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어서)
세 가지 아름다운 뿌리인 탐욕없음, 성냄없음, 지혜(어리석음없음)를 가진 욕계 과보심으로 태어나면, 바로 뒤에 생기는 바왕가 마음은 재생연결식과 같은 종류의 마음이다. 바왕가 마음은 ‘틈이 없는 조건’과 ‘빈틈없는 조건’으로 재생연결식에 의해서 조건 지어진다.
세 가지 아름다운 뿌리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지혜가 계발되면 그 생에서 깨달음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틈이 없는 조건’과 ‘빈틈없는 조건’ 때문에 태어날 때의 잠재력들은 순간에서 순간으로 계속 전달된다.
바왕가 마음 외에, 육문에 부딪히고 있는 대상을 경험하는, 오문인식과정과 의문인식과정에서 생기는 마음들도 있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행복과 슬픔을 경험하지만, 재생연결식이 생기지 않았고, 이 마음이 뒤따라 생기는 마음들, 즉 바왕가 마음들 및 오문인식과정과 의문인식과정에서 생기는 마음들에 의해서 계승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런 것들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란 하나의 마음 다음에 다른 하나의 마음이 간격 없이 이어지는 마음들의 끊임없는 연속이다.
여러 가지 인식과정들에서 자체의 기능을 하는 마음들은 질서 정연하게 하나가 생긴 다음에 다른 하나가 생긴다. 오문인식과정에서 제일 먼저 생기는 마음인 오문전향식은, 오문인식과정이 일어나기 직전에 생기는 마지막 바왕가 마음에 의해서, 틈이 없는 조건과 빈틈없는 조건으로 조건 지어진다.
오문전향식은 바왕가 마음이 경험하는 대상과는 다른 대상을 경험한다. 오문전향식은 다섯 가지 감각기관[眼耳鼻舌身] 중의 하나에 부딪힌 대상[色聲香味觸]으로 향하고(轉向하고), 그 다음에는 그 대상을 경험하는 전오식*10) 중의 하나가 뒤따라 생긴다.
*10) 전오식(前五識):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이 각각 하나의 선한 과보심과 불선한 과보심의 쌍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식과 이식이 되풀이해서 생기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생긴다. 그리하여 우리는 ‘틈이 없는 조건’과 ‘빈틈없는 조건’이 여전히 계속됨을 안다.
안식이나 이식 등의 전오식은 지속하지 않고 사라지면서, 대상을 받아들이는 다음 마음인 ‘받아들이는(삼빠띳차나) 마음’이 생기는 조건이 된다. 이 마음은 대상을 조사하는 다음 마음인 ‘조사(산티라나) 마음’에 의해서 계승되고, 이는 다시 대상을 결정하는 마음인 ‘결정(옷타빠나) 마음’에 의해서 계승된다.
결정 마음이 대상을 결정한 다음에, 아라한이 아니면, 불선한 자와나 마음들이나 선한 자와나 마음들이 생긴다. 인식과정에는 대상을 급히 통과하는(速行, 자와나) 기능을 하는 자와나 마음들이 보통 일곱 개 있다.
자와나 마음들 다음에는 그 자와나 마음을 대상으로 하는 과보심인 ‘여운(따다람마나) 마음(자와나의 대상을 대상으로 하는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각 마음은 앞의 마음들에 의해서 틈이 없는 조건과 빈틈없는 조건으로 조건 지어지고, 같은 방법으로 각 마음은 차례차례 다음 마음을 생기게 하는 조건이 된다.
오문인식과정이 끝난 후 바왕가 마음들이 이어진 다음에, 그 대상은 의문인식과정에서 생기는 마음들에 의해서 경험될 수 있다. 의문을 통해서 인지되는 대상으로 향하는 의문전향식은, 의문인식과정의 첫 번째 마음이다.
그 다음에, 아라한이 아니면, 불선심 혹은 선심인 자와나 마음들이 뒤따르고, 이어서 여운 마음들이 생길 수 있다. 과정이 다르면 변경할 수 없는 특정한 순서에 의해서 다른 마음들이 생긴다. 그것들은 하나 다음에 다른 하나가 간격 없이 일어나며, 이것은 ‘틈이 없는 조건’과 ‘빈틈없는 조건’에 의해서 조건 지어진다. 예를 들어서, 오문인식과정에서 결정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의문인식과정에서 의문전향식이 생기지 않는다면, 자와나 마음은 생길 수 없다. 이는 특정 마음을 생기게 하는 자아가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경험되는 대상이 형색이나 소리 등의 물질이면, 그것은 17번의 마음순간 동안 지속한다. 그렇지만 17번의 마음순간도 엄청나게 짧다. 형색과 소리를 동시에 경험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대상들을 경험하는 몇 개의 인식과정들이 생긴 것이다. 위빳사나 지혜가 계발되지 않은 사람은 마음이 사라지는 것과 후속 마음이 생기는 것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감각대상들을 경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 경험들이 덧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띠빳타나(사띠 확립 수행. 위빳사나 수행. 사념처 수행)를 통해서만 실재들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깨닫는 지혜가 계발될 수 있다. 우리는 법을 들을 기회가 있는 인간계에 태어났지만 그런 기회는 드물고, 배운 대로 수행하기도 쉽지 않으므로, 수행할 기회가 왔을 때 열심히 수행하여, 실재들이 무엇인지 알도록 노력해야 한다.
