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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싸나 명상의 심리학적 고찰 2 - 김정호
III.1.2. 위빠싸나 명상의 역할
위에서 기술한 세 가지 존재의 실상은 어느 정도 머리로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심정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수 있다. 이것은 그만큼 과학적 앎과 우리의 체험적 앎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물리세계의 실상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적어도 서구에서, 상당한 시일이 걸렸으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체적 정신적 탄압을 당했고 목숨까지 잃었다. 이제 와서는 비록 우리의 체험적 앎과는 다르지만, 지구가 둥글다거나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등의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에는 심지어 보이지 않는 소립자 세계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주장들도 별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같이 물리세계의 실상에 있어서는 저항감 없이 과학자들의 주장이 수용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과학적 앎과 체험적 앎과의 괴리나 상치가 있어도, 즉 불일치가 있어도 별로 개의하는 일도 없고 일상생활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마음의 세계의 실상에 있어서는 최근에 심리학 등의 과학이 발전했으나, 여전히 일상생활의 체험에 따른 앎, 즉 개별적인 '나'가 있다는 믿음이 더 지배적이다. 여기에는 마음의 과학의 발전이 아직 일천하여 충분히 설득력 있게 '나'가 없음 (無)을 (혹은 더 정확하게는 비어있음 (空)을) 증명하지 못하는 것도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6)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증명하기도 어렵거니와 반증 (falsification)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영혼과 같은 개별적인 실체에 대한 질문이 반증가능하지 않으므로 애당초 마음의 과학의 질문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음의 과학은 아직 그러한 질문에 대해서는 있다 없다 가부간의 답을 하지 않고 그러한 질문을 회피하고 있다고 해야겠다. 이밖에도 전통적인 교육과 대다수 종교적인 가르침이 개별적인 영혼이나 '나'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심어주는데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러하기는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대로 마음의 과학에서는 개별적인 영혼이나 '나'를 상정하지 않고 여러 요소들의 상호작용으로 인간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과학자가 객관적인 연구를 하듯이, 체계적인 수행을 하여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위빠싸나 수행은 자신을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심리학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정보처리가 객관적인 세계를 있는 그대로 처리한다기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 및 심리적 특성이 개입하여 만들어 경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세계에 대한 앎은 감각 및 지각의 수준과 인지적 수준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둘의 구분은 깊이 들어가면 엄밀하게 나눠지지 않을 수 있으나, 대략 다름과 같은 예로써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마음'이라는 글자를 본다고 할 때, 이 글자의 모양을 보는 것은 감각 및 지각의 수준이다. 이 글자는 흑과 백을 구분할 수 있는 시각능력만 있으며, 한글을 몰라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고 이것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등의 판단은 한글에 대한 언어적 지식과 세상경험 등이 있어야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파악 수준이 인지적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감각 및 지각의 수준에서 볼 때, 우리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을 느끼는 등의 작용을 통해 세계를 구성한다. 세계로부터 다양한 자극 혹은 에너지 (전기적이든, 화학적이든)가 우리 몸의 수용기에 도달하면 각 수용기는 자신의 특성에 따라 에너지 변환을 하며 최종적으로는 뇌에서의 작용을 통해 특정한 색, 소리, 냄새, 맛, 촉감 등을 경험한다. 다시 말하며, 색, 소리, 냄새, 맛, 촉감 등은 세계에 있다기보다는 우리 마음 혹은 마음의 현상에만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감각을 통해 알고 있는 세계는 바로 우리 마음이 만든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것이다. 인지적 수준에서 볼 때도, 특정한 대상을 보고 그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좋다-나쁘다, 예쁘다-밉다, 귀하다-천하다 등의 판단은 어느 만큼은 계통 발생적으로 획득한 요소가 작용했을 수 있지만, 상당한 부분은 후천적으로 문화적 영향과 개인적인 경험으로 획득한 요소가 작용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할 때, 그 경험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적인 요소들의 작용이 이미 개입한 것으로, 혹은 '위-아래로의 처리 (top-down processing)'가 이루어진 것으로 그 경험을 일으킨 대상 자체는 아닌 것이다.7)
