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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성경해석에서 야기된 ‘천년왕국’
성경에 ‘천년왕국’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다만 천년을 ‘왕노릇 한다’는 말이 있을 뿐이다. 왕국과 왕 노릇은 전혀 다른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혹은 왜?) 천년왕국이라는 말들이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기독교계에서 절반 이상의 신자들에게 보편적 용어가 되어버렸나? 한마디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모르는 영적 무지에서 생성된 ‘픽션’(소설)일 뿐이다. 사실 그들의 천년왕국에 대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그것도 수준 떨어지는 아류 SF영화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이리와 어린양이 친구가 된다?...)
통상적으로 천년왕국을 주장하는 부류들은 거의 다 이단 사이비 집단들이 대부분이다. 여호와 증인들은 왕국복음을 강조하다보니 모임 장소도 왕국회관이라고 한다. 권신찬 목사의 아들들인 구원파의 박옥수 목사, 이요한 목사, 세모그룹의 유병언 회장은 천년왕국 신봉자들이고, 게다가 666을 베리칩이라고 믿으며, 휴거 사상에 목메고 있는 혼잡한 영의 무리들이다. 이만희의 신천지도, 안상홍의 하나님의 교회도, 여의도의 순복음 교회도 천년왕국을 꿈꾸는 자들이다. 물론 지방교회도 이 부분은 마찬가지다.
일부 개신교 목사들도 교단의 지침과는 별도로 목사 개개인의 신앙에 따라 천년왕국을 받아들이고 있으나, 거의 대부분은 계시록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큰 부작용은 드러나지 않는 상황인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어떤 특정 목회자(목사나 신부, 혹은 장로 형제)가 모임 가운데에서 천년왕국을 인정하고 가르치는 자라면, 그는 성경을 모르는 자이다. 그가 비록 부분적으로는 진리를 이해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목적성을 모르기 때문에 결국은 교회라는 배를 엉뚱한 곳으로 안내하는 가짜 선장임을 알아야 한다.
그 배에 탄 신자들이 선장만 믿고 평생을 같이 항해해 왔건만, 도착해보니 천국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와 있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일까? 절대 되돌릴 수 없고 다시 기회를 만들 수도 없는 인생의 날들에 대한 사기 당함을 여하히 보상 받을 수 있을까?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탓해야 소용없이, 그냥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고스란히 벌거벗기고, 성 밖에 쫓겨나 영원토록 슬피 울며 이빨을 가는 신세가 될 것이다(억울하고 아쉽고 속상한 표현임...).
그러므로 이번 글에서는 천년왕국으로 오해 될 수 있는 성경 구절들을 찾아서 바르게 해석함으로 오류를 밝히고자 한다. 앞서서 이미 게제 했던 두 편의 글인,
* 천년왕국 과연 성경적인가?
* 사랑의 아들의 나라
~를 통해 대부분은 천년왕국의 허구성에 대해 밝힌바 있지만, 아직도 분별을 못하고 천년왕국을 신봉하는 분들은 향방 없는 신앙생활에 종지부를 찍기를 바라마지않는다.
1. 왕노릇과 다스림에 대한 개념 차이
천년왕국이 있다는 직접적 근거는 계20:4의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하니~’에서 출발한다. 물론 원전에는 ‘동안’이라는 단어가 없다. 따라서 ‘천년을 왕노릇 한다’는 문장만 놓고 보면, ‘천년’은 무엇일까?라고 반문하게 되고, 곧바로 천년에 대해 공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계14장의 십사만 사천(144천)이 연상이 되면서, 거기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년수의 숫자가 아니라 영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어있다(물론 계시가 있어야 깨닫지만...)
