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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8. 04. 17
■ 조선시대의 목사
조선왕조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치운영을 통해 효율적인 지방통치를 취했다.
8도의 하위 체체였던 군현제를 정비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8도에는 관찰사(감사, 도백, 방백이라고도 부름)를 파견하였고 여기에 예속된 330여개의 군현(대도호부, 목, 도호부, 군현의 총칭)에는 수령을 파견함으로써 지방제도를 확립하였다. 목사는 조선시대의 지방관으로서 관찰사 아래서 각 목을 다스리던 정삼품의 외직문관 벼슬이었다.
태종 16년(1416년)에 제주목사 겸 도안무사 오식(吳湜)의 건의에 의해 제주의 지방행정구역은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삼읍체제로 된다.
제주목사는 행정적 기능외에 군사적인 기능의 수행이 항상 강조되어 반드시 군사적인 책임이 겸임이었다.
제주도가 지정학적 위치로 사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고 왜구들의 약탈대상지역인 중국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왜구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엄격하게 관리임용에 상피제가 적용되었기 때문에 제주출신이 제주목사로 임명될 수 없었다.
다만 판관이나 정의, 대정현감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드물게 사례가 몇 있을 뿐이다.
제주목사를 비롯한 수령의 임기는 고려시대의 경우 3년이 원칙이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왕대에 따라 임기가 일정치 않았다.
조선 개국초기에는 30개월이 실시되어 세종 5년까지 이어지다가 세종5년에 구임법이 실시되면서 이후 수령의 임기는 60개월이 원칙이었으나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참고서적>
아래 조선시대 제주목사 자료는 조선왕조실록, 읍지류의 선생안, 홍종우의 관풍안, 김두봉의 제주도실기의 선생안, 증보 탐라지의 선생안 등을 참조하여 조선시대 제주목사, 관찰사, 군수 등을 지낸 280여명의 명단을 작성했다.
내용중 첨절제사, 절제사, 병마수군절제사, 방어사 등은 당시 목사가 겸직했던 군사직이며, 군사직 앞에 목사의 직함이 생략된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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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사란?
조선시대 제주목을 맡아 다스린 정3품 외직 문관. 형옥.소송의 처리, 조세징수, 군마관리, 섬 방위 등 제주지방의 모든 행정을 집행했던 수령(오늘날 제주도지사와 같음)
참고로 제주판관은 오늘날 부지사와 같습니다. 또 조선시대 대정현감이나 정의현감은 오늘날 제주시장이나 서귀포시장과 같습니다.
■ 역대 목사 명단
초대 목사 최서 : 탐라 통치권을 원(元)으로부터 고려가 수복한 뒤 1295년(충렬왕 21년) 최서가 초대 목사로 임명됨.
이 때부터 탐라가 아닌 제주로 불리기 시작. 원나라 다루가치를 대신, 정식으로 제주목사가 부임.
제2대 목사 이백겸 : 청렴결백, 도민들에게 선정을 베푼 수령.
제3대 목사 송영 : 청렴결백한 목민관. 이백겸과 마찬가지로 선정을 베풀었음
제4대 목사 장윤화 : 가렴주구를 자행한 목민관. 1318년 도민들에 축출돼 파직당했음.
제5대 목사 송영 : 백성들의 요청으로 복직. 외적방위 및 도민들을 위한 선정에 힘쓰고 백성들을 안무했음.
제6대 목사 임숙(1323년)
제7대 목사 박순인(1323년)
제8대 목사 조익청(1332년)
제9대 목사 정천기 : 1351년(고려 충정왕 3년) 이제현의 탄핵으로 제주목사로 좌천됨. 1352년(공민왕 1년) 난에 연루돼 주살됨.
제10대 목사 이권 : 1352년(공민왕 1년) 10월 부임
제11대 목사 장천년 : 1356년(공민왕 5년) 부임. 원나라 목호들에 피살됨.
제12대 목사 윤시우 : 1356(공민왕 5년) 10월 권문세족 기철 일파와 관련된 원나라 목호 등을 처단하기 위해 제주로 부임했으나 오히
려 목호들에게 피살됨.
제13대 목사 이원항 : 1357(공민왕 6년) 부임
제14대 목사 박도손 : 1362년(공민왕 11년) 부임. 원나라 목호들이 제주 성주 고복수를 사주,원나라 만호(무관직)로 하여금 박도손을 주
살하도록 했음. 결국 원나라 만호에 피살됨.
제15대 목사 성준덕 : 1362년(공민왕 11년) 부임. 오자마자 제주 성주 고복수의 난을 평정함. 조정에서 파견된 선무사와 함께 제주민들
을 안무함.
제16대 목사 박윤청 : 1369년(공민왕 18년) 9월 부임
제17대 목사 이용장 : 1372년(공민왕 21년) 명나라에 보낼 말을 고르려고 제주로 부임했는데 원나라 목호들에게 피살됨.
제18대 목사 우인열 : 목호의 난 수습하기 위해 1372년(공민왕 21년) 부임.
제19대 목사 이하생 : 1372년(공민왕 21년) 6월 부임. 1374년(공민왕 23년) 목호들에게 항복을 권하다가 도리어 피살됨.
최영 장군, 1374년(공민왕 23년) 8월 목호토벌을 위해 2만 5000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제주로 와 목호 완전 토벌.
제20대 목사 박윤청 : 제16대 목사. 1374년(공민왕 23년) 9월 최영 장군을 도와 목호토벌 뒤 목사로 다시 임명. 그해 10월 차현유에 피살
됨.
제21대 목사 김중광 : 1375년(우왕 1년) 부임. 차현유의 난 진압.
제22대 목사 이영익 : 1377년(우왕 3년) 부임
제23대 목사 노성렬 : 1380년(우왕 6년) 부임.
제24대 목사 이지부 : 1381년(우왕 7년) 부임.
제25대 목사 박의용 : 1382년(우왕 8년) 부임.
제26대 목사 김중광 : 21대 목사 1383년(우왕 9년) 다시 부임. 1385년(우왕 11년) 8월 말 100여필 조정에 진상.
제27대 목사 박영무 : 1385년(우왕 11년) 부임.
제28대 목사 옥산기 : 1388년(우왕 14년) 부임.
제29대 목사 양달인 : 1389년(창왕 1년) 부임.
제30대 목사 유구산 : 1391년(공양왕 2년)부터 1393년(조선 태조 2년)까지 재임. 고려왕조 멸망, 조선왕조 개국
제31대 목사 여의손 : 1393년(태조 2)에서 1395년(태조 4) 4월까지 재임.
1394년(태조 3년) 제주향교 설립
제32대 목사 이침 : 1395년(태조 4) 4월부터 1397년(태조 6) 4월까지 재임.
제33대 목사 김천신 : 1397년(태조 6) 4월부터 1399년(정종 1년) 7월까지 재임.
제34대 목사 전사민 : 1399년(정종 1년) 8얼부터 1401년(태종 1) 10월까지 재임.
제35대 목사 박덕공 : 1401년(태종 1년) 10월부터 1403년(태종 3) 12월까지 재임. 조선태종의 중앙집권정책에 맞물려 제주토착세력
의 최상급인 성주(星主), 차상급인 왕자(王子) 각각 좌도지관, 우도지관으로 명칭 바뀜.
제36대 목사 이원항 : 1404년(태종 4년)부터 1406년(태종 6)까지 재임. 1406년 제주에 침략한 왜구 격퇴, 제주 서귀포 법화사의 동불
(銅佛)을 명나라로 보내기 위해 육지로 이송.
