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훈 동기는 얼마전에 수기사에서 근무하다 복지근무지원단 청간정콘도 영업부장으로 보직을 받았습니다.
병팔이에게 수기사에 동기가 한명 근무한다고 연락이 왔었는데 아직까지 전화 통화를 해보지 못했습니다.
권동훈 동기는 별명이 '감자'였던것으로 기억합니다. 큰 키에 작은 얼굴, 작은 눈에 강원도 사투리가 특이했던
친구입니다. 강원도에서 온 친구들이 있었는데 박재진이나 이종윤이등은 감자라는 별명으로 불리지않았는데 유독
동훈이만 감자라는 별명으로 불리웠죠. 나름 여유있고 급한것이 없었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육하교에서 훈련받을때 3소대 소속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제가 있던 4소대는 인민군이나 괴뢰군으로 불리우던 훈육하사 홍영기하사? (맞나?)에게 무지하게 혼났습니다.
전에 애기했던 김광규의 헌신적인 도움덕분이죠. 당직근무할때마다 혼나서인지 홍영기하사가 근무할때면 으레
빵빠레하겠지 라는 생각에 긴장하고 답답해했던적도 많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것도 참을만하고 견딜만
하더군요. 어느 비 오는날 밤에는 점호장에서 원산폭격에 축구골대 선착순에 이리저리 혼나다가 들어왔는데 그 젖은
머리 간단하게 털어낸 다음에 씻지도 않고 잠자리에 들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어느 순간 생각하지않고 불편함을
의식하지않게 되자 육체적인 고통은 그때뿐이구나 라는 어느정도의 익숙함....그때 그 경험이 군생활 순간순간 느껴지던
고통과 힘든 생활을 이겨내게 했던 원동력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제가 느꼈던 고통은 다른 많은 동기들이 느꼈던
것에 비하면 대수롭지않은 경험이지만서도....
홍영기하사는 89년도에 1사단으로 올라갔다는 애기만 듣고 그 이후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김용덕동기가 알고 있지 않을까요?
1구대장 하시던 정장안 중위는 인터넷 검색해보니까 경남 마산에 있는 한일여자전산고등학교에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계시는
분이 계시던데 연락처를 확인하지못해 아직 연락을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이분은 현재 세팍타크로 협회에서 국가대표 감독을 맡으시는등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우리를 가르치셨던
1구대장님이 거의 맞지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만간에 연락해보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애기하는 권동훈 친구에게도 전화통화해본다는것이 아직까지도 연락을 못 해봤습니다. 어떻게 변해있을까 궁금한 친구입니다. 혹시 우리 동기들, 강원도 감자 권동훈 상사 기억나십니까?
첫댓글 글쎄... 감자라고 하니까 기억이 날듯. 내가 여름휴가때 꼭 가서 알아보마... 한 7개월만 기둘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