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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년을 미룬 숙제
지난 7월 초, 10여 일의 여수~삼척~울릉도 왕복 항해를 끝내고
그동안 생각만 하였던 무선설비기사 시험에 도전하기로 조심스럽게 결정했다.
그리고 두 달여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10월 6일 토요일에 필기시험을 보았다.
오후 여섯 시 인터넷 발표 정답으로 채점했더니 80여 점 이상의 성적으로 넉넉한 합격권이다.
작년 8월,
삼척~독도 간의 항해와 인연이 닿으면서 우리나라에 단 한 척뿐인 범선 '코리아나'와 바다 벗하여 항해를 거듭하였다.
이왕 바다에 어울릴 바엔 항해와 배에 대해 바른 지식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올해 1월부터는 항해사 공부를 시작했고,
덕분에 한해를 무척 바쁘게 보냈다.
2월부터 8월까지 도전한 해기사 면허 취득 과정으로
- 6급 항해사,
- 소형선박 조종사,
- 4급 선박통신사,
- 3급 선박통신사
등의 항해 관련 해기사 시험을 합격하였다.
해기 면허 취득을 위해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에서 주관하는
해상무선통신사, 전파전자통신 기능사 자격 검정까지 모두 여섯 번의 시험이었다.
그런데 항해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였더니 승선 경력이 있어야 면허발급이 된다고라…
해양수산청에 선원수첩을 신청하고 '코리아나' 호 승선등록을 하고자 하니 이번엔 법정 선원교육이 발목을 잡는다.
국내 연근해를 항해하는 범선의 하급 선원으로는 일주일 과정의 기초안전 교육 하나만으로 충분하지만
사관과 선장으로 승선하려면 받아야 할 교육이 어지간하다.
여유로울 때 미리 받아두고자 꽤 많은 교육을 신청하고 참여하였다.
기초안전
선박 보안 중급, 여객선 기초,
상급안전 구명정, 화재 소화, 응급처치,
ROC(4급 선박무선통신사 과정), GOC(3급 선박무선통신사 과정) 등
모두 여덟 과정 교육을 다섯 차례에 걸쳐 여섯 주간 일정으로 진행하였고 교육 장소는 모두 부산이었다.
원양 항해에 소용되는 3급 선박통신사 면허를 획득하고 나니 목표가 그려진다.
작고한 아버지께서 뱃사람으로 평생 외항선 승선하며 지니고 계시던 1급 선박무선통신사 면허…
나도 이십 대 청춘으로 대학 입학 때는 통신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였다.
이공대 출신으로 기사 자격에 욕심은 있었지만, 언감생심…
산으로 자유를 얻고, 등반으로 자아를 찾고자 포기하였던 국가기술 자격이었다.
그래…, 한 번 시도해 보자.
사십 년 전에 남겨두었던 숙제를 찾았다 생각하고 도전해보자.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무선설비기사 과정이다.
1급 선박 무선통신사가 되기 위한 기반 자격은 전파전자통신 기사였지만,
전파전자통신 분야가 사양 업종이라 공부를 도와줄 학원 강의가 전혀 없다.
할 수 없이 유사 자격인 무선설비를 기반으로 공부하고
합격 뒤에 주요 세 과목 면제를 징검다리 삼아 전파전자통신 기사 자격검정에 도전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그래서 올해 마무리 도전으로 시작한 국가기술자격 검정!
사실 9월에는 여수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범선 경기 항해가 예정되어 있었다.
남은 생에 다시 오지 않을 멋진 항해 기회였지만, 기사 자격 시험 준비하느라 승선을 포기하였다.
매력적인 항해와 바꾼 자격검정인지라 이번 시험은 꼭 합격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덕분에 8, 9월 두 달간은 시험 대비하느라 끔찍이도 책과 씨름하였고 그나마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항해의 리더로 선박을 운항하기까지 앞으로 넘어야 할 파고가 꽤 있겠지만
올 한 해 여러 공부를 통하여 또다시 깨달음을 얻고 목표를 찾았다.
한 달쯤 뒤에 아직 실기 시험이 남아 있다.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바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anchors aweigh…
전두성의 무선설비 기사 자격 취득 도전!
무선설비 기사 실기 평가?
내겐 그리 만만한 공부가 아니었다.
전자회로 도면을 보면서 브레드보드(만능기판)에 IC칩과 Tr, 다이오드, 저항과 콘덴서 등을 꽂아 넣고 점퍼로 연결하는…
그리고 서너 가지 계측 장비를 이용하여 입력 전원과 필요한 신호를 주고 출력 파형을 살핀다.
회로 설계, 조립, 측정, 스미스 차트! 모두 생전 처음 경험하는 일이고 낯선 용어이다.
와이어 스트리퍼, 롱노우즈, 멀티 미터 사용하는 것도 어색하고…
무선설비 기사 자격은 필기시험과 실기 평가 두 가지로 나뉘어 있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뒤에 실기 평가를 하는데 꼭 통과하여야 만이 기사 자격을 획득한다.