천년이란~히브리어를 풀어 설명하면 ‘하나님의 본성으로 탈바꿈 됨’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한다면 ‘그리스도화’이다. 그러므로 ‘천년을 왕노릇 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내 안의 땅의 속성을 초월하여 하늘의 삶을 누림’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천년이 차기(텔레오)까지’란, 이러한 그리스도의 생명화로 완성(텔레오)되기 까지를 뜻하는 말로서, 다른 표현으로는 혼의 구원이 이루어질 때까지를 의미한다. 이런 상태를 로마서에서는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한다’ 혹은 ‘은혜가 왕노릇 한다’라고 했다
이와 같이 ‘천년’을 문자적인 숫자로 보지 않고 의미로 접근한다면 너무도 쉽게 본문이 해석되어지고, 이것은 창세기 1장부터 신약의 서신서 까지 이어지는 일관성 있는 해석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일맥상통하는 일이 된다.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의 기조(흐름)인가? 그래서 말씀을 로고스(논리)라 한다. 이렇게 눈이 열려져서 깨닫는 자에게는 너무도 이치에 맞고 타당성이 있어 아멘이 되지만, 그러나 특정 교리에 세뇌된 자들에게는 도저히 먹혀들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제는 왕노릇과 다스림에 대해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성경에서의 왕노릇과 다스림은 물론 단어도 다르지만, 뜻하는 개념 자체도 다른 말이다. 왕 노릇은 명사 뒤에 붙여져서 ~노릇이 붙여져서, ‘~처럼 행세를 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아들 노릇, 며느리 노릇, 주인 노릇, 어른 노릇,... 등등 무수히 많다. 객이 안방에 와서 마치 주인처럼 편하게 눕거나 행동하면 주인 노릇한다고 하듯이, 왕 노릇도 자신이 왕인 것처럼 자유와 평강을 만끽하는 것을 상징하는 말이다. 반면에 다스림은 회중을 인도하고 안내하는 리더의 역할을 나타내는 말이다.
A. 왕 노릇에 대하여
왕 노릇은 헬라어 바실류오(#936)이며 통치하다, 다스리다의 의미를 갖고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통치나 다스림은 타를 제어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상태를 통제, 절제하거나 혹은 누림을 향유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의 주요 적용구절을 살펴보자.
<고전5:8>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 하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형제들이 거짓 믿음으로 왕 노릇하는 것을 지적하는 말)
<계5: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더라 (땅에서~ 교회 모임 혹은 자신의 마음 안에서)
<롬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사망이 왕노릇~사망인 육신의 생각 속에서 제 맘대로 살아감)
<롬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IX의 십자가의 승리로 사단은 결박당하고, 성도는 그 은혜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림)
<롬6;12~13>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그러므로 의에 순종하여 생명으로 왕 노릇 할 것이냐? 혹은 죄에 굴복하여 사망이 왕 노릇 하게 할 것이냐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말)
이와 같이 ‘왕 노릇’이라는 말의 의미는 자신의 내면의 정신세계의 영적인 상태를 가름하는 말로서, 사단의 생명(옛사람)이 주체가 되어 있으면 사망이 왕 노릇하는 것이고, 주님의 생명이 주체가 되어 있으면 은혜(의)가 왕노릇 한다고 한다. 반면에 다음에 언급할 ‘다스린다’는 말은 다른 사람 위에서 권세를 가지고 타를 조정하거나 군림, 혹은 타를 인도, 안내하는 지도력을 발휘하는 말로서, 왕 노릇과 다스림은 의미가 전혀 다른 말임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계20:6b절(~천년을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을 다시 정리하면,
‘천년’~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즉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왕 노릇’~ 자유와 기쁨과 평강을 마음껏 누린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최상의 영적인 차원은 내 안에서 펼쳐지는 부활생명 상태로서, 롬14:17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정의인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해석과 일치한다(성경이 성경을 해석함). 천년을 왕 노릇하는 것은 미래의 천년 왕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적 실존적 삶을 말하는 것이다.
B. 다스림에 대하여~
다스림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3가지로 나와 있으나, 마지막 하나(에피)는 완전 오역이다. 우선은 의미파악을 먼저하고, 나중에 오역을 다루겠다.
