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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길리엄
테리 길리엄감독의 영화들은 시대적 배경이 극과 극을 달리기때문에 보는 이의 취향에 따라 쉽게 무시될 수도 있지만 이런 표면적 전환의 낮설음 뒤에 놓인 길리엄 특유의 스타일을 느끼게 된다면 좋아 하지 않을 수 없는 감독입니다. 특히 12몽키즈는 주로 판타지를 다루어온 길리엄에게 잠재된 예리한 논리성이 염세적 비쥬얼과 감성에 녹아있는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중에서도 걸작이죠.
금세기 최고의 비주얼리스트 테리 길리엄은 1940년 11월 22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버밍엄 고등학교를 거쳐 캘리포니아주 옥시덴탈 컬리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였는데, 대학시절에 "팡(Fang)"이라는 유머 잡지를 창간자며 편집자와 기고가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잡지 "매드(Mad)"의 하비 쿠르츠만이란 이가 기획하여 만든 "헬프!"지에서 촉망받는 카투니스트로 활동하던 테리 길리엄은 영국 출신의 존 클리스를 만나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존 클리스의 소개로 TV쇼 "당신의 TV를 내버려둬라"와 마티 펠드만의 쇼 "마티"에서 작가로 일하면서 자신의 초현실주의적이고 단속적인 경향의 애니메이션을 TV에 선보였답니다. 결국 1969년에는 테리 길리엄과 그의 동료들은 "몬티 파이튼(아폴로가 델포이에서 처치한 커다란 뱀)의 비행 서커스"라는 자신들의 쇼를 갖게 된답니다. 이 프로그램은 일정한 구조가 없는 무정부주의적인 형식으로 어떤 목적성도 없는 스타일로 진행되었으며, 테리 길리엄은 의식의 흐름에 의거한 애니메이션들을 만들어서 소개했답니다.
1975년에 몬티 파이튼의 두명의 멤버인 테리 길리엄과 테리 존스는 아서왕의 전설을 풍자적으로 희화한 장편 애니메이션 "몬티 파이튼과 성배"를 발표합니다. 이 작품에서 드러냈던 중세에 대한 비전은 테리 길리엄의 극영화 데뷰작 "자바 워커"로 연결됩니다. 중세시대의 한 청년이 루이스 캐놀의 책에 나오는 괴물들과 한바탕 싸우는 이 영화는 루이스 캐롤식으로 조합된 단어들 사이에서 안개와 촛불과 군중, 피들이 뒤엉키고, 바나나와 생선을 헬멧에 장식한 기사가 등장하는 끊임 없는 코미디의 한마당이었다. 이 영화는 심야극장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으며. 테리 길리엄을 주목하게 만든 첫번째 작품이 되었답니다. 1981년의 "시간 도둑들(4차원의 난쟁이 E.T.)"은 자신의 목욕가운에서 갑자기 나온 난쟁이 무리들에게 납치된 한 소년이 시간여행을 하게 되면서 아가멤논 왕에서 로빈 후드, 나폴레옹을 만나게 된다는 환타지입니다. 테리 길리엄은 기괴한 비주얼과 몬티 파이튼 특유의 유머를 선보였고, 그 자신은 이 영화를 '헐리우드로 납치되는 타임머신' 이라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테리 길리엄은 자신이 떠나온 미국 자본과 처음으로 손을 잡고 조지 오웰의 "1984"의 주제를 변주한 SF영화의 걸작 "브라질(여인의 음모)"을 완성합니다. 테리 길리엄은 실제로 해피 앤딩이라는 것이 고작 주인공이 미치는 것으로 끝나는 영화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으로 영화 '브라질'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밝혔답다. 주인공이 미쳐버리는 해피엔딩이 정말 가능했던가? 물론 가능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까지 길리엄은 스튜디오 측의 엄청난 압력에 맞서 싸워야만 했답니다. 유니버셜 사장 시드니 세인 버그는 영화 '브라질'에 대체로 흥미 있어 하는 편이었으며, 영화의 많은 부분이 아주 대단하다고 인정하기로 했답니다. 하지만 그는 길리엄이 만들어온 필름이 영화의 상업적인 가능성에선 확실히 처진다는 느낌을 받았고, 자신의 시각에서 필름을 새로이 편집해야만 '브라질'이 상업적으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독단적인 처방을 내립니다. 따라서 주인공 샘이 꿈속의 여인을 추적하는 것이나 가공할만한 세트 디자인, 길리엄의 색다른 유머, 비인간적인 정부가 나타내는 함축적인 의미, 작곡가 마이클 카멘의 재치 있고 음울한 오케스트라 작품등을 일제히 제거 해야할 대상으로 정했답니다. 