올 7월에 시작한 무선설비 기사 필기시험 공부,
디지털 전자회로와 전기 원리의 기반이 없었던 내게 학원은 좋은 배움터였다.
학원은 무선설비 지식에 문외한 나를 포함하여 비슷한 처지의 몇 분을 석 주일 앞서 소집하고
전기, 전자에 대한 기본 원리를 강의한 뒤 개강을 하였다.
나 또한 예년도 기출 문제 해설서를 사고 모바일 앱과 함께 출제 동향과 문제 풀이에 온 힘을 기울였다.
시험은 디지털 전자회로, 무선통신기기, 안테나 공학, 무선통신시스템,
전자계산기 일반 및 무선설비 기준 등의 다섯 과목 100 문항!
석 달 동안 8년 치 출제 문제 2,400개를 다섯 차례 이상 들여다보았고
학원 강의 중에 들었던 문제 해결의 힌트와 꼭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의 설명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애써 노력했다.
덕분인지 80점 이상의 좋은 성적으로 필기시험을 통과하였다.
그리고 두 주일 뒤에 있을 합격 발표도 확인하지 않은 채 필기시험 치른 다음 주부터 실기 평가에 대비한 공부를 시작했다.
학원 수업은 일주일에 사흘, 각 세 시간…
평가는 작업형 실기를 포함하여 세 개의 큰 과제가 있고 각각 40, 20, 40점을 배분한다.
1. 과제는 문답식 필기시험으로 그것에 또 세 개의 문제가 있다.
- 주어진 제목의 회로를 설계하여 그리고 그것에 소용되는 소자의 용량을 계산하는 것,
- 무선설비에 관한 질문의 답을 쓰는 것,
- '스미스'라는 차트를 이용하여 직, 병렬 공진 회로 L, C 소자 용량과 반사 계수를 알아내는 것까지 세 가지의 질문이다.
2. 과제는 스펙트럼 애널라이저라는 계측기 사용 능력 Test
3. 과제는 지급한 소자를 제시한 회로 도면에 따라 만능기판에 조립하고
네 군데 포인트 출력 파형, 전압, 주파수 값을 계측기로 확인하여 파형 그림과 계측 값을 적어 내는 것이다.
이 과제에는 전자 계기 다섯 가지를 사용하며 기기를 다루는 지혜까지 평가에 포함되어 있다.
평가 시간은 첫 과제에 한 시간, 둘째 과제 15분, 셋째 과제 두 시간 45분으로 모두 네 시간을 준다.
(다섯 가지 계기 : 오실로스코프, 전원 공급기, 함수발생기, 레벨 미터, 주파수 카운터)
학원 수업 첫 주를 보내면서 내가 얼마나 모자라고 실기 내용이 생소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회로조립? 마음같이 손이 따라주지 않았고 머리 역시 기억하였다 싶은데 돌아서면 생각나질 않았다.
옆자리 젊은 분들은 내가 소모하는 시간의 절반가량만 사용해도 파형을 확인하는데 나는 도무지 굼뜨기만 하다.
나이 아니면 능력 탓인데, 지공파 반열의 나이를 원망할 수도 없고… 오호통재라!
할 수 없이 다음 주부터는 매일 오전 열 시까지 학원에 등교하였다.
수업이 있는 날은 밤 10시 반까지…, 수업 없는 날은 저녁 여덟 시쯤까지 회로 조립을 반복하고 계측기 사용법을 익혔다.
오가는 지하철에서는 문답식 과제의 예상 문제와 해답을 외었고,
학원에 가지 않은 주말에는 회로도를 그려보며 소자 용량 계산 공식을 외우고 공학용 계산기로 계산 과정을 확인하였다.
필기시험 준비 때처럼 매일 15시간 이상, 한 달을 꼬박 실기 평가 공부에 매달렸다.
다행히 학원 강의가 무척 유용했다.
삼십 년 이상 무선설비와 정보통신 과정에서 시험 준비를 지도한 학원 원장은 족집게 도사다.
이번 실기에서도 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올 것인지 그 전날 예측을 했고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건 믿거나 말거나 시험을 치른 날 결과였고…
그전에 한 달이라는 기간을 학원 실습실에 매일 열두 시간 앉아 회로 꾸미고 측정하는 학원 붙박이 수험생을 격려하고…
잘못 꾸민 회로를 살펴 파형이 나오도록 도와주며 수험생의 능력을 키워주는 원장이었다.
PAM, BPSK, 2 Channel mux, CDMA 등 거의 10개의 회로를 다섯 차례 이상 조립하고 실수를 분석하였다.