위와 같은 우리의 세계에 대한 경험의 특성은 우리 자신, 즉 내부세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자기 자신의 신체적 및 심리적 특성/현상도 우리 자신의 내적 요소들이 개입하여 구성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의 자기지각이론 (self-perception theory) (Bem, 1972)은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을 할 때에도 다른 사람에 대하여 판단할 대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추론과정을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 주며, 그로 인한 여러 가지 부적절한 자기이해의 예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위빠싸나 명상은 자기 자신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훈련이다. 자기 자신과 세계는 자신의 마음을 통해서 경험되지만, 그 경험은 마음의 여러 가지 요소들에 의해 착색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위빠싸나 명상을 통해 마음의 작용/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즉 마음챙김 하는 훈련을 하므로, 위-아래로의 처리를 점차적으로 명확하게 체험하게 되며, 더 나아가 적어도 획득된 위-아래로의 처리가 차츰 감소하게 되어8) 자기와 세계를 차별심 없이 보는 힘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서 얻어지는 앎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해서 아는 앎과는 달리, 앎의 과정에서 자신의 습관적인 정보처리의 방식에 변화가 오게 되므로 앎과 함이 둘이 아닌 진정한 체험적 앎이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자기와 세계의 실상에 대한 통찰적 앎을 얻게 되는데, 여러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아라한 (阿羅漢, Arahat)의 경지에 들어 진정한 해탈을 이루게 된다고 본다. 그러나 이 부분은 개인적 체험의 영역으로 적어도 아직은 체계적인 과학적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봐야 하겠다.
III.2. 위빠싸나 명상의 응용적인 효과
위빠싸나 명상의 수행은 위와 같이 거창한(?) 혹은 탈세속적인 목표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적인 혹은 세속적인 생활에서도 많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온다.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는 마음의 정화라고 요약해 볼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몇 가지로 나누어서 다루도록 하겠다.
III.2.1. 주의훈련
아래에서 설명하는 주의훈련은 그 밖의 여러 가지 위빠싸나 명상의 응용적 효과에 관여한다. 인간의 일상생활을 정보처리라고 볼 때, 주의는 매우 중요한 정보처리의 요소이다. 무엇을 생각하거나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이나 행동에 주의가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부적응적인 생각이나 행동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그것은 상당부분 주의의 문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1. 주의집중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자칫 산만해지기 쉬운데, 위빠싸나 명상을 통해 지금-여기에 집중하여 마음챙김 함으로써 주의의 훈련이 이루어지게 된다. 호흡마음챙김의 경우에 호흡감각에 주의를 집중하며 동시에 다른 생각 등이 떠오르면 알아차리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이 포함되므로, 주의집중력의 증가를 가져오고 주의집중의 대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처리가 가능해진다. 또한 일상생활에서의 마음챙김은 동적인 상황에서의 주의집중력과 정확한 정보처리를 증가시킨다. 특히 일상생활에서의 마음챙김은, Norman &Shallice (1986)의 주의감독체계 (Supervisory Attentional System; SAS) 모형으로 볼 때, SAS를 강화시키는 과정을 포함한다고도 할 수 있다. SAS는 특정 행위를 수행할 때, 필요한 일련의 하부행위단위들이 다른 하부행위단위들에 간섭당하지 않고 적절하게 연결되도록 해주는 기능을 한다. SAS가 충분히 기능하지 못할 때, 일상생활에서의 여러 가지 행위실수 (action slip)가 나타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행위실수에는, 중년의 주부가 공부하는 아들을 위해 밥을 비벼 주다가 다 비비고는 왜 비빈지 모르고 혼자 먹어버리거나 자동차 시동을 끄지 않고 차문을 잠가버리거나 하는 덜 심각한 것에서 부터 공장에서 기계를 잘못 조작하여 사고를 일으키는 심각한 경우까지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Reason, 1979; Sellen &Norman, 1992). 따라서 위빠싸나 명상은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 행위의 실수를 줄이며 나아가 심각한 산업재해를 포함한 업무상의 중대한 실수 등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2. 탈습관화 및 탈자동화: 지금-여기에 깨어있기
호흡마음챙김에서의 호흡이나 일상생활 마음챙김에서의 이 닦기나 걷기 등과 같은 행위는 변화가 많지 않고 반복적이고 단순한 자극을 제공하기 때문에 주의를 계속적으로 유지하기가 어렵다. 사람을 포함한 유기체는 새롭고 특별한 자극에 대해서는 주의가 가고 (정향반사, orienting reflex) 흥미가 있으면 계속 주의를 유지할 수 있지만, 단순하고 반복적인 자극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주의를 줄 수 있으나 곧 관심을 잃어버리고 주의를 주지 않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심리학에서는 습관화 (habituation)라고 한다. 따라서 위빠싸나 명상을 통해서 탈습관화, 즉 습관화의 경향성을 극복하고 항상 지금-여기에 깨어 있는 훈련이 이루어지게 된다. 또한 습관화 경향성의 극복은 위에서 설명한 행위실수를 감소시키는 데도 기여한다.
