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파는 아줌마를 보았다.
버스정류소앞, 가끔은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한다. 복잡하지 않아서 좋다.
자리도 넉넉히 많다. 이리저리 타고 내리는 사람을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차창밖의 도시풍경들, 늘 보는 거리지만 때로는 새삼스러울 때도 있다.
청소차가 지나간다.
과일파는 그 아줌마의 얼굴은 깊은 주름이 패였고 튼살이 보이는 팔뚝, 햇볕에 그을은 누런 피부,
한 눈에 봐도 고생 꽤나 한 그런 부류의 여자다.
그 여자를 보니 1년 쯤 전, 도배뜯는 그 아줌마가 생각났다.
전면도배를 한다고 난리를 떨었다.
단독을 구입해 이사온 지 10여년이나 되었으니 페인트도 칠하고 도배도 하고, 관리를 해야 할 때다.
관리하지 않으면 단독은 엉망이 되고 당연히 집값도 하락한다.
도배뜯는 그 아줌마의 손도 트실트실하고 손톱은 갈라졌으며 손바닥은 목불인견이었다.
얼굴은 화장기 하나 없이 푸석했으며 눈가에는 근심어린 주름이 한가득했다.
허리는 굵고 뱃살도 늘어졌다.
반바지 사이로 허벅지가 보이는데 피부도 거칠고 흡사 여성의 다리같지가 않다.
거칠게 살아 온 흔적이 역력했다.
그런데, 자세히 그 여자의 얼굴을 살펴보니, 이 여자 骨相은 그렇게 추한 얼굴이 아니다.
오히려 하관이 반듯하고 깊은 속쌍꺼풀이 있으며, 지긋하고 나긋한 고운 미소를 지녔다.
미고짓는 눈웃슴이 아름답고 거친 볼에도 홍염의 기운이 감돌았다.
콧대도 훤하고 애교살이 방긋햇다, 감추어진 미모가 마치 작은 찔레장미같은 여자였다.
- 아줌마는 집이 어디라예?
- 저 산격동 살아예
- 그 산지 오래됐나요?
- 네, 산격시장 뒤에 이사온지는 얼마 안됐고, 그 전에는 그 앞에 살았어예
- 벌이는 괜찬나요?
- 요새 영 죽을 맛입니더, 불러주는 데가 없네예
- 이래 일하마 하루 얼마 받아예
머뭇거리더니 그래도 시원하게 말을 한다.
- 8만원도 받고 12만원도 받고 그래예, 나도 사장님처럼 이런 집 하나 잇으마 얼마나 좋겟심니꺼... 꽃도 키우고 나무도 심고, 휴~ 묵고 살아야지 애들 공부시키야지... 일 안하고는 살수가 없지예.
무릎위로 조금 올라간 동강반바지가 낡았다. 실올이 부질부질 나와 있다.
멋스럽게 입는 청바지도 아니고 일상복이 그렇게 보이니 삶의 고통이 배어 있는거 같아 안스러웠다.
커피를 한잔 권하고 의자에 앉아 몇 마디 말을 더 나누었다.
왼손 약지에 반지가 보인다. 18케이 금반지였다.
- 결혼한지 오래되셧나봐요?
- 아임니더, 33에 결혼해서 애 둘 낳고 좀 살라하는데 저 세상 갔어예!
- 어이쿠 이런...
말문이 막혀 버린다.
- 죄송해요.. 제가 실수를~
- 괜찬아예, 사장님이 알 리도 없고 모르고 한 말인데 머 그러심니꺼
성격이 시원해 보여 이러다 호구조사 본격적으로 시작될까 싶어 그 쯤해서 대화를 멈추었다.
이 사람도 처음에는 얼마나 귀여운 아이였을까
뽀얀피부에 부모들 사랑을 독차지하고 재롱부리며 귀욤을 받았을 터.