1) 인도하다, 다스리다(헤게오마이 #2233)
<히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마2:6>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2) 다스리다. 인도하다(프로이스테미 #4291)
<롬12:8>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딤전3: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딤전5:17>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
3) ~위에, 가까이, 연결하여, 가까이에, 근처에( 에피 #1909)
on, over, close by, at
에피는 주요하게 많이 쓰이는 전치사다. 특히 열매적 개념으로서의 연결을 나타내는 의미로 자주 쓰이며, 다스린다는 내용을 가진 동사가 아니다. 그런데 몇 군데에서 ‘다스리다’로 번역이 된 것은, 아마도 ‘~위에’라는 말보다는 좀 더 부드러운 번역이 되니까 유사한 의미로서 ‘다스림’으로 번역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추론해본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으로서 다른 오해를 불러오는 완전한 오역임을 알아야한다. 왜 다스린다는 말이 분명히 있는데 에피라는 전치사를 사용했겠는가? 그냥 다른 말인 것이다. 그러므로 에피 전치사의 원전 뜻을 살려야 마땅하다. 이의 용례를 살펴보자.
<히10: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에피) 큰 제사장이 계시매
=>(수정) 또 하나님의 집에(에피/ at, over)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계20:6>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에피/ on) 권세가 없고~
on such the second death hath no power
=>(수정: 영어 번역대로)~ 그들(첫째 부활한 자) 위에 둘째 사망의 권세가 없고~
<계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에피, over) 권세를 주리니 (~to him will I give power over the nations/ 만국의 위에 있는 권세 )
여기서 만국(에드노스)는 대부분 이방인으로 번역됨. 따라서 이기는 자들에게는 이방인을 접목(on) 시키는 직임인 복음의 제사장 권세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복음 전파는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전도자가 삶을 살아내는 생명력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 따라서 kjv 성경의 over보다 close by가 더욱 적합함
=>(수정)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일을 지키는 그에게 이방 삶(복수)을 연결하는(close by) 권세를 주리니~ (하나님과 이방인을 중매하는 권세: 목자나 사도적 직임)
특히 본문(계2:26)은 나형제께서 천년왕국을 주장하는 근거로 삼는 구절이기도하다.
다시 정리한다면 계20장에서는 ‘천년동안 왕 노릇하다’와, 계2;26절의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에서의 두 곳을 근거 삼아서 천년왕국을 주장한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대로, ‘왕 노릇’이라는 말의 의미 자체도 누구 위에서 다스린다는 뜻이 아니고, 계2장의 다스림이라는 표현도 원전에는 에피라는 전치사로서 오역임을 알수 있다.
‘천년동안~’에서 원전에는 없는 ‘동안’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어떻게 천년동안 왕 노릇 한다는 말을 가지고 ‘천년왕국’이 있다고 가설을 세울 수 있는지 의아스럽다. 그것은 누차 지적하는 바이지만,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도 어긋나고, 왕 노릇이라는 말의 의미에도 어법상 안 맞는다. 지금 나형제님은 왕 노릇이 마치 세상 왕처럼 권세를 가지고 이방인들 위에서 다스리고 군림하는 뜻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생전에 헐벗고 못살던 원통함을 그 천년왕국에서 회포를 풀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해명한다고 한다.
이 대목이 이해가 가시는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은, 나를 포기하며 낮추어서 형제를 섬기라고 한 것이다. 나의 이익을 버리고 섬김과 양보와 나눔을 생명 삼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이지, 나의 권리를 내세우며 타의 허물을 질타해서 철장권세를 휘두르는 것이 하나님 나라가 아닌 것이다.
2. 이스라엘 12지파를 심판하리라.
<마19: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헬/크리노)
<눅22: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헬/크리노) 하려 하노라
<kjv> That ye may eat and drink at my table in my kingdom, and sit on thrones judging the twelve tribes of Israel.
A. 심판이냐? 다스림이냐?
우선 붉은 색의 단어를 보면, 같은 단어(크리노)인데 번역을 다르게 했다. 크리노는 심판하다, 분별하다, 결정하다를 의미하는 동사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의 다스리다는 오역이다. kjv가 judging으로 잘 증명해주고 있다. (이런 분별을 위해 원전은 매우 필요한 것이다. 원전을 참고하지 않는다면 전혀 엉뚱한 거짓말에 속아도 모를 것이다.)