인간의 정보처리를 자동처리 (automatic processing)와 통제처리 (controlled processing)로 나누기도 한다(Schneider &Shiffrin, 1977; Shiffrin &Schneider, 1977). 자동처리는 연습을 통해 숙달된 처리로서 정신용량을 거의 요구하지 않고,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의식할 수 없으며, 한번 획득되면 변형하기가 어렵고, 적절한 자극만 주어지면 원하지 않아도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통제처리는 의도적으로 이루어지고, 의식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사용될 수 있다. 한때는 통제처리로 이루어지던 처리가 연습을 통해 숙달되어 자동처리가 된 것을 자동화라고 한다. 앞에서 인간의 정보처리에서 위-아래로의 처리를 설명했다. 이러한 위-아래로의 처리는 대부분 자동화된 처리이다. 특정 사건, 사물, 사람 등을 접하게 되면 우리는 거의 즉각적으로 나름대로의 인식구조를 동원해 판단을 하게 된다. 이러한 판단은 우리의 선입관이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서 종종 오해와 갈등을 일으킨다. 한편 위빠싸나 명상의 수행은 일상생활에서 마음의 작용/현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훈련이다. 어떠한 처리에 대해서도 또렷이 깨어 알아차림 한다. 따라서 위빠싸나 명상에는 탈자동화의 과정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탈자동화는 인지적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지각적 수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Deikman, 1966, 1971). Deikman (1966)은 명상에 지각적 자극을 조직하고, 제한하고, 선택하고, 해석하는 심리적 구조의 탈자동화가 포함된다고 한다. 이러한 심리적 구조를 통해 세계를 지각하는데, 이러한 세계는 위에서도 논의한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세계는 아니며, 게다가 위-아래로의 자동화된 처리로 해서 특정한 면이 부각되거나 다른 면은 축소 또는 무시된 것이다. 따라서 위빠싸나 명상을 포함한 명상의 수행과정에서 세계가 지각적으로 새롭게 경험되기도 하는데 (예, 사물이 더 밝아 보인다거나 신비롭게 보임), 이러한 현상은 명상을 통한 탈자동화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탈습관화 및 탈자동화와 관련된 위빠싸나 명상의 효과로 일상생활에서 항상 새로울 수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에 대해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무료해 하거나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평소에 위빠싸나 명상을 하고 있다면 어떠한 일도 항상 새롭다. 그저 가만히 호흡만 관찰하여도 심심하지 않다. 지금-여기에 기존의 틀을 가지고 위-아래로 처리하지 않고 (혹은 관념으로 대하지 않고) 비판단적으로 마음챙김할 때 매 순간이 새로울 수 있는 것이다. 사람, 사물, 상황 등이 항상 새롭다.
참고적으로 조용히 앉아서 호흡마음챙김을 할 때에 초보자들은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간다고 느끼며 끝날 때 안 되었나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이것은 지금-여기에 마음챙김 하지 못하고 마음이 미래에 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관념이다. 실재는 항상 지금만이 있다. 마음이 과거의 정보처리 결과나 미래의 가능한 정보처리를 다룰 때 시간이 있다. 마음이 지금-여기에 있을 때, 거기 시간은 없고, 따라서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간다거나 너무 빠르게 간다는 생각은 일어나지 않는다.