제37대 목사 조원 : 1406년(태종 6년)부터 1409년(태종 9년) 4월까지 재임. 동아막(성산읍 수산리), 서아막(한경면 고산리) 즉 목호가 원
나라 통치기부터 말을 관리해오던 시설 철폐. 법화사 노비 구조조정 나머지 노비 전농시(제향에 쓸 곡식을 맡아보던 관
청)에 붙임.
제38대 목사 정초 : 1409년(태종 9) 4월부터 1410년(태종 10) 1월까지 재임. 여러 가지 실정(失政)으로 파직됨.
제39대 목사 김정준 : 1410년(태종 10) 1월부터 1412년(태종 12) 4월 재임. 제주성 보수.
제40대 목사 윤임 : 1412년(태종 12) 4월부터 1414년(태종 14) 8월 제주 향교에 전임 교수 둠. 효자열녀에게 포상함
제41대 목사 오식 : 1414년(태종 14) 9월부터 1417년(태종 17) 4월 1416년 정의현(동도), 대정현(서도) 설치로 삼읍체제 돌입.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제42대 목사 이간 : 1417년(태종 17) 4월부터 1419년(세종 1년) 6월까지 재임.
제43대 목사 정을현 : 1419년(세종 1) 6월부터 1420년(세종 2)까지 재임. 조정에서 내자시(왕실에서 소용되는 각종 물자를 관장하기 위
하여 설치되었던 관서)에서 사람이 와 제주토지측량
제44대 목사 이신(李伸) : 1420년(세종 2년) 5월부터 ~1420년(세종 2) 11월까지 재임. 재임 6개월만에 사임.
제45대 목사 정간 : 1420년(세종 2) 11월부터 1423년(세종 5) 1월 정의현청을 진사리(성읍)로 옮김.
제46대 목사 김소 : 1424년(세종 6) 3월부터 1425년(세종 7) 3월까지 재임.
제47대 목사 조희정 : 1425년(세종 7)부터 1426년(세종 8) 9월까지 재임. 관청 물품들을 개인소유로 빼돌리다가 적발돼 파직됨.
제48대 목사 장우량 : 1427년(세종 9) 1월부터 1429년(세종 11) 4월까지 재임.
제49대 목사 김흡 : 1429년(세종 11) 4월부터 1431년(세종 13) 9월까지 재임.
제50대 목사 김인 : 1431년(세종 13) 9월부터 1434년(세종 16년) 3월까지 재임. 1433년 윤 8월 왜구 선박 1척 나포. 조선조 원숭이
를 포획해 조정에 진상.
제51대 목사 이붕 : 1434년(세종 16)부터 1434년(세종 16년)까지. 모친상으로 목사직 사임.
제52대 목사 최해산 : 1434년(세종 16) 10월부터 1437년(세종 19년) 2월, 제주관청, 불로 전소. 대신 홍화각 건립.
1436년 원숭이 한쌍 조정에 진상.
제53대 목사 한승순 : 1437년(세종 19) 2월부터 1439년(세종 21) 2월 제주 방어시설 정비
제54대 목사 신처강 : 1441년(세종23) 10월부터 1443년(세종 25년) 12월까지 재임.
제55대 목사 기건 : 1443년(세종 25) 12월부터 1445년(세종 27) 12월까지 재임. 선정을 베푼 청백리로 명성을 떨친 제주목사. 나병(한
센병) 환자들을 위해 해변에 구료막 설치해 의생들과 스님들로 하여금 치료에 임하게 함. 바다에서 전복을 힘겹게 따는
해녀들의 모습을 보고 가련히 여겨 전복은 조정에 진상하지 못하도록 조치함.
제56대 목사 이흥문 : 1446년(세종 28) 2월부터 1447년(세종 29) 4월 목마 관리의 부정사태로 파직됨.
제57대 목사 신숙청 : 1447년(세종 29) 6월부터 1449년(세종 31년) 7월 관덕정 세움.
제58대 목사 이명겸 : 1449년(세종 31) 10월부터 1451년(문종 1년) 9월까지 재임.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제주목에 30척, 정의현
과 대정현에 각각 10척의 군함 배치.
제59대 목사 홍익성 : 1451년(문종 1) 11월부터 1453년(단종 1) 11월까지 재임.
제60대 목사 최수평 : 1454년(단종 2) 5월부터 1456년(세조 2) 4월 재임. 1454 12월 제주에서 지진발생. 많은 인명 사상.
제61대 목사 장맹창 : 1456년(세조 2) 4월부터 1456년(세조 2) 7월 반역죄에 연루돼 3개월만에 파직, 구속됨.
제62대 목사 설효조 : 1456년(세조 2) 8월부터 1459년(세조 5) 1월까지 재임.
제63대 목사 원지어 : 1459년(세조 5) 3월부터 1461년(세조 7) 1월까지 재임.
제64대 목사 최경례 : 1461년(세조 7) 2월부터 1462년(세조 8) 7월 탄핵을 받아 구속됨
제65대 목사 복승리 : 1462년(세조 8) 9월부터 1465년(세조 11) 2월. 폐위된 단종의 영정을 제주신당에 그려 제사를 지냈다는 혐의로
1465년 6월 모함을 당했지만 무혐의로 풀려남.
제66대 목사 문여량 : 1465년(세조 11) 2월부터 1466년(세조 12) 3월까지 재임. 선정을 펼쳐 백성들의 칭송을 얻은 청백리.
제67대 목사 이유의 : 1466(세조 12) 3월부터 1469년(예종 1) 2월까지 재임. 제주향교 보수. 도민들에게 선정을 베푼 목민관.
제68대 목사 김호인 : 1469년(예종 1) 2월부터 1470년(성종 1) 10월 재임. 토산물을 너무 지나치게 과다징수하면서 빼돌리다가 파직됨.
제69대 목사 이약동 : 1470년(성종 1) 10월부터 1473년(성종 4) 8월. 기건과 더불어 조선시대 최고의 목민관에 손꼽히는 목사. 동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므로 한라산 산신제를 산천단에서 지내게 한 최초의 목사. 진상물 중 얻기 힘든 앵무조개나 무회열매
등을 감해주었음. 부임이 끝난 후 그가 가지고 떠난 물건은 하나도 없었음. 청백리로 도민들의 칭송을 얻음.
제70대 목사 이장손 : 1473(성종 4) 8월부터 1476년(성종 7) 6월까지 재임.
제71대 목사 정형 : 1476년(성종 7) 6월부터 1478년(성종 9) 8월까지 재임. 모친상으로 목사직에서 사임함.
제72대 목사 양찬 : 1478년(성종 9) 10월부터 1481년(성종 12) 7월 재임. 관덕정 보수함. 1479년 유구(오키나와)에 표류했던 김비의 등
8명이 귀환해옴.
제73대 목사 최전 : 1481년(성종 12) 7월부터 1484년(성종 15) 1월까지 재임.
제74대 목사 이거인 : 1484년(성종 15) 4월부터 1486년(성종 17) 7월 재임.
제75대 목사 이수생 : 1486년(성종 17) 10월부터 1487년(성종 18) 7월 재임. 재임 중 관청에서 병사한 최초의 목사.
제76대 목사 허희 : 1487년(성종 18) 11월부터 1490년(성종 21) 5월 재임.
제77대 목사 이종윤 : 1490년(성종 21) 8월부터 1494년(성종 25) 12월까지 재임. 기건과 이약동과 더불어 청백리로 이름난 제주목사.
