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화, 섬진강과 함께 백운산에서 상춘의 꿈을 이루다.
1. 일자 : 2011. 3. 19 (토)
2. 장소 : 백운산(1218m)
3. 행로 및 시간
[진틀마을(11:22 415m/상봉 3.3km) -> 병암산장(11:32) -> (서어나무/전나무) ->진틀삼거리(12:05, 신선대 1.2km) -> 신선대삼거리(12:48, 상봉 0.5km) -> (중식 -13:00) -> 전망대(13:13) -> 상봉/누에바위(13:23, 매봉 3.6km) -> 헬기장(13:42) -> 내회마을 갈림(13:57, 매봉 2.3km) -> 매봉(14:43, 867m/내회 4.9km) -> 내회주차장(15:29) -> (세면) -> 주차장(15:42)]
4. 동행 : 홀로, 동강산악회
5. 산행궤적
t,d,35.094381,127.596564,02-19-2011,11:22:18,443,3 진틀마을
t,d,35.096802,127.602289,02-19-2011,11:32:56,522,2 병암산장
t,d,35.100950,127.612619,02-19-2011,12:03:51,762,0 서어나무 군락
t,d,35.101539,127.612727,02-19-2011,12:05:55,789,0 진틀삼거리
t,d,35.103144,127.612804,02-19-2011,12:14:38,844,1 신죽과 서어나무
t,d,35.108155,127.617081,02-19-2011,12:48:36,1150,0 신선대 삼거리
t,d,35.108564,127.617509,02-19-2011,12:53:16,1186,0 중식
t,d,35.107303,127.620014,02-19-2011,13:13:50,1219,1 전망대
t,d,35.107010,127.620535,02-19-2011,13:21:27,1232,0 정상 밑
t,d,35.106405,127.621043,02-19-2011,13:23:51,1229,0 정상
t,d,35.106519,127.622285,02-19-2011,13:35:59,1215,1 고로쇠 군락
t,d,35.106930,127.625010,02-19-2011,13:42:39,1167,2 헬기장
t,d,35.111412,127.630392,02-19-2011,13:57:51,1033,1 내회마을 갈림
t,d,35.116745,127.649789,02-19-2011,14:40:46,789,1 내회마을 갈림
t,d,35.116899,127.650995,02-19-2011,14:43:59,805,0 매봉(고도 이상)
t,d,35.108228,127.659633,02-19-2011,15:23:40,579,0 억새/생강나무
t,d,35.106100,127.659840,02-19-2011,15:29:43,517,1 내회마을 등산로 입구
t,d,35.104656,127.660534,02-19-2011,15:39:56,555,0 주차장
< 백운산 산행을 준비하여 >
우리나라에는 왜 백운(白雲) 이라는 이름의 산이 많을까? 내가 다녀 온 동명의 산만해도 의왕 백운산, 동강 백운산, 정선 백운산, 포천 백운산이 있고, 지난 주 올랐던 장수 백운봉 등 ‘봉’까지를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매력적인 산 이름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늘 그랬듯이 장호 선행의 글에서 답을 찾아 나선다.
불후의 명저 100대 명산기에 의하면, ‘백운’에는 무심과 무시비에 그 뜻이 걸려 있다 한다. [스님이 백운산에 돌아드니 / 흰구름이 지팡이 따라 절에 왔네 / 절에 무심한 늙은이 한 분 있으니 / 흰구름 함께 세상 시비 모르네.] 옛 시인은 산에 깃든 정서를 이렇듯 노래했다. 또한 백운이라는 이미지에는 “이 세상을 벗어나는 이미지, 즉 첩첩 산 주름 안에 갇혀 사는 한국인의 눈에 산 너머 시원스레 흘러 다니는 흰 구름은 분명히 자유의 표상으로 비쳤을 것이다. 흰 구름처럼 집착에서 벗어나듯 속세간 이해타산에서 떠나 무심으로 이르는 길을 생명으로 삼았음이 분명하다.” 와 같이 하늘을 나는 것과 같은 자유로움이 묻어 있다. 색다르고도 공감되는 식견이다. 즉, 백운은 자유의 상징인 것이다. 경상도 김천 출신의 내 친구 하나는 어릴 때부터 직지사 뒤 하늘을 막고 있는 황학산을 보면서 늘 답답함을 느꼈고,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살았다고 언젠가 말했다. 그에게 자유롭게 산을 넘어 다니는 흰 구름은 부러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광양의 백운산은 호남에서 지리산 다음으로 높은 산으로 호남정맥의 최고봉이다. 주변은 바다와 산과 강이 어우러진 천혜의 관광지로, 섬진강을 따라 달리는 백운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수려하며 정상에 닿으면 국내 어느 산 못지 않게 조망이 뛰어난다. 정상 능선에 서면 광양만과 여수 앞 바다와 멀리 남해안의 풍광도 들어온다. 3-4월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 섬진강 일대는 온통 봄의 축제장으로 변한다. 매화, 산수유, 벗꽃, 배꽃이 잇따라 피는 백운산 자락이 그 화려함의 시작이다.