III.2.2. 심리적 성장 (삶의 질의 향상): 자가상담/자가심리치료
위빠싸나 명상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로 보는 훈련이기도 하므로, 자기 자신을 좀더 잘 이해하게 되며, 그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습관적인 그릇된 사고 및 행동체계로 부터 벗어나게 되어, 심리적으로 성장되게 된다. 자기와 세계 (특히 자신이 대하는 사람들)를 객관적으로 보게 됨으로써 더 이상 무익하게 자신을 괴롭히거나 세계를 자신의 욕망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게 된다. 점차적으로 비집착의 삶을 살게 되며, 금강경에서 표현한 '머무른 바 없이 마음을 내라'가 되는 것이다. 집착 없이 산다는 것이 무미건조하게 방관적으로 산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Barbieri (1996, 6)의 비집착 (non-attachment)과 분리 (detachment)의 구분을 인용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 비집착은 분리와 혼동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인가로부터 분리되려고 할 때,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냉담하게 떨어져 있게 되고 관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억압하고 그것을 다루고 싶어 하지 않는다. 비집착은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일들이 자연스럽게 오고 가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감정이 일어나는 대로 주의를 줌으로써 수용하지만, 그것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위빠싸나 명상의 위와 같은 특성은 최근에 심리치료의 한 방법인 현실치료 (reality therapy) 내에서 위빠싸나 명상의 마음챙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움직임을 가져오고 있다 (Barbieri, 1996). 현실치료에서는 삶에서 개인의 통제력과 책임을 중시하는 통제이론 (control theory)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러한 통제력의 발휘에서 올바른 선택이 중요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선택이론 (choice theory)으로 불리기도 한다. Barbieri (1996)는 이러한 통제이론에 마음챙김이 수용되면 통제이론의 유용성이 증가한다고 본다. 즉, 마음챙김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비판단적으로 알아차림 함으로써, 공포와 같은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직면함으로써 갈등을 멈추고 몸과 마음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게 된다. 실생활에서의 작은 예를 들면, 평소 같으면 거의 즉각적으로 분노를 터뜨리는 상황에서 그 상황에 대한 마음의 움직임이 마음챙김 됨으로 해서 필요한 경우에 적절하게 분노를 표현할 수도 있고 혹은 다른 더 나은 반응을 선택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작은 분노의 경우에는 알아차림 즉시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돌아보면, 종소리에 조건화된 Pavlov의 개처럼, 특정 단서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특정한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챙김을 통해, 더 이상 Pavlov의 조건화된 개처럼 종소리에 즉각적으로 침 흘리듯이 반응하지 않고, 행동과 사고에 더 많은 자유를 얻게 된다. 이것을 통제이론으로 표현하면 삶에 있어서 개인의 통제력이 증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빠싸나 명상을 통해 점차적으로 '나'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즉, 좋든 나쁘든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자기의 상 (욕망, 가치관, 기호, 반응양식 등)을 고정시키는 (혹은 화석화시키는) 대신 자신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지금-여기에 깨어서 생활함으로써 심리적으로 더 성장하게 된다.
III.2.3. 상담 및 심리치료에서의 효과
1. 내담자를 위한 효과
위에서 위빠싸나 명상을 통해 심리적 성장이 가능함을 설명하였다. 이것은 상담 또는 심리치료와도 관련을 갖는다. 과거에는 상담이나 심리치료가 심리적 또는 행동적 어려움을 갖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었으나, 최근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인간적 성장을 도와주는 일도 하고 있다. 이것은 최근의 의학이 질병이 발생한 후에 치료하는 것에서 질병을 예방하는 것을 중시하게 되는 경향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상담과 심리치료에서 정상인의 인간적 성장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되고 있는데, 그중에 위빠싸나 명상과 같은 명상 프로그램은 자기성장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위빠싸나 명상의 경우 이끄는 이와 함께 집단상담으로 진행할 수도 있고, 그것에 바탕을 두고 스스로 수행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위빠싸나 명상을 꾸준히 수행함으로써 점진적으로 자기와 세계에 대한 통찰이 증가하면서, 여러 가지 개인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인간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위빠싸나 명상은 자기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상담가 혹은 심리치료가가 되어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해 가는 것으로 일종의 자가-상담 (self-counseling) 혹은 자가-심리치료 (self-psychotherapy)라고 할 수 있겠다.
