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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기록-압해정씨 술선록
족보
2009/08/02 11:41 http://blog.naver.com/jhon119/86040239 |
시조공의 제16세손이신 휘 윤종공의 후예인 월헌공파에서 만든 술선록으로 연전에 포항공대 교수로 계시는 족숙 윤하씨 등의 정성과 노력으로 영남대학교 도서관에 발견 한 것 입니다. 중간에 1대가 빠지긴 했지만, 시조공을 부인하는 현 월헌공파의 후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본 기록은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羅州押海丁氏述先錄
나주 압해정씨 '술선록'(선조들의 이력 등을 저술한 기록)
○ 옹정3년 을사 3월 일 1세
시조 대양군. 휘 덕자 성, 당 문종 개성조 대승상, 무종 회창조 대승상, 대양군으로 봉해지셨으며, 식읍700호를 받으시고, 문장으로 인하여 남양 정씨 (를 받으셨다). 당나라 선종 대중조 대승상, 대중 7년 계유 우리나라(당시 통일신라)로 유배되시어, 처음 나주 압해(도)에 접안 하시어, 신라에 (그것으로)인하여 20년을 사시었다.
장자는 당나라의 '대사마 대사농의'(를 지내신) 휘 열도이시며, 신라조정에 공이 있어 '영광'으로 봉해지셨고 '오성군'이라 이름하였다.
차자는 당나라 '시어사급사'(를 지내신) 휘 응도이시고, (신라)헌안왕조에 공이 있어 ‘나주’로 봉해졌으며, ‘금성군’이라 이름하고 문장으로 인하여 식읍을 받으셨다.
공께서는 세분의 아드님이 계시는데, 장남은 ‘필랑’이라 부르며 오성군(휘 열도)의 뒤를 이었고 차자(둘째)는 ‘필진’으로 신라 헌강왕조에 ‘의창군’으로 봉해졌으며, 막내는 ‘필전’으로 신라조정의 ‘정옥당박학사’(를 지내셨다).
오성군 휘 열도의 계자(양자로 이은 자식) 필랑의 아들은 휘 병명, 차자 휘 병란, (병명의)아들 휘 언황, (언황의) 아들 휘 광조, (광조의) 아들 휘 우정(이다).
○금성군, 2세
휘 응도, 당나라(조정의) ‘시어사’, (통일신라)헌안 왕조에 공이 있어 ‘나주’로 봉해짐. 공에게는 3명의 아드님이 있으니, 장남은 ‘필랑’, 차남은 ‘필진’, 차남(3남) ‘필전’ 이시다.
○회산군 3세
휘 필진, 신라왕조에 ‘상군장상상부야’(를 지내시고), 신라왕조에 공이 있어 ‘의창’으로 봉해졌으며, ‘회산군’이라 불리웠다. 공에게는 한 분의 아드님이 있으니 ‘병쇄’라 한다.
○ 대상공 4세
휘 병쇄, 도제조, ‘자금어대좌익공신홍봉대상’으로 추증. 배우는 안씨, 대상이신 ‘종현’의 따님. 공에게는 아드님 한 분이 계시니, ‘언주’라 한다.
○ 도제조공 5세
휘 언주, (통일)신라왕조 승정원제조. 문하시중 태사령. 배우 박씨, 경명대왕(통일신라 말기 박씨) 2녀. 공은 두 명의 아드님이 계시는데, 장남은 광현. 차남은 광순이라 부르며, (광순은)고려왕조 ‘정옥당박학사’. ‘문하시중평장사’이시다.
○ 대상공 6세
휘 광현. 고려왕조 옥당박학사. 문하시중 대상. 배우 강씨, 문하시중 감찬의 따님. 공은 한 분의 아드님을 두었으니, ‘우’라 한다.
○ 전서공 7세
휘 우, 고려왕조 이부전서. 배우 유씨, 대사 중서령 충언의 따님.
공에게는 두 분의 아드님이 있으니, ‘지백’. ‘윤백‘이라 하며, (윤백은)검교별장이시다.