오늘 산행은 진틀마을에서 출발 백암폭포 부근과 신선대를 거쳐 정상에 서고 이후 매봉 방향으로 능선을 탄 후 내회마을로 내려 가도록 코스가 잡혀 있다. 들머리의 고도가 415m로 정상까지는 800m 정도를 치고 올라야 한다. 전체 산행시간은 4시간 30분이면 충분할 듯하다. 광양까지 오가는 거리가 멀어 부담이 되지만 남보다 먼저 봄 꽃을 맞으려면 이 정도 노력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 희망사항 >
금 주 산행지로 칠갑산과 백운산을 두고 망설이다, 매화에 마음이 동해 흰구름 산을 선택했다. 사진으로 본 광양 일대의 매화는 내 마음의 봄을 재촉한다. 작년에는 봄철 이상 한파로 제대로 된 꽃 구경을 하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오늘은 등산을 마치고 매실마을을 경유하도록 되어 있어 못다한 상춘의 꿈을 즐겨보고 싶다.
새하얀 매화 꽃을 보면 퇴계선생이 떠오른다. 선생은 저 세상으로 가시며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저 매화에 물 주라” 이었다 한다. 소박한 유언인 듯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매화를 통해 두고 가는 것들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한 때의 연인, 남겨진 연약한 존재들, 삶에 대한 아쉬움, 환생의 꿈 등의 말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대 학자가 죽음을 맞으며 내뱉는 말 속에서도 상징화 되어 표출될 만큼 매화는 매력적인 꽃이다. 이 시기가 아니면 제대로 볼 수 없을 것 같은 조바심이 든다.
이웃나라 일본에서의 재앙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진, 쓰나마, 핵 시설의 붕괴 등으로 끝 간데 모르게 피해가 커지고 불안과 공포가 증대되고 있다. 세계에서 재난에 대한 대비가 가장 잘 되어 있다는 일본도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보고는 새삼 자연 힘에 감탄하고 인간의 한계를 실감한다. 더욱 겸허한 자세로 살아야겠다.
< 광양 가는 길에 >
7시가 되기 전 도착한 복정역은 평소와 다르게 정적이 감돈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이다. 오랜만에 동강산악회의 버스를 타고 남도 길에 나선다. 휴게소에서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고 새로 난 남원-순천 간 고속도로를 타고 광양시내에 도착하니 11시가 막 지난다. 시가지 외곽을 통과한다. 낯선 도시 풍경에 차창에서 눈에 떼지 못한다. 섬진강을 끼고 도는 마을이 고즈녘 하다. 길가에 희고 붉은 매화가 하나 둘씩 눈에 보인다. 평안한 토요일 오후 남녘의 풍경은 여유로웠다.
11시 20분경 산행 들머리인 진틀마을에 도착했다. 하늘은 흐리고 날씨는 따듯했다. 그간의 경험은 겉옷을 배낭에 집어 넣고 출발하라 이른다. 행동에 옮기고 나니 배낭이 두툼해졌다.