바탕이 이렇게 수려하니 좋은 부자집에서 태어나 잘 먹고 잘 입고 부양을 받았으면, 세상 고통 모르고 유복하게 자랐더라면, 진흙속에 핀 연꽃처럼 화사한 아가씨로, 기품있는 중년부인으로 자라지 읺았을까!
고급화장품은 언감생심
그저 다이소 사구려 로션만 바르고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이렇게 억척스럽게 하고 있으니, 어디 여성으로서 자신의 미모에 신경을 기울일 틈이라도 있었겟나.
머리는 또 어떤가. 푸석하고 갈라져 윤기는 커녕 약간의 촉촉함도 보이지 않는다.
겨울 새벽바람, 여름의 햇볕
일하는데 그런 걸 가릴 수 있을소냐.
있는 집 사모님들 명품백에 매일같이 백화점 쇼핑에 한 점 10만원 초밥파티에~
옷입힌 강아지 느긋한 산책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 거리가 물리적 거리보다 삶의 방식의 차이일텐데. 그 차이가 순전히 생활의 압박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니, 얼마나 서글픈 일이더냐!
아무리 고운 얼굴,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고 태어나도
부유하지 못해 좋은 양육을 받지 못하면, 또 일찍 생활전선에서 악전고투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면
타고난 미모가 다 무슨 소용이랴.
삶이 그것을 깡그리 말살해 버리는 것을~
도배하는 그 아줌마.
순탄하게 세월을 보내왓더라면 뭇 남성의 흠모를 한 눈에 받앗을 것이다.
아름다운 여자였다.
부자들의 사치를 따라하지마라고 가난한 자들에게 백번 말한다고 해서 가난한 자들이
위안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정직한 말은 오히려 이것이다.
- 빵이 없으면 고기는 더더욱 없고 너희는 배를 곯으면 된다.
나는 잘 먹고 잘산다. 너희는 나가 뒈 ㅈ 라
경제활동이란 말을 바꾸면, 타인의 것을 빼앗기 게임이다.
국가도, 사회도, 기업도, 개인도,
모든 경제는 제로섬게임이다.
타인을 이용해서 내가 살아남는 것이다.
그게 자본주의사회다.
누군가 획득하면 누군가는 잃는다.
거창한 물리학의 법칙을 인용할 필요도 없다. 에너지보존의 법칙,
재화는 한정되어 있고 누가 가져가면 누군가는 못 가져간다.
동물들이 다른 생명을 먹음으로써 자신의 욱신을 유지하고 실찌우듯, 우리 인간도 다른 사람의 재화를 강탈함으로써,
자신의 재화를 획득해나가고 사치를 향유한다.
그래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은 행복하기가 쉽지 않다.
불행은 역설적이게도 민주주의에 있다.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이웃의 삶을 들여다보니,
상대적인 빈곤감을 체감하는 것이다.
10억을 벌어도 누군가 옆에 100억을 버는 자가 있다면 가난하다고 느낀다.
향락을 보면 누구나가 그걸 누리고 싶어진다.
주연배우를 보면 나도 주연배우가 되고 싶다.
그것을 바로 옆에서 목격함으로써 욕망은 더 강렬해지고 드디어는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는 것이다.
여론이 강요하는 필수품!
샤넬이나 에르메스가 여론이 모두에게 부르짖는 필수품이다.
빈곤, 그리고 그것이 초래하는 고통으로부터 회피하고 싶은 사람은 일짝부터 허세를 배운다.
적당히 자신을 포장하는 비굴함속으로 숨어드는 것.
도배하는 그 아줌마
로또에 당첨되거나, 벼락부자가 될 일은 없을터이고,
그저 평생을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
몇 푼 벌어 아이들 먹이고 교육시키고, 그렇게 근근히 살아갈 것이다.
서민의 일생이 그렇지 않겠는가!
타고난 아름다운 미모를 세파에 다 빼앗기고 억울해서 어떡하나~
하긴 이 세상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