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암 기략(이재기)
정민 교수의 번역과 해설의 책이다. 눌암은 저자 이재기의 호이다. 서학을 중심으로 들여다 본 18세기 조선의 정치사와 초기 교회사 자료가 된다. 채제공의 실각과 복권 과정에서 서학을 두고 벌어진 남인 내부의 정쟁과 대립을 양비론적 시각에서 치밀하게 고발한 기록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글을 쓴 저자 이재기의 개인적 주관적 견해임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저술의 객관성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간 학계와 교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문헌의 사료적 가치를 명료하게 밝히고, 불분명했던 수많은 인명의 인적 사항을 정리했으며, 교차 검증의 편의를 위해 원문 영인본을 수록했다.
이재기(李在璣, 1759~1818)
본관은 전주, 자는 선시(善始), 호가 눌암(訥菴)이다. 부친은 한성우윤을 지낸 이명준(李命俊, 1721~1789)이다. 조선 천주교회의 중심이었던 황사영 가문과 사돈을 맺었고, 이승훈 가문과도 가까웠다. 벼슬길은 늦어 37세 때인 1795년에 진사로 식년시에 급제했고, 42세 나던 1800년에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1800년 전적과 병조좌랑, 1801년 지평, 1803년 강원도사, 1805년 장령, 1807년 좌통례(左通禮)와 청송부사, 1812년에는 헌납의 벼슬에 있었다.
이재기는 서학에 대단히 부정적인 입장이었고, 이승훈·이치훈·정약용 등 신서파 중심인물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 결과 신서파가 공적(公敵)으로 선언한 사흉팔적(四凶八賊) 중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기까지 했다. 한편 홍낙안·이기경·강준흠 등 공서파에 대해서도 서학을 배척한 방법과 과정, 그 후의 잘못된 행태로 남인의 적전 분열을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이재기는 《눌암기략》에서 채제공의 편협한 처신과 좁은 성정을 지적하여 남인의 갈등 상황이 악화된 데 채제공의 책임이 적지 않음을 피력했다. 이재기는 채제공과 서학을 중심으로 한 투쟁이 한창일 때는 논쟁에 끼지 못했으나, 문과 장원급제 후 양 진영에서 자신을 회유하고 음해하자 평소의 양비론적 입장을 《눌암기략》을 통해 선명하게 밝히고자 했다.
인터넷 교보문고 소개를 일부 편집했습니다.
첫댓글 오전 병원행, 시원한 곳에서 잠시 이 책을 펴들다 조선중기 진흙탕 정치판을 들여다보니 현재의 모습과 진바없어 한심합니다. 그런데 공간과 사람을 따질것 없이 바로 내 모습이 투영되어 성찰합니다. 삼사일언 신중하고 책임지는 모습으로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