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4-15회
우두령-석교산-푯대봉-밀목재--감투봉-삼마골-삼도봉-해인·중미 갈림목
20220717
1.야생화를 벗하여 걷는 길
무주에서 거창으로 이어지는 도로에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버스가 오를 수 없다고 하여 빼재에서 동엽령 산행이 산행 당일날 우두령에서 삼도봉 산행으로 변경되었다. 2020년 11월 21일 이 구간 산행을 한 뒤 1년 8개월만에 다시 이 구간을 산행한다. 그때는 초겨울의 쓸쓸함이 가득했지만 이번에는 여름날의 무성한 수풀과 여름풀꽃들이 산길을 빛나게 해 주었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와 경북 김천시 구성면 마산리의 경계를 이루는 우두령, 질매재라고도 불리는 곳에서 남쪽으로 내리벋는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걸었다. 백두대간 능선으로 들어가니 숲 속에 갇혀서 밖이 내댜보이지 않는다. 오직 나무와 수풀과 풀꽃을 보며 걸었다. 그 길은 오직 나 자신과 대화하고 자연을 벗하여 걷는 명상의 길이다. 특히 풀꽃들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서 걸었다.
이번 산행은 여름의 풀꽃들과 벗하여 걷는 행복을 맛보았다. 흰여로, 하늘말나리, 일월비비추, 꿩의다리, 바위채송화, 기린초, 어수리, 동자꽃 등 수많은 풀꽃들이 산길을 환하게 빛내 주었다. 그 꽃들과 인사 나누며, 지난 시절 이 꽃들과 처음 만나 이름을 배워 그 이름을 불러주던 추억을 떠올렸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 첫 만남의 시간은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한다. 그 시절의 배움의 자세는 지금 흩어져 버렸다. 풀꽃들만이 아니라 이 구간에는 물푸레나무 군락지가 여러 군데 있다. 표범 무늬를 한 물푸레나무가 산길에서 힘겨워하는 산객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였다. 물푸레나무는 옛날 서당선생님들이 회초리로 사용하였으며 현대에는 야구방방이 재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 구간은 경북 봉화 선달산의 물푸레나무 군락지에 비하여 그 수량이 훨씬 많아 보이는데, 그 크기와 굵기 등의 품새는 선달산 물푸레나무에 미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구간에서 조망하는 장소는 석교산, 푯대봉, 삼도봉 직전의 암봉, 삼도봉이라고 생각한다. 석교산에서는 남쪽으로 내리벋는 백두대간 능선과 수도산을 조망할 수 있다. 푯대봉 오르막에서는 백두대간 북쪽 능선과 방금 걸어온 석교산을 조망할 수 있으며 푯대봉에서는 백두대간 남쪽 능선과 각호산과 민주지산에서 삼도봉으로 내리닫는 산줄기를 조망할 수 있다. 삼도봉에서는 박석산-백수리산-대덕산-초점산-덕유산 백암봉으로 벋어내리는 산줄기를 분명하게 조망할 수 있는 전망지이다. 그럼에도 이번 구간 최고의 전망지로서는 삼도봉 바로 옆에 있는 암봉을 꼽겠다. 이 암봉에서는 북동쪽 석교산과 푯대봉에서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서쪽으로 배리벋는 백두대간 산줄기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 다만 삼도봉에서 조망할 수 있는 북쪽의 석기봉, 민주지산은 조망할 수 없는 것은 아쉽다.
이 구간에서 힘겨웠던 곳은 석교산 오름길, 푯대봉 오르는 위험한 암릉 지대, 밀목재에서 감투봉 가는 오르막길, 삼마골재에서 삼도봉 오르는 길, 산삼약수터에서 삼도봉주차장 내려오는 길이 가장 어려웠다. 그리고 시간이 늦은 듯하여 삼도봉주차장에서 내려와 해인마을까지 경보 수준으로 걸은 것이 다리에 무리가 생겼다.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오르려고 하면 심폐 기능이 약한 산객에게는 언제나 힘이 든다. 또 내려가는 길도 무릎이 약한 산객에게는 오르막 오르는 것과 똑같이 어렵다. 늘 그 모양 그 속도로 산행하니 언제나 꼴찌를 면치 못한다. 지난 2021년 11월 21일 초겨울에 이 구간을 산행했을 때 5시간 18분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여름날의 습도 때문이었는지 산행 거리 15.7km, 산행 시간 5시간 43분이 걸렸다. 이 구간을 다시 산행할 기회가 찾아올까? 재회의 기쁨을 누리기를 기약한다.
2.산행 과정
충청복도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 방향
충북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로 이어지는 우두령길은 도려명이 상촌로이다.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마산리 방향. 우두령에서 마산리로 이어지는 우두령길은 도로명이 마산로이다.
우두령은 소의 등을 뜻하는 우등령이 구전되다가 변했다고 하며 질매재라고도 이른다고 한다. 우두령 남쪽은 낙동강, 우두령 북쪽은 금강, 우두령은 낙동강과 금강의 수계의 발원지라고 한다.
삼도봉까지 10.8km
한 송이는 아직 피지 않고 꽃망울이 부풀어 올라 있다.
석교산은 오른쪽으로 200m 위에 있다.
대덕산이 중앙 뒤에 보인다. 그 오른쪽에 삼도봉, 그 오른쪽에 뾰족한 산봉이 석기봉인 듯.
앞의 오른쪽 산봉은 푯대봉, 맨 뒤 산줄기의 오른쪽 표쪽 솟은 산봉은 각호산, 중앙에 구름이 살짝 가린 산봉은 민주지산, 맨 왼쪽 뾰족하게 솟은 산봉은 석기봉일 것이라 추정한다.
