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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송한 부분입니다. 바로잡아주심이 필요합니다.
王於三界라하시니라
三界에서 王을 하신다라고 [법화경]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
又普光明智者는 若說等覺커나 說妙覺은 是約位요
또 普光明智慧 [법화경] 아니 [화엄경]에서는 普光明智를 말하죠. 부동지나 부동지, 보광지 이 두가지는 [화엄경]에 특수하게 말씀하신 보 보광지라고도 하고 보광명지라고 하고, 그전에 대구 동화사에서 [화엄경] 열분 모여가지고 법회할 때 내가 열 번째 가서 한적이 있는데 그때 보광명지에대해서 자세하게 내가 설명한 적이 있어요.
普光明智는 만약에 等覺을 말하거나 妙覺을 말할 경우는 이것은 지위를 잡아서 지위로써 설명을 하는 것이고
普光明智는 不屬因果로대 該通因果하니
普光明智라고 하는 것은 因果에 屬하지 않으대 원인과「대승학인이 인과에 떨어집니까?」하니까 어제 전백장이「인과에 떨어지지 않습니다.」그렇게 말해놓고 여우가 되았지만은 후백장은「不昧因果」라고 했죠. 인과에 떨어지지 않던지 매하지 않던지 그게 인과에 속하지 않는거요. 인과에 해당이 안된다. 인과를 초월한 거죠.
그렇지만은 因果를 다 該通해요. 인과하고 관계없으면서도 인과를 모두 다 총괄하여서 두루 통한다. 그게 보광명지라 말이요. 보광명지는 부처한테도 있고 모든 중생한테도 다 있는거요. 널리 빛나고 밝은 그 지혜니까
부동지는 본래 공적한 자리고 공적한 자리, 보광명지는 영지의 자리요. 그전에 공적영지 말했죠? 본래 그 자리 진공의 자리가 바로 부동지고 묘유의 자리가 보광명지라요. 그래서 비로자나불 번역할 때 광명변조라고 하는 것이 보광명지의 의미가 그대로 두드러지게 나타난거지요.
其由自覺聖智하야 超絕因果故라
그 自覺聖智로 말미암아서 스스로 깨닫는 [능가경]에서 말씀하신 성불할적에 얻어지는 그런 지혜로 말미암아서 因果를 超絶하기 때문이라. 인과를 초월해서 인과가 끊어졌다 말이요. 그러니까 인과에 속하지 않지. 그리야 대단하지 뭐 상대성원리에서 거기에 상대적으로 거기에 속하고 거기에 지배를 받는거라면 대단할 게 없지요.
七卷楞伽에
7권짜리 [능가경]이 있어요. 당나라때 실차난타가 번역하신 [능가경]이 지금 대장경에 에.. 10권짜리도 나와있고 7권짜리도 나와있고, 달마대사가 [능가경] 말씀하신 그건 남북조 시대 이전에 네권짜리 [능가경]이요. 세가지가 있어. 7권짜리 그 7권 [능가경]에서 이런 말씀이 나와있어요.
妙覺位外에 更立自覺聖智之位하시니
妙覺位밖에 따로 自覺聖智라는 지위를 건립했으니, 내세웠으니
亦猶佛性에 有因有果하며 有因因하며 有果果라
그것은 또한 佛性에 因도 있고 果도 있고 因因도 있고 果果도 있는 것과 같음이라. 그전에 오불성 내가 설명했죠? 다섯가지 오종불성 기억나요? 그 말이 여기도 또 나오네. 다섯가지 또 모르는 분을 위해서는, 안 들으신 분을 위해서는 적을 필요가 있어요.
불성을 단순한게 그냥 불성하면은 한가지인것 같지만은 다섯가지로 말을해요. 正因佛性, 두 번에는 두 번째가서는 緣因佛性, 세 번째 가서는 了因佛性 여기는 다 因자로 되어있죠. 네 번째가서는 果佛性, 다섯 번째 가서는 과과 과가 두 번 나오죠. 과중의 과 果果佛性. 여기는 글자가 더 많아졌죠. 이건 보리고 이건 열반이고 그러니까 여기는 인 있잖아요. 여기는 과가 들어가고 두가지 그 중에 과과불성은 또 과가 두 번 겹쳐 과중의 과라. 인도 있고 과도 있단말은, 아까 삼인불성은 인으로 볼 수 있고 그 다음에 과불성은 과고
인인은 인중의 인은 정인불성이요. 여기다 인자 다 적어볼까요. 여다 적으면은 쉽게 알수있죠. 정인불성이 인중의 인이요. 그 다음에 인인이 있고 또한 과과가 있습니다. 이걸 과과라고 했잖아요. 열반자리 마지막 果果 因因 중자 써도 되고 안써도 되고 果中果 因中因 그냥 인인 과과라고 여기는 과과라고 되아있죠.
