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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1. 시작 성가 (발자취 또는 전례에 맞는 성가)
2. 기도 (발자취 158쪽 집회 시작 기도 또는 자유 기도)
3. 출석 확인 및 인사
4. 회칙
5. 생활 묵상
6. 생활 나눔
7. 공지사항
8. 마침 기도(발자취 159쪽 또는 자유 기도)
프란치스칸 가족들은 2023년~2026년 800주년 기념제들을 맞이합니다. 2023년은 인준받은 회칙과 그레치오 성탄구유 800주년이고, 2026년은 그 절정으로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의 파스카(선종) 800주년입니다.
OFS 국제총봉사자께서 오상 800주년을 기념하며 2024년 9월 17일 서한을 보내주셨고, 그 내용을 아래와 같이 간추렸습니다
"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은 이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당신의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표시를 지니고 있었다."(대전기 13,5) 프란치스코 성인은 라 베르나 산에서 세라핌의 형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오상을 받으셨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영혼뿐만 아니라, 그분의 육신까지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셨습니다.
라 베르나 산에서 일어난 일은 단지 기억하고 기념할 가치가 있는 놀라운 사건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 재속프란치스칸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사건으로 바라본다면 어떻겠습니까?
성인께서 라 베르나산에서 오상을 받으셨을 때 그분의 삶은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수도회는 어떤 현실에 처해 있었습니까? 우리는 그 당시 상황이 성인에게 있어서 고난의 시기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수도회가 점점 커 나가는 것은 기쁨의 이유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거의 5000명에 달하는 모든 형제들을 이끌고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가며 챙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어떤 맥락에서는 성인에게 위기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수도회의 미래, 방향성, 형제들의 올바른 삶의 방향 등에 대해서 짙은 의구심이 제기되었습니다.
성인은 이 거대한 수도회의 리더로서의 책임감과 직면한 도전들에 대한 부담감뿐 아니라 자신의 건강문제, 인간적인 유혹, 점점 약해져만 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라 베르나로 향했습니다.
우리는 라 베르나에서 성인께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많은 묵상 글을 읽을 수 있고 또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는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에서 매우 중요하고도 충만한 순간이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재속프란치스칸 성소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저는 아래의 '그리스도의 선물',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와의 일치'라는 세 가지 이야기에 주목해 주길 부탁합니다.
1. 그리스도의 선물
"저의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제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내려 주소서. 먼저 제가 살고 있는 동안 제 영혼과 육신에, 사랑하는 당신 예수님께서 가장 괴로웠던 수난시간에 견디어 내신 그 고통을 최대한 많이 느끼게 해 주시고, 두 번째로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그 잔혹한 수난을 겪도록 당신을 움직였던 바로 그 넘치는 사랑을 저로 하여금 최대한으로 느끼게 해 주십시오."(성 프란치스코의 잔꽃송이)
성 프란치스코는 라 베르나에서 기적의 체험 전 조금 앞서 그리스도께 두 가지를 요청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랑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게 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라 베르나에서 그분은 오상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두 가지 요청 중 고통이라는 하나의 선물만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일을 반절만 하셔서 반조각의 선물만 주신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것에 대해 읽은 바가 없지만 거의 확실해 보이는 것은 그리고 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단언컨대, 성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의 차고 넘치는 엄청난 사랑을 느끼는 은총 또한 받으셨습니다.
그분의 깊은 갈망은 그리스도로부터 고귀한 응답을 받게 되고, 이는 귀한 선물입니다. 성인은 이 두 가지가 언제나 함께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우리 역시 이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사랑할 능력과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는 능력을 주시지 않고서는, 우리가 고통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역으로도, 그리스도께서는 고통 없는 위대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이 두 가지를 다 요청하고 그리스도의 손에서 오는 이 두 가지를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사랑과 고통은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고통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고통 그 자체가 우리의 달성목표는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손에서 오는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사랑의 측면에서도 우리는 그분을 더욱 깊게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고통의 은총을 내려 주실 때, 사랑의 기쁨 또한 함께 베푸신 다는 것에 대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오상은 고통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선물이 외적 표징입니다. 이들은 하나로 일치되고, 그리스도로부터 왔으며, 서로가 서로를 상호보완해 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선물은 성 프란치스코에게 삶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성인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서 위로를 받으리라고 기대했던 방법 대신, 오상을 받았고 그 상흔은 매우 아팠습니다. 그러나 기적과 같이 이 오상은 그에게 위로가 되고 그를 진정시켰습니다. 이 순간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삶 역시 변화되어야 합니다. 무엇이든 그리스도께 청하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은 그 무엇이든 받아들이며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2. 그리스도와 함께
사람은 혼자여도 되롭지 않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있으면서도 외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인께서 돌아가시기 2년 전에 미카엘 대천사 축일을 준비하시면서, 라 베르나 산으로 올라가셨다는 것을 전기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혼자이고 싶었습니다. 오직 레오 형제만 그와의 동반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인의 삶 중에 혼자였던 순간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페루지아 감옥에서 성인은 혼자였습니다. 성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 혼자서 기도드리러 갔습니다. 외딴섬에서 미카엘 대천사를 기념하며 단식제를 지낼 때 역시 혼자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홀로 기도하기 위해서 형제들의 거처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혼자 밤을 새우며 깨어 기도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거리를 활개 치고 다니며 친구들 사이에서 중심이었을 때 그는 비록 혼자가 아니었으나 외로웠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이 수도회에 관한 그의 순수한 생각을 바꾸기를 원했을 때 그는 비록 혼자가 아니었으나 외로웠습니다.