일처리나 사법처리, 민원, 행정을 신속하고 공정히 처리했으며 선정을 베풂. 도민들이 유임시켜 달라고 조정에부탁까
지 할 정도였음. 재임 중 관청에서 병사한 두 번째 목사.
제78대 목사 정인운 : 1495년(연산군 1)4월부터 1497년(연산군 3) 10월까지 재임.
제79대 목사 민휘 : 1498년(연산 4년) 2월부터 1500년(연산 6) 8월까지 재임. 청렴결백했고 선정을 베풀었음.
제80대 목사 남궁찬 : 1500년(연산군 6) 11월부터 1503년(연산 9) 7월까지 내섬시의 종 정회이가 1499년 일본에 표류, 1501년 1월 귀
환해 일본풍토기 저술.
제81대 목사 김율 : 1503년(연산 9) 8월부터 1504년(연산 10) 6월까지 재임. 청렴결백하고 선정을 베푼 목사. 재임 중 관청에서 병사한
세 번째 목사. 1504년 10월 대사간 류헌이 간신 임사홍을 탄핵하다가 오히려 제주로 유배돼 옴.
제82대 목사 육한 : 1505년(연산 11) 4월부터 1506년(연산 12) 8월까지 재임. 가렴주구를 자행한 탐관오리. 폭정으로 결국 파직됨. 1506년 10월 대사간 류헌 등이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가다가 왜구의 기습으로 피살됨.
제83대 목사 방유녕 : 1507년(중종 2) 1월부터 1509년(중종 4) 7월 청렴결백한데다 선정을 베푼 목사.
제84대 목사 이전 : 1509년(중종 4) 9월부터 1510년(중종 5) 7월 재임. 1510년 6월 부산 등에서 삼포왜란이 발발하자 문관출신인 제주
목사 이전은 제주방어에 걸맞지 않다고 판단, 목사자리에서 물러남.
제85대 목사 장림 : 1510년(중종 5) 6월부터 1510년(중종 5) 12월까지 재임. 제주 한림읍 명월성을 나무로 구축. 김녕 방호소를 별방진
으로 이전함. 그러나 부정부패와 가렴주구로 파직됨.
제86대 목사 김석철 : 1511년(중종 6) 1월부터 1513년(중종 8) 6월 재임. 왜구의 침략에 대비, 제주성 외곽에 참호를 파게 함. 왜구의 침
략으로부터 방비에 힘쓴 목사.
제87대 목사 성수재 : 1513년(중종 8) 9월부터 1515년(중종 10) 3월 재임. 청백리. 선정을 베풀다가 재임 중 사망한 네 번째 목사.
제88대 목사 정건 : 1515년(중종 10) 5월부터 1517년(중종 12) 9월 재임. 관청의 기생과 불륜을 저지른 목사. 이에 첩이 질투하므로 첩
을 타살하기도 함. 구설에 오르며 사임하고 떠난 불명예를 남긴 목사.
제89대 목사 이윤번 : 1518년(중종 13) 4월부터 1520년(중종 15) 8월 재임. 재임 중 관청에서 사망한 다섯 번째 목사.
제90대 목사 이운 : 1520년(중종 15) 9월부터 1523년(중종 18) 3월 재임. 1520년 오현의 한 사람인 충암 김정이 유배와 1521년 10
월 사사됨. 재임 중 관청에서 병사한 여섯 번째 목사.
제91대 목사 김흠조 : 1523년(중종 18) 4월부터 1526년(중종 21) 4월 재임.
제92대 목사 이수동 : 1526년(중종 21) 4월부터 1528년(중종 23) 12월 재임. 기건과 이약동, 이종윤과 더불어 제주도 역사상 최고 목사
중 한 사람으로 꼽힘. 삼성혈에 최초로 담장을 쌓고 홍문을 세워 후손들로 하여금 제사지내도록 한 목사. 감귤공납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별방, 수산 등 방호소에 귤 과수원을 만들어 귤 진상에 충당토록 조치함. 또 제주성 안에 없었
던 우물도 최초로 파내어 식수나 화재진압 등에 활용토록 한 목사. 청백리로 이름을 날림.
제93대 목사 송인수 : 오현의 규암 송인수와는 동명이인. 1528년(중종 23) 12월부터 1531년(중종 26) 6월 재임.
제94대 목사 이희옹 : 1531년(중종 26) 7월부터 1534(중종 29) 3월 재임.
제95대 목사 송인수 : 오현의 규암 송인수. 1534년 김안로의 탄핵으로 제주목사로 좌천돼옴. 1534년(중종 29) 3월부터 1534년(중종
29) 6월 풍토병으로 스스로 사임함. 1682년 귬림서원에 배향됐음.
제96대 목사 심연원 : 1534년(중종 29) 9월부터 1537년(중종 32) 6월 재임. 제주향교 명륜당 보수함. 향학당 건립.
제97대 목사 김수성 : 1537년(중종 32) 6월부터 1538년(중종 33) 3월 재임.
제98대 목사 권진 : 1538년(중종 33) 11월부터 1540년(중종 35) 8월 재임. 왜구 침략이 극심할 시기에 부임한 목사. 왜구의 침략과 약탈
로 제주도민이 엄청난 피해를 보았지만 이에 잘 대처하지 못해 파직됨.
제99대 목사 조사수 : 1540년(중종 35) 11월부터 1541년(중종 36) 3월 재임. 청백리로 이름 남. 선정을 베풀었음.
제100대 목사 윤중형 : 1541년(중종 36) 3월부터 1542년(중종 37) 11월 재임. 관청에서 재임 중 사망한 일곱 번째 목사.
제101대 목사 김윤종 : 1543년(중종 38) 3월부터 1545년(인종 1) 11월 재임.
제102대 목사 임형수 : 1545년(인종 1) 11월부터 1546년(명종 1) 10월 재임. 벽지인재를 양성키 위해 월계정사를 건립하고 교육진흥책
으로 김녕정사를 건립. 교육을 적극 장려한 목사. 당시 조정의 대윤파로 지목돼 파직된 후 사약을 받고 사망.
제103대 목사 김숙 : 1546년(명종 1) 10월부터 1549년(명종 4) 5월 재임.
제104대 목사 한흡 : 1549년(명종 4) 5월부터 1550년(명종 5) 7월. 직무 태만으로 파직됨.
제105대 목사 김충렬 : 1550년(명종 5) 7월부터 1552년(명종 7) 5월 재임. 1552년 천미포(표선면) 왜변 발발. 이에 대한 피해책임으
로 파직됨.
제106대 목사 남치근 : 1552년(명종 7) 6월부터 1555년(명종 10) 2월 천미포에 다시 침략한 왜구를 무찌른 목사. 연안에서 왜구 선박 2
척 나포 성과.
제107대 목사 김수문 : 1555년(명종 10) 3월부터 1557년(명종 12) 10월까지 재임. 1555년 왜구 1000여명이 다시 제주성 침략해옴. 이
에 김수문 목사, 70명의 결사대 이끌고 나가 왜구를 크게 쳐부수는 대성과 올림. 1556년 왜구가 다시 침략하자 왜
선 5척을 침몰시키고 왜구 120여명을 참수하는 성과를 올린 목사. 제주목관아의 망경루를 최초로 창건한 목사.
제108대 목사 민응서 : 1557년(명종 12) 10월부터 1558년(명종 13) 10월 재임. 청백리로 소문이 났고 선정을 베풀었지만 남치근, 김수
문 전임목사에 격파당한 왜구가 도망갈 수 있는 여지를 준 책임으로 파직된 비운의 목사.