以因取之에 是因佛性이요
因으로서 取함에 이것은 因佛性이 되고, 인은 처음 종자와 같은거요. 원인
以果取之에 是果佛性이라
果로써 取하면은 이것은 果佛性이라.
然則佛性은 非因非果일달하야
그러나 佛性은 원래는 因도 아니고 果도 아니죠. 그걸 구분해서 설명할라니까 인불성, 과불성 뭐 과과불성, 인인불성 그런거지.
普光明智도 亦復如是하야 體絕因果나
普光明智도 불성과 똑 같아서 또한 다시 그와같아서, 그 자체가 因果를 인과가 끊어졌으나 인과를 초월해서 인과가 끊어졌지만은
為因果依며
모든 因果의 소의처가 된다 말이요. 인과가 이 보광명지에 의지하는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모체로 나타난다 말이요. 모체가 된다 말이요. 어머니처럼, 인과의 의지가 되며
果方究竟이니
果에 비로소 究竟함이니. 나중에 보리열반 열반을 증득할 때 그때가 완전히 보광명지가 완성을 한다 말이요. 완성이 바로 구경이요.
故로 云如來普光明智니라
그러므로 [화엄경]에서 如來普光明智라고 했다 말이요. 청량국사 [화엄론]에서는 보광명지를 굉장히 중요시해서 역설을 많이 하신거요. 보광명지 설명하신 것이 처음에 십지법문이나 십주법문에 두드러지게 많이 했죠.「세주묘엄여래상」뭐 거기 [세주묘엄품][여래현상품] 뭐 그 다음에 여러 품이 처음에 여섯 품을 설했죠. 초회에 에? 그런것들이 전부 다 보광명지를 역설하신 경론에 나와있어요.
그 자리는 지극히 밝은 자리요. 비고 밝다고 허명하다고 했죠. 빈 자리는 아까 부동지고 밝은 자리는 보광명지라. 비면서 텅 비어있으면서 밝고 우리 마음자리는 또 밝으면서도 비어있어. 그 두가지만 알아뿌리면은 견성 하는거요.
누가 아까 어떤 보살이 내가 뭐 견성하기를 뭐라고 말하드만 그래서 흥교스님이 견성한지가 언제라고 응? 견성이 그렇게 뭐 어려운줄로 생각하면은 견성하기 어려워요. 단박에 알면 견성하는거지. 마음자리알면은, 虛明 두가지만 제대로 꿰뚫어 알아버려도 견성 다 한거요. 비고 밝은 거. 비고 밝은 거 외에 더 없어. 팔만법문도 그것 뿐이라.
冥真寂照며
眞에 합해서 고요하게 비치며, 고요하게 비친게 바로 보리열반 열반도 寂照요 보리도 寂照지. 그러나 인자 나누어서 말하면 열반은 寂이고 또 보리는 照고, 고요하고 여기또 적조도 허명아뇨. 고요하다는 것은 비었다는 뜻이고 조자는 밝다는 뜻이요. 부동지와 보광명지가 다 적조라.
그런데 등각보살은 조적이여. 꺼꾸러 되아요. 부처님은 적조지만 [영락경]에 그런 말씀을 했어. 아직은 등각보살은 공부를 하는 개제에 있기 때문에 완성을 안했거든 성불 아직은 쪼금 덜한거요. 미륵보살처럼, 쫌 더 있어야 완성을 하지. 그러니까 등각보살은 조적이고 적을 비춘다. 그런데 어.. 성불하신 부처님은 적조라. [능엄경]에「적조함허공」그 말이 나오죠.「淨極光通達 寂照含虛空」[능엄경] 그말도 내나 그말이요. 문수보살 말씀에,「정극광통달이라」이런 게송을 보면서 마음하고 비추어서 봐야되요. 그러면은 이 말씀이 내 마음에 와닿은거요.「정극광통달 적조함허공이라」함허스님이라고 할때 이 含자지. 함허스님
이조때 유명한 큰 분이, 큰 스님이 에.. 함허스님이라. 요함허 함허공인데 공자빼고 그냥 함허.「정극광통달」정극이니까, 정극은 뭐겠어요. 내나 적조를 말하는거요. 요게 적이지 뭐 청정함이 지극하면 적이라말요. 광통달이 뭐요 바로 조요. 모를까봐 또 적조 또 나와. 허허 응? 결국에 淨極光通達이나 寂照나, 적조는 간단하게 하면 적과 조고 불퇴지로 하면 정극이고 광통달이고 그래요. 적조하야 허공을 포함해.
세계보다 더 큰것이 허공계지만은 허공도 별것도 아뇨. 허공도 우리 마음안에 큰 넓은 하늘에 쪼각 구름같이 허공이 우리 마음이 큰 하늘이라면, 허공계가 대단한 것 같지만은 쪼각구름처럼 허공이 우리 마음 하늘에 있는거요. 별것아뇨 별것없어.