세인버그는 길리엄에게 영화가 132분으로 재편집되지 않으면 유니버셜은 도저히 받아 드릴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길리엄이 자신의 140분짜리 편집판을 편집을 하고 있는 동안 세인 버그 역시 자신이 직접 스튜디오 편집을 하고 있었답니다. 결국 세인 버그는 자신이 편집한 필름이 낫다고 결론을 내리고, 길리엄과 언론 전쟁을 시작했답니다. 먼저 길리엄은 '버라이어티' 지에 전면 광고를 냈답니다. "시드니 세인버그 귀하 당신은 도대체 언제 내 영화 '브라질'을 상영할겁니까? 테리 길리엄" . 결국 11분을 조정 합의한 끝에 가까스로 개봉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LA의 비평가들이 이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 영화 '브라질'은 LA비평가 협회에서 뽑은 최고의 작품상, 감독상, 시나리오 상을 받게 되었됩니다. 이렇게 해서 영화 브라질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는데, 이 영화는 '블레이드 러너'와 함께 80년대 SF영화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길리엄은 이 영화를 통해 인간성 말살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비판을 전달하고자 했다는데, 어쩌면 이 영화는 20세기에 인류가 경험한 가장 끔찍한 공포들을 근 미래의 공간에 투영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웰적인 공포와 카프카적인 혼란의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효과적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잘 짜여진 각본의 힘이기도 하지만, 한편 정교한 세트와 촬영의 공이기도 합니다. '브라질'에 나오는 세트들은 "20세기가 하나의 순간으로 압축된 듯이" 보이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의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 즉 절충적인 효과를 만들어 낸 것이죠. 이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길리엄은 인공 세트를 만드는 대신 많은 장면을 유럽에 있는 실제 장소에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공간은 길리엄 영화의 초창기부터 그의 주요한 관심사로 부상합니다. 어려서부터 만화에 관심을 보여온 그는 필름 위에 상상력으로 창조된 독창적인 공간들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환상,비논리,초현실과 같은 단어들이 그가 구현해 낸 공간들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공간에 대해 고민했던 또다른 영화작가 피터 그리너웨이가 구도와 색채, 그리고 수평공간에 집착했다면, 테리 길리엄은 프레임에 포착되는 사물 자체에 대한 비현실성과 수직, 전후공간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시대성을 표현하는 다양한 사물들과, 전체주의의 폭압성을 상징하는 고문실의 거대한 수직공간이 길리엄의 공간표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표현하는 공간은 크게 두 개로 나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현실 세계이고, 또하나는 상상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대비는 그의 세계 해석과도 관계되는데, 그는 두 개의 세계를 설정하면서도,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과 분리를 허용치 않는 것입니다. 특징적인 것은 경계의 해체가 일방향성을 보여준다는 것인데, 길리엄의 영화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상상의 공간입니다. 현실세계는 끊임없이 상상의 세계에 구속당하고, 결정당하며, 인물들은 상상을 기반으로 현실을 해석합니다. 급기야 현실은 상상과의 뚜렷한 경계점을 보이지 않고, 그 부속물로 아우러지고 마는데, 현실인 듯 싶던 공간은 어느새 상상으로 바꾸어 있고, 논리적으로는 불가해한 사건과 상황들이 상상의 도움을 얻어 실제 현실속에 구현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론의 대모험"입니다. 