성인은 혼자였던 적이 무척 많았고, 때로는 외로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 느낌은 그분의 마음에 깊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가끔은 혼자이기를 원했고 그리고 가끔은 자신이 혼자임을 느꼈고 외로웠습니다. 그러나 성인은 사람들 속에서의 외로움 안에서도, 그리스도는 언제나 그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점을 늘 확신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라 베르나 산에서 그를 결코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결정적으로 그의 혼자 있음에 종지부를 찍어 주신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최고의 동반자, 즉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서 가장 밀접한 접촉을 통해 얻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동반과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위로는 성인을 그리스도와의 절대적인 일치로 이끌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재속프란치스칸들도 때때로 혼자임을 느끼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각자를 영원히 동반해 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우리는 가끔 외로움을 느낍니다. 삶에서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느끼는 힘든 순간도 있습니다.
라 베르나의 기적이 우리에게도 영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실 준비가 되어있고 언제나 우리와 매우 가까이 계시기에 그리스도와 절대적인 일치 속에서 그분과 하나가 되는 영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능합니다. 이 점을 믿읍시다!
3. 그리스도와의 일치
우리가 다른 이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하도록 이끌었는지? 어떻게 우리가 그의 동기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그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우리도 그렇게 행각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느끼는 그대로 우리 역시 같은 것을 느껴야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도 이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동기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무엇이 그리스도를 한 명의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 줄 수 있도록 하였는지? 무엇이 그분을 십자가로 향하게 하였는지? 성인은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 과연 어떤 종류의 사랑이었는지 그분은 알고 싶었습니다. 성인은 그리스도가 경험한 것을 스스로 경험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은총을 청하였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와의 완벽한 일치를 원했습니다. 성인이 원한 것은 단지 그리스도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일치를 통하여 그리스도처럼 성인도 다른 사람들과, 형제들과, 가난한 이들과, 나병환자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진실로 그리스도를 모방하고 싶어 했고, 본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름'은 그분에게 있어서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그리스도처럼'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오상과 함께 성인은 완전한 일치, 즉 영적로도 육적으로도 완전한 그리스도의 모습에 도달했습니다. 그분은 '또 하나의 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인께서 오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상은 그것의 외적인 표징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건강문제 포함 개인생활, 영성생활, 소도외 생활 속에서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선물, 즉 충만한 십자가의 삶, 그리스도와의 절대적인 일치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를 외적 표징인 오상으로서의 육체적인 일치와 더불어 그가 만난 예수님, 즉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러나 충만한 영광 속의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일치라고 인식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그것을 보고 놀라 당황하였으며 그의 마음은 기쁨과 슬픔이 섞여 흘러넘쳤다. 그는 그리스도가 세라핌의 모습을 띠고 그토록 은혜 가득히 자기를 배려해 준 방법에 대해서 대단히 기뻤으나,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이 그의 영혼을 동정심으로 가득 찬 비애의 칼로 찔렀던 것이다."(대전기 13,3)
인생의 변환점이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인해 성 프란치스코는 은총으로 충만해졌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고, 그리스도로부터 위로 받았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으로 향할 것을 우리에게 재촉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계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삶 안에서 어려운 순간에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길을 찾고 있을 때 우리를 인도해 주고 계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변화시켜 주고 계십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우리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닐 수 있도록 성령께 우리 자신을 활짝 열어놓읍시다.
생활 나눔
아래의 질문들은 국제총봉사자가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으로 우리 재속프란치스칸의 성소를 생각하게 하고, 더 깊은 이해로 이끌어 줍니다.
1) 재속프란치스코회, 즉 세라핌적 형제회의 회원이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켜 주셨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입고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에게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권한을 허락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입니까? 아니면 세상입니까?
2) 우리는 은총이라는 선물을 가지고 무엇을 합니까? 참된 은총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아볼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은총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고통 앞에서 무엇을 합니까? 고통을 사랑의 표현으로 연결시킬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으로 우리는 변화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우리는 희망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닌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