< 진틀에서 신선대 >
길가에 차들이 길게 주차된 사이로 아스팔트로 된 등산로가 나 있다. 이정표는 정상까지 3.3km가 남았다 알리고 있다. 제법 유원지 분위기가 나는 오르막 길에 다리를 적응시키며 천천히 걷는다. 병암폭포를 기대하며 걸었으나 폭포는 우측 계곡 길로 올라야 볼 수 있다 한다. 병암산장이라는 펜션을 지나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었다.
등산로는 초입부터 너덜 길이다. 주변 나무의 식생이 중부지방과는 확연히 다르다. 참나무 일색의 숲을 보다가 서어나무, 노각나무, 전나무, 고로쇠 등 다양한 나무들의 모습에 눈이 즐겁다. 특히 잘 빠진 여인의 다리와 같이 줄기가 길게 뻗은 서어나무가 인상적이다. 마치 잘 빠진 다리를 돋보이게 하려고 마네킹을 꺼꾸로 세워 둔 모양을 한 체 내 시선을 자극한다.
< 백운산의 서어나무 >
잘 생긴 전나무 군락을
지나니, 회색에 밤색 반점이 어른거리는 나무가 보인다. 다른
산에서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나무인데 이름이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잠시 후 안내 표찰에서 이름을
확인하니 ‘노각나무’란다.
이름을 발음해 보고 다시 나무를 살피니 사슴의 표피 무늬를 연상시킨다. 신선대로 향하는
길은 고도 800m 어름인 진틀삼거리까지는 큰 무리 없이 걸을만했다.
정상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전체적으로 편안한 느낌이지만 군데군데 암봉도 보인다. 신선대로 향하는 초입은 나무계단이 놓여 있다. 이를 지나자 된비알이 시작된다. 거친 숨결이 길 위에 뚝뚝 떨어진다. 길가에 산죽이 없었다면 단조롭고 힘겨운 오름이 될뻔했다. 허기도 지고 다리도 지쳤다. 무리 지어 올라오던 일행도 흩어져 버렸다. 길 건너 백운산 자연휴양림 넘어 산들의 전경이 연무에 젖어 흐릿하다. 힘겹게 고도를 이기고 커다란 바위 앞에 섰다. 신선대 삼거리이다. 신선대 바위 위로 향하는 길을 찾다가 이정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포기하고, 정상이 바라 보이는 바위 위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비록 빵 조각이지만 허기진 배에 곡물이 들어 가자 기분이 편해진다. 올려다 보이는 정상부근은 누에고치를 닮아 보였고 사람들이 마치 누에가 기어가듯 산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 신선대 밑에서 / 신선대에서 본 정상 >
< 신선대에서 정상 >
신선대에서 정상까지는 0.5km 거리다. 고도에 대한 부담감이 적고 암릉지대로 전망도 좋다. 커다란 바위를 돌아 드니 신선대로 향하는 길이 나 있다. 아쉽다. 마음으로 이미 포기해 버렸는데 다시 돌이키기에는 늦었다. 눈 길만 주고 다시 길을 나선다. 잠시 후 바위 전망대가 눈에 들어 온다. 정상의 누에바위가 바로 눈 위에 들어온다. 주위를 둘러 보니 호남기맥의 산들이 유유히 흐르고 있으나 연무인지 황사인지로 인해 시계가 매우 불량하다. 정상 부근에 서면 지리산의 능선과 섬진강, 그리고 멀리 남해의 모습도 기대할 수 있다 했는데, 기대는 마음 속에 접어 두어야겠다. 주초에는 예보에 없던 황사란 놈이 수도권을 덮치더니 점차 그 세력을 남하하고 있나 보다.
길가에 사람들이 많아진다. 다른 코스로 상봉으로 올랐다 하산하는 인파에 섞이자 가벼운 흥분이 인다. 저 인파 속에서 사진이나 제대로 찍을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든다.
