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이 돼야 바닷속은 제대로 차가워지고 동해 북쪽 바다에는 명태가 몰려온다. 동해 북부의 생선인 명태가 1990년대 이후 남한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명태 알을 고춧가루와 소금으로 가공한 명란젓의 인기는 여전하다.
명태 알에 관한 기록은 효종 3년(1652) 10월 8일치 ‘승정원일기’에 명태어란(明太魚卵)으로 처음 등장한다. 명태 알로 담근 명란젓은 ‘증보산림경제(增補山 林經濟*1766년)’에 명태어해(明太魚醢)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1850년경) 에는 북어식해(北魚食醢)로 나온다.
우리의 명란젓을 근대적으로 상품화한 것은 일본인들이었다. 1893년 일본이 자국 어부들을 위해 조선의 바다 사정을 기록해 발간한 ‘조선통어사정(朝鮮通漁事情)’ 에 명란젓이 등장하는데 “일본인들 입맛에 잘 맞는다”고 적고 있다. 강원도 양양에 일본인이 세운 하쿠치 상점(桶口商店)은 ‘멘타이코(明太子)’, 즉 명란젓을 1907년경부터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다.(明太子開發史*2008년). 이후 양양과 부산, 함경남도 원산에서 생산된 명란젓은 멘타이코라는 이름을 달고 시노모세키항을 통해 일본 전역에 팔려 나간다.
멘타이코 인기 때문에 명태 주산지인 함경남도에는 1937년 명란 가공공장이 599곳(1937년 8월 6일자 조선일보)이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명란 마요네즈’(1936년 7월 19일자 조선일보) 같은 요리가 개발되거나, 명태 알을 원료로 MSG같은 인공조미료 개발을 시도할 정도(1936년 12월 25일자 조선일보)로 인기가 높았다.
명란젓은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었다. “명란젓을 날로 먹을 때는 성한 걸로 골라서 툭툭 찍어 놓고 움파를 잘라 곁들여 먹는데 물컹물컹해도 보통 맛이 씩씩합니다. 날것을 싫어하는 이는 명란젓을 잘라 넣고 이것으로 간을 맞추어 움파와 두부점과 같이 찌개를 끓여도 좋습니다. 또 한 가지는 명란 한 자루씩 물에 흔들어 가는 줄에 꿰어 달고 얼말려 어란처럼 되거든 쓸어서도 먹습니다.”(1931년 1월 30일자 동아일보)
일제강점기에는 명란젓이 워낙 흔해 ‘정월 지난 알젓(명란젓)은 마루 밑의 개도 아니 먹는다’ 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명태가 여전히 많이 잡히는 북한에서는 지금도 명태알전이나 명태알계란찜, 명태알젓찌개, 명태알밥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명란젓 요리를 먹는다. 하지만 명태가 귀해진 1990년대 이후 한국 식탁에서는 조금 낯선 음식이 되었다.
<모셔온 글: ‘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칼럼기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