제109대 목사 이영 : 1558년(명종 13) 10월부터 1560년(명종 16) 10월 재임.
제110대 목사 오성 : 1561년(명종 16) 1월부터 1562년(명종 17) 10월 재임.
제111대 목사 김우서 : 1562년(명종 17) 10월부터 1565년(명종 20년) 9월 재임.
제112대 목사 이선원 : 1565년(명종 20) 9월부터 1565년(명종 20) 10월 : 가렴주구와 학정으로 도민들을 괴롭히다가 한달 만에 파직됨.
제113대 목사 변협 : 1565년(명종 20) 10월부터 1565년(명종 20) 12월 2개월 재임. 1565년 9월 제주로 유배온 보우대사를 죽임. 부친
상으로 사임함.
제114대 목사 곽흘 : 1565년(명종 20) 12월부터 1568년(선조 1) 6월 재임. 백성들의 식수확보를 위해 동쪽 산지천과 가락천이 성 안으
로 들어올 수 있도록 새로보수함. 사찰을 없애기 시작한 최초의 목사. 전임 변협 목사와 더불어 억불숭유정책을 펼친
목사.
제115대 목사 이전 : 1568년(선조 1) 7월부터 1571년(선조 4) 1월 재임.
제116대 목사 소흡 : 1571년(선조 4) 3월부터 1573년(선조 6) 6월 재임.
제117대 목사 강려 : 1573년(선조 6) 6월부터 1574년(선조 7) 10월까지 재임. 여러 실정으로 파직됨.
제118대 목사 송중기 : 1574년(선조 7) 12월부터 1577년(선조 10) 8월 재임
제119대 목사 임진 : 1577년(선조 10) 8월부터 1579년(선조 12) 10월 청백리로 이름남. 선정을 베풀었고 열녀와 효부 등을 포상함. 아
들인 임제가 1577년 10월부터 1578년 3월에 걸쳐 서귀포를 유람한 뒤 남명소승이란 여행기를 집필함.
제120대 목사 신각 : 1579년(선조 12) 11월부터 1581년(선조 12) 2월 재임.
제121대 목사 김태정 : 1581년(선조 14) 3월부터 1582년(선조 15) 8월까지 제주향교를 가락천 부근으로 옮겼음. 부친상으로 사임.
제122대 목사 최여림 : 1582년(선조 15) 9월부터 1583년(선조 16) 9월까지 재임. 실정으로 파직됨.
제123대 목사 김응남 : 1583년(선조 16)부터 1585년(선조 18) 4월 재임. 선정을 베푼 목사.
제124대 목사 임응룡 : 1585년(선조 18) 4월부터 1586년(선조 19) 8월 재임. 관청에서 재임 중 병사한 여덟 번째 목사.
제125대 목사 양사영 : 1586년(선조19) 11월부터 1589년(선조 22) 10월 재임. 한라산에서 흰 사슴(노루)을 포획해 조정에 진상함.
제126대 목사 이옥 : 1589년(선조 22) 10월부터 1592년(선조 25) 3월까지 재임. 조천진 신축 및 서귀진 해안으로 이전함.
제127대 목사 양대수 : 1592년(선조 25) 3월부터 1592년(선조 25) 6월 재임. 임진왜란 발발. 방어시설을 순시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순
직한 목사.
제128대 목사 이경록 : 1592년(선조 25) 9월부터 1599년(선조 32) 1월 명월진을 돌로 쌓았으며 수산진을 성산으로 옮기려고 시도함. 관
청에서 재임 중 사망한 아홉 번째 목사.
제129대 목사 성윤문 : 1599년(선조 32) 3월부터 1601년(선조 34) 6월 재임. 제주성을 다시 고치고 홍예교(다리) 놓고 제이각 남문 위에
세움. 소덕유와 길운절의 역모를 적발함. 오현 중 한 사람인 청음 김상헌이 안무어사로 1601년 8월 제주로 와서 사
건을 수습함. 김상헌은 이 때 경험을 바탕으로 기행문인 남사록을 집필함.
제130대 목사 조경 : 1601년(선조 34) 8월부터 1602년(선조 35) 7월까지 재임.
제131대 목사 김명윤 : 1602년(선조 35) 7월부터 1604년(선조 37) 8월까지 재임.
제132대 목사 이영 : 1604년(선조 37) 10월부터 1607년(선조 40) 7월까지 재임.
제133대 목사 이응해 : 1607년(선조 40) 7월부터 1608년(선조 41) 6월까지 재임. 광해군이 조선왕으로 즉위한 뒤 류영경과 연관있다
는 이유로 파직됨.
제134대 목사 변양걸 : 1608년(선조 41) 6월부터 1610년(광해군 2) 2월까지 재임.
제135대 목사 이기빈 : 1610년(광해군 2년) 2월부터 1611년(광해군 3년) 9월 안남국(베트남) 왕자가 일본으로 향하던 중 표도함. 이
에 안남국 왕자 일행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은 뒤 왜구를 척살했다고 조정에 거짓보고하다가 들통나 파직. 유배됨.
제136대 목사 이현 : 1611년(광해군 3) 9월부터 1613년(광해군 5) 2월 재임. 송상인이 유배옴
제137대 목사 현즙 : 1613년(광해군 5) 2월부터 1616년(광해군 8) 4월까지 재임. 1614년 오현 중 한 사람인 동계 정온이 유배옴.
제138대 목사 이괄 : 역사상 유명한 이괄의 난의 주인공. 1616년(광해 8) 5월부터 1619년(광해 11) 2월 재임. 1616년 인목대비의 생모
인 노씨가 유배옴.
제139대 목사 홍걸 : 1619년 (광해 11년) 2월부터 1619년(광해 11) 5월 재임. 관청에서 재임 중 병사한 열 번째 목사.
제140대 목사 양호 : 1619년(광해 11) 10월부터 1622년(광해군 14) 10월 인조반정 뒤 인목대비 어머니 노씨부인을 학대한 혐의로 사형
당함.
제141대 목사 류순무 : 1622년(광해 14) 11월부터 1623년(인조 1) 8월 재임. 노씨부인과 동계 정온 등이 유배에서 풀려남
제142대 목사 민기 : 1623년(인조 1) 8월부터 1624년(인조 2) 6월 재임. 선정을 베풂
제143대 목사 성안의 : 1624년(인조 2) 6월부터 1627년(인조 5) 4월 재임.
제144대 목사 박명부 : 1627년(인조 5) 4월부터 1629년(인조 7) 6월 재임. 1627년 9월 화란인(네덜란드인) 벨테브레(박연) 등이 식수
를 얻기 위해 제주에 첫상륙. 서양인의 첫 제주출현.
제145대 목사 이진경 : 1629년(인조 7) 6월부터 1632년(인조 10) 2월 재임.
제146대 목사 이곽 : 1632년(인조 7) 6월부터 1632년(인조 10) 2월 재임.
제147대 목사 신경호 : 1634년(인조 12) 9월부터 1637년(인조 15) 5월 재임. 1637년 조선 전임 국왕 광해군이 제주로 유배옴.
제148대 목사 성하종 : 1637년(인조 15) 5월부터 1638년(인조 16) 6월 재임.
제149대 목사 심연 : 1638(인조 16) 6월부터 1640년(인조 18) 9월까지 재임.
제150대 목사 이시방 : 1640(인조 18) 9월부터 1642년(인조 20) 8월 재임. 1641년 7월1일 광해군 서거. 화북포로 나아가 10월4일 경
기도 양주 광해군묘에 묻힘.