여기도 함허가 나오는구만 응? 이조때 세종대왕때 그때 함허스님이 큰 스님이었어요. 무학대사의 제자. [금강경설의][영가집설의][원각경해석] 또 [유석질의론][현정론] 저서를 많이 남겼어. 도리어 그 작품은 서산대사 작품보다 낫지. 서산대사 작품은 [청허집]하고 거저 [선가귀감], [선가귀감]이 있는데 [선가귀감]이 잘된거지. 그 외에는 뭐 함허스님의 저서보다 수량도 적고 좀 짝지. 함허스님이 서산대사 전에 출생하신 분 아뇨. 이조 초기에, 함허 요대로 含虛
含虗吐耀요
허공을 포함해서 밝은 빛을 吐해 낸다 말이요. 含하고 吐하니까 불국사 산 토함산이구만 토함 이렇게 거꾸로 하면 吐자 含자 해서 불국사 그 산이 토함산 아뇨?
「山吐孤輪月이요 江含萬里風이라」그 시를 율곡선생이 7살에 지은 시요. 거「산토고륜월이라 강함만리풍이라」시는 도리어 어릴때 시가 더 나어. 율곡선생 시는, 율곡이 50도 못하고 가셨든가? 일찍 가셨어.「산토고륜월이요」산은 외로운 바퀴 달을 토하고 뱉어내는것 같고「강함만리풍이라」강은 만리의 바람을 머금어. 율곡선생 어려서 시 진거 굉장히 잘졌죠. 그리고「霜楓去赤風林焉(?) 如日紅이라 塞鴻이 何處去아 聲斷 百雲中이라」율곡선생 어려서 시 진거 잘졌 뭐 이태백이니 그런 시에 시보다도 도리어 더 운치가 대단하고, 저것도 그냥 글 써놓고 보면은 별것도 아닌 것 같지만은 저런 기상이 대단하지.
산은 외로운 바퀴, 그 달은 혼자뜨는 달이라고 누가 시에 그렇게 썼드만, 혼자 뜨지 그먼 둘 뜬가. 괜히 말을 붙여가지고 그러니까 혼자뜨는 달이 고륜월이라. 외로운 바퀴 달 그 뱉어내. 산위에서 달이 이렇게 올라오는 것 같잖아요. 토함산에서 보면 그렇지.「강함만리풍이라」강은 강릉 경포대같은데 거기거 글 진거요. 오죽헌 오죽헌이 경포대쪽에 강릉에 있잖아요. 율곡이 거기서 태어났거든 경포대에서 글 진거요.「강함만리풍이라」그 강은 강이 아니라 바다지 그 경포대 앞 바다 동해는, 강은 만리의 바람을 다 머금었더라. 아까 말한 그 함허 또는 거시기 저 토요 토요 함허토요를 다 쓴거죠 잉. 그대로가 허허
肇論에 云
[조론]에 말하기를, [조론]이란것은 [열반무명론]에서 말씀하신 옆에다 글씨가 잘 안보이는가 모르겠어요. [열반무명론] 없을 무자. 무명론 묘존이라고 하는 일곱 번째에 거기에 나온 글이라요. [열반무명론] 무자를 나는 쉽게쓸라고 요렇게 썼어요. 없을 무자 요렇게 써요. [열반무명론] 열반을 그렇게 글씨가 아마 안 보일거요. 涅槃 복사가 잘 안됬어. 승조법사 지으신 [열반무명론]에 있는 말이라요.
나는 어찌다 찾아보는 경우는「토」를 달다보면 그 문장이 어디까지 나오는가 그거 볼때는 꼭 찾아보고 그거 안봐도 그냥 말이 뚝 떨어진것이 분명하게 나타나면 찾아보지도 않고 찾아볼려면 얼마나 힘들다고 시간낭빈데, 흠 찾아봤기 때문에 옆에다 적어 논거요.
玄道는 在乎妙悟요
[조론]에 말하기를 玄道는 깊은 도는 현도, 현근 무슨 저 밑에 보면은 또 현종이라고 나오고 현자로 마음을 표현한게 여러번 나오죠. 깊은 도는 묘하게 깨달음에 있고, 도가 뭐 누구한테나 다 있지만은 깨치지 못하면은 있어도 없는 거나 똑같어. 견성해야 되지.
그런데 강원에 강사들은 답변하기 싫으면은 견성해야 안다고 견성에다 미뤄버리지. 대답하기 싫고 또 말이 막히던지 답변하기 귀찮으면은 견성해야 안다고「견성해라!」그랬뿌리죠. 그 뭐 견성이 뭐 해라고 해서 할 게 아니고 누구든 견성해야 되지. 견성을 아조 최고로 어떤 이상의 세계에다가 미룰 필요도 없는거요.