중앙 뒤에 대덕산, 그 앞 왼쪽에 백수리산, 맨 오른쪽에 민주지산, 그 왼쪽 뾰족 솟은 산봉이 석기봉, 그 왼쪽 두 번째가 삼도봉, 그리고 맨 왼쪽 뒤에 수도산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
오른쪽 뒤에 수도산이 희미하게 솟아 있는 듯.
푯대봉까지 550m. 이곳에서부터 푯대봉까지 가파른 암릉 구간이 위험하고 어렵다.
오른쪽에 희미하게 솟은 산봉이 수도산인 듯.
방금 거쳐온 석교산이 앞에 있다. 왼쪽 멀리 솟은 산봉이 황악산일까?
앞의 산봉을 중심하여 오른쪽 뒤가 석기봉, 왼쪽 뒤가 백수리산인 듯.
앞의 산봉 오른쪽 뒤가 석기봉, 중앙 오른쪽 산봉이 민주지산인 듯.
왼쪽 뒤에 석교산이 당당하다.
앞 산봉 오른쪽 뒤 둥두렷한 산봉이 삼도봉, 그 오른쪽 뾰족한 산봉이 석기봉, 맨 오른쪽 솟은 산봉이 민주지산인 듯.
한 송이만 피었고 세 송이는 꽃망울이 잔뜩 부풀어 있다.
산에서 더덕을 캐던 부부가 길손에게 작은 더덕 두 뿌리를 한사코 주져서 받았다.
왼쪽 아래 50m지만 그냥 통과한다.
푯대봉-밀목재 중간 지점인 듯. 이곳에서 푯대봉이나 밀목재는 모두 1.5km 거리에 있는 듯.
중앙 왼쪽에 보이는 산은 석기봉인 듯.
이 안부를 올라섰다가 내려가면 밀목재가 나온다.
밀목재 표지는 이정목 뒤쪽에 붙어 있다.
밀목재에서 가파른 급경사를 오른 뒤에 오른쪽으로 돌아 왼쪽으로 돌아나가면 감투봉 표지목이 나온다.
감투봉 이정목에는 누군가 밀목봉이라 적어 놓았다.
왼쪽에 삼도봉이 가까이 보인다. 오른쪽 뒤는 석기봉인 듯.
왼쪽 뒤에 대덕산, 중앙에 박석산이라고 추정한다.
왼쪽은 경북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로, 오른쪽은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황룡사로 내려간다.
삼도봉 0.8km, 가파른 경사 뎈를 따라 올라간다.
호젓한 길에 자태가 곱다.
중앙에 백수리산, 그 앞에 박석산, 중앙 맨 뒤에 대덕산, 그 오른쪽에 초점산, 맨 오른쪽에 덕유산이 구름 속에 있다.
중앙에 푯대봉, 그 오른쪽에 석교산, 왼쪽 앞에 감투봉, 푯대봉 오른쪽 뒤는 황악산일까?
중앙 뒤는 수도산인 듯
백수리산이 중앙에, 앞에 박석산, 백수리산 뒤 왼쪽에 대덕산, 그 오른쪽에 초점산, 그 오른쪽 뒤에 덕유산이 가늠된다.
중앙 뒤에 덕유산과 덕유능선이 구름 속에 숨어 있다. 그 왼쪽에 초점산, 그 왼쪽에 대덕산, 그 오른쪽 앞에 백수리산, 앞쪽에 솟은 산봉은 박석산인 듯.
앞은 삼도봉, 오른쪽 뒤는 석기봉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전북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 경북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가 경계를 이루는 삼도봉의 옛 이름은 '화전봉'(花田峰)이라고 한다. 충북 영동군, 경북 김천시, 전북 무주군의 우의를 다지기 위한 ‘삼도봉 만남의 날 행사’는, 지역 간 대립을 털어내고 공동발전을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지역감정이 전국적으로 격화하던 1989년부터 매년 10월 10일 삼도 접경인 민주지산 삼도봉(1176m) 정상에서 열린다고 한다. 1990년에는 우정과 화합의 표시로 3마리 용과 거북이, 해와 달을 상징하는 기념탑(2.6m)과 제단을 삼도봉 정상에 세웠다. 각 시·군문화원이 순번제로 행사를 주관해 열고 있다고 한다.
백수리산 뒤 좌우로 대덕산과 초점산이 보이고, 그 오른쪽에 덕유산은 구름 속에 희미하다.
중앙 오른쪽에 솟은 산봉이 적상산일까?
여기까지 백두대간 능선을 잇고 하산한다. 왼쪽은 경북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해인마을로, 오른쪽은 전북 무주군 설쳔면 미천리 중미마을로 내려간다. 왼쪽 해인마을로 내려간다.
누군가 동자꽃이 피어 있는 줄기를 꺾어 약숫물에 넣어 두었다.
삼도봉오미자농장이 첫 번째 분지, 세 번째 분지 모양으로 보이는 곳이 해인리마을회관이 있는 목적지이다.
왼쪽 뒤에 뾰족한 산봉이 푯대봉, 그 오른쪽 뒤가 석교산이다.
해인마을까지 2.8km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큰 사찰로 구체적인 창건연대와 사찰규모, 폐사에 이르게 된 경위는 미상이며 해인리라는 마을 지명이 이 절로부터 유래되었다. 구전에 합천 해인사가 이 절에서 이전되어 창건되었다고 전하나 확인할 길이 없다. 해인사 절터에는 2단으로 쌓은 석축과 맷돌, 구들장 등이 남아 있다. 해인사지에 이르는 옛 숲길은 오랜 시간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자연생태계가 잘 보전되고 있으며, 특히 다래, 오미자 등이 군락을 이룬 천연 생태박물관이다.
왼쪽에 산불감시초소가 있으며, 윗길은 삼마골재 나들목이다.
모자 조각상이 오른쪽 아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