B. 세상이 새롭게 되어? ...(천년왕국이 아님)
이 단어는 팔링게네시아-라는 한 단어이다. 의미는 중생(거듭남)이다.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팔링게네시아)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그러므로 재 번역하면 ‘거듭남’ 안에서(in)이다. 그렇다 영이신 주께서 앉으신 보좌는 어디인가? 거듭난 자의 심령이 아닌가? 거기가 참 하늘이다. 그런 자들은 이제 소정의 훈련을 거쳐서(6째날 동안), 일곱 째 날의 사람인 주의 사도가 되면 이스라엘 12지파를 심판 할 것이다. 심판이라 함은 각자가 신봉하는 믿음이 진리냐 비진리냐를 판단하고 분별시키는 복음의 제사장 사역을 말하는 것이다.
C. 이스라엘 12지파
이스라엘은 믿는 모든 사람들을 상징한다. 혈통적 유대인을 의미한다는 발상은 성경을 너무 모르는 무식이며 억지다. 12지파는 구원받은 성도를 말한다. 야곱(성령)이 네 아내(교회)를 통해 얻은 자들이 12지파 아닌가? 그러므로 성령에 의해 온 세상에서 거듭난 성도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마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행13:23>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롬9:6~8>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의 비유와 상통하는 말)
물론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문맥에 따라 육적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마19장에서의 이스라엘은 믿는 자들의 모임인 곧 교회를 말한다. 하나님의 관심은 온 땅의 사람들의 구원에 있다. 야곱이 거듭나서 이스라엘이 되듯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존재들을 부르셔서 빛의 아들들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요 뜻이다. 성경을 읽을 때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조망해야 옆길로 새지 않는다.
같은 맥락으로 계7장의 12지파도 당연히 육적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의 총회인 교회를 말한다. 문자적인 야곱의 12지파가 하나님에게, 그리고 매 시대를 살아가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육적인 이스라엘은 이미 BC 722년에 북조 10지파는 앗수르에 의해 지구에서 소멸되었다(하나님의 의도로). 그리고 남조 2지파는 AD 70년에 로마에 의해 사라졌다.
그것이 천년왕국이라는 시한 속에서 다시 회복된다는 말은 전혀 영적인 말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이미 역사적으로도 지파 개념이 사라진지 오래다. 그런데 굳이 각 지파 별로 만 이천 명씩 추려서 십사만 사천의 복음 전파자를 세우는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육적인 12 지파에 그렇게 미련과 애착을 갖고 경영하실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도 사단이 무저갱에 갇힌 상태에서, 비리비리하고 연약한 존재들인 일반 백성(?)으로 구원하시기 위해서인가? (생각해 보시라,) 나형제의 주장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분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계7장의 12지파는 본래의 야곱의 12지파가 아니다. 단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가 빠지고, 요셉과 레위가 끼어들어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많은 영적인 시사성이 숨겨져 있는데, 이것은 간과하고 문자적인 야곱의 12 지파를 강조하다보니,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경을 역사로 해석하면 구원을 놓치게 되어 있다. 역사는 구속사를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이 이 땅 위에 펼치신 경륜이지만, 이것을 자기 속에서 변화되는 영적인 구원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구약과 신약은 모두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이어야 한다. 주님의 탄생과 십자가가 저 밖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나의 생명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이에 대한 나눔은 다음 편에 보다 더 상세히 할 것이다.)
성경에 없는 천년왕국을 가르치거나 믿는 자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보라! 이제는 잘 때가 아니요, 깨어 일어날 때이다. 진노의 섞은 포도주, 뱀의 독주에서 깨어 정신을 차리시라! 이 말씀을 읽는 자들은 이제 스스로 공부해서 잠에서 깨어나시라. 술 취하지 마시라. 통 채로 들이키시는 것을 멈추시라. 분별없이 마시지 말라. 그리고 집에서 문을 잠그고 오래도록 묵상하시라...
첫댓글 왕권은 다스림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왕이요 다스리시는 왕권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섬김으로 다스리셨음을 기억합니다 그분은 진정한 다스림을 가르치시고 가셨습니다
주님의 제자라면 마땅히 섬기며 사랑으로 다스려야하겠지요
아멘
우리는 이생에서 천국을 맛보며 살다가 종말이 속히 올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천년을 왕노릇 하는자들에 관한 설명이 계시록21~22장에 있음을 나형제는 절대로 깨닫지 못할것 입니다 22장처럼 살아서 생명나무를 많이 배출하다가 종말을 맞아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