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간 나눴던 거 올려요.
마키아벨리라는 사람, 그의 관심, 그가 살았던 시대 짧게 요약해봤어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군주에 대한, 군주를 위한 이야기이지만
사실 권력의 작동방식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권력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지, 그 권력을 어떻게 유지/강화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논의인 거지요.
공화정에 대한 언급을 짧게 하고 넘어가는데,
그것은 그의 처지 때문이겠지요.
지배체제를 군주정과 공화정으로 나눠서 말하고 있는데,
다시 말해 군주정이 아닌 것은 공화정이고, 공화정이 아닌 것은 군주정이라고 하는데
군주정과 공화정을 나누는 마키아벨리의 기준이 뭘지 궁금해집니다.
권력, 권력의 작동방식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굴려본다면 재미난 해석도 나올 수 있겠지요.
어떻게 공화정을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되는 시기인데,
단순히 견제와 균형, 다수결 원리 만으로는 공화정도 민주주의도 어렵다는 게 명확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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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와 그의 시대1
마키아벨리는 1469년에 피렌체에서 태어나 1527년에 죽었다.마키아벨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와 미켈란젤로(1475~1564), 보티첼리와 동시대의 인물이다. 이들은 단연 르네상스를 대변했던 인물들 아닌가? 당시는 르네상스의 시대였다.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들의 시대를 리나시타라고 불렀는데, 재탄생이라는 뜻이다. 이는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보면서 그리스/로마의 고전적인 고대를 재탄생시켰다는 뜻이다. 르네상스라는 표현은 19세기 프랑스 역사가 쥘 미슐레가 [프랑스사]에서 처음으로 쓴 표현인데, 그 뜻은 재탄생이다. 리나시타와 르네상스는 모두 재탄생을 뜻하는 것으로 고대의 학문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유클리드의 기하학, 로마법 등이 주목을 받았다는 말이다.
마키아벨리 활동 당시 피렌체는 북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르네상스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다. 또한 북부 이탈리아는 중남부 이탈리아 지방과 달리 포데스타 제도를 기반으로 한 도시공동체들이 주류를 이뤘다. 포데스타 제도는 1년에 한번씩 시민들이 선출하는 행정부 수장 포데스타가 통치하는 것을 말한다. 피렌체 역시 포데스타를 중심으로 하는 공화정 체제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은 이러한 북부 이탈리아에 대해서 수차례 침공했다. 그러나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공동체들은 저항했고 성공적으로 방어해냈다. 교황 또한 북부 이탈리아에 세력을 떨치려했다. 북부 이탈리아 도시공동체는 이또한 방어해냈다.
조금 더 자세히 역사를 살펴보자. 4세기 무렵, 로마제국은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과 서로마제국 분열되었다. 비잔틴제국은 게르만족의 일파인 동고트족이 침입하자 타협책으로 이탈리아 반도에 대한 공격만을 허용했다. 동고트족은 이탈리아 반도를 점령한 이후에도 비잔틴 제국과 수시로 충돌했다.
1494년 프랑스 왕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침공은 변화를 가져왔다. 다른 도시들과 마찮가지로 피렌체 역시 프랑스의 영향권 아래 들어갔다. 피렌체의 로렌초 데 메디치가의 영향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피렌체는 수도사 사보나롤라에 의해 주도되다가 곧 공화정을 회복하게 되었다.
마카이벨리는 1498년 피렌체 공화국의 제2서기관의 국장으로 임영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3류 법률가였던 아버지(베르나르도 마키아벨리) 덕분에 가난하지만 품격있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인문주의자이기도 했던 베르나르도의 일기에 따르면 마키아벨리는 키케로의 저작,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 등을 학습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라틴어에도 상당한 실력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당시 대학자였던 파울로 다 론치글리오네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피렌체대학에 입학해 공부했다. 무명의 청년이었던 마키아벨리가 제2시기관의 국장으로 발탁된 데에는 아마도 제1서기관이었던 아드리아니의 역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드리아니는 여러 해 동안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했던 인물로 아마도 마키아벨리의 인문학적 소양이 탁월했음을 여러 방면으로, 직간접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공직 14년간 제2서기국장으로 일하면서 주로 외교와 군사에 관련해서 일했다. 유능한 관료였던 마키아벨리는 1512년 메디치가의 복귀와 함께 추방당했다. 마키아벨리는 공직에 복귀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군주론]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쉽게 복귀하지 못했다. 1513년에는 메디치가에 대한 반란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다행히 교황 레오 10세의 선처로 풀려날 수 있었다.
이후 마키아벨리는 오리첼라리 정원의 모임으로 알려진 피렌체 공화주의자 모임에 참여했다. 공화주의자 모임을 주도했던 이가 코시모 루첼라이였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를 코시모 루첼라이에게 헌정했다. [로마사 논고]는 로마 공화정의 장점을 비롯하여 공화국의 특징을 중심으로 묘사한 책이다. 1527년 생을 마감했다.
서구의 근대적 정치체계는 대략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형성된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5~16세기는 중세 봉건 체제가 절대왕정으로 전환해가는 초기였다. 그의 저작 [군주론]은 당시 이탈리아 도시공동체에 유효한 이론이면서 이후 전 유럽의 절대왕정 국가들에게도 유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신화나 정통성이 아닌 힘에 의해 세워지고 유지되는 국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관심사는 군주였으나 그것은 권력의 창출과 유지라는 차원에서 권력에 대한 논의였다. 마키아벨리는 철학이나 윤리의 영역을 벗어난 정치, 정치의 핵심 주제인 권력에 대해 기념비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권력,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첫댓글 함께 모임하면서 생각보다 내 읽고 싶은대로 책을 읽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바가 내 삶에 어떤 힘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보다는 누군가를 판단하는 잣대로 서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역사적 결과들을 보며 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에 대해 무서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도 행동하는 부분들이 정치적으론 비슷한 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내 안의 마키아벨리? 우리 안의 마키아벨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