바론 문히하우젠 남작의 무용담을 기반으로 한 이 스토리는 터키와의 전쟁이 한창인 현실과, 문히하우우젠의 모험담으로 구성된 이야기의 세계라는 두 공간이 대비되지만 상상은 공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결정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현실속의 모든 사건들은 문차우젠의 모험담으로 비롯된 것이고, 그 해결 역시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상의 세계가 초현실적이고 비논리적이며, 현실계보다 우위를 있다는 점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등식을 설정합니다. 즉 정상적인 현실계에 대한 왜곡, 변형으로서의 초현실, 비논리는 길리엄 영화에서 하나의 지향점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현실의 이면에 존재하는 상상의 무한한 열림과 포근함 속에 자기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안주시킵니다. 이 작품은 예산초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고 상업적으로도 실패했으나, 길리엄의 광기와 이성의 모호한 경계에서의 싸움을 나타내주는 판타지의 수작입니다.
그는 현대의 뉴욕에서 벌어지는 중세 기사도의 세계 "피셔킹"으로 다시 미국 자본과 손을 잡고 모처럼 헐리우드와 화해를 하였으며, 비평적으로도 성공합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로맨틱한 요소와 도시의 악몽과 같은 주변부를 동시에 전개해가면서 인간의 고독과 절망, 광기, 폭력에 대한 비주얼 스펙터클을 연출해 냅니다. 그러나 영화화를 준비하면서 각색작업을 하고 있던 "돈키호테"와 "두 도시 이야기"가 취소되었고, "아더왕 의 법정에선 코네티컷 양키"의 감독으로 지명되었으나 역시 영화화가 취소되면서 헐리우드와 다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였답니다. 결국은 "브라질"때 격전을 벌였던 유니버설과 다시 손을 잡고 "12 몽키스"를 만듭니다. 1962년에 발표된 크리스 마르께의 실험적인 스틸만으로 구성된 SF영화 "방파제"를 원전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광기와 예지에 대한 코믹 스릴러이며 시간의 힘과 운명의 역설에 관한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 퍼즐입니다. 이 묵시록적 비전의 영화에서 테리 길리엄은 자신의 주제와 세트를 다시 재현하고 있습니다. 광기는 초윌적 인간의 직관이든 진짜 정신질환이든 테리 길리엄 의 변함없는 주제입니다. 그의 미래관은 독일의 표현주의와 파괴주의, 러시아의 구성주의, 그리고 유머의 결합입니다.
테리 길리엄의 주요작품
몬티파이튼의 성배(1975)
시간의 도둑들(4차원의 난쟁이 E.T.)(1981)
몬티파인튼의 삶의 의미(1983)
브라질(여인의 음모)(1986)
자버워키(1987)
바론의 대모험(1988)
피셔킹(1991)
12 몽키즈(1995)
라스베가스에서의 공포와 혐오(1999)
[출처] 브라질...테리길리엄|작성자 이시모프
회색 상자 속의 디스토피아
일사 분란하게 일하는 수많은 정보국의 요원들. 거대한 정보화 도시의 기계부품에 불과하지 않는 그들은 상관 몰래 보는 서부극을 통해 잠깐 동안만이라도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고도의 정보화가 세상을 지배하여 돌아가는 거대 네트워크 공간은 개개인의 개성이나 자유는 허용치 않는다. 오직 선택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의 구분만 있을 뿐이다. 주인공 샘(조나단 프라이스)은 이러한 닫혀진 공간을 뚫고 나오고 싶어 하는 구성원들의 꿈을 대변해 준다. 그는 중세스타일의 빛나는 날개 달린 갑옷을 입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꿈을 꾼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천사와 같은 질 레이튼(킴 그리스트)을 만나지만 아름다운 들판을 뚫고 올라오는 거대한 회색 기둥이 둘의 사이를 갈라 놓는다. 테리 길리엄은 미래의 사회가 회색 빛과 철로 뒤 덮여 있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공간이라는 것을 오프닝을 통해 직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감독의 시선과 포스트 휴머니즘