< 백운산 상봉을 배경 삼아 >
정상 능선의 경치는 참 좋다. 마치 무등산의 주상절리를 보는 것 같이 바위들은 제각기 우람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길게 이어지는 산줄기는 끝 간데 없다. 경치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덧 정상 바로 밑 바위에 도착했다. 좁은 정상부는 사람들로 북쩍인다. 떠 밀리듯 올라 와 정상 바위 옆에 섰다. 정상석은 포기하고 주변의 경관을 관망한다. 지나온 길과 그 뒤로 포기한 신선대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라도 보고 나니 마음이 덜 허전하다. 인파 속으로 비집고 들어 용케도 정상석을 배경으로 내 흔적을 남긴다.
< 백운산 정상에서 본 풍경 >
정상석 건너 동북 방향으로 우람하게 솟은 산이 눈 길을 끈다.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상의 봉우리로 추정된다. 뾰족한 모습이 압권이다. 정상에서 밧줄을 잡고 밑으로 내려서니 길가에 이정표가 보인다. 가야 할 매봉은 정상에서 3.6km 거리에 있었다.
< 정상 능선에서 / 상봉에서 >
<
상봉에서 매봉
>
매봉 능선 길 초입, 바위에서 동강산악회 일행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간식을 먹고 가라는 대장의 말을 뒤로 하고 홀로 길을 나선다. 나도 모르게 선두가 되어 버렸다. 외 길이라 길 잃은 걱정이 없으니 먼저 치고 나간다. 고개를 돌려 지나 온 정상을 바라 본다. 정상에서 경황이 없어 너무 일찍 길을 나선 것이 아닌가 하여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마 다시 백운산을 관망해 본다.
< 돌아 본 백운산 정상 / 털 많은 나무 >
하산 길 초입은 비탈이더니 이내 완만한 평지 능선으로 변한다. 비가 온지 오래되어 서인지 흙먼지가 날린다. 그래도 뻘이 아닌 것 만해도 어디냐는 심정으로 조심스레 길을 헤쳐 나간다. 진틀마을에서 신선대로 향하는 것과는 나무의 식생이 다르다. 간간이 고로쇠 나무로 추정되는 가지 많은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나, 대세는 참나무들이다. 같은 산에서도 나무들의 세력 다툼이 만만치 않다.
길 좌측으로 정상 능선의 검은 실루엣이 멀어 진다. 언제 다시 올까 하는 생각에 자꾸만 눈이 하늘금 쪽으로 간다. 헬기장을 지난다. 별 특징 없고 경치도 없는 그러나 걷기에는 좋은 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다리도 산에 적응했고 길도 편한데 왠지 힘겨운 느낌이 든다. 산에서는 편한 길 보다는 좋은 경치가 피로를 잊게 하는 보약인가 보다.
2시가 다 되어갈 무렵, 내회마을로 내려 가는 갈림이 나온다. 내회마을 까지는 약 2.5km 거리이다. 매봉까지는 아직 2.3km를 더 가야 한다. 길은 외통이고 거리 안내도 잘 되어 있다. 언제부턴가 경상도 산꾼들과 섞여 걷게 되었는데 한 아지매의 소리가 온 산에 퍼진다. 쉰 목소리로 쉴 세 없이 떠들어 댄다. 그냥 참고 가기에는 소음의 정도가 심하다. 저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은 추호도 없다 보다. 볼쌍사나운 행보에 잠시 길을 멈추고 그들을 보낸다.
작은 봉우리를 두어 개 넘자 매봉이다. 내외마을은 매봉 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 가야 한다. 매봉에서 그대로 길을 가면 갈미봉을 지나 쪽비산으로 이어진다. 돌이켜 보니 상봉에서 매봉까지는 8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 매봉에서 / 내회마을 입구 계곡 >
매봉 이정표에 따르면 내회마을까지는 4.9km다. 너무 멀다. 이정표에 의심이 간다. 하산 길은 완만한 돌 길이다. 스마트폰으로 다운 받아온 지도 상으로는 2km 정도의 거리로 추정된다. 이곳 나무의 식생은 완연히 참나무 일색이다. 30여분을 내려오니 돌이 많은 임도에 닿는다. 최근에 산사태가 있었는지 길이 매우 울퉁불퉁하다. 눈에 빤히 보이는 길을 몇 굽이 돌아 드니 멀리 마을이 보인다. 내려 갈수록 길은 걷기에 편해 진다. 어느 길 모퉁이를 도니 햇살에 비친 억새가 반짝이고 그 옆으로 노란 생강나무가 꽃망울을 피우고 있다. 올 봄 처음 보는 산에서의 꽃이다. 광양의 말 뜻이 볕이 잘 드는 고장이니 꽃도 빨리 피는 것은 당연지사다.