제151대 목사 원숙 : 1642년(인조 20) 8월부터 1645년(인조 23) 4월 재임.
제152대 목사 류정익 : 1645년(인조 23) 4월부터 1647년(인조 25) 5월 재임. 가뭄과 홍수로 흉년이 들어 조정에서 진휼곡 2000석으
로 구휼함.
제153대 목사 김여수 : 1647년(인조 25) 5월부터 1649년(인조 27) 9월 재임. 1647년 소현세자의 아들 3형제가 제주로 유배옴. 홍화
각 보수.
제154대 목사 김수익 : 1649년(인조 27) 9월부터 1651년(효종 2) 7월 정의현감 안즙과 불화 빚음. 이로 인해 파직됨.
1651년 4월 안핵어사(按覈御史=지금의 대검찰청) 이경억이와서 조사함.
제155대 목사 이원진 : 1651년(효종 2) 7월부터 1653년(효종 4) 10월 재임. 대정향교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단산 아래로 옮김. 네덜
란드인 하멜이 대정현에 표도함. 1652년 차귀진 설치함. 하멜을 서울로 압송함. 제주의 남수구, 북수구 등을 보수
함. 탐라지를 집필.
제156대 목사 소동도 : 1653년(효종 4) 10월부터 1655년(효종 6) 9월까지 재임. 제주에 최악의 흉년 닥침.
제157대 목사 구의준 : 1655년(효종 6) 9월부터 1658년(효종 9) 4월까지 재임.
제158대 목사 이괴 : 1658(효종 9) 4월부터 1660년(현종 1) 5월 재임. 김진용의 건의로 삼도동에 장수당(교육시설, 공부시설- 오늘날 귤
림서원의 시초)을 건립. 김대길이라는 사람이 말 200필을 바치자 산장의 감목관을 배치해 관리토록 함.
제159대 목사 이지형 : 1660년(현종 1) 5월부터 1662년(현종 3) 8월 재임.
제160대 목사 이익한 : 1662년(현종 3) 8월부터 1663년(현종 4) 3월 재임. 제주 전선(戰船) 수리에 비리나 민폐가 많으므로 이를 혁파할
것을 건의함
제161대 목사 이중신 : 1663(현종 4) 3월부터 1665년(현종 6) 11월 재임. 제주 수군의 비리를 조사, 수군 폐지
제162대 목사 홍유량 : 1665(현종 6)년 11월부터 1667년(현종 8) 5월 재임. 제주성의 동서남문 누각을 보수하고 북쪽 물길에 홍예문 세
움
제163대 목사 이인 : 1667년(현종 8) 6월부터 1669년(현종 10) 9월 재임. 제주 향교를 다시 가락천 서쪽으로 옮기고 망경루 보수함. 제
주목과 별방진, 명월진 등에 진휼창고를 설치함. 재임 중 관청에서 순직한 목사.
제164대 목사 노정 : 1669년(현종 10) 9월부터 1672년(현종 13) 5월 재임. 당시 큰 흉년이 제주를 강타함. 진휼에 힘쏟은 목사.
제165대 목사 윤계 : 1672년(현종 13) 5얼부터 1672년(현종 13) 10월 재임. 도적 8명을 붙잡아 자복을 받은 뒤 조정의 조치없이 멋대
로 효수했다는 혐의로 파면당함.
제166대 목사 김흥운 : 1672년(현종 13) 10월부터 1675년(숙종 1) 6월 재임. 1674년 가을 제주 최악의 흉년 강타. 구휼하는 데 힘을 쏟
음.
제167대 목사 소두산 : 1675년(숙종 1) 6월부터 1676년(숙종 2) 2월 재임.
제168대 목사 윤창형 : 1676년(숙종 2) 2월부터 1678년(숙종 4) 8월 재임. 동해진을 모슬포로 옮김
제169대 목사 최관 : 1678년(숙종 4) 8월부터 1680년(숙종 6) 5월 재임. 화북진 설치. 신병으로 스스로 목사직에서 물러남
제170대 목사 원상 : 1680년(숙종 4) 5월부터 1680년(숙종 4) 8월 재임.
제171대 목사 임홍망 : 1680년(숙종 6) 8월부터 1681년(숙종 7) 12월 재임. 제주향교에 책고를 설치해 사서삼경 등을 편찬함. 신병으
로 스스로 사임.
제172대 목사 신경윤 : 1681년(숙종 7) 12월부터 1684년(숙종 10) 4월까지 재임. 운주당 보수. 귤림서원에 규암 송인수, 동계 정온, 청
음 김상헌을 배향했음.
제173대 목사 김세구 : 1684년(숙종 10) 4월부터 1685년(숙종 11) 1월 관청에서 재임 중 순직
제174대 목사 강세구 : 1685(숙종 11) 4월부터 10월 재임. 공마 부진으로 인해 파직된 비운의 목사.
제175대 목사 이상전 : 1685년(숙종 11) 10월부터 1688년(숙종 14) 4월 재임. 사서삼경 간행.
제176대 목사 이희룡 : 1688년(숙종 14) 4월부터 1689년(숙종 15) 5월 재임.
제177대 목사 이우항 : 1689년(숙종 15) 5월부터 1691년(숙종 17) 12월 재임. 1689년 2월 우암 송시열이 유배옴. 송시열 그해 6월 사
사됨
제178대 목사 윤정화 : 1692년(숙종 18) 1월부터 1693년(숙종 19) 4월 재임.
제179대 목사 이기하 : 1693년(숙종 19) 4월부터 1694년(숙종 20) 7월 재임.
제180대 목사 이익태 : 1694년(숙종 20) 7월부터 1696년(숙종 22) 9월 재임. 수정사 헐고 건입동 연무정 보수. 우암 송시열을 귤림서원
에 배향했음. 귤림서원에 오현 중 사현이 배향됨, 지영록이라는 책을 집필함.
제181대 목사 류한명 : 1696년(숙종 22) 10월부터 1699년(숙종 25) 5월 재임. 1698년 삼을나묘를 세우고 우도에 말 200필을 방목하기
시작.
제182대 목사 남지훈 : 1699년(숙종 25) 5월부터 1701년(숙종 27) 9월 재임. 관풍안을 저술, 종루 중수, ‘탐라포정사’라는 현액을 내걸
었음. 식년 초시(시험) 개설
제183대 목사 박성석 : 1701년(숙종 27) 9월부터 1702년(숙종 28) 6월 재임. 숙종의 환국정치로 남인 오시복이 유배옴
184대 목사 이형상 : 1702년(숙종 28) 6월부터 1703년(숙종 29) 6월 재임. 선정을 베푼 목사. 역대 목사들 중 ‘탐라순력도’로 유명한 목
사. 숭유억불정책을 써 신당을 불태우고 무당들을 모두 농사짓고 세금내도록 조치함. 포작인들과 노비, 백성들의 무거
운 역을 감해주었음. 120여곳이 신당을 철폐했다고 함. 남인 오시복을 보살폈다는 혐의로 파직된 비운의 목사.
제185대 목사 이희태 : 1703년(숙종 29) 6월부터 1704년(숙종 30) 10월 재임. 해적선을 적선으로 과장해 조정에 보고했다가 파직됨. 관
청의 기생을 곤장으로 때려 죽인 사건으로 인해 구설에 올라 유배됐음.
제186대 목사 송정규 : 1704년(숙종 30) 10월부터 1706년(숙종 32) 9월 재임. 국둔 목장 정비해 10여곳을 두었고 제주성 정원루 보수
제187대 목사 이규성 : 1706년(숙종 32) 9월부터 1709년(숙종 35) 5월 재임. 영주관 보수.
