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질빈빈(文質彬彬)
논어 제6 옹야(雍也)에 나오는 말이다.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 彬彬然後 君子”라는 문구가 있다. 공자가 말하였다. “본바탕(本質)이 교양(敎養)을 능가하면 야비하게 되고, 교양이 본바탕을 능가하면 가식적(假飾的)이게 된다. 본바탕과 교양이 조화를 이룬 후에야 비로소 군자가 된다(文質彬彬, 然後君子).”
풀어쓰면 이렇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본바탕이 번드레한 겉모양을 이기면 촌티(野)가 나고, 문(文: 바깥 꾸밈, 예의범절)이 질(質: 본바탕)을 이기면 사(史: 겉치레만 잘함)하니 바깥 꾸밈과 본바탕이 적당하게 조화를 이룬 뒤에라야 군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후로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는 말은 외견(外見)이 좋고 내용(內容)이 충실(充實)하여 잘 조화(調和)를 이른 상태(狀態)를 뜻 하는 말이 되었다.
문(文)은 ‘문채’로서 여기에서는 각종 예절, 의식을 가리킨다. 오늘날 어떤 사람은 호방하게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말이 직설적이어서 거친 데로 빠지고, 어떤 사람은 공경하고 공손하며 태도가 엄숙한데 도리어 고지식한 데로 빠진다. 그러므로 “문채와 질박함이 알맞게 결합된 군자”의 외적 풍모를 갖추기는 쉽지 않고, 내적인 문채와 질박함을 조화시키기는 더욱 어렵다.
문(文)은 ‘문채’를, 질(質)은 바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문(文)은 어떤 “형식주의‘, ‘문서주의’, 세세한 틀, 화려한 장식으로, 문이 질(質)보다 승(塍)하면 보기에는 매우 좋아 사치스럽지만 사실은 한없이 진부한 ‘판박이’라 말할 수 있다. 그 반면에 바탕이 문채(文彩) 보다 승(塍)하면 거칠지만 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온전치 못하고 문(형식)과 질(내용, 실질)일 고루 어울려 조화를 이룬 후에라야 군자라 할 수 있다.
문(文)은 형식을 질(質)은 실질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형식과 실질이 잘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야 군자라는 뜻이다. 또한 문(文)은 전통성을, 질(質)은 현대감각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고로 시대를 초월한 변함없는 군자란 전통성과 현대감각을 조화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옛 것을 익히되 현 시대와 어긋나지 않으며 현대적인 것을 따르되 그 폐해에 물들지 않아 이른바 전통성과 현대 감각을 조화한 사람이라야 군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외면적인 여러 요인에 신경을 쓰며 잘 닦여진 성공인으로 행동하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격식에 매달리지 않고 있는 품성 그대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두 가지 타입의 인물을 논어에서 공자님은 문(文)과 질(質)로 적은 것이다.즉 이 세상에는 있는 그대로의 성격을 드러내는 경우가 형식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사람인 야(野)와, 형식적인 차원이 있는 그대로의 성격을 이기는 사람의 타입의 사람인 사(史)가 있다는 것이다.
야(野)와 사(史)는 이런 두 가지 타입의 성향이 빚어내는 결과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질(質)은 원래 타고난 그대로의 바탕, 문(文)은 자신이 지니고 태어난 것과는 별도로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쌓이는 외양의 모습이다.공자는 이 두 가지가 잘 어울려야 훌륭한 사람, 즉 군자가 된다고 본 것이다. 안과 겉모습의 일치를 강조하는 내용이다.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는 말은 결국 인물의 됨됨이를 그린 것으로 후대의 동양 사회에서 사람의 바람직한 인격 형태를 지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문과 질은 사실 공자에 앞서 역(易)의 개념으로 처음 나왔다. 역(易)에서도 역시 문(文)을 외면적인 형태, 질(質)을 내면적인 속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한(漢)대 이후 이 두 가지 개념은 사람의 품성론을 넘어 문학 이론으로까지 확산한다. 수식과 형용에 뛰어난 작품을 문(文), 내면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쪽을 질(質)로 표현하는 데까지 나아간다.특히 동양인의 의식 속에서는 바탕에 관한 집착이 더 깊었던 까닭인지 질을 표현하는 말은 나중에 많이 생겨났다. 자질과 품질, 소질과 양질(良質) 등이 이에 뿌리를 두고 발전한 단어들이다.
문(文)과 질(質)에 대한 예화를 살펴보자. 진나라 때의 문인 반악(潘岳)은 얼굴 생김새가 아주 뛰어났고 그 정신 또한 훌륭했었다. 젊었을 때 그가 낙양의 저자거리를 거닐면 부녀자들이 그 아름다움에 취해 누구하나 그의 손을 잡아보지 않는 여인이 없었다.
이와 달리 유명한 “낙양의 종이 값을 올려놓을(洛陽紙高)” 정도로 글재주가 빼어났던 좌사(左思)는 아주 못생겼었다. 좌사는 반악의 인기가 몹시 부러워서 자신도 반악을 흉내 내어 낙양의 저자거리를 화려한 옷을 걸치고 거닐었더니, 돌아오는 것은 부녀자들의 욕지거리와 함께 깨어진 기왓장, 썩다만 과일, 침 등이었다.
군자는 이런 사람이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위선적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않는 것이 바로 문질빈빈(文質彬彬)의 사람이리라.
첫댓글 아.. 그런 뜻이로군요... 중용과는 조금 다르다고 보아도 되나요? ^^ 중용은 어느쪽으로든 치우치지 않음이고, 문질빈빈은 두가지의 밸런스를 말함이고.... ^^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