틈이 없는 조건과 빈틈없는 조건이라는 관계들은 윤회하는 동안 끊임없이 계속 효력을 발휘한다. 마음들의 끊임없는 연속으로 인하여 과거생이 현생에게 조건이 되었고, 같은 이유로 현생이 미래생에게 조건이 될 것이다.
각 마음은 모두 완전히 사라지면서 뒤의 마음에게 조건이 된다. 전생들에서의 성향들과 기호들이 매순간 이어져서 지금 이 순간까지 축적됐다. 사라진 마음은 모두 바로 뒤에 생기는 마음에게 조건이 되기 때문에, 기술과 지식과 지혜를 축적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일어났던 과거의 경험들이나 사건들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틈이 없는 조건’과 ‘빈틈없는 조건’ 때문이다.
과거에 행한 선행과 악행인 업들은, 순간에서 순간으로, 생에서 생으로 축적되었고, 나중에 적절한 시기가 오면 그것에 합당한 과보들을 만들어낸다. 과보들을 만들어내는 업 때문에, 즐겁거나 괴로운 대상이 감각기관들을 통해서, 인식과정들에서 생기는 마음들에 의해 경험된다.
우리는 즐겁거나 괴로운 대상들을 보는데, 안식은 업에 의해 만들어지는 과보심이다. 안문인식과정에서 안식 앞의 안문전향식(眼門轉向識)도 안식의 조건이다. 그것은 안식에게 ‘틈이 없는 조건’과 ‘빈틈없는 조건’으로 조건이 된다. 안문전향식이 없다면 안식은 생길 수 없다.
조건들로 말미암아, 다음 마음에 이어지면서 마음들은 생기고 사라지기를 끊임없이 계속하고 있으며, 우리는 다음 순간에 무엇이 나타날지 전혀 알지 못한다. 우리는 갑작스럽게 극심한 통증이나 사고로 괴로워해야만 된다는 것에 놀랄 수도 있다. 윤회 속에서 항상 생기는 틈이 없는 조건과 빈틈없는 조건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놀라는 것이다.
재생연결식은 업에 의해서 생기는 과보심이다. 업은 우리로 하여금, 선행하고 바른 견해를 계발하는데 알맞은 조건들 혹은 알맞지 않은 조건들이 있는 특정 환경 속에서, 특정한 부모로부터 태어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재생연결식의 앞의 마음은 전생에서의 마지막 마음인 죽음의 마음이다. 틈이 없는 조건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마음 다음에 간격 없이 재생연결식이 생긴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생기고 있는 틈이 없는 조건을 이해한다면, 이번 생의 마지막 마음이 다음 생의 첫 번째 마음에게 조건이 되는 것도 알 것이다. 죽음의 마음이 인간계 등의 선처에서 생겼더라도, 악처에서의 재생연결식에 의해 계승될 수도 있다.
아라한의 지위를 얻을 때까지는 이번 생 다음에 다른 생이 있을 것이다. 아라한의 죽음의 마음은 재생연결식에게 틈이 없는 조건이 아니다. 윤회를 계속하고 있는 한, 깨달음의 첫 번째 단계를 깨달은 수다원의 단계를 성취하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악처에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
『상윳따 니까야』**는, 아라한의 지위가 얻어질 때까지 재탄생하는 수고로움과 고통을 당함을 다음과 같이 일깨워주고 있다.
부처님께서 우다야(Udaya)한테 사흘 동안 계속해서 탁발하러 가셔서 밥을 얻으셨다. 세 번째 날 우다야는 되풀이해서 오신 것에 대하여 부처님을 비난했다.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되풀이해서 사람들은 밭에 씨를 뿌리고
되풀이해서 구름의 왕은 비를 뿌리네.
되풀이해서 농부들은 밭을 갈고
되풀이해서 곡식은 땅에서 영글어 가네.
되풀이해서 거지는 구걸하러 다니고
되풀이해서 보시자는 보시하네.
되풀이해서 보시를 많이 한 보시자는
되풀이해서 천상에 태어나네.
되풀이해서 소치기는 우유를 짜고
되풀이해서 송아지는 어미 소를 찾네.
되풀이해서 사람들은 고달프게 일하며
되풀이해서 어리석은 자는 모태에 들어
되풀이해서 태어나고 또 죽으니
되풀이해서 사람들은 시체를 무덤으로 나르네.
태어나지 않는 도를 얻은 이
위대한 통찰지를 얻은 이는
다시는 되풀이해서 태어나지 않네.”
그러자 부처님 말씀에 감동한 우다야는 삼보에 귀의하고 부처님의 재가신도가 되었다.
** 각묵 스님, 『상윳따 니까야 1』(우다야 경 S7:12), 초기불전연구원, 2009, 575쪽.
첫댓글 사두사두사두
사두 사두 사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