제188대 목사 최계옹 : 1709년(숙종 35) 5월부터 1710년(숙종 36) 12월 재임. 서인 노론 김춘택의 방면을 조정에 건의했다가 파직됨.
제189대 목사 백시구 : 1710년(숙종 36) 12월부터 1711년(숙종 37) 5월까지 재임. 전임지에서 세금과다 혐의로 붙잡혀감.
제190대 목사 이익한 : 1711년(숙종 37) 5월부터 1713년(숙종 39) 7월 재임
제191대 목사 변시태 : 1713년(숙종 39) 7월부터 1716년(숙종 42) 3월 재임. 대흉년 제주 강타. 이에 잘못 대처했다는 혐의로 파직됨.
제192대 목사 홍중주 : 1716년(숙종 42) 3월부터 1717년(숙종 43) 9월. 구휼소홀 직무태만혐의로 파직
제193대 목사 정석빈 : 1717년(숙종 43) 9월부터 1719년(숙종 45) 6월. 선정을 베푼 관리. 백성들 구휼에 힘씀. 관청에서 병으로 순직.
제194대 목사 정동준 : 1719년(숙종 45) 6월부터 1720년(숙종 46) 6월 재임.
제195대 목사 민제장 : 1720년(숙종 46) 7월부터 1721년(경종 1) 8월 재임.
제196대 목사 정사효 : 1721년(경종 1) 8월부터 1722년(경종 2) 4월 재임.
제197대 목사 최완 : 1722년(경종 2) 4월부터 1723년(경종 3) 5월 까지 재임. 세금이나 공납을 1년에 한번만 거두도록 조치해 민폐를 줄
여 선정을 베푼 관리. 관청에서 재임 중 순직함.
제198대 목사 신유익 : 1723년(경종 3) 8월부터 1725년(영조 1) 6월까지 재임. 1724년 1월 제주성에서 큰 불이 나서 향교 소실됨. 고령
전에 신축함.
제199대 목사 한범석 : 1725년(영조 1) 6월부터 1727년(영조 3) 10월 재임. 선정을 베풀었음.
제200대 목사 정계장 : 1727년(영조 3) 10월부터 1729년(영조 5) 7월 재임. 1728년 이인좌의 난 발발. 관청에서 순직.
제201대 목사 이수신 : 1729년(영조 5) 10월부터 1731년(영조 7) 9월까지 재임.
제202대 목사 정필녕 : 1731년(영조 7) 9월부터 1733년(영조 9) 8월 흉년이 또 제주를 강타. 구휼에 힘썼음.
제203대 목사 정도원 : 1733년(영조 9) 8월부터 1734년(영조 10) 9월 절제사였던 제주목사가 방어사 직위로 바뀜. 관청에서 순직.
제204대 목사 김정 : 1735년(영조 11) 4월부터 1737년(영조 13) 9월. 오현의 마지막 충암 김정. 삼천서당을 건립해 서민교육에 힘씀. 화
북포를 수축하는 데 힘씀. 목사인데도 몸소 돌을 나르고 일을 하다가 이로 인한 후유증으로 순직.
제205대 목사 이희하 : 1737년(영조 13) 9월부터 1738년(영조 14) 10월 재임.
제206대 목사 홍중징 : 1738년(영조 14) 10월부터 1739년(영조 15) 9월 재임. 굶주민 백성들을 구휼하는 데 힘썼음. 선정을 베푼 관리.
신병으로 목사직에서 물러남.
제207대 목사 조동점 : 1739년(영조 15) 9월부터 1740년(영조 16) 9월까지 재임. 제주성 서문백호루 보수함.
제208대 목사 안경운 : 1740년(영조 16) 9월부터 1743년(영조 19) 3월 재임.
제209대 목사 김윤 : 1743년(영조 19) 3월부터 1744년(영조 20) 9월 효자, 열녀 등에게 포상.
제210대 목사 윤식 : 1744년(영조 20) 9월부터 1745년(영조 21) 9월 재임. 조정에 진상한 청색 귤이 썩었다는 이유로 파직된 비운의 목
사.
제211대 목사 류징구 : 1745년(영조 21) 9월부터 1746년(영조 22) 3월 전임지에서 나무를 남벌했다는 혐의로 파직됨
제212대 목사 한억증 : 1746년(영조 22) 3월부터 1747년(영조 23) 11월 재임. 연무정을 동문밖으로 옮겼으며 선정을 베풀었음.
제213대 목사 박태신 : 1747년(영조 23) 11월부터 1749년(영조 25) 10월 재임. 탐관오리. 가렴주구를 행하다가 파직당함.
제214대 목사 정언유 : 1749년(영조 25) 10월부터 1751년(영조 27) 8월 진상한 귤의 부패와 공마부진 등을 이유로 파직된 목사.
제215대 목사 윤구연 : 1751년(영조 27) 8월부터 1752년(영조 28) 12월까지 재임.
제216대 목사 김몽규 : 1752년(영조 28) 12월부터 1754년(영조 30) 10월 재임. 1753년 운주당과 관덕정을 보수하고 제주성 동서남문
에 옹중석(돌하르방)을 세운 목사. 영조의 탄신일 축하 전문을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질됨
제217대 목사 홍태두 : 1754년(영조 30) 10월부터 1756년(영조 32) 9월 재임. 제주향교를 광양으로 옮김. 유배죄인 동태 보고에 문제
가 불거져 경질됨
제218대 목사 이윤성 : 1756년(영조 32) 9월부터 1757년(영조 33) 10월 재임.
제219대 목사 조위진 : 1757년(영조 33) 11월부터 1759년(영조 35) 5월 재임.
제220대 목사 허유 : 1759년(영조 35) 5월부터 1760년(영조 36) 7월 재임. 전임지에서 실수했다는 이유로 파직됨
제221대 목사 이창운 : 1760년(영조 36) 7월부터 1761년(영조 37) 7월 재임.
제222대 목사 신광익 : 1761년(영조 37) 7월부터 1763년(영조 39) 5월 재임. 백성들을 위한 구휼정책에 힘씀.
제223대 목사 이달 : 1763년(영조 39) 5월부터 1763년(영조 39) 7월 재임. 군사를 제멋대로 끌고 다녔다는 혐의로 경질됨
제224대 목사 이명운 : 1763년(영조 39) 7월부터 1765년(영조 41) 6월 재임.
제225대 목사 류진하 : 1765년(영조 41) 6월부터 1765년(영조 41) 8월 재임. 기민 구휼을 잘못해서 파직됨
제226대 목사 윤시동 : 1765년(영조 41) 8월부터 1766년(영조 42) 6월 재임. 별방진 명월진에 진휼창고를 설치했고 보민고를 설치해 민
원을 경청함
제227대 목사 안표 : 1766년(영조 42) 6월부터 1767년(영조 43) 2월 옥에 갇힌 죄인을 죽였다는 이유로 경질됨
제228대 목사 남익상 : 1767년(영조 43) 2월부터 1769년(영조 45) 7월 재임. 진휼곡식을 필요 이상으로 조정에 요청하다가 안핵사에 적
발돼 경질됨
제229대 목사 안종규 : 1769년(영조 45) 7월부터 1771년(영조 47) 1월 재임. 영조 탄신일에 제주 순력을 출발했다는 이유로 경질됨. 영
조 시대에는 경질된 목사가 무더기로 나타남.