오실로스코프로 IC 입출력을 확인하여 점퍼 연결이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는 지혜,
IC 에러를 찾기 위해 소자를 바꿔서 출력 파형을 비교하고, Vcc를 점검하여 정전압 회로의 이상이나 빠트린 접지를 찾아내는 방법,
정전압 회로 소자의 특성 변화로 정격 입력이 안 될 때의 비상 조처 등…
학원 강의를 함께 듣는 분 중에 너덧 분이 시간을 내어 매일 어울려 준 덕분에 정보를 공유하였고,
다른 분의 지혜를 내가 부족한 부분에 접목하여 조금씩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었다.
11월 17일, 드디어 실기 평가하는 날!
일찍 일어나 실기평가에 필요한 개인 지참 도구를 챙긴다.
브레드보드, 규격별로 미리 만들어둔 점퍼, 삼각자, 볼펜, 연필과 지우개,
멀티 미터, 공학용 계산기, 롱노우즈와 와이어 스트리퍼.
그리고 제일 중요한 돋보기…
일찌감치 시험 장소인 한국 폴리텍대학 정수 캠퍼스에 도착하여
먼저 와 있던 학원 동료들과 함께 대기실에 놓인 계측 장비 사용 방법을 확인한다.
시험장 장비와 같은 것인지 아직 확인은 못 했지만 같은 학교 장비이니 대충 비슷하겠지라는 판단에서였다.
학원에서 다루던 장비와 기능은 비슷하지만, 제작 회사가 달라 스위치 등의 자판 위치와 특성 등에 차이가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계측 장비를 다루지 못해 시험장에서 당황하지 않도록 세심히 살폈다.
첫 시간!
아무리 평정심을 가지려 해도 시험에 대한 긴장은 어쩔 수 없다.
감독 지시에 따라 시험 문제지를 펼치는데…
앗! 첫 과제 문제 중의 두 개가 전날 저녁에 해답을 확인한 내용이다.
그 외 스미스 차트 문제는 풀이 순서와 공식 등을 익히 외워서 정리해 두었던 것이고…
두 번째 과제와 세 번째 과제는 하나로 묶어서 세 시간 동안 평가한다.
문제지를 받고 회로조립 과제의 지급 부품을 확인하는데…, 4016, 4051, 7473 IC다.
이건 무조건 2Channel Mux 회로이고 엊그제 마지막 점검 회로로 선택하여 조립하고 파형을 확인하였던 회로이다.
심 봤다!
자신했던 회로조립 과제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점퍼 실수가 있어 조립 회로를 다시 점검하느라 시간을 좀 더 써야 했다.
그 중간에 두 번째 과제인 스펙트럼 애널라이저 측정 평가는 무사히 통과하고…
시험 감독이 워낙 깐깐한 분이라 출력 파형 확인에 매우 인색하다.
(시험 규정에 답안지 작성은 출력 파형의 감독 확인 및 인정이 있어야 한다.)
시간이 자꾸 흐르는데 정상 파형 출력 확인을 두 차례나 거부하여 조금 당황하였다.
세 번째 확인을 요청하자 그제야 출력 파형을 인정한다.
시간에 쫓기는 바람에 레벨 미터 측정 실수가 있었다. 어처구니없게 접지와 측정 단자를 반대로 연결한 것이다.
측정치가 마이너스 값으로 표시되기에 실수는 알아챘지만, 마음이 조급하여 바로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튼 평가 질문에는 모두 답을 쓸 수 있었다.
시험을 치르고 생각하니 레벨 미터 측정 실수도 그렇거니와 다른 부분의 사소한 실수가 몇 개 떠오른다.
답지 작성 때 글자를 고치면 꼭 감독 정정 확인을 받으라 했는데 글자 고치며 정정 확인을 안 받은 것이 생각나고,
작성하여 제출한 계측 데이터가 출제자가 의도한 답이었는지도 의심스럽다.
태어나서 올해처럼 이렇게 열중하여 공부하기는 처음이었다.
합격자 발표는 다음 달인 12월 14일, 그때까진 좌불안석일 것 같다.
ㅎㅎㅎ… 까짓것 이번에 불합격하면 다음에 한 번 더 도전하지! 진인사대천명이다.
일찍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12월 14일, 합격자 발표일!
아침 아홉 시, 전파진흥원에서 보낸 합격 SMS 문자를 받았다.
90점, 괜찮은 점수… 그동안 답안 작성에 실수한 것으로 근심했던 마음이 깨끗이 씻겨진다. 후련하다!
함께 학원에서 공부한 이들도 모두 합격했다고 기쁜 소식을 전한다.
7월 중순, 무선설비 기사 자격시험에 도전할 것을 결정하고 6개월이 지난 오늘,
비로소 좋은 결실을 보고 올해 목표에 마침표를 찍었다.
ㅎㅎㅎ… 지성이었기에 감천이다.
올해 2월부터 12월까지 취득한 국가기술 및 전문 자격
- 6급 항해사
- 소형선박 조종사
- 4급 선박통신사
- 3급 선박통신사
- 해상무선통신사
- 전파전자통신 기능사
- 무선설비 기사
- 동력수상레저 요트조종사
첫댓글 우와~~~~
대단하십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