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에는 특별한 매력이 숨어 있다. 갓 구운 빵의 바삭한 겉과 부드러운 속, 그리고 고소한 향.
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많은 이들이 빵을 사오는 길에 빵 봉투를 뜯고야 만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인들이 이런 매력적인 유혹을 느끼게 된 건 불과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오랜
세월동안 맛난 빵을 구워 온, 동네의 알려지지 않은 자그마한 빵 가게들도 존재해 왔다. 그렇지만
영국 국민이 빵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고 수요가 늘어나게 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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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영국 땅에서 수렵과 채취를 통해 식량을 구했을 무렵에도 콩이나 곡류를 맷돌에 갈았다는
문헌들이 남겨져 있는 것을 보면, 영국 또한 오랜 빵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왜 빵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을까? 영국과 이웃하고 있는 나라들의 특징을
비교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 국민들은 예술과 패션을 중시하는 성향을
지녔고, 마찬가지로 음식 문화 또한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이웃 나라로 전파하는데도 많은
기여를 했다. 프랑스 국민들 또한 음식 문화를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는데 큰 공을 세웠다. 반면 영국은
유럽에 위치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의·식·주 중에 주, 즉 주거지를 제일로 꼽았기에 집을 치장하고
정원을 가꾸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써 왔다. 게다가 18세기의 산업혁명으로 가정에서 빵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점차 줄어들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도 여러 나라들과 전쟁을 치르면서
빵의 질보다는 양을 더 우선으로 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으며, 토양과 기후에 맞는 감자 농사가 활성화되자
메인 요리로 빵 대신 감자가 훨씬 보편화되었고 빵 문화는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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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행히도 1980년에 들어서 슈퍼마켓이 생겨나고, 이들이 전국에 걸쳐 자리 잡은 이후부터
영국인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대형 슈퍼마켓에 신선한 빵을 굽는 베이커리가 상주하면서 빵
문화가 훨씬 더 발달한 유럽 대륙의 색다른 빵들, 예를 들면 프랑스의 바게뜨나 이탈리아의 자파타
같은 것들이 소개되기 시작했고 영국인들은 신선한 충격과 동시에 기쁨을 느꼈다.산업혁명과 전쟁 등
새로운 도전을 극복해 낸 영국인들은 경제적인 발전과 더불어 시간적 여유가 늘어났고 문화를 즐기기
시작했다. 또한 더욱 더 맛있는 음식을 갈구했다. 이러한 시장 수요를 배경으로 대기업들이 세운 슈퍼마켓
전략은 성공을 거두었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시장이나 작은 규모의 가게들을 등한시하게 되자, 예전부터
자리 잡고 있었던 자그마한 빵 가게의 주인이나 베이커들은 더 이상 안일한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영국의 전통 빵 레서피들을 연구하고 개발해 슈퍼마켓의 대량 생산에 맞섰다.
그러다 보니 외국의 빵들과 영국의 전통 빵들이 섞여 자연스레 빵 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다. 브리튼(Britain)은
잉글랜드(England), 스코틀랜드(Scotland), 아일랜드(Ireland), 웨일즈(Wales)
이렇게 4개 국가가 통합된 ‘유나이티드 킹덤(United Kingdom)’
즉, 대영제국이다. 물론 현재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국’인 대영제국에서 가장 즐겨 먹는 빵은 외국의
것들을 포함해 20여 종이 주를 이루지만 빵을 전문으로 하는 베이커리들이 내놓는 전통 빵들은 각각의
지역적 특성과 함께 실하고 맛난 것들이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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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빵들을 먼저 짚어 보자. 갈색조를 띤 밀가루를 사용해 빵 틀에
구운 통통하면서 다소 납작한 모양의 식빵인 ‘팜하우스 로프(Farmhouse Loaf)’는 농가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 먹었던 일반적인 빵으로 근래에는 흰 밀가루로 만든 것이 더 인기다. ‘호비스(Hovis)’는
영양이 풍부한 밀의 배아를 함유한 ‘호비스 밀가루’로 만든 빵으로 식빵의 형태를 지니며 양 옆에
‘HOVIS’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블루머(Bloomer)’는 가장 인기 있는 빵 중 하나로
통통하고 뾰족한 타원형이며 위 껍질에 5~6개의 사선을 낸 것이 특징이다. 부드러운 질감과 함께
섬세한 향을 지닌다. 큰 베이커리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콥(Cob)’은 가장 오래되고 기본적인
브리티시 스타일로 장식이나 선의 구분조차 없는 동그란 형태의 빵이다. 옛 영어에서의 ‘Cob’은
머리를 의미하는데 사람의 머리처럼 동그란 모양으로 만들고 갈색의 밀가루나 통밀을 주로 사용해 굽는다.