대학을 가지 않으면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지난 우리사회의 잘못된 풍토처럼, 브라질의 공간은 고정화된 관습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테러리스트로 명명된다. 고장난 파이프를 고치러온 배광공 해리터틀(로버트 드니로)과 질 레이튼은 고정화된 관습에 저항하고 있는 자들이며 주인공 샘이 이루고자 하는 이상향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샘은 관료화된 사회가 원하는 직장과 지위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인간’이 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샘이 거부하는 사회를 단적으로 대표해 주고 있다. 높은 구두모양의 모자로 치장하고 성형수술을 통한 인위적인 미(美)를 추구하는 그녀가 진정 참된 인간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인간이란 게 이것밖에 안 되는 존재였던가? 너는 그야 말로 물건에 불과하구나. 아무런 치장이 없는 인간은 너처럼 하잘것없고 벌거벗은 두 발 짐승일 뿐”이라고 말한 유명한 대사가 있다. 여기서 치장이란 미용기구, 장갑, 포도주, 신발, 비단, 향수 등을 가리키는데 인간은 그런 것들을 통해 비로소 자연의 횡포에서 벗어나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 주어진 자신의 역할에 편입되는 것이다. ‘인간’이란 하나의 추상적인 전제일 뿐 우리가 실천하고 체험하는 일정한 치장과 역할을 통해 구성된 존재들, 즉 포스트 모더니즘의 ‘주체’라는 것이다.
감독은 브라질이라는 영화를 통해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자 하였다. 그것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공통적이며 보편적인 참된 인간상이란 속성을 거부하고, 일정한 속성과 역할이 주어진 ‘주체로서의 존재’를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다.
[출처] [영화평론] 브라질(Brazil. 1985), 테리 길리엄|작성자 XEE3D
1980년대에 제작된 SF 영화 <브라질>의 사건의 시작은 한 마리 파리에서 비롯된다. 정보국 직원이 테러리스트인 터틀(Tuttle)을 체포하기 위해 문서를 작성하던 중, 그만 타자기에 파리가 떨어져 껴버렸다. 그 바람에 ‘T'자가 ’B'자로 찍히면서 무고한 시민 버틀이 테러범으로 체포되어 고문 받다 사망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오로지 문서에 적힌 대로만 움직이는 정보부 요원들, 즉 테리 길리엄(Terry Gilliam, 1940~) 감독의 영화 <브라질>은 모든 것을 정보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처리하는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사회에서 생긴 ‘사소한 우연’으로부터 시작된다.
영화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 모든 것이 시스템화 되고 정부 조직에 의해 관리?감독?통제되는 획일적인 사회이다.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 같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시스템에 해가 되거나 변수가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사전에 제거해야만 하는 극단적인 통제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보통 시스템이 합리적이고 잘 짜여 있을수록 더 편리하고 안전한 세계를 생각한다. 하지만 시스템의 기계적 합리성이 모든 과정을 획일화하다 보니깐 자판에 파리가 끼는 아주 작고 사소한 변수 하나에도 대응해 낼 능력이 없다. 지극히 관료적이고 기계적인 시스템 속에 포함된 구성원들은 예상 못했던 작은 오류 하나 처리할 수 없이 오직 상위의 명령만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게 된다. 철저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할수록, 예기치 못한 변수와 다양성을 통제하기 위한 ‘폭력성’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 더 많은 감시와 더 많은 통제, 더 많은 억압이 뒤따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첫댓글 볼 만한 영화입니다.
책 읽듯이 본 영화! 대단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