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4:1-5
▣ 형제들과의 관계-로마서 14장-
로마서 14장 1절-15장 7절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운데서 “의문스러운 일들“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바울은 각 지교회에 성숙한 신자들(“우리 강한 자“- 15:1)과 성숙하지 못한 자(“믿음이 연약한 자“- 14:1)가 있음을 인정하며, 이 두 그룹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실제에 있어서 자연적으로 부조화가 생기는 것을 인정하였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한 성일들과 율법에 제시된 먹는 규례를 고수하려 한 반면에, 이방인 신자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를 방종으로 바꾸었으며 유대인 형제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였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일을 지키며 먹는 규례를 따르는 등의 극단적인 율법주의가 강한 믿음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반대가 진리라고 서술한다 ! 골로새서 2장 18-23절을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이 믿음 안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세상적인 오락과 같이 의문스러운 행동 강령에 대하여 생각들이 다르다. 바울은 이러한 차이들을 어떻게 대처하여 해결할 것인가하는 방법을 말해 준다. 그는 규칙들을 열거하는 것보다는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따를 수 있는 여섯 가지 기본적인 원리들을 기록한다. 이 원리들을 질문의 형식으로 서술하고 우리 자신의 생활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1. 나는 온전히 확신하는가 ?(14:1-5)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한 감정에 따라서 행동해서는 안되며 기도와 말씀 연구의 결과로 얻어지는 내적인 확신에서 행동하여야 한다.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확신 가운데서 행한다면 아무런 논쟁이 없을 것이다. “견해는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이며, 확신이란 우리를 붙들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강한 그리스도인은 연약한 자를 성숙하지 못했다고 업신여겨서는 안 되며 연약한 믿음의 사람이 보다 성숙한 형제를 심판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둘 다 용납하셨으므로 이처럼 우리도 서로 용납하여야 한다. 우리의 삶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인도를 받아야 하며, 인간들의 생각이나 판단에 이끌려서는 안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그가 하는 일을 왜 하는지, 또는 어떤 일들을 삼가해야 하는지를 안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이 그의 생활을 조절한다."
롬 14:6-9
2.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주님을 향한 것인가?(14:6-9)
그리스도인이라면 “나는 나 자신의 삶을 산다“는 식의 말을 할 수가 없다. 우리가 죽거나 살거나 우리는 여호와께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주님이시며 우리는 그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살아야만 한다.
자기의 생활에서 의문스러운 실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향하여“ 그런 일들을 하고 있다고 정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는 자신의 이기적인 즐거움을 위하여 그러한 실천 생활을 하는 것이며, 주님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만일 주님께로 향하여 특별한 날들을 지킨다면 주님께 영접을 받을 것이며, 우리는 그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롬 14:10-12
3. 이 일은 심판대의 시험을 견딜 것인가?(14:10-12)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판단할 권리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과 생활이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시험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흰 보좌의 심판은 아니지만, 교회가 본향으로 소집된 후에 있을 그리스도인의 행위에 대한 시험이다(고후 5:10/고전 3:1-).
나는 내 형제의 생활에 대해서 평가할 필요가 없으며, 그러므로 오늘날 그를 정죄할 권리가 없다. 확실히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앞에서 불시험을 견디는 생활, 그의 영광을 위하여 상을 받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롬 14:13-21
4. 나는 다른 사람에게 거침이 되고 있는가?(14:13-21)
우리가 판단해야 할 한 가지 일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자신을 판단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남용함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고 있지는 않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분명히 그 일 자체는 부정한 일이 아닌데 어떤 실천상황과 습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하게 생각된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의도적으로 나의 형제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들을 한다면 나는 사랑의 규율에 따라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여 죄에 빠뜨리는 일은 심각한 일이다. 마가복음 9장 33-50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유의하자. 여기서 “범죄케 한다“는 말은 “넘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다“는 뜻이다. 의문스러운 행동 강령에 붙들려 있어 다른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행실에서 떨어지게 하는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지불하신 무서운 댓가를 보지 못할 정도로 눈멀어 있다고 하겠다. 우리의 선함이 오히려 나쁜 말을 듣게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의 삶은 먹고 마심과, 또한 그 밖의 어떠한 것들이 아니고 의와 평강과 기쁨이며, 이 모든 것은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자신을 즐기기 위한 이기적인 것이어서는 안되며, 사랑 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세워 주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0장 23절은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율법 아래 사는 것이 아니므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우리를 세우거나 다른 이들을 세워 주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진술한다(고전 8장 참조).
로마서 14장 15, 20절에 나오는 “망하게 하다“는 말은 “헐다, 잡아떼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이기적인 삶 때문에 다른 신자의 영적인 생활을 헐어 버린다면 얼마나 이기적인 일인가. 그의 실재 생활이 합법적일 수는 있으나, 이것은 사랑의 법 아래 있는 것은 아니다."
롬 14:22-23
5. 나는 믿음으로 이 일을 하는가?(14:22-23)
여기서 “믿음“이란 말은 우리의 신념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데서 생겨난 확신에서의 “확신하다“는 뜻과 거의 같다. 이 두 구절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신자와 주님 사이에서 전개되는 것이므로 신자는 그가 주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가를 언제나 확인해야만 한다는 원리를 세워 준다. 자기의 실제 생활에 대해 의문이 있으면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가 없다.
23절의 “정죄되었나니“라는 말은 영원한 형벌과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유죄 판결을 받다“는 말로 읽어야 할 것이다. 즉, 의문스러운 마음으로 행하는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태도로 말미암아 자신과, 자기가 행하고 있는 그 일을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죄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살기 때문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온다“고 로마서 10장 17절은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뒷받침될 수 없는 것은 무엇이나 죄이다. 그 일을 믿음으로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심스러운 것은 부정한 것이다 !“는 말은 따르기에 알맞은 방책이다.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우유나 물을 마시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독이 들었을 음식을 용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이 의문을 제기하는 관습까지도 부주의하게 행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의심스러운 것은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죄라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