제230대 목사 양세현 : 1771년(영조 47) 1월부터 1773년(영조 49) 3월 삼성묘 중수, 위토를 마련해 삼성혈에 담장을 쌓은 목사. 죄인
을 비호했다는 이유로 파직됨
제231대 목사 박성협 : 1773년(영조 49) 3월부터 1774년(영조 50) 5월 관청에서 재임 중 순직함
제232대 목사 신경준 : 1774년(영조 50) 7월부터 1775년(영조 51) 2월 재임. 순무어사 홍상성이 제주를 들렸는데 어사가 기생을 데려
온 것에 시비를 걸었다가 어사와 함께 경질됨
제233대 목사 류혁 : 1775년(영조 51) 2월부터 1777년(정조 1) 3월 재임.
제234대 목사 황최언 : 1777년(정조 1) 3월부터 1778년(정조 2) 12월 재임. 정의서당을 세웠으며 삼읍에 학전을 마련해 교육을 장려함.
관덕정을 보수함
제235대 목사 김영수 : 1778년(정조 2) 12월부터 1781년(정조 5) 3월 재임. 운주당과 연무정을 보수함. 산지천 서안으로 성을 쌓았음
제236대 목사 김시구 : 1781년(정조 5) 3월부터 1781년(정조 5) 7월까지 재임.
제237대 목사 이양정 : 1781년(정조 5) 7월부터 1782년(정조 6) 1월 재임.
제238대 목사 이문혁 : 1782년(정조 6) 1월부터 1783년(정조 7) 4월 재임.
제239대 목사 엄사만 : 1783년(정조 7) 6월부터 1785년(정조 9) 5월 재임. 1785년 2월 삼성사가 사액됐음
제240대 목사 윤득규 : 1785년(정조 9) 5월부터 1786년(정조 10) 4월 진상한 귤이 부패됐다는 이유로 경질됨
제241대 목사 이명준 : 1786년(정조 10) 4월부터 1788년(정조 12) 3월 재임. 1787년 흉년 제주강타. 구휼에 힘썼음
제242대 목사 홍인묵 : 1788년(정조 12) 3월부터 1788년(정조 12) 10월 재임.
제243대 목사 이철모 : 1788년(정조 12) 10월부터 1790년(정조 14) 7월 재임.
제244대 목사 이홍운 : 1790년(정조 14) 7월부터 1791년(정조 15) 8월 재임. 유배인의 자녀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질
됨
제245대 목사 이운빈 : 1791년(정조 15) 8월부터 1792년(정조 16) 3월까지 재임.
제246대 목사 이철운 : 1792년(정조 16) 3월부터 1793년(정조 17) 12월 재임. 흉년 제주강타. 구휼을 소홀히 하는 등 직무태만 혐의로
경질돼 압송됨
제247대 목사 심낙수 : 1793년(정조 17) 12월부터 1794년(정조 18) 10월 재임. 안핵어사로 부임했다가 목사가 됨. 전임목사 이철운
의 부정을 탄핵했으며, 1794년 제주를 강타한 큰 흉년을 조정에 아뢰 구제하도록 했음.
제248대 목사 이우현 : 1794년(정조 18) 10월부터 1796년(정조 20) 4월 재임. 연이은 흉년강타. 제주 최대의 위기. 1795년 봄철에 여
상(女商) 김만덕이 곡식을 사들여 백성들을 구휼함.
제249대 목사 류사모 : 1796년(정조 20) 4월부터 1797년(정조 21) 7월 재임.
제250대 목사 조명즙 : 1797년(정조 21) 6월부터 1799년(정조 23) 7월 재임. 귤을 조정에 진상하지 못하도록 한 혐의로 경질됨
제251대 목사 임시철 : 1799년(정조 23) 7월부터 1799년(정조 23) 12월 전임지에서 죄인을 죽인 혐의로 경질됨
제252대 목사 정관휘 : 1799년(정조 23) 12월부터 1802년(순조 2) 3월 재임. 국둔마 1500여필이 흉년으로 폐사했는데 강성익의 도움
으로 처벌을 면함
제253대 목사 이연필 : 1802년(순조 2) 3월부터 1803년(순조 3) 7월 재임. 관청에서 순직한 목사.
제254대 목사 류경 : 1803년(순조 3) 9월부터 1804년(순조 4) 9월 재임. 공마들이 폐사돼 경질됨
제255대 목사 박종주 : 1804년(순조 4) 9월부터 1807년(순조 7) 3월 재임. 망경루 귤림당책고를 보수함
제256대 목사 한정운 : 1807년(순조 7) 3월부터 1809년(순조 9) 1월 재임. 연상루 공신정 군기로 중수
제257대 목사 이현택 : 1809년(순조 9) 1월부터 1811년(순조 11) 6월 재임. 운주당 보수함
제258대 목사 조정철 : 1811년(순조 11) 6월부터 1812년(순조 12) 6월 재임. 제주 내 연대(봉수대) 36개소 중 8개소 철폐. 1812년 3
월 홍경래의 난 발발
제259대 목사 김수기 : 1812년(순조 12) 6월부터 1814년(순조 14) 4월 재임.
제260대 목사 허명 : 1814년(순조 14) 4월부터 1815년(순조 15) 5월 재임. 오랜만에 청백리 등장. 청렴한데다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베
풂.
제261대 목사 윤구동 : 1815년(순조 15) 5월부터 1817년(순조 17) 10월 재임. 청렴하면서도 선정을 베풀었던 관리.
제262대 목사 조의진 : 1817년(순조 17) 10월부터 1820년(순조 20) 3월 재임. 184대 목사 이형상과 204대 목사 충암 김정을 이도1동
(중앙로 부근) 영혜사에 배향함
제263대 목사 한상묵 : 1820년(순조 20) 3월부터 1820년(순조 20) 12월 재임. 화북포에 해신사라는 사당(배의 안전을 기원하는 사당)을
세움
제264대 목사 백영진 : 1821년(순조 21) 1월부터 1821년(순조 21) 10월 재임.
제265대 목사 이원팔 : 1822년(순조 22) 1월부터 1824년(순조 24) 1월 재임. 호적소 정식 조례 제정.
제266대 목사 임성고 : 1824년(순조 24) 1월부터 1826년(순조 26) 6월 재임.
제267대 목사 심영석 : 1826년(순조 26) 6월부터 1827년(순조 27) 8월 재임. 민폐를 덜고 선정을 베풀었던 관리. 그러나 전최(고려·조선
시대 경외관원(京外官員)의 근무 상태를 여러 면에서 조사해 성적을 매기는 고과) 격식을 어긴 혐의로 경질됨
제268대 목사 이행교 : 1827년(순조 27) 8월부터 1830년(순조 30) 3월 제주향교를 현재의 용담 제주중학교 옆으로 옮김. 선정을 베풀었
던 관리.
제269대 목사 이예연 : 1830년(순조 30) 3월부터 1832년(순조 32) 2월 재임. 좌학당 우학당 세워 교육을 장려함.
제270대 목사 한응호 : 1832년(순조 32) 2월부터 1834년(순조 34) 7월 남학당과 서학당을 세움. 관덕정을 보수했고 작물로 고구마를 심
게 한 최초의 목사.
