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Bobby Charlton
생년월일 : 1937년 10월 11일
출생지 : 잉글랜드(Ashington) 출생
신장 : 175
포지션 : 스트라이커(ST)
전 소속팀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레스톤, 올드 트레포드
주요 경력
- 프로통산 : 751게임 / 245골(게임당 평균 0.33골)
- A매치통산 : 106게임 / 49골(게임당 평균 0.46골)
- World Cup 참가 : 칠레(62), 영국(66), 멕시코(70)
- 1957년 League Division 1 우승(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963년 FA Cup 우승(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965년 League Division 1 우승(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966년 World Cup 우승
- 1967년 League Division 1 우승(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968년 European Cup 우승(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967년 Football Writers' Player of the Year
- 1974년 PFA Merit Award
스탠리 매튜스 경 이후 영국(잉글랜드)이 낳은 최고 선수이자 훌륭한 축구대사로 평가받고 있는 보비 찰튼.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었던 그는 왼발의 명수이며 대포알 같은 슛을 쏘아대는 공격수로 정교한 패스가 일품이었다.
보비찰튼은 1937년 10월 11일 영국 북동부의 작은 마을 애싱턴에서 태어났다.
동생 재키(Jackie)와 함께 동네 골목길에서 축구를 시작한 그는 또래 어린이들 가운데에서 유난히 돋보였다.
그의 재능을 발견한 사람은 매트 버스비(Matt Busby)였다.
당시 버스비는 자질과 기능성이 있는 어린이를 찾아 전국을 돌다가 마침 애싱턴에서 보비찰튼을 찾아낸 것이다.
버스비는 전국에서 발굴한 소년 선수들을 모아 집중적으로 축구를 가르쳤다. 보비 찰튼의 기본기는 그때 다져졌다.
버스비로부터 기보교육과 훈련을 받은 보비 찰튼은 54년 17세 때 꿈에도 그리던 프로축구 선수가 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에 입단한 것이다.
57년말 19세 때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의 주전으로 FA컵 결승전에 출전했다.
비록 아스톤 빌라에 2대1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때 보비 찰튼은 진가를 발휘해 부동의 공격수가 됐다.
5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은 벨그라드로 원정을 떠났다.
유럽컵 준결승전 레드 스타 팀과의 경기를 위해서였다.
경기를 마치고 귀국길에 올라 독일 뮌헨까지는 무사히 왔다.
그런데 맨체스터 유나이트드 팀을 태운 비행기가 눈 쌓인 뮌헨 공항을 이륙하던 중 추락했다.
이 사고로 선수 8명과 임원 3명, 기자 8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 참사 속에서도 보비찰튼은 살아났다.
이 소식을 접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하늘도 그의 재능이 아까워 살려주었다." 그만큼 보비 찰튼의 능력은 뛰어났다.
63년 재기에 성공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은 FA컵 대회에 세번째 도전, 마침내 우승컵을 안았다.
그때의 주역 역시 보비 찰튼이었다.
그리고 66년 잉글랜드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그가 활약한 잉글랜드가 처음으로 우승했다.
그때의 활약으로 보비 찰튼은 그 해 유럽 최우수선수가 됐다.
6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이 유럽컵 대회에서 우승할 때는 팀의 주장이었고 70년 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73년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을 떠나 프레스톤 팀에서 선수 겸 코치로 활동하다가 2년 후에는 올드 트래포드(Old Trafford)팀으로 옮겨 팀 살림을 맡기도 했다.
보비 찰튼은 58년부터 70년까지 국가대표 선수로 국제경기에 106회나 출전해 모두 49골을 뽑아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 소속으로는 601회나 경기에 출전해 198골을 터뜨렸다.
잉글랜드의 우상이었던 그는 초기에는 오른쪽 인사이드로 공격일선에서 공격을 주도했다.
그 후 왼쪽 윙을 맡았고 나중에는 팀 전술의 변화에 따라 뒤처진 센터포워드(Deep Lying Centerfoward)로 허리에서 볼 배극과 중거리 숫을 쏘아대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아직도 가장 인상적인 공격수, 빛나는 골잡이로 축구팬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그는 지금도 축구를 위해 맹활약하고 있다.
FIFA 순회대사로 전세계를 돌며 축구 보급과 발전에 앞장서며 특히 청소년들에게 관심이 많아 그들을 지도하는데 정열을 쏟고 있다.
평생을 축구와 함께 하는 이른바 "축구인생"으로 위대한 선수, 영국을 대표하는 스타를 거쳐 다시 축구대사, 외교관으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동생 재키 찰튼도 축구선수였다.
66년 월드컵 때 형 보비와 같이 국가대표로 활약했으며 은퇴 후 86년부터 북아일랜드 팀의 감독으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90년, 94년 월드컵 본선에 북아일랜드팀이 진출하는데 그게 기여했지만 형 보비의 그늘에 가려 조금 명성이 퇴색했다.
그러나 재키도 훌륭한 축구인이다.
보비의 조카 재키 밀번(Jackie Milbum)도 축구선수다.
그는 뉴캐슬 유나이티드 팀에서 이름을 날렸다.
이 처럼 보비 찰튼 가족에게는 전통적으로 축구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찰튼은 그에게 붙은 '경(Sir)'이라는 칭호는 그의 화려한 행적에 비하면 오히려 부족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