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초고] 한미동맹을 묻는다 ㅡ맹목적 신뢰에서 성숙한 주권으로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한미동맹을 굳건히 믿어온 세대의 논리는 틀리지 않았다. 1950년, 이름도 몰랐을 이역만리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린 미군 청년들이 있었다. 전후 폐허 위에서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동안, 주한미군이라는 물리적 존재는 분명 안전판이 되어주었다. 냉전 구도 속에서 한미동맹은 단순한 군사 협약이 아닌,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신뢰의 상징이었다.
그 믿음은 합리적이었고, 그 세대의 선택은 당시의 맥락에서 옳았다. 이 글은 그 믿음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만 묻고 싶다. 그 동맹의 전제였던 '신뢰'와 '가치'가 지금도 유효한가?
우리가 알던 미국이 맞는가
한미동맹을 지지해온 논리의 핵심은 단순한 힘의 논리가 아니었다. "미국은 법치와 자유의 나라"라는 가치 판단이 그 바탕에 있었다. 바로 그 전제에서 출발해 몇 가지 최근 사례를 살펴보자.
첫째, 사법 주권의 문제다.
주한미국대사관이 한국 수사 기관에 서한을 보내 특정 기업인의 출국금지 해제를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실 여부가 완전히 확인되기 전이라도, 이것이 사실이라면 외교 채널을 통한 '요청'이 아니라 사법 절차에 대한 직접 개입이다. 법치를 가르쳐준 나라가, 법치를 편의에 따라 무시하는 모습이다.
둘째, 동맹의 격(格)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는 2기 출범 후 1년 3개월이 지나서야 주한미국대사를 지명했다. 1년 넘는 공백 자체가, 동맹을 대하는 태도를 말해준다. 지명된 미셸 박 스틸은 한국계라는 상징성으로 포장되었지만, 실상은 2024년 낙선 이후 트럼프의 충성 지지자에게 주어진 보은 인사에 가깝다.
더 심각한 것은 그가 한국 국내 특정 극우 세력과 연계되어 있다는 우려다. 주한 대사는 양국 관계를 조율하는 외교관이어야 한다. 한국 내 특정 정치 세력의 편에 선 대사는, 외교관이 아니라 내정 간섭자다. '한국을 이해하는 대사'가 오히려 한국 민주주의에 더 정밀하게 개입할 수 있다는 역설, 이것이 우리가 환영 대신 경계해야 할 이유다.
그리고 우리에겐 뼈아픈 기억이 생생하다.
2025년 조지아주 현대차 공장에서 한국인 기술자들이 이민단속국(ICE)에 연행된 사건을 기억하는가. 미국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수조 원을 투자한 동맹국의 기술자들이 수갑을 찬 채 연행되었다. 파트너라면 최소한의 사전 협의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파트너의 언어가 아니다.
셋째, 전시작전권 문제다.
7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군대는 전시에 자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갖지 못하고 있다. 수십 차례 이전 합의가 번복되었다. 최근 주한미군사령관은 이 이전을 "정치적 편의주의"라 칭했다. 한국군의 주권적 지휘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발언이, 동맹의 언어인가?
동맹은 진화해야 한다. 우리가 사랑했던 한미동맹의 진짜 가치는 '미국을 따른다'는 것이 아니었다. 자유, 법치, 상호 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함께 지킨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맹의 파기가 아니라, 동맹의 성숙이다.
독일을 보라. 나토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자국 안보를 독자적으로 강화하고, 미국의 요구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외교적 자율성을 갖추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미일동맹 안에서 방위력 증강과 독자 외교 노선을 동시에 추구한다. 이것이 미국을 버리는 것인가? 아니다. 이것이 진정한 동맹이다.
맹목적 추종은 신뢰가 아니다. 스스로 설 수 있는 나라만이 대등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핵우산'이라는 개념도 바뀌었다
"북한의 위협이 있는 한 미국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여전히 강력하다. 그러나 이 논리도 이제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북한의 ICBM 기술이 고도화된 지금, 미국 본토가 직접 위협받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을 위해 핵전쟁의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회의적이다.
이것은 반미 주장이 아니다. 미국의 전략 전문가들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이다. 진정한 안보 논의는 이 불편한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진짜 동맹으로 가는 길
이미 미군기지의 존재자체가 안보의 위협이 되고 있다. 기술안보시대에 과거의 지리적 전선개념은 더이상 유효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동맹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더 강한 동맹을 위해, 우리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다.
하나, 전작권 전환의 실질적 추진. 이것은 반미가 아니라 정상적인 주권 국가의 당연한 권리다.
둘, 사법 외교 주권의 명확한 원칙 수립. 어떤 나라의 요청이든, 우리 법치의 원칙은 외부 압력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셋, 독자 안보 역량 강화. 기술 안보, 사이버 안보, 독자적 억제력 확보. 이것이 우리가 투자해야 할 진짜 안보다.
한미동맹을 지켜온 세대에게 감사한다. 당신들의 믿음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서 있다. 그러나 자식이 어른이 되면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나란히 서야 하듯, 대한민국도 이제 나란히 설 때가 되었다. 그것이 진정으로 한미동맹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제국은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주권과 자존은 영원해야 한다. 미국의 뜻이 곧 우리의 뜻인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의 뜻을 세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