......
목표를 세워놓으면 무서운 힘이 나옵니다, 어려운 역경에도 할려는 의지가 있다면 무엇이든 혜쳐나갈것이란 일반적인 교훈을 우리들에게 전파한것입니다, 온 국민이 이러한 삶을 살아간다면 경제도 살아나겠죠,
지사님의 끈질긴 노력과 순간 순간의 재치력이 대단하십니다.
굳센 의지의 지사님이기에 강한 충남이 존재하는게지요..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지사님...하루빨리 후속조치가 이루어지길 빕니다.
대단하신 지사님!
지사님 지사님 우리지사님 대단하신 지사님 우리지사님 응원해 드려야 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