위빠싸나 명상은 일반인들의 자기성장을 위한 자가-상담 또는 자가-심리치료의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나름대로 심리적 또는 행동적 어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있다. 위빠싸나 명상 뿐 만 아니라 여러 유형의 명상이 상담이나 심리치료와 많은 공통점을 갖는다는 논의는 명상이 서양의 심리학과 정신의학에 알려지면서부터 다루어져 왔다 (예; 김기석, 1978; 윤호균, 1970; 1991; 정창용, 1974; 1984; 1993; Fromm, Suzuki, &De Martino, 1977; Shapiro, 1980). 여러 명상 중에서도 특히 위빠싸나 명상은 여러 상담 혹은 심리치료의 기법들과 관련을 갖는다. 여기서는 위빠싸나 명상을 상담 혹은 심리치료의 대표적인 방법인 정신분석, 인지치료, 및 인본주의치료와 관련해서 논하고자 한다.
정신분석에서는 자유연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의식으로 나오게 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이러한 자유연상과 치료자의 해석의 도움을 통해 내담자는 자신의 무의식적 갈등에 대한 통찰 (insight)을 얻게 되며, 실행 (working through)를 통해 그 갈등을 해결하게 된다. 실행의 과정에서 무의식적 갈등을 여러 장면에서 검토하게 됨으로써 점차적으로 고통스러운 기억과 정서를 더 적은 불안을 가지고 직면할 수 있게 되고 그것들을 좀더 합리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된다. 위빠싸나 명상에서는 지금-여기에 마음챙김 할 때 (특히 조용히 앉아 호흡마음챙김을 할 때) 여러가지 생각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림하게 되는데, 이러한 알아차림의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된다. 그러나 위빠싸나 명상에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기 스스로 통찰을 얻는 점이 다르며, 여러 가지 자신의 내면적 특성을 알아차림하며 다시 지금-여기의 마음챙김 대상으로 돌아오는 과정 내에 여러 가지 갈등들의 해결과정이 포함된다. 여기에는 체계적 둔감화 (systematic desensitization)의 기제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체계적 둔감화는 공포증과 같이 특정 대상에 대하여 과도한 불안을 보일 때 그 원인을 그 대상과 불안반응의 조건화로 보고 그 연결을 해체하는, 즉 탈조건화 (deconditioning)시키는 방법이다. 구체적으로는 심신을 이완시키는 조건을 만든 후에 점진적으로 공포를 일으키는 대상을 도입함으로써 그 대상에 대하여 더 이상 공포반응을 보이지 않게 한다. 위빠싸나 명상에서 심신이 편안한 상태에 있게 되므로, 이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기억, 정서, 생각 등은 체계적 둔감화의 과정을 겪게 된다. 이때 부정적인 상념들은 위빠싸나 명상을 수행하며 마음챙김의 힘이 커짐에 따라 그 강도가 약한 것에서 강한 것으로 점진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인지치료는 인지행동치료라고도 하는데, 행동의 변화를 위한 학습심리학의 원리를 적용할 뿐만 아니라 인지체계의 변화에도 초점을 둔다. 인지치료에서는 장애적인 행동의 원인을 사람들의 부적절한 인지체계에서 찾는다. 즉, 사람들은 사건 자체보다는 그것에 대한 해석이 부적응적이라서 고통을 당한다고 본다. 따라서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인지체계에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부적응적인 행동이나 심리적 고통을 치료한다. 이러한 입장은 위빠싸나 명상에서 사람들이 자기와 세계에 대한 올바른 통찰을 얻음으로써 자유로워진다는 입장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인지치료에서는 치료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내담자가 자신의 부정적인 인지체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지만, 위빠싸나 명상에서는 치료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통찰을 통해 자신의 인지체계에 변화를 가져온다. 또한 인지치료에서는 특정한 부적응적인 행동이나 심리적 장애에 초점을 두고 그것과 관련된 인지체계만을 변화시키려고 하는데 비하여, 위빠싸나 명상에서는 인지체계 전반에 걸친 변화를 가져온다.
