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부부의 사랑 이야기
"눈먼 여자랑 평생을 어떻게 살아?
구질구질해서 더 이상 못 살겠으니까 우리 여기서 끝내자!"
차가운 현관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남편은 떠났습니다.
뺑소니 사고로 두 눈을 잃은 영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홀로 남겨졌습니다.
평생을 함께한 남편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아내를 버리고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집을 나선 남편의 발걸음은 화려한 새 출발의 발걸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문을 닫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세상과 단절된 외딴섬의 요양원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남자가 사랑하는 아내에게 차마 씻을 수 없는 막말을 퍼 붇고 돌아서야 했던 이유는 도대체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요?
섬의 낡은 요양원에 도착한 달수는 창밖으로 향한 바다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뇌종양 말기에 남은 시간은 길어야 석 달 이었지요.
시력까지 잃은 아내에게 자신의 병시중 까자 짊어지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악역이 되어 이 섬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달수는 창에 이마를 기댄 채 눈을 감으며 아내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습니다.
"영실아! 부디 잘살아야 한다."
다음 날 아침 달수는 윤 원장을 찾아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원장님 저의 전 재산을 이 병원에 기부하겠습니다.
대신 한 가지만 부탁드립니다.
제가 죽거든 저의 각막은 익명으로 아내에게 이식해 주십시오."
자신의 치료는 포기 한 채 아내의 시력 회복 만을 간절히 원하는 환자의 처절한 애원에 윤 원장은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달수는 혹시라도 아내가 자신을 찾아오더라도 절대 모른 척해달라며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아내가 내가 없더라도 세상을 볼 수만 있게 해 주십시오."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영실은 배신감으로 몸을 떨었습니다.
뺑소니 사고로 눈이 먼 자신을 짐짝처럼 버리고 간 남편을 향한 원망이 뼈에 사무쳤지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처절한 원망이야말로 그녀가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었습니다.
"죽어도 당신 얼굴은 보고 죽을 거야!
두 눈 멀쩡히 뜨고 따져 물을 거야!"
영실은 이를 악물며 각막이식 대기자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달수의 사연을 알게 된 윤 원장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각막 기증은 사후에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영실이 어둠 속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지요.
윤 원장은 직접 전국 장기이식 네트워크를 뒤지고 동료 병원장들에게 읍소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실에게 맞는 각막 기증자를 찾아냈지요.
병원재단 기금으로 수술비까지 지원한 덕분에 영실의 수술은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달수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그는 손을 모아 "정말 감사합니다."를 되뇌며 한참을 울었습니다.
눈을 뜬 영실의 목표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그 인간을 무조건 찾아서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왜 그렇게 잔인하게 나를 버렸는지 따져 묻겠어.
영실은 흥신소를 동원해서 남편의 흔적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끈질긴 추적 끝에 영실의 연락이 요양원에 닿았고 달수의 숭고한 희생을 지켜보며 가슴 아파하던 윤 원장은 죽어가는 환자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결국 결심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윤 원장은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부인 남편분이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그런데 매우 편찮으십니다."
다른 여자와 잘살고 있을 거라 믿었던 남편이 죽음의 문턱에서 홀로 버티고 있다는 말에 영실의 복수심은 순식간에 커다란 충격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인간이 왜 거기에 있어요?"
영실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첫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낡은 병실 복도 끝 영실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습니다.
그곳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초췌한 남편이 창밖 바다를 향해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달수는 인기척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영실아! 오늘은 바다가 정말 곱구나.
너도 이 바다를 볼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영실은 그 자리에서 무릎이 꺾였습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홀로 짊어지고 죽어가는 남편의 진심.
영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했습니다.
스스로 악역이 되어 사랑하는 아내를 떠밀어 낸 그 사람의 마음이 이제야 느껴졌습니다.
달수가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을 때 영실은 달려가 남편을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이 바보 같은 영감탱이야!
왜 혼자 다 안고 갔어?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어?."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본 것이 남편의 죽어가는 얼굴이라니 영실은 달수의 마른 뺨을 두 손으로 감싸며 멈추지 않는 눈물을 쏟아 냈습니다.
달수도 떨리는 손으로 아내의 얼굴을 만지며 함께 울었습니다.
"미안하다. 영실아?
너라도 편하게 살기를 바랐어."
영실은 고개를 저으며 남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편 한계 뭐야! 당신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
두 사람은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오랫동안 통곡했습니다.
그날부터 영실은 남편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지극한 간호와 윤 원장의 헌신적인 치료 속에 달수는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의지를 되찾았습니다.
의사도 놀랄 만큼 더디지만, 천천히 그의 몸은 조금씩 버텨 나갔습니다.
다시 두 손을 맞잡고 바닷길을 걷는 부부의 얼굴 뒤로 따뜻한 봄볕이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사랑은 때로는 눈을 가리지만 진실은 결국 빛을 찾아옵니다.
지금의 이야기가 가슴에 남으셨다면 우리 주위에 사랑이 필요한 곳이 없는지 돌아보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받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