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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산에 오르신 예수님
누가복음 9장28-36절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따로 기도하러 가실 때,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 하는지 질문하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세례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 하고 예선지자 중 한사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하느냐고 질문하십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고난 사건을 예고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1. 산으로 올라가신 예수님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9: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 쯤 되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28절). 누가는 마태(마 17:1)나 마가(막 9:2)와 달리 ‘이 말씀을 하신 후’라는 연결구를 첨가하여 앞에서 하신 말씀과 이제 시작되는 이야기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과 이제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것을 암시합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이 세 명의 제자들은 본 사건 뿐만 아니라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시는 사건(8:51)에서도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의 최후의 결단시에도(마 26:37; 막 14:33) 예수님을 따로 수행했던 제자들입니다. 특히 이 가운데 베드로는 훗날 여기서 경험한 놀라운 사건을 벧후 1:17,18에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 하시러 산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들이 언급하지 않는 산행의 목적을 밝힙니다. 전통적으로 이 산에 대해서는 '헤르몬 산','메론 산','다볼산'이라는 추측들이 있으나 복음서 기자들은 산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누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기 위해 산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이며 앞으로 일어날 놀라운 계시의 사건도 '기도'와 필연적인 관계에 있음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2. 용모가 변화되신 예수님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9:29-31)
기도하실 때에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29절). 이러한 놀라운 일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일어났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고 있습니다. '용모가 변화되고'는 문자적으로 '그 얼굴의 모습이 달라졌다'입니다. 마태에 의하면(마 17:2) 예수님의 얼굴은 해같이 빛났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천상적 신분을 말해줍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해'는 하나님이나 천사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입니다(시 84:11; 계 1:16; 10:1). 한편 누가는 '변형되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메테모르포데'(마 17:2; 막 9:2)가 헬라적 사고방식을 따른 신들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옷이 희어졌다고 했는데, 흰색은 하늘의 색깔, 천사들이 입는 옷의 색깔이며 평화와 순결과 사랑을 상징하는 색깔입니다(마 28:3; 막 16:5; 행 1:10; 계 3:4,5; 7:14). 이것 역시 예수님의 천상적 신분을 밝혀줍니다. 또한 '광채가 나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엑사스트랖톤'인데 이 말은 '밖으로' 또는 '앞으로'를 뜻하는 '엑스'와 '빛이 번쩍나다'를 뜻하는 '아스트랖토'의 합성어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몸에서 발산되어 나오는 빛의 광채를 생생하게 묘사해 줍니다. 결국 이와같이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변모는, (1)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것 즉 그가 진정한 메시야라는 사실을(35절) 확증해 주며, (2)장차 수난을 받는다 하더라도(22,31절) 다시금 그의 영광을 회복하리라는 점(빌 2:8-11)을 암시하며, 또한 (3)천국에서 영광 중에 계실 예수님의 모습과(롬 8:34) 다시금 재림하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26절)을 간접적이나마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신 후 두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말하는데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30절). 모세는 구약 율법의 대표자이며 엘리야는 구약 선지자의 대표이자 예언의 대표자입니다. 또한 모세는 과거에 시내산에서(출 31:18) 엘리야는 호렙산에서(왕상 19:8) 각각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었습니다. 모세는 장차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메시야를 예언하였고(신 18:15), 엘리야는 메시야의 선구자로 예언되었습니다(말 4:5). 엘리야는 산채로 승천하였고(왕하 2:11), 모세도 특이한 방식으로 소천당하여 그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신 34:6). 이제 이들이 변화산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눈 것은 율법과 예언으로 말해지던 구약이 예수님에 의해 복음으로 완성되었으며, 결국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은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나타냅니다(마 5:17,18).
모세와 엘리야는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31절). 복음서 중에 누가만이 모세, 엘리야와 예수님과의 대화 내용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별세'로 번역된 헬라어는 '엑소도스'인데 이말은 '나감'(going out), '출발'(departure)의 뜻으로 죽음의 본질적 의미를 드러냅니다. 즉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로부터 떠나가는 것으로 적어도 예수님에게 있어서 이것은 새로운 출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 '엑소도스'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의미하기도 하는 바(히 11:22) 예수님의 죽음은 죄악으로 인한 죽음의 상황에서 인류를 탈출시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강조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변모의 찬란함 속에서 대화의 내용이 바로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모세와 엘리야의 모든 사역은 결국 예수님의 죽음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장소로서 제시되며 그의 전도여행은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3. 예수님의 영광을 본 제자들의 반응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9:32-33)
베드로와 함께한 제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과 함께 선 두 사람을 보았습니다(32절). 본절 역시 누가만의 기록으로 예수님과 두 구약인물이 예루살렘에서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이 제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기도함으로써 하늘의 계시를 다시 한번 확인하신데 반해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하고 잠에 곯아떨어짐으로써 포착했어야 될 중요한 계시를 놓쳤으며, 계속해서 상황을 곡해하는 결과까지도 초래합니다(33절). 이와 유사한 장면은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연출되는데, 그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하는데 반해 제자들은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잠을 자는 실수를 범하며 결국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22:42-46).