묘하게 깨달음이 있고
妙悟는 在乎即真이라
妙하게 깨달음은 卽眞에 있습니다. 바로「색즉시공 공즉시색」처럼 진을 떠나지 않고 진여 참마음, 참마음을 아는 사람을 임제스님은 無爲眞人이라 했죠. 참사람, 참사람이란 말은 임제스님이 도가에 장자 [남화경]이나 그런데 있는 말 빌려쓴거요. 응? 임제스님이, 모른 사람은 처음 만든 말로 알지만은「진인」이란 말은 옛날 도교에서, 불교나오기전에도 참사람이라고 해요. 가짜 사람아니고 진짜 사람, 道를 아는 사람이 참 사람, 진짜 사람이요. 道 모르면 사람은 사람이지만은 가짜 축에 들어가죠. 가짜 사람이요 응?
即真則有無를 齊觀이요 有無를 齊觀則彼己가 莫二니
眞에 卽한 則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지런히 다 볼수 있고 有無를 가지런히 동시에 다 평등하게 관찰한 則은 저와 나가 그러니까 自他죠. 자타가 둘이 아니다.
所以天地는 與我同根이요
所以로 쓴 바로 天地도 與我同根이요. 하늘과 땅도 나와 더불어 뿌리가 같어. 도교에도 이런 말이 나오잖아요. 천지도, 천지가 뭐 별것인가말요. 나하고 똑같은 내 마음으로, 마음에서 천지도 이루어진거요.
萬物도 與我一體라
萬物도 나와 더불어 그 본체가 하나란 말이요. 도선사 입구에 큰 돌에다 돌기둥 양쪽에다가 써붙인것이 각해논것이 이 글아뇨. 조법사 [열반무명론]에 있는 말. 저저저 서울에 도선사 있어요. 청담스님 계시던 도량에
同我則非復有無요
나와 같은 則은, 천지가 나와 같은 즉은 다시 있고 없는 게 아니고
異我則乖於會通이니
만약에 나와 다른 則은 會通에 어긋난다. 회통에 어긋나면은 내가 따로 있고 천지가 따로 있고 자타가 평등한 원리에 어긋나가지고 회통하기가 어렵다. 어긋날 乖자요. 어긋나나니
所以不出不在하야
쓴 바로 不出不在하야 나지도 않고 있지도 안해서
而道存乎其中이라하며
道가 그 가운데 있어. 不出不在 아까 거시기 저 왕발이 [석가모니성도기]에서「淨法界身은 本無出沒」이라고 했죠. 본래 출몰이 없다라고 딱어버렸네. 그와같이 출몰이 없는 것과 같은 의미가 여기서 말하는 불출불재라. 나가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러면서 묘한 그속에 도가 그 가운데 있다라고 했으며
거까지가 [조론] 말이고 또 [조론] 말이요.
又云 至人은 虗心冥照하야
또 말하기를 至人은, 지인도 장자 [남화경]에 나오죠.「至人은 無己라」지인은 나라고 하는게 없다. 무아라고 하는 지극한 사람. 성인이 바로 지인이라. 성인보다 더 한 사람이 지인이지. 지인은, 우리 인자 그 스님은 삼조 승찬스님은 [신심명] 제일 첫 머리에 至자를 써가지고「至道는 無難이라」라고 지자 썼죠. 지도는 어려움이 없다. 견성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지도는 무난이라」도에 이른다고 보면은 틀려요. 도에 이른다는 말이 아니라 지극한 道는, 아까 지인처럼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다. 도에 이른다고 해석한 것은 잘못한거요.
至人은 마음을 텅 비우고 冥照하여, 명조란 것은 합할 명자. 어둡게 그 본 도의 자리에 합한 것이 명이라요. 뭐 밖으로만 자꾸「隨照失宗이라」고 [신심명]에 나오죠. 밖으로 보고 듣고 하는 그 밖으로 비추는 걸 따라가면은 종지를 잃어버린다.「歸根得旨요 隨照失宗이라」하는 그 수조는 잘못된거요. 근에 돌아가면은, 안써야는데 자꾸 써지네 (..?) 안 쓸수도 없고 중요한 말이니까. 근본으로 돌아가야 종지를 얻고 만약에 비추는데 따라가면은 그건 밖으로 색성향미촉법에 따라가는거요. 분별을 따라가는거요. 수조하면은 실종이라. 종과 지 요렇게 하면은 종지아뇨? 뿌리로 돌아가면은, 근본으로 돌아가면 종지를 얻게 되고 밖으로 헤매는거요. 수조는 외도 외도처럼, 비춤을 따라가버리면 종을 잃게된다. [신심명]에 나오잖아요. 이런것도 잘 몰라가지고 해석한 분들 대가라고 하는 분들이 엉뚱하게 해석을 하더라고 그러니까 말이 나왔으니까 나는 밝히는 거요. 어떻게 대가라고 하는 분들이 [신심명] 해석하면서 틀리게 하는지 말이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벌이 와서 여기서 돌아가셨어. (하하하) 내 법문 듣다가 돌아가셨으니까 뭐 좋은 데는 가겠구만「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흠
至人은 마음을 비우고 冥照하여 가만히 합해서 비추어서, 명조는 隨照가 아니에요. 內照지. 안 內자 안으로 비추는 거지.