제271대 목사 박장복 : 1834년(순조 34) 7월부터 1836년(헌종 2) 3월 대정향교 보수. 제사용 귤을 진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질됨
제272대 목사 조우석 : 1836년(헌종 2) 3월부터 1837년(헌종 3) 11월 재임
제273대 목사 이원달 : 1837년(헌종 3) 11월부터 1839년(헌종 5) 3월 재임. 환곡 장부를 조사해 민폐를 없애도록 노력함
제274대 목사 구재룡 : 1839년(헌종 5) 3월부터 1841년(헌종 7) 3월 재임. 1840년 9월 추사 김정희가 대정에 유배옴. 선정을 베푼 수
령. 이 때 영국군함이 가파도를 약탈했음. 이를 대처하지 못한 이유로 경질됨
제275대 목사 이원조 : 1841년(헌종 7) 3월부터 1843년(헌종 9) 6월 재임. 1843년 향현사를 세워 고득종과 김진용 등을 배향하고 가파
도와 우도를 개간한 목사.
제276대 목사 이용현 : 1843년(헌종 9) 6월부터 1844년(헌종 10) 8월 재임. 진상물 문제로 경질됨
제277대 목사 권직 : 1844년(헌종 10) 12월부터 1846년(헌종 12) 2월. 환해장성을 고쳐서 쌓았음.
제278대 목사 이의식 : 1846년(헌종 12) 2월부터 1848년(헌종 14) 3월 제주성 북쪽 수구를 물려 쌓고 천일정(건입동 부근) 세움
제279대 목사 장인식 : 1848년(헌종 14) 3월부터 1850년(철종 1) 6월 재임. 삼성사에 숭보당을 세움
제280대 목사 이현공 : 1850년(철종 1) 6월부터 1851년(철종 2) 7월 관덕정을 보수했음. 전임지 문제로 파직됨
제281대 목사 백희수 : 1851년(철종 2) 7월부터 1853년(철종 4) 12월 기민구휼에 노력한 목사.
제282대 목사 목인배 : 1853(철종 4) 12월부터 1855년(철종 6) 8월 재임. 제주향교 계성사 건립.
제283대 목사 채동건 : 1855년(철종 6) 8월부터 1857년(철종 8) 6월 재임.
제284대 목사 임백능 : 1857년(철종 8) 6월부터 1858년(철종 9) 12월까지 재임.
제285대 목사 정우현 : 1858년(철종 9) 12월부터 1860년(철종 11) 3월 횡포를 부리다가 암행어사 심동신에 적발돼 경질됨
제286대 목사 강면규 : 1860년(철종 11) 3월부터 1861년(철종 12) 2월 재임.
제287대 목사 신종익 : 1861년(철종 12) 2월부터 1862년(철종 13) 2월 제주목관아 망경루 보수함
제288대 목사 임헌대 : 1862년(철종 13) 2월부터 1863년(철종 14) 1월 강제검의 난이 일어난 책임으로 경질됨
제289대 목사 정기원 : 1863년(철종 14) 1월부터 1864년(고종 1) 3월 재임. 찰리어사 이건필이 강제검의 난 수습.
제290대 목사 양헌수 : 1864년(고종 1) 3월부터 1866년(고종 3) 8월 삼성사 제전을 마련하고 훈민편을 편찬했음. 또 효자와 열녀에게 포
상하고 여러 가지 세금의 폐단을 줄여 선정으로 칭송을 받음.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격퇴한 영웅.
제291대 목사 이후선 : 1866년(고종 3) 8월부터 1868년(고종 5) 10월까지 재임.
제292대 목사 조희순 : 1868년(고종 5) 10월부터 1872년(고종 9) 5월 재임.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귤림서원과 삼성사 철폐
됨
제293대 목사 이복희 : 1872년(고종 9) 5월부터 1874년(고종 11) 7월 재임. 1873년 11월 대원군을 탄핵한 혐의로 면암 최익현이 유배
옴. 1873년 제주목 좌면이 신좌면과 구좌면으로 나뉨
제294대 목사 이희충 : 1874년(고종 11) 7월부터 1877년(고종 14) 1월까지 재임. 유교 공부의 전당 경신재를 세움
제295대 목사 백낙연 : 1877년(고종 14) 1월부터 1881년(고종 18) 5월까지 재임. 역대 제주목사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재임-5년 간 제
주를 다스림. 흉년구휼에 힘썼음
제296대 목사 박선양 : 1881년(고종 18) 5월부터 1883년(고종 20) 5월까지 재임. 관덕정 보수함
제297대 목사 심현택 : 1883년(고종 20) 5월부터 1884년(고종 21) 12월 재임.
제298대 목사 홍규 : 1884년(고종 21) 12월부터 1886년(고종 23) 5월 재임. 제주목관아 연희각 보수함
제299대 목사 심원택 : 1886년(고종 23) 5월부터 1888년(고종 25) 7월 재임. 제주에 대홍수 사태 발생. 일본인들이 가파도에 침략해 가축을 뺏어감
제300대 목사 송구호 : 1888년(고종 25) 7월부터 1890년(고종 27) 4월 재임
제301대 목사 조균하 : 1890년(고종 27) 4월부터 1891년(고종 28) 8월 재임.
제302대 목사 정용기 : 1891년(고종 28) 8월부터 1891년(고종 28) 9월 한달 재임.
제303대 목사 이규원 : 1891년(고종 28) 9월부터 1894년(고종 31) 9월 재임.
제304대 목사 이봉헌 : 1894년(고종 31) 9월부터 1895년(고종 32) 8월까지 재임. 방어사인 목사가 관찰사로 바뀌고 오늘날 부지사에 속
하는 판관이 참서관, 현감이 군수로 바뀜. 또 조정에 바칠 공마를 철폐하고 현금으로 세금을 내도록 함. 봉수대 연
대를 철폐함.
제305대 목사 오경림 : 1895년(고종 32) 8월부터 1896년(건양 1) 5월 재임. 관찰사는 제주재판소 판사를 겸임하게 됨. 참서관(판관)
은 검사 겸임.
제306대 목사 이병휘 : 1896년(건양 1) 5월부터 1898년(광무 2) 3월 재임. 1896년 8월 관찰사가 다시 목사로 바뀌고 제주목에 최초
로 군수를 둠. 군수는 오늘날 시장과 같은 존재. 방성칠의 반란의 책임으로 경질됨
제307대 목사 박용원 : 찰리사로 부임해 방성칠의 난을 진정시킴. 1898년(광무 2) 3월부터 1899년(광무 3) 10월까지 재임. 난이 수습된
뒤 스스로 사임.
제308대 목사 이상규 : 1899년(광무 3) 10월부터 1901년(광무 5) 1월 재임. 탐관오리의 전형. 이재수의 난을 촉발시킨 수령이었으며 암
행어사 이도재에 학정이 적발돼 파직됨. 봉세관 강봉헌과 결탁해 횡포를 부림. 이재수의 난 발발
제309대 목사 이재호 : 1901년(광무 5) 5월부터 1902년(광무 6) 재임 : 1901년 황기연과 함께 이재수의 난 진압함. 이재수와 오대현 강
우백을 서울로 압송하고, 강봉헌을 구속함
제310대 목사 윤석인 : 1902년(광무 6) 8월부터 1902년(광무 6) 10월 재임. 2개월 짧은 근무 도중 순직
제311대 목사 홍종우 : 1903년(광무 7) 1월부터 1905년(광무 9) 4월 재임. 황사평성지에 천주교인들 묻음. 제주목관아의 망경루 등을 보
수했음. 백성들로부터 과다하게 세금을 징수해 원성을 들었으며 1905년 면직됨.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을 1894
년 암살한 인물.
제312대 목사 조종환 : 마지막 목사로 1905년(광무 9) 5월부터 1906년(광무 10) 7월 재임. 제주목사제 폐지됨. 1906년 통감부 설치 목
사 대신 군수가 제주도를 다스리게 됨. 1909년 제주의병 일어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