인본주의치료에서는 개인의 성장과 자기실현의 타고난 경향성을 중시하며, 정서와 동기 등 자신의 내면에 대한 알아차림을 증가시키고자 한다. 인본주의치료의 대표적인 것으로 Rogers의 내담자중심치료를 들 수 있는데, 여기서는 내담자에게 적극적을 개입하여 해석하여 주거나 지시하지 않고, 내담자의 자신의 내면에 대한 알아차림을 명료하게 하는 것을 도와준다. 치료자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름대로 비판하거나 분석하지 않는다. 단지 내담자에게 공감적인 자세로 경청하며 내담의 내적인 느낌을 좀더 명료하게 하는 것을 도와준다. 이러한 기법은 위빠싸나 명상에서 비판단적으로 자신의 의식경험을 알아차림 하는 것과 유사하다.9) 단지 치료자 없이 혼자 행하는 것이 다르다. 이런 측면에서도 위빠싸나 명상은 자가-상담 또는 자가-심리치료라고 부를 있을 것이다. 즉, 마치 치료자가 내담자의 이야기를 비판단적으로 경청하듯이 위빠싸나 명상 수행자는 자기의 일부가 자기의 또다른 부분이 하는 이야기 (즉, 의식경험)를 비판단적으로 알아차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비판단적으로 들어주는 치료자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통찰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것처럼, 위빠싸나 명상을 통해 자기 자신의 내면을 비판단적으로 마음챙김 함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통찰하고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
각 상담 또는 심리치료의 기법은 나름대로의 장점과 단점을 갖는다. 무엇보다도 각 기법은 내담자의 특성에 따라 그 적용의 적합성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내담자에게 적합한 기법이 적용되지 않으면 그 효과가 적거나 혹은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위빠싸나 명상을 포함한 명상 일반에 있어서도 그러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명상을 보통의 정상인이 아닌 특정한 행동적 또는 심리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적용할 때는 더욱 주의를 해야 할 것이다. 명상에 있어서 대개의 경우 여러 심리적 또는 행동적 장애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많지만, 비록 적지만, 일부 연구에서는 명상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보고도 있다 (예; French, Schmid, &Ingalls, 1975; Lazarus, 1976; Otis, 1980). 따라서 적어도 명상을 행동적 또는 심리적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담이나 심치치료의 방법으로 사용할 때에는 내담자의 특성, 증상의 유형과 정도, 치료목표 등에 따라 적절한 명상의 유형이 결정되어야 할 것이며, 상담가나 심리치료가의 적절한 지도하에 명상이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혹은 전통적인 상담이나 심리치료에 한부분으로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포함하여 명상을 수행하도록 할 수도 있다.
2. 상담가/심리치료가를 위한 효과
위빠싸나 명상은 내담자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상담가나 심리치료가를 위한 훈련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내담자의 말에 제대로 주의 집중하는 것은 대부분의 상담가/심리치료에서 요구되는 능력으로 위빠싸나 명상을 통해 강화될 수 있다. 특히 상담가/심리치료가의 개인적, 문화적, 또는 전문적 선입관을 갖지 않고 내담자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경청하는 능력은 비판단적 알아차림을 하는 위빠싸나 명상을 통하여 훈련될 수 있다. 한마디로 좋은 상담/심리치료를 위해 필수적인 올바른 듣기 훈련이 위빠싸나 명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III.2.4. 스트레스 관리
일상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로 괴로움을 받는 스트레스를 타개하는 데에도 위빠싸나 명상은 도움이 된다. 특히 현실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크고 작은 걱정을 다스리는 데도 위빠싸나 명상은 도움이 된다. 즉, 지금-여기에 마음챙김하는 것이, 지금-여기의 마음챙김의 대상 이외의 다른 사념들이 떠오르면 즉시 알아차리고 돌아오는 것이, 그러한 다스림에 쓸모가 있다. 종종 우리는 이미 다 지나가서 더 이상 어쩌지 못하는 과거의 일을 되씹고 앉아 있거나, 아직 불확실한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며 마음을 불행한 상태로 만들고 있다. 할 일을 못하고 있거나 지금-여기서 하는 일에 제대로 몰두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식사를 하면서도 혹은 사무를 보면서도 부정적인 사념에 빠져 있다. 이럴 때는 그러한 사념에 빠지기 보다는 지금-여기에서 할 일 혹은 누릴 수 있는 일에 마음챙김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리고 적당한 때에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직면해서 그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식사를 할 때는 식사에 마음챙김 하여 음식을 먹는 행위와 그에 따른 음식의 맛을 온전하게 경험할 수 있어야 하고, 사무를 볼 때는 사무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사실 현실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방해가 되는 부정적 사념이 식사의 향유와 사무의 능률을 훼방할 어떠한 권한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안다. 