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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명당’엔 대박 비밀 있다 |
꿈·풍수·주인 친절 ‘3박자 조화’… 영험한 입소문 매출 급등 우편주문 쇄도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
신기한 일이다. 왠지 그곳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물론 이 같은 기대가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과학적이고 통계학적인 근거가 깔려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여타 판매점과 달리, 그곳에서는 135회(7월 2일 추첨)의 로또 추첨을 통해 적잖은 사람이 대박을 터뜨렸던 것.
6개의 행운 구슬이 펼치는 확률 게임에서 두 차례 이상 성공한 업소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로또 마니아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업소 주인장에게도 1등 못지않은 부와 명예가 주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이른바 ‘명당(明堂)’. 그것도 ‘좌청룡 우백호’를 갖춰 후대에 삼정승을 내린다는 천하의 묏자리보다도 더 귀한 대접을 받는 게 요즘의 ‘로또 명당’이다.
그동안 명당은 대개 풍수지리가 이르는 좋은 묏자리나 집터를 말해왔다. 그러나 21세기 한국 사회가 원하는 명당은 후대까지 내려갈 필요도 없이 당대에 부귀와 영화를 가져다주는 곳이다. 이 같은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통로로 ‘로또’가 단연 일등이다.
135회를 거치는 동안 1등을 배출한 업소는 600여 판매소를 헤아리지만, 2회 이상 배출한 판매소는 겨우 50곳 남짓이다(표 참조).
통계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로또 1등을 두 번 배출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금세 알아챌 수 있다. 전국의 8700개 로또 판매소가 그간 600여명의 1등을 배출했기 때문에, 겨우 7% 미만의 판매소만이 이 같은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뒤집어 말하면 전국 93%의 판매소는 로또 1등 당첨의 영광을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셈이다.
한 주에 1등이 5명씩 나온다고 가정하고 전국 판매소에 차례대로 1등이 돌아간다고 계산하면, 두 번째 1등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2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단 2년 만에 로또 1등을 두 번 이상 배출한 업소는 쉽게 설명하기 힘든 ‘영험함’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바로 그러한 믿음이 명당이라는 개념으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때문에 ‘로또 명당’으로 소문난 판매점들은 대체 어떤 곳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서울에는 17개 업소가 로또 1등을 두 번이나 배출한 영광을 안았고, 단 1개의 업소만이 1등 3회 배출이라는 금자탑(?)을 이룩했다. 기자가 처음으로 찾아간 로또 명당은 신촌사거리, 그랜드백화점 정문 앞에 자리한 평범한 ‘신문가판대’였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화와 로또 판매가 결합된 1평 남짓한 매장. 올해 72세의 고령인 양동임 할머니는 좁은 공간에서 능숙한 솜씨로 로또 업무와 잡다한 것을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2004년 가을(91회)과 겨울(102회) 연달아 로또 1등이 터지면서 대박 복권매장 대열에 오른 신흥 명당자리.
“자식들이 무슨 로또 판매냐고 반대도 많았는데, 내가 기어이 해야 한다고 고집 피운 셈이지. 초반에는 주간 매출이 1000만원도 채 안 돼서 후회도 많이 했다니까.” |
꿈·풍수·주인 친절 ‘3박자 조화’… 영험한 입소문 매출 급등 우편주문 쇄도 |
1000원짜리 한 장을 팔면 판매소에는 세금을 제하고 5%가량의 이문이 남는다. 주당 1000만원(50만원 수익)은 영세 사업자들이 생각하는 마지노선.
이것도 임대료와 인건비를 고려하면 그리 수지맞는 장사는 아니다. 그러나 전국 매장의 평균 매출은 주당 6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신촌의 이름 없는 가판대는 첫 1등이 나오자 곧장 2000만원으로 상승하고 두 번째 1등이 나오자 3000만원으로 수직 상승했다고 한다.
서울 4호선 쌍문역 지하 복권판매소
“글쎄요.땅속의 기운이 이쪽을 통해 상승하나 보죠?” 서울 지하철 개표소 입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그마한 복권판매소. 0.5평 비좁은 공간에서의 생활이 한눈에도 불편해 보인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하철 역사 매대 가운데 로또 1등 2회 배출 영광을 안은 서울 쌍문역 판매소다. 애당초 풍수전문가들 의견도 지하 시설을 명당으로 거론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1년 반가량 복권을 판매하고 있는 곽성문(36·가명) 씨는 대화를 나누기 어려울 정도로 바쁘게 손님을 맞이했다.
1000원짜리 복권을 하루 200만원어치 팔기 위해서는 하루 14시간씩 일하며 3000~5000원어치씩 구매하는 손님 500여명을 상대해야 한다. 바쁜 와중에도 그는 “꼭 당첨되세요”라며 미소를 건네는 일을 빠뜨리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고객에게 건네는 이 한마디죠. 결국 복권도 사람 장사라고, 주인 보고 오는 것 같아서…. 1000원을 사더라도 친절하게 해드리는 것이 비결이죠.”
서울 강북구 미아동 담배가판대
서울 시내 16개 1등 2회 배출 판매소를 살펴보니 유달리 서울의 변두리 지역에 자리한 곳이 많다. 로또를 두고 ‘서민들의 즐거움’이라고 표현한 근거가 확인된 셈이다.
미아동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삼양시장 입구에 자리한 담배가판대 역시 전통적인 명당으로 설명될 수는 없는 입지였다. 좁은 도로변에 위치해 초행인 사람은 찾기조차 힘들 정도. 하지만 수치가 증명하는 명당이란 명성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발길로 이어졌다.
17년간 이 장소에서 가판대를 운영하고 있는 이병배(50·사진) 씨는 “올 설 연휴에 집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오줌을 누는 꿈을 꾼 뒤 대박이 터졌다”며 연신 미소를 감추지 않는다. 이 씨는 드물게도 1등 당첨자가 자신을 찾아온 경험을 떠올렸다.
미아동에서 수십 년간 2000만원짜리 전셋집에서 힘겹게 생활하다 10억원가량의 당첨금을 수령하게 된 60대 노인이 “내가 1등 당첨자입니다” 하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는 것.
또 한 명의 1등 당첨자는 종로에서 식당 배달 일을 하는 아주머니였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5억원짜리 집을 사서 행복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도 서민인 만큼 이들의 행복이 남다른 기쁨으로 다가왔다고 고백한다. “결국 로또를 사야만 이 같은 실낱 같은 기회라도 주어지는 것 아니냐”며 서민들이 로또 열풍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