理無不統이라
이치를 통하지 통합하지 못함이 없어. 모든 이치를 다 꿰뚫어 사무친다.
懷六合於胸中에
六合을 胸中에다가, 육합은 불교에서는 시방세계라고 시방이라고 하는데 유교에서는 육합이라고도 해요. 상하사방 상하사방이 육합이요. 사방에다가 위아래를 더해서 육합이라고 그래. 장자 [남화경]에도「六合之內는 聖人이 存而不論이라」육합의 내는 성인이 두고 공자를 가르키는 거죠. 말씀을 안했다 말이요. 공자께서 출세간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냥 놓아두고, 부처님은 출세간법을 다 말씀 자세하게 말씀을 했지만은 공자같은 이는 세간법만 주로 말씀했지 출세간법은 쌀에 뉘같이 쪼금만 말씀이 있는 둥 마는 둥 그런 정도지. 그래서 육합의 내는 성인이 그대로 놓아두고 말씀을 하지 안했다라고 그 말이 장자 [남화경]에 나와요.
六合을 온 시방세계를 자기 가슴속에다 다 품어부러. 경허스님이 금정산 범어사에서「呑吐遠近客(?)이 金井에 做淸遊라」고 전번에 글졌다고 썼죠. 그러니까 뭐 그런 하늘과 땅이 육합아뇨? 그걸 가슴속에다 여기는 품어부린다 했죠. 뱉으기도 하고 토하기도 하고 뭐여 삼키기도 하고 그와같이 하는 그 말과 같지요.
而靈鑒有餘요
육합을 흉중에다가 품음에 靈鑒이 여유가 있어. 영감은 그러고도 여유가 있고 신령스럽게 사무쳐 잘 아는 그것이 거울 감자요. 신령스럽게 거울한것이 여유가 있고, 영감자리가 내나 마음자리요. 마음에는 시방세계를 마음안에다 두어도 하나도 비좁지도 안해. 여유가 있지.
鏡萬有於方寸에 而其神이 常虗라하시니라
萬有를 方寸에다가 거울함에, 방촌이란 것은 흉중과 같은 말이요. 마음 마음을 심장을 방촌이라 해요. 마음을, 왜 방촌이라고 하냐면은 심장이 별로 크지를 않아. 크기가 사방 한치쯤 되는 심장의 그 지극히 작은 것을 의미해서, 방촌이 마음인데 원래는 여기서 나온거요. 요게 방촌이요. 심장 크기가 이정도 된다 그말이요.
마음에다가 우주만유를 다 거울로 비추어서 두듯이 그렇게 함에 그 정신이, 그 심신이 항상 비었다라고 했다.
罔象兮獲明珠며 希夷兮宗法要라
밑에는 대구가 希夷라고 나오죠. 罔象은 장자 [남화경] 도교에 있는 말이고 希夷는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요. 희이자라고, 망상이 밝은 구슬을 얻었다. 장자 [남화경]에 있는 말을 갖다 놨어요.
黃帝가 於赤水에 求玄珠한대
황제가, 장자 고대로 여기 글을 갖다가 논거요. 黃帝 훤원씨 삼황오제가운데 황제라는 임금이 있었죠. 삼황중에, 황제때 지남 패철 지남침도 만들었고 방패와 창도 만들었고 책력도 만들었고 육갑도 만들었다는 거요. 甲子乙丑 황제때 황제가
黃帝가 赤水라는 붉은 물에서, 적수는 적벽강처럼 물을 상징한거지만 보통은 물이 검은물인데 여기는 붉은 물이니까 마음자리를 상징하는 말이지. 마음도 적심이라고도 하죠 붉은 심장. 赤水에서 玄珠를 찾을려고 할새, 아까 현도를 현주라고도 해요. 검은 구슬, 여의주라고도 하고 현주를 찾어 마음을, 마음의 도자리를 찾을려고 할새
有臣離婁가 百步能觀毫末호대 求之不得하고
황제의 신하중에 離婁라는 신하가 있어. 이루는 굉장히 눈밝은 사람이요. 이루라는 사람은 저 百步밖에 50m밖에 털끝을 볼 수 있는 지극히 눈이 맑은 사람이요. 백보밖에 털끝을 본다면, 여기서도 털끝 보기도 어렵죠. 1m거리에서도 털 끄트머리는 안보이잖어. 바늘귀보다도 더 작으니까, 그런데 이루는 백보에서 能히 毫末을 보대 그 사람이 현주를 찾을려고 해봐도 현주를 찾아서 얻지를 못하고 이에 그래서 눈밝은 사람, 귀밝은 사람, 온갖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다 시켜도 못찾았어. 나중에는 멍텅구리와 같은 망상이란 놈이 찾아냈어. 물 속에 잃어버린 구슬 천주를
망상이 인자 멍텅구리같은 아무 모양도 없고 지혜, 총명도 없는 그런 존재지.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좀 재간이 없는 놈이라. 똥깨나 뀌는 놈은 암것도 못하고, 못찾아내고 똥깨나 뀌지 못한 망상이란 놈이 그놈 현주를 찾아냈다 그말이요. 얻었다 그말이요 잉.