문제는 그렇게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데도 학습이, 훈련이 필요하다. 이러한 훈련은 바로 앞에서 설명한 주의훈련이기도 하다. 따라서 위빠싸나 명상이 바로 그러한 훈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위빠싸나 명상을 통해 주의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생길 뿐만 아니라, 마음을 괴롭히는 생각들을 비판단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이들 스스로 물러난다. 마음속의 생각들은 어떤 것이든 관심을 먹고 자란다고 할 수 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사념들을 비판단적인 자세로 떨어져서 바라봄으로써, 이들에게 더 이상 심리적 에너지가 투입되지 않게 되고 따라서 스스로 소멸하게 된다. 원하지 않는 생각을 지우려고 하면 할 수록 그 생각은 더욱 강해진다.10) 없애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없애려는 대상을 마음에 붙들어 두게 하는 것이다. 쫓아가려고도 하지 않고 쫓아 버리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비판단적으로 바라봄으로써 그 대상에 투여되던 과도한 심리적 에너지는 더 이상 투입되지 않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자기 자신의 선입관에 따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평가하며 생활하게 되는데, 특히 자신이 피하고자 하는 것들이 의식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부적절하게 심리적 에너지를 사용할 때는 피로, 과도한 긴장, 및 불안정함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음챙김은 이러한 무익한 싸움을 멈추게 한다. 특히 예리한 마음챙김을 통해 자극과 자극에 대한 반응 (reaction)을 구분함으로써 습관적인 반응이 차단된다. 이러한 구분 그리고 각각에 대한 비판단적인 관찰로 더 이상 그들에게 에너지 공급이 되지 않게 한다.
IV. 결어
본 논문에서는 위빠싸나 명상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먼저 위빠싸나 명상의 방법을 다루었고, 다음으로 위빠싸나 명상에 따른 효과를 살펴보았다. 위빠싸나 명상의 효과는 그 방법과 관련지어 설명하였다. 그 과정에서 위빠싸나 명상의 방법과 효과 간의 관계를 심리학적으로 고찰하였다. 특히 위빠싸나 명상의 효과를 다룸에 있어서는, 위빠싸나 명상을 주로 수행하는 불교에서 전통적으로 추구하고 설명하는 효과 (전통적인 효과)를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적 의미에서 위빠싸나 명상이 주는 효과 (응용적 효과)를 다루었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 다룬 위빠싸나 명상의 효과는 몇가지 점에서 제한점이 있다. 첫째, 전통적인 효과에서는 위빠싸나 명상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 혹은 효과에 대해서는 다루었지만, 위빠싸나 명상을 체계적이고 집약적으로 전통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다양한 경험과 수행의 단계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못하였다. 이러한 경험과 수행의 단계에 대해서는 4-5세기에 인도와 세일론에 생존했던 Buddhaghosa (1976)가 지은 Visuddhimagga (淸淨道論)에서 자세히 기술되고 있다. 이러한 경험과 수행의 단계에 대한 현대적 연구가 요망된다고 하겠다.
둘째, 응용적인 효과에서는 위빠싸나 명상을 통해서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는 다뤄지지 않았고, 주로 심리적 변화에 초점을 두었으며, 정보처리적 관점에서 다루었다. 그간의 명상연구가 주로 신체적 변화를 중점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심리적인 변화에 좀 더 무게를 두었었다. 심리적 변화와 신체적 변화가 독립적이지만은 않으므로, 함께 다루어질 때 위빠싸나 명상의 효과를 좀 더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심리적 변화의 경우에도 정보처리적 관점이외에 신경생리적 접근을 함께 도입한다면, 심리적 변화에 상당하는 신경생리적 변화를 함께 다룰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끝으로 아직 위빠싸나 명상의 수행이 일천하여 체험도 충분하지 못한데 여러가지 앞선 논의를 한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명상에서 추구하는 것이 체험적인 앎이므로, 명상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는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객관적인 앎이 증진될 뿐만 아니라 수행을 통해 체험적인 앎이 함께 열려가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의 논의를 스스로 학문을 하고 수행을 하는데 있어서 강을 건너는데 쓰는 뗏목처럼 삼고자 한다.