제자들은 뒤늦게나마 깨어납니다. 아마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를 둘러싸고 있는 찬란한 빛 때문에 깨어났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깨어 예수님과 두 인물이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모습을 묘사한 장면에서 예수님의 영광에 두 사람이 압도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구약의 위대한 두 인물을 능가하는 존재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33절) 이 제단은 하늘로부터 온 두 사람이 오래도록 머물기를 원하는 베드로의 바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조금 전에 들었던 예수님의 수난 예고와(22절) 그것을 확증하는 모세와 엘리야의 이야기를(31절) 충분히 깨닫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겪어야하는 고난과 그 이후의 영광을 망각하고 현실에 안주하기를 도모하는 비신앙적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이야를 위하여 짓겠다고 합니다. 이 초막은 숙곳에서 장막절에 사용했던 것(출 13:20)과 같이 나뭇잎이나 기타 일시적인 재료로 지은 움막을 가리키며, 일반적으로는 텐트나 장막을 가리킵니다. 아마 베드로는 지금 경험하고 있는 천상적인 영광의 임재를 계속해서 느끼고 싶은 심정에서 그런 제안을 했을 것입니다. '초막 셋'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을 다른 두 사람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베드로의 영적 무지를 반영합니다.
4. 하늘의 음성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9:34-36)
베드로가 말할 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었습니다(34절). 구름은 미래에 다시 오실 인자와 관련되기도 하고(단 7:13) 성도들을 하늘로 들려 올리는 수단으로도 사용되며(계 11:12), 신구약 중간시대 문학에서는 메시야의 도래와의 관련성 속에서 등장하기도 하였습니다. 구름이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경우입니다(출16:10; 19:9; 24:15-18; 33:9). 특히 출 24:15-18에는 본문과 매우 유사한 병행구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두 인물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이어 하나님 자신의 임재로 말미암아 상황은 절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누구를 가리키는 가에 대해서는 몇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1) 예수님과 두 인물 그리고 3제자 모두, (2) 모세와 엘리야만, (3)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 이 중 세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 제자들은 무서워하였습니다. 신적인 권능 또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인데 이는 인간의 죄성과 유한성 때문입니다(8:25; 24:4,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말합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35절) 구름 속으로부터 들려온 것은 하나님 자신의 음성이기에 그만큼 이 선언은 엄숙하고 확정적입니다. 또한 이 음성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을 때 들려왔던 음성과도 비슷합니다(3:22).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고백한 예수 이해는 이제 하늘로부터의 음성에 의해 더 이상 오해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요한에 의하면 수난 주간에도 한번 더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요 12:28). 그렇다면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님 사역의 시작과 절정기와 마지막에 주어진 것이며 이것은 그 사역의 전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의미합니다. 한편 누가는 마태(마 17:5)나 마가(막 9:7)와 달리 '사랑하는'이란 말을 생략하고 '택함을 받은 자'라는 말을 첨가하고 있다. 누가는 이런 표현을 통해 예수님의 삶에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있었음과 아울러 예수님의 권위의 출처가 초월적인 것임을 말해 줍니다.
“그의 말을 들으라”는 이 명령은 신 18:15의 반영으로 이제 예수님의 정체가 분명히 드러난 이상 그분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거나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을 가정한다면 이 명령은 하나의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 선택 여하에 따른 필연적 심판이 있다는 사실까지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여튼 본문에서의 강조점은 제자들의 순종에 있으며 예수님께서 제시하는 사역의 목적과 방식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마 16:21-23).
하늘에서 소리가 그치자 오직 예수님만 보이시었습니다(36절). 누가는 상황이 끝나는 장면을 매우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마 17:6-8 비교). 본문에서는 모세와 엘리야가 사라지고 '예수만' 남아 있음이 '오직'이란 뜻의 '모노스'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라고 하는 구약의 위대한 두 인물도 결국은 예수님의 정체를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보조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사라질 뿐 주인공은 '오직 예수' 뿐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탁월하신 분이라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제자들은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자기들이 본 사실을 잠정적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아마 예수님의 지상사역 기간에는 말하지 않았음을 뜻하는 듯합니다(마 17:9; 막 9:9).
적용: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용모가 영광의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들은 산 아래에 있는 다른 제자들을 잊은채 자신들만이 그곳에 있고 싶은 마음에,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을 세 개 짓고 그곳에 있고 싶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본 사람은 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합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눈으로 보질 못합니다. 다만 예수님의 재림시에 영광 중에 나타나실 것을 믿고 기다릴 뿐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예배를 통하여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매 주일 예배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온 마음으로 예배드릴 때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