꽃을 보자 마음이 급해진다. 서두른다고 봄이 당겨지는 것이 아니고 꽃이 빨리 피는 것도 아닐진 데 조바심이 난다. 그러나 조금 전 본 생강이 백운산에서 본 유일무이한 꽃이었다. 마을이 보인다. 계곡을 끼고 포도를 내려서니 동강산악회의 버스가 보이고 된장국 냄새가 난다. 조춘의 백운산 산행은 이렇게 끝났다.
< 하동 매화마을에서 >
하산은 내가 일등이다. 당초 예정한 시간인 3시 30분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없다. 버스 출발까지는 꽤 오래 기다려야겠다. 동강산악회의 별미 된장국으로 밥 한 그릇을 뚝딱하고도 한참을 기다려 5시가 다 되어 버스는 하동으로 출발했다. 아침에 잠시 본 키 큰 여자 팀이 무려 1시간이나 늦게 내려왔다. 행동하는 꼬락서니가 산에 피크닉 온 것 같더니 분명 점심시간에 퍼지러 앉아 술을 마시며 노닥거리다 늦었을 것이다. 내가 산에서 가장 경멸하는 자들이다. 그 와중에 산악회 대장은 술을 많이 마셨는지 매화마을로 이동 중에 마이크를 놓지 않는다. 좋은 정보도 적당해야지 했던 말 반복하고 아직 피지도 않은 길가 매화를 과장하고, 매화와 매실의 구분도 못하고, 소음공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그 와중에도 하동 매화마을로 이동 중에 바로 본 섬진강의 모습은 왜 이 강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경관이 좋다고 하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갈수기라 물이 말랐는데도 유유히 흐르는 자태와 강변에 넓게 형성된 흰 모래톱의 모습은 장관 그 자체였다.
< 섬진강 변의 모습 >
5시 30분 해질녘에 하동 매화마을에 도착했다. 매화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요란하다. 버스를 하차 하자마자 매화를 보러 언덕으로 올라 간 것이 아니라, 섬진강을 더 자세히 보려 강변으로 나갔다. 길가에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매화는 의래 흰색이고 다소곳하다고 알았는데 홍매화는 농염해 보였다. 섬진강 변의 풍광은 버스에서 지나며 보는 것 보다는 못해도 나름 정취가 있었다. 특히 언덕 정자에 올라서 본 모습이 더욱 멋졌다.
< 홍매화의 자태 >
강변을 뒤로 하고 매화 축제 행사장으로 꽃 구경을 다셨다. 강변과 다르게 흰 매화 일색이다. 아직은 활짝 피지 않아, 그래서 더욱 새초롬해 보이는 멋이 있는 매화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벗꽃이야 서울에서도 흔하지만 매화는 이곳이 아니면 흐드러진 정취를 맛보기가 쉽지 않아 보고 또 보다, 어둠이 내려 앉을 무렵 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한다.
< 흰 매화의 자태 / 매화를 배경으로 >
에필로그 >
땅거미가 진다. 저녁 어스름이 번진다. 어둠이 빛을 몰아내고 서서히 주인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고대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어두워지는 차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외로움이 엄습해 오고, 외로움은 곧 그리움으로 변해간다.
산과 함께 상춘의 꿈을 꾼 오늘 산행은 산도 좋았고 희고 붉은 매화도 좋았지만 차장으로 바라 본 섬진강의 다소곳하면서도 열정을 품은 섬진강의 풍광이 압권이었다. 흰 색 모래톱과 푸른 강물의 조화도 멋졌고, 강 건너 마을의 한적한 정취도 남도 특유의 여유를 즐기기에 충분했다.
어둠이 내리고도 횡설수설을 계속 일삼은 대장의 작태에 과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진리를 다시금 확인하며 차창을 하염없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