주
1) 요즘말로 하면 마음의 작용/현상에 대한 모니터링 (monitoring)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모니터링이 비사변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2) 마음챙김의 관찰에서 '관찰자' 또는 '보는자'를 상정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마음의 특정한 작용/현상을 마음의 또 다른 부분이 관찰한다고 하면 될 것이다. 단, 그 관찰은 비판단적인 관찰이다. 보는자, 관찰자라는 표현이 때로는 괜찮을 수도 있으나,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자칫 특정한 개성을 갖는 또 다른 인격적 존재를 상정할 수 있는데, 이는 바른 마음챙김의 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 마음챙김의 자리는 어떠한 인격적 특성이 붙지 않으며, 어떠한 내용도 갖지 않는 순수의식의 자리하고 해야 할 것이다. 마음챙김은 마음의 작용/현상을 비판단적으로 관찰하고자 하는 마음갖춤새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마음갖춤새에 따라 여러 마음의 작용/현상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3) 참고적으로 마음챙김에 해당하는 빠알리어 원어인 'sati'에 대한 한역은 '염 (念)'인데, 그 글자가 지금을 뜻하는 글자 (今)와 마음을 뜻하는 글자 (心)를 합성한 것이라는 점이 시사적이다.
4) 여기서 우리는 주의집중이 알아차림 혹은 비사변적 관찰과는 구분될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알아차림을 위해서는 주의집중이 긴요하다. 지금-여기의 마음현상에 주의집중 할 수 없다면, 알아차림도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김정호 (1995)는 마음집중과 마음챙김의 관계를 '마음챙김 = 마음집중 + 순수관찰' 이라고 도식적으로 표현하였다.
5) 다른 사물에 있어서도 무아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 눈에는 명확하게 구분되어 보이는 삼라만상이 실제로는 개개의 실체를 갖지 않으며, 단지 생멸하는 요소들의 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6) '없다'는 표현보다도 '비어있다'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렇다. '나'라고 불릴만한 영속적이고 개별적인 놈은 없으나, '나'라고 불릴 만한 현상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나'의 자리가 비었다고 하는 것이 좀더 바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나'가 비어있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나'라는 주장도 나오는 것이다. 붓다다사는 상주론 (常住論; 완전하고 영원한 존재에 대한 믿음)과 단멸론 (斷滅論; 어떤 것도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의 중간이 올바른 불교라고 하며, 무는 단멸론으로 자아가 없다는 것이고 공은 불교의 입장으로 자아가 없이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Buddhadasa, 1993, 79). 그러나 이 부분의 설명에는 언어적 표현의 한계가 많이 나타난다고 해야겠다. 실제적인 체험이 매우 절실히 요구되는 부분이다. 참고적으로 이와 관련해서 불가에서는 진공묘유 (眞空妙有)라는 표현이 있다.
7)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인식과 독립적인 세계를 상정할 수는 있어도, 그것에 대해 한마디라도 언급한다며, 이미 그 세계는 우리의 인식이 개입한 세계이다. 결국 존재와 인식의 문제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동양의 불교나 도교의 가르침에 잘 나타나 있으며, Kant의 인식론의 기초와도 상통한다. 현대에도 철학과 심리학의 구성주의 (contructivism)에서 이러한 주장을 발견할 수 있다 (김정호, 1995a).
8) 이러한 설명은 명상이 인지적 해석의 억제를 가져온다는 주장 (Naranjo &Ornstein, 1971)과 상통한다. 참고적으로 과거로부터 도를 닦는다는 것은 새로 얻는 공부가 아니고 버리는 공부라고 하였다.
9) 참고적으로 이러한 비판단적인 관찰은 Husserl의 현상학에서 언급하는 판단중지와 관련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판단중지라는 것도 여러 가지 선입견이나 인위적 가설로 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하며, 그럼으로써 순수의식을 통해 본질에 대한 직관을 하게 된다고 본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다루지 못하지만, Husserl의 현상학과 위빠싸나 명상의 마음챙김을 비교하는 것은 흥미로울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비교와 관련해서 설기문과 김기주(1996)를 참고하면 좋겠다. 이 연구는 위빠싸나 명상과 관련이 있는 선 (禪)과 Husserl의 현상학에 대해 비교하며 상담과의 관련을 논하고 있다.
10) 이러한 현상을 Wegner 등은 정신통제의 역설이라고 부르고 있다 (Wegner, 1994; Wegner, Erber, &Zanakos,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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