○ 평장사(공) 8세
휘 지백, 고려왕조 재상, 검교대장군. 문하시중 평장사. 배우 박씨 화의 따님, 신라 경순대왕의 외손녀. 공께서는 한 분의 아드님이 계시니, ‘윤하’라 한다.
○ 전서공 9세
휘 윤하, 고려왕조 공조전서. 배우 최씨, 좌익공신 계석의 따님.
공께서는 두 분의 아드님이 계시니, 장남은 ‘남만’. 차남은 ‘신만’이라 하며, (신만은)고려왕조 문하시중이시다.
○ 숭록대부공 10세
휘 남만, 고려왕조 도제조, 좌익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무안군(으로 봉해짐) 배우 최씨, 대상 경중의 따님. 공께서는 두 분의 아드님이 계시니, 장남은 ‘성휘’. 차남은 ‘성효’라 하며, (성효는) 고려국 문하시중 태사중서령 이시다.
○ 충렬공 11세
휘 성휘, 고려왕조 대승상 상부야, 충렬공으로 추증. 배우 최씨 정경부인, 태사중서령 ‘충정’의 따님. 공께서는 한 분의 아드님이 계시니, ‘열’이라 한다.
○ 정원부원군공 12세
휘 열, 고려왕조 도제조. 좌익공신. 가선대부 정원부원군. 배우 안씨, 문하시중 태사중서령. 돌무덤(고려 전기의 독특한 양식으로 4면을 쌓아 묘지를 만듬) 앞에 (돌에)새겨 말하기를, “원풍2년 10월 1일 대상 정열의 묘”라 하였다. 자좌의 언덕(에 있으며), 진양읍 큰 길 서쪽으로 10리 지점의 석갑산아래. 평기역촌 마을 뒤쪽 길영동(에 있다) - 이 말은 현재 경남 진주시 평거동 뒷편 석갑산에 묘소가 있다는 말임 -
공 께서는 두 분의 아드님이 계시니, 장남은 ‘변’. 차남은 ‘극’이라 하며, (극은) 고려왕조 정옥당박학사 홍문교리 직제학(을 지냈다)
○ 예조전서 대상공, 13세
휘 변, 고려왕조 예조전서. 대상. 가의대부. 문하시중. 대사중서령.
배우자 박씨, 평자사인 ‘언영’의 따님. 돌 무덤 4면에 새겨 말하기를, “원년 정해 11월 11일, 대상이신 정공 변을 묻다. 영부인도 합장하였으며, 이듬해 8월 여기에 일(묘역 작업)을 하였고, 12월 15일 알리다(고유문을 올리다).“라고 하였다. 공께서는 한 분의 아드님이 계시니, ‘경’이라 한다. 묘소는 길녕동(현재 경남 진주시 평거동 소재 석갑산) 임자의 언덕이며, 앞에는 평기역촌이 있고, 지금(이 글을 쓴 당시) 병사이신 한촌기가 살고 있다.
○ 평장사공 14세
휘 경, 고려왕조 도승지. 문하시중. 평장사. 배우 이씨, 문하시중. 대상 ‘화호’의 따님. 공께서는 세분의 아드님이 계시니, 장남은 ‘윤화’. 차남은 ‘윤종’. 삼남은 ‘윤명’ 이라 한다. 〔윤화: 고려왕조 정옥당 박학문 직제학, 배우는 정씨 도염령 동정 ‘희온’의 따님이시다.
공께서는 한 분의 아드님이 계시니 ‘광서’라 하고, (광서의) 아들은 장남 ‘언중’. 차남은 ‘언진’이며, (언중의) 아들은 ‘건’, (건의)아들은 ‘수’, ( 의)차남 ‘진’, (진의)아들은 ‘태’, (태의)아들은 ‘연방’,(연방의)아들은 ‘시윤’,(시윤의)아들은 ‘찬’, (찬의)아들은 ‘광기’이다.