한국에서도 익히 잘 알려져 있는 빵 ‘스콘(Scone)’은 버터와 밀가루, 우유, 설탕을 넣고 쉽게
반죽해 빨리 구울 수 있는 빵으로 주먹보다 작은 사이즈로 구워 낸다. 오후 4시경에 ‘티 브레이크(Tea
Break : 홍차를 마시며 쉬는 시간)’를 가질 때 레몬 커드(Lemon Curd) 크림을 발라
홍차와 함께 즐겨 먹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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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에 비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빵이 많은 곳으로 ‘크럼펫(Crumpets)’이 우선으로
꼽힌다. 잉글리시 머핀이나 피커렛(Pikelets)과 혼동되기도 하는 아주 유명한 전통 빵으로 18세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따뜻하게 토스트해 버터를 듬뿍 발라 먹는 대중적인 빵으로 쫀득거리는 질감과 고소한
향을 가지고 있다. ‘핫 크로스 번(Hot Cross Buns)’또한 중세기부터 현재까지 내려 온
인기 있는 영국의 대표 빵으로 계란, 건포도에 계피나 넛트맥 같은 향신료가 가미돼 맛이 풍부하다.
중세기에 악마를 쫓는 뜻에서 빵에 십자가(Cross) 문양을 넣은 것이다. 귀족들 사이에선 비싼
향신료를 넣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특히 더 유행하기도 했다. 오래 전에는 종교적인
의미로 금요일에 만들어 먹었는데, 지금은 요일과 상관없이 사시사철 먹는다. 주로 성탄절 이후부터
부활절경까지 먹는 겨울 빵으로 많이 인식되어 있다. 명절이나 연회에서 식사 후 포트 와인(Port
Wine)과 함께 즐기는 마지막 코스로 서빙되기도 한다. ‘라디 케이크(Lardy Cake)’는
풍년을 축하하기 위해 설탕과 과일을 듬뿍 넣고 돼지 지방을 사용하여 만든 진한 빵이다. 주로 영국의
중북부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데 동그랗고 묵직한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코티지 로프(Cottage
Loaf)’는 작은 오븐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고안되었던 형태로 커다란 덩어리의 빵 위에 작은 덩어리의
빵을 얹어 구운 것이 특이하다. ‘코티지’라고 불리는, 전원에 있는 가정 집에서 즐겨 굽던 것인데
요즘은 그리 흔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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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에서는 곡류의 발달로 맛있는 빵이 유난히 많은데 독특한 이름으로 더욱 기억된다. 얇게
슬라이스되는 ‘스카치 브레드(Scotch Bread)’는 샌드위치를 만들 때 가장 많이 사용될 정도로
유명한 빵이다. 오랜 발효 시간으로 향이 깊다. ‘아버딘 버터리 로위스(Aberdeen Buttery
Rowies)’는 스코티시 크루아상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빵은 마버딘 같은 북부에서 주로 만들어
먹는다. 버터로 겹을 쌓아 페스츄리 같은 느낌이 들지만 크로아상보다는 더 가볍고 소금기가 있어 덜
달다. ‘쉘커크 바녹(Selkirk Bannock)’은 라디 케이크와 비슷한 과일이 들어 간 빵으로
영국 전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바녹’은 켈틱어로 빵이라는 뜻이며 5세기경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모닝롤(Morning Rolls)은 ‘스코티시 밥스(Scotish Baps)’라고도 불리며,
한국에서 알려진 모닝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햄버거를 넣어 먹는 빵과 더 비슷하며 든든한 아침 식사용으로
인기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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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서는 소다빵과 감자빵이 대표적인데, ‘화이트 소다 브레드(White Soda Bread)’는
영국 본토와는 다른 형태의 오븐을 지닌 아일랜드에서 보다 일반화되어 있다. 이스트보다 ‘바이카보네이트
소다(Bicarbonate of Soda)’를 쓰며 버터밀크(Buttermilk)를 사용하여 톡
쏘는 신맛과 부드러운 단맛이 난다. 대체로 4등분해서 굽거나 다 굽고 나서 표시된 부분들을 잘라
먹는다. ‘포테이토 브레드(Potato Bread)’는 17세기 이후 아일랜드의 대표 농작물로 등장한
감자로 만든 빵으로 20세기 들어 밀 가격이 상승하자 더 큰 인기를 누렸다. 요즘은 감자와 밀을
섞어 만드는 경우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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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즈에도 특색 있는 빵 문화가 있지만 대중적이진 않다. ‘바라 브리쓰(Bara Brith)’는
‘블랙 커런트(Blackcurrant)’라는 건포도와 흡사한 건(乾)과일로 점을 박아 놓은 것 같은
빵이다. 홍차에 건과일을 넣어 즙을 빨아들이게 한 후 밀가루와 같이 반죽해 굽는다. ‘웰쉬 핫 브레드(Welsh
Hot Bread)’는 장작불이나 벽난로에 다리가 3개 달린 강철 냄비를 넣고 구워 먹던 빵이다.
요즘은 장작불 대신 냄비를오븐에 넣어 사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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