乃罔象이 而得之하니
이에 罔象이가 망상이 현주를 얻었으니, 망상은 뭐냐? 인자 종경스님, 연수대사께서 해석합니다.
罔象은 即無心也라
罔象은 이 無心한거라. 생각이 없는 무심한 자리가 망상이다.
故로 弄珠吟에 云
그러므로 롱주음이라는 구슬, 구슬을 희롱하는 시, 시를 음자를 붙이죠 뭔 시에, 소강절 선생은 음 무슨 음 그런 음자로 많이 붙였지. 시를 읊으기 때문에 吟자는 詩를 말한거요. 弄珠吟이라는 그 시에서 어떻게 했냐면은, 일곱자 시구만요.
罔象無心이 却得珠하니
罔象無心한 것이 문득 현주구슬을 얻었으니
能見能聞은 是虗偽라하니라
能히 보고 能히 잘 듣고 이루같은 사람, 사광이 같은 사람 그것들은 다 허깨비 가짜란 말이요. 虛僞
그 전에 영천 은해사에 4.19직후에 대처승이 점령해버렸어. 그거 정화하니라고 내가 가서 강을 처음 시작하게 됬는데 23살 때, 그때 주지가 둘이여. 비구승 주지는 성이 곽씨고 대처승 주지는 성이 허씨라. 그래서 그때 학인스님들이 말하기를「대처승 주지 허준이는 허죽이고 허자가 그리고 비구승 치계 주지 곽동선스님 곽씨는 껍데기 곽자 곽씨라고 껍데기 주지라고」주지 행세를 못 했으니까, 그게 다 허위라. 뭐 말만 주지지 둘다 다 주지노릇을 제대로 못했지. 무슨 절 하나에 주지가 둘 있어. 대처승 주지 뭐 비구승 주지 그거 다 껍데기들이지.
希夷兮宗法要라
希夷함이여! 法要를 으뜸함이라.
眼不見謂之希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希라하고, 노자 [도덕경]하고는 쪼금 달리 해놨어. 노자 [도덕경]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夷자로 나와있어. 그래서 옆에다 내가 적어놨지요 잉 예?
耳不聞謂之夷라
귀로 들을 수 없는 것을 희라고 말해. 반대지. 희는 어.. 여기는 그냥 생각대로, 기억대로 희가 먼저 나왔으니까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했지만은 노자 [도덕경]은 그렇게 되아있지 않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이고 귀로 들을 수 없는 것을 희라고 그렇게 되아있어요. 그러니까 옆에다가 적어놨으니까 참고를 그렇게 하세요.
故云無心道現이라
그러므로 無心이 될 때, 무심할 때 마음이 없음에 道가 나타난다고 말함이라.
又真心은 無形하야 非見聞覺知之所能解라하니라
또 참마음은 형체가 없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걸로, 見聞覺知 견문각지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지각 육각이 다 견문각지에 속해요. 시각은 견이고 청각은 문이고 각은, 각은 인자 후각, 촉각 어.. 뭐여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요것을 다 각이라고 그래. 미각이나 촉각이나 에.. 또는 어.. 후각이나, 覺자는 세가지에 통해요. 육각을 다 말한거요. 보통 줄여서 견문각지라고 했지만은, 견문각지 能히 알수없다라고 했다.
恩覆羣生호대 而無得하야
은혜가 모든 群生을 덮어주대 감싸준다 말이요. 군생이란 말은 여러 생명이니까 중생이라는 말과 같에요. 중생을 다 은혜로 덮어주대 감싸주대 그러나 얻은 바 없어. 태양이 온 지구를 다 비추어서 모두 다 따뜻하게 해주지만은 내가 했다는 그런 상을 내지 않죠. 그래서 얻은 바가 없어. 그와같이 얻은 바 없어서
不作不為요
짓지도 않고 하지도 않음이요.