윤화의 묘지명으로써 추정하면, “아버지는 ‘경’이며, 도승지이셨고, 정부인은 권씨이다. 중화 원년 무술 10월1일 할아버지와 아버지 내외분의의 계단(무덤) 아래에 합장 하였다”고 말하며,
언진의 묘지명으로써 추정하면, “영형(언진의 형님인 ‘언중’을 말함) 내사사인 언중의 묘소는 ‘백 ’에 있다.”고 말하면서
무덤 앞면의 돌에 새긴 글씨에 말하기를, “소정 원년 기축 3얼 7일 시중 정공 ‘양’의 묘”라 하였고,
또한 묘지명에 말하기를, “동정 ‘혁재’의 묘소는 위에 있다.”고 하고,
오른편 계단 아래에 돌무덤의 앞면에 새겨 말하기를, “가정 8년 기해 8일 대상이신 정공 언진의 묘”라 하며, 길녕동(현재 진주시 평거동 소재 석갑산)에 있다.
윤명은 고려왕조 대장군 상상야이며, 아들은 “혁빈‘이고, (혁빈의) 아들은 ’황재‘이다.〕
* 이상 〔 〕속의 글씨는 술선록 본 기록 중 세부적인 것을 기록한 보조 자료를 말한다.
○ 평장사공 15세
휘‘윤종’, 고려왕조 이.호.병부 상서 참지정사 문하시중평장사 검교대장군. 배우 황씨, ‘허경’의 따님. 정공의 신도비(에 의하면) “동지추밀원사 참지정사 문하시중평장사 중서령”(을 지내셨다 하며) 경주 최세보가 지은 기록에는 “ 공의 자는 '금천‘. 원우8년(서기1093년) 계유 6월18일 의창현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나주‘이고, 아버지는 도승지를지내신 ’성휘‘이시다.
공께서는 젊어서부터 힘써 공부하여 과거에 등과하시고, ‘예종’께서 번저(사저. 즉 개인 집. 이 말은 아직 임금이 되기전을 말함)에 계실 때 그(휘 윤종)의 이름을 들었으며, (예종이)임금께 상주하여 ‘전첨’이 되었다. (예종이) 즉위함에 이르러 여러번 중추사를 임명받았고, 벼슬이 더해진지 기한이 되지 않아 어사대부가 되었으며, 두루 호조. 병부.이부상서와 좌복야 참지정사를 지내셨다.
‘인종’초에는 개성부(조정)에나아가 의동삼사 상주국 심판상서 형부사를, 그 후에 중서시랑 평장사권판 동북면 병마사 겸 행영병마사 상간의대부를, (그기에 다시) 수대위 문하시중 동중서문하시중평장사 동삼사검교태부대장군 상주국 좌리동덕공신을 더 하였으며, 식읍700호를 학문에 의하여 받으셨다. 건도 6년(서기1170년) 3월18일 돌아가시고, 시호는 ‘충렬공’이시다. 공께서는 3남이 계시는데, 장남은 ‘혁재’이며 시중이었고, 차남은 ‘혁광’으로 중랑이었으며, 삼남은 ‘혁기’로 시장을, 손자 ‘언탁’은 산원이니, 곧 또한 임좌의 언덕이며, 길녕동(현 진주시 평거동 석갑산)에 있다.
○ 시중공 16세
휘 혁재, 시중문하동정. 배우 김씨, 간의대부 ‘익’의 따님. 공에게는 한 분의 아드님이 있으니, ‘양’이라 한다. 〔‘백 ’(여기서는 지명을 말하며, 아마도 진주시 평거동 석갑산을 지칭하는 듯함)의 위에 3개의 큰 무덤이 있으니, 대개 ‘품자’형으로 되어있다. 3번째 산줄기에(있는) ‘언진’ 묘소의 명문으로 추정하건데, (언진의)형님 되시는 내사사인 ‘언중’의 묘소는 ‘백 ’에 있으며, 그 아래 왼쪽 변두리에 오래된 무덤 2개가 있고, 그 아래 ‘돌무덤’(石葬) 앞면에 명문에 이르기를 “소정 원년 기축 3월 7일 시중공 ‘양’의 무덤”이라 하였으며, 또한 명문으로 말하기를 “영동정 ‘혁재’의 묘가 위에 있다.”라고 하였으며, 또한 3개의 큰 무덤이 있다. 정씨 세대의 무덤들이 이와 같으므로, (정씨들의 묘소가)존재함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출처] 족보기록-압해정씨 술선록|작성자 영천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