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기차여행과 같다고 하거늘~
역들이 있고, 경로도 바뀌고
간혹 사고도 ?
요즘 매스컴에선 연일 롯데의 있는자들의 진흑탕 싸움!
얼마를 더 있어야 하는지?
80여개 회사도 모자라서~
한편에선 국해의원들의 성추행!
푹푹 찌는 여름밤에 나의 이러저런 지난 애기가 났지 않은감?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기차를 타게되고,
그 표를 끊어주신 분은 부모님
우리는 부모님들이 항상
우리와 함께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러나 부모님들은..
어느 역에선가 우리를 남겨
두고 홀연히 내려버립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은 승객들이 기차에 오르 내리며,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나와
이런저런 인연을 맺게 하면서~
지금의 이글을 읽어주는
친구와도 인연이 됐지 않은가 하면서~
또한 그러면서
많은 이들이 여행 중에 하차하여,
우리 인생에 영원한 공허함과 함께~
휴가철인 요즘 기차 여행을 생각하며
시간을 44년전의 여름으로 돌아가보자?
학창시절 친구들과 여름 바캉스여행!
그때! 친구들과의 우정어린 여행 이야기
기억을 더듬으며 내 젊은날을 되돌아 보려한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전에 학교 동창들과
세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위해
11명의 악동들은 방학식날 저녁에 각자 배낭을 하나씩 메고 용산역에 모였다.
통키타 메고 온친구도 있고.
그당시
젊은이들의 꿈이였던 야전(야외전축)을 가지고 온 친구도 있었다.
용산역에서 부산진까지 가는
완행열차에 몸을실은 11명의 악동들 물론 자리를 먼저 잡기위해 몇명의 선발대는 서있는 기차의 창문을 열고 침투해서 8명의 좌석을 확보 하였다.
저녁 8시쯤 완행열차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철길위로 미끄러지듯 달린다.
모처럼 친구들끼리만 하는 장거리 여행이라 모두들 들떠 있었다.
기차 바닥에 앉기도 하고 일행들끼리 기타를 치며 노래도 부를수 있었다.
기차가 수원역을 지날때쯤 일행중 한명이 지나는 홍익회 아저씨에게 소주와 마른 오징어를 샀다.
젊은 혈기에 소주를 한잔씩 마시고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달리는 기차안은 삼복 더위와 함께
밤의 열기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천안쯤 지날 즈음에
여객전무와 차장이 차표 검사를 한다고 준비 하라고 핸드 마이크로 안내를 한다.
창가에 앉아있던 나도 바지 주머니에 잘 넣어 두었던 기차표를 꺼내어 검표준비를 했다.
그런 와중에도 노래는 계속되고 있었다.
"지렁이 껍질벗겨 그녀의 목에걸고,~~"
잘 기억은 안나지만 그당시 유행하던 가수의 노래를 개사해서 부르며 ~
"조개껍질 묶어그녀의 목에 걸고~"
분위기는 한참 고조되었다.
와중에 친구 한명이
장난으로 차표를 쥐고 있던 내손을 쳤고.
내 소중한 차표는 차창밖으로 위치이동을 해버렸다.
그때까지도 별 걱정이 없었다.
차장이 와서 표를 보여 달라고 해서 사실대로 얘기를했다.
증인도 있으니
인정 해줄줄 알았는데 안 통한다.
과태료를 내야 한단다.
금액이 열차표의 세배쯤 되었다.
사실대로 얘기하고 사정을 했지만 인정은 하지만 안된단다.
친구들에게 피해를 줄수도 없어서 조용히 차장을 불러 달리는 기차 제일 뒤쪽으로 갔다.
거기는 문은 열려있고 쇠사슬만 걸려있었다.
다시한번 분명히 차표는 구입했으니 인정해 달라고 사정을 하였다.
안된다고 단호히 거절을 한다.
흥분한 나는 차장의 몸을 껴안으며
아저씨랑 여기서 같이 뛰어 내리겠다고 하니 당황한 차장아저씨는 안간힘을 쓰고 버티며 알았으니 참으라고 애원을 하신다.
그리고 그 아저씨는 나에게 특급열차표를 한장 주셨다.
부산에 도착해서는"대전역에서 가락국수를 먹다 기차를 놓쳐서 완행열차를 타고 왔다"고 말 하란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열차는 드디어 부산진역에 도착하였다.
여기서부터 개찰구를 어떻게 통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았다.
친구들보다 앞서서 출구로 나갔는데 검표를 하던 역무원이 내가 내민 표를 보더니
나의 손을 잡고 역장실로 데리고간다.
역장이 내게
학생이 왜 무임승차를 했느냐고 물으시고,부산에는 무슨연고가 있느냐고 물으신다.
나는 사실대로 다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부산에는 친구가 있어 왔노라고 대답 했다.
잠시 나를 바라보시던 역장님께서는 학생이니 용서 하신다면서 여행 잘하고 무사히 집에 가라고 격려를 하신다.
이렇게 해서 44년전 광안리의
여름의 추억이 시작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