肇論에 云
[조론]에서 말씀하시기를
夫聖人은 功高二儀호대 而不仁하고
대저 聖人은 功이 二儀보다 높아서 높대 어질지 아니하고, 不仁이란 말은「天地가 不仁하야 以萬物로 爲蒭狗라고」밑에 노자 [도덕경]에 나오잖아요. [도덕경]에 있는 말을 갔다놨어요.
보통 이의라면은 음과 양인데, 여기서는 음과 양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말한거요.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아뇨? 성인들은, 성인들의 공이 천지보다 더 높아. 천지가 만물을 다 발생하고 성장하고 그 공이 많지만은 성인의 공은 천지보다 더해. 그래 그렇게 공이 이의보다 높아대, 내가 어진 그 인자한 것을 베풀어줬다라고 인을 하지 안해. 내가 인을 했노라고 안해. 상이 없는거죠. 성인들은,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을 다 떠났어요.
明踰日月호대 而彌昏하야늘
밝은 것이 해와 달보다 더 진하대, 성인의 밝은 것을 말한겁니다. 세상에서는 해와 달이 제일 밝지만은 그래서 밝을 明자 날일 변에 달 월자 붙인거죠. 성인의 밝은 것은 해와 달보다 더하지만은 그러나 밝다고 하지를 않고 더욱 어두워. 그러니까 성인은 상이 없다 그말요. 그 말을
註에 云 是以로 聖人이 不仁하야
註에 말하기를 그럼으로써 聖人이 不仁하여, 성인이 어질지를 아니해서
以百姓으로 為蒭狗하고
百姓으로써 蒭狗를 삼고, 이 말은 노자 [도덕경]에 있는 말을 [조론]을 해석하는 사람이 주를 그렇게 낸거요. 추구란 말은 노자보고, 옥편에 없다고 누가 물으셨구만 언젠가 물었잖아요. 그거 글자 틀려노니까 옥편에 없지. 추구라고 할때 이 개 구자 거기에 없어요. 글씨 쓰는 사람이 잘못 써놨어.
추구란 말은 옛날에 그 저 무당들이나 무슨 밥을, 사람이 아퍼가지고 그럴때 우리도 어려서 많이 봤어. 시골에서, 짚같은거 풀같은거 가지고 개같이 만들어. 강아지처럼 그래가지고 밥을 좀 떠놓고 빌고 그거 나중에는 그놈 태와부러. 없애버리기도하고 던져버리기도하고 길가에다 던져버리기도하고 그게 추구라. 추구란것은 꼴로 개처럼 만들어 이렇게 비슷하게 꼭 개같이 생기지는 안해도 네발 달리고 머리 있고 꽁지 쪼그만하게, 꽁지 없어도 되고 있는 둥 마는 둥 그때만 필요해. 제사지내고 인자 그때 푸닥거리할때만 필요하지 그거 다 끝나면 버려버리잖아요. 무용지물이라.
그러니까 성인들은 백성을 다스릴때 백성을 그렇게 집착심이 강해서 집유하는 것이 없이 백성을 가지고 추구같이 여긴다. 추구는 그때 쓸때만 만들어서 쓰고는 버려버린다. 그러니까 그래서 불인이라는 말을 했다 그말이요.
天地는 不仁하야 以萬物로 為蒭狗니
또 天地도 하늘과 땅도 不仁하여 萬物을 가지고 蒭狗를 삼는다라고 그런 노자 [도덕경] 말이 거기까진데, 주에도 그 [도덕경] 말을 갔다가 빌려 쓴거죠. 초도가 없어요. 그냥 개구자요. 개구자는 보통 개고 그 전에 빨갱이 집에다가 적구가라고 붉은 개집이라고 크게 써붙였대. 옛날 6.25나기전에 그래서 내가 개구자를 잘알지.
개 견자도 있죠? 개 견자가 더 사나운 개요. 개 狗자는 보통 똥개고 개 犬자가 이빨이 사납고 사냥개 그 고약한 맹견이 맹견이라고 하지 맹구라고는 안해. 개 견자가 더 싸나운 개요. 흠
어떤 분은 개띤데 이 이빨이 견치가 있더라고 개이빨같이 그래서 이렇게 윗니가 양쪽에 쑥나온 견치라고 그래. 이빨도 치아가 이름이 다 있어요. 어금니 이렇게 가는 학독같이 방아찔때 절구통쫌 구치라고도 하고 이렇게 가는 어금니가지고 갈아서 음식을 먹죠. 마치라고도 하고
이것은 앞에 이빨이여 판치요 판치. 그 저 옛날「板齒生毛」거시기 저 화두도, 몰라가지고 스님들이 판때기 이빨에 머 터럭이 난다고 그렇게 엉터리같은 말씀들 하시는 분 있는데 그러니까 몰라셔서 그래. 문을 거시기 저 뭐여 문치라고도 하고 판치라고도 해. 판문점 고대로 요 앞니는, 그리고 요 송곳니가 견치라. 개 이빨처럼 이렇게 이렇게 여 영암스님이 꼭 그렇게 이빨이 견치로, 개띤데 그렇게 나있대. 허허! 견치 고대로
이빨마다 다 이름이 다 있어요. 나는 치과 전문의가 아니어도 상식적으로 다 알아요. 상식적으로 사람 인체에 관해서도 알아야 되잖아. 내가 의사가 아니더라도, 가령 침구멍이 어디가 있고 어떻게 맥락이 통하고 그런 것 정도는 알아야 되죠. 공부했다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고 암것도 모르고 멍청해가지고 하면은 그거 여기말하면은 彌昏이라. 어? 미혼만 되았지 명류가 못 된거요. 明踰日月을 해야되는데 명류일월은 못되고 미혼만 되버리면은 캄캄하니 절벽강산이지.
蒭狗者는 無吠守之功也요
蒭狗라고 하는 것은 짓고 지키는 것이 지키는 공이 없어. 진짜 개는 물건을 주인을 도와서 지키기도 하고 외부 사람이 오면은 짓기도 하지만은, 추구는 사람이 꼴로 만들거든 풀로 지푸라기같은거. 만들었기 때문에 만든 그 추구니까 진짜 개같이 짓거나 지키는 공력이 없다 그말요.
不仁者는 施恩不望報요
不仁이라고 하는 것은 은혜를 베풀기만 하지 과보를 받지 안해요. 은혜를 그러니까 천지만물을 전부 다 소생하게 발생하게 성장하게 할 뿐이지 대가를 바라지 안찮아요.
[명심보감]에도 어.. 베풀어주고「薄施厚望者는 不報라」나오죠. 황석공 [소서]에요. 쪼그마치 베풀고 크게 바래는 사람 있잖아요. 그것은 안 좋은 거요. 박시 박시로 내나 쪼금 얇게 베풀고서 두텁게 바래. 결과는 두텁게 바랜다.「박시후망자는 불보라」불보하고 이제 나오는데, 내가 어떤 사람에게 쪼금 주고 말이여 저 사람은 나한테 많이 주기를 바래. 보통 사람이 다 그렇지.
이건 보통 사람에게만 그렇게 생각할 게 아니라 우리가 부처님전에도 한번 생각해 봐. 돈 천원짜리 놓아두고도 빌기는 많이 빌죠. 뭐 아들 출세하게 만들고 서울대학교에 합격하도록 만들고 판검사 되도록 만들어. 돈 천원짜리나 만원짜리 놓고 그렇게까지 너무 당치도 안찮아요. (하하하) 정말 그마치 대가를 바랠라면 그만치 정성을 바쳐야 되. 그러니까 소서 한석봉이나 [명심보감] 지으는 그 추적선생이나 그 말이 아주, 나는 그래서 그 말을 굉장히 뼈에 깊이 내 사무쳐서 발표하는 거요.「박시후망자는 불보라」
부처님인들 너무 택없이 바래면「에이 너 정성이 그것가지고 뭐 그리 소원성취할라고 하노」그렇게 할지도 모른다 말이요. 부처님은 그렇게 안하시지만 저런 신장님이나 심술궂은 귀신들은 그렇게 해요. 부처님은 그런게 없지. 불인하니까
불인자는 은혜를 베풀고도 불인했다라고하는것은 즉 말하면 상이 없이 그대로 여 큰 대자대비한 박애를 베풀고도 과보를 바라지 않음이요.
彌昏者는 照而無照也니 即無心矣니라
彌昏이란 말은 명류일월이 미혼이란 말은 비추도 비추는 것이 없어. 그러니까 곧 無心한거라. 무심을 말한거다.
光含萬象호대 而絕思하야 忘知忘照로다
光이 萬象을 다 포함하대 생각이 끊어져서 아는 것도 잊어버리고 비추는 것도 잊어버리도다. 이것 진짜로 무심도인이 되았네 인자. 忘知忘照 망지망조가 참 대단히 그 무심도인의 살림살이요.
[영가집] 이말은 상당히 어려운 말인데 요 지금 [영가집] 나온거. 우필차손인가 비파사나인가 거기에 나온 말인데 이거 상당히 어려운거요. 그만하까요? 쉬었다 하까요. [영가집] 어려우니까 그놈 놔뒀다가, 지금 골치가 띵 할꺼니까. 오랫동안 봐도
첫댓글 _()()()_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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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動智-빈자리, 普光明智-밝은자리>..우리 마음자리는 텅 비어있으면서 밝고, 밝으면서 비어있다..화풍정 님! 수고하셨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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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화풍정님 덕분에 읽었습니다
주심부 읽은 인연으로
종경록도 공부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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