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각종 소식은 카페지기에게 모인다.
가끔은 비밀스런 이야기까지 전해와 난감한 경우도 있다.
평생 갖가지 사연 섞인 이야기를 따라 살아온 기자인지라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1월 7일 낮 12시.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가 엉망이다.
지난 연말연시 눈을 맞으며 부산에 다녀온 뒤 세워둔 까만 자동차 얼룩이 이만저만 아니다.
세차를 해야하는데, 시간이 없다.
"점심 먹고 가"
무용반 고금혜가 딸내미 결혼 날짜와 장소를 알려주며 꼭 오라는 전화 목소리엿다.
잠실 롯데호텔. 붐비는 주말 1시까지 예식장에 도착하기에 빠듯한 시간이다.
평소에 즐겨 다니던 동부간선도로는 이른바 '김흥식 루트'다.
신호등이 없는 자동차 전용도로. 논스톱으로 빨리 달릴 수 있는 길이다.
어디까지나 이론상 빨리 달릴 수 있다는 것이지.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모두가 아는 이론이기 때문에 주말이면 여지없이 막힌다.
그런 염려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빨리, 예식시작 바로 직전인 12시 55분 잠실롯데에 도착했다.
부반장(김정숙)을 현관에 내려주고 먼저 들어가라 했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새해들어 첫 주말인 1월7일. 전국의 지방에서 서울 친지를 찾아 올라온 학생들이 롯데월드를 즐기느라
넓디넓은 지하 주차장이 만땅인 것이다. 주차할 곳을 찾아 헤매다가 예식이 다 끝난 1시 40분경
사이드브레이크를 풀어놓고 아무곳이나 내팽개친뒤 예식장으로 갔다. 주차구역 M452. 지하 4층이다.
이곳에서 예식장까지는 아마도 십리는 되는듯 너무도 먼 지하공간이었다.
예식장에 들어섰을 때는 가족사진을 찍고 있었다. 여기에서 선순희 유덕순을 만났다.
부반장과 함께 가쁜 숨을 달래며 연어샐러드 호박죽 스테이크 케이크 커피까지 다 먹고는 2시40분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 길이 바쁘다. 5시까지 유성 계룡스파텔에 가야한다. 공주교대10회 총동창회 모임이 있는 날이다.
부반장을 데리고 지하3층으로 내려가 하염없이 지하공간을 헤맸다. 자동차를 찾아야한다. M452. 지하4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도 없고 계단도 없는거엿다. 십리나되는 지하공간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가까스로 안내원을 만나 물었더니
"저~~~~기. 사람들 모여있는 곳 보이지요? 거기서 왼쪽으로 가셔서. 한참 걸으면 화장실이 나와요. 그 화장실 쪽이 아니라 반대편에 가시면 내려가는 계단이 있어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 지경인 롯데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짓겠다고 난리다. 호텔 백화점 대형할인마트 롯데어드벤처 아이스링크 등 돈을 벌 수 있는 모든 시설을 이곳에 집중시키고 있다. 교통환경영향평가를 어떻게 통과했는지 의심스럽다.
어렵게 차를 찾아 시동을 걸었다. 잠실 롯데 주변은 하루종일 체증이다. 주차요금을 정산하고 밖으로 나와 잠실네거리를 벗어나는데 무려 1시간이 지낫다. 3시 40분.
5시까지 동창회에 가기란 불가능. 어차피 지각한 것. 마음을 다스리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시간이 아까워 휴게소 들르는 일도 참았다.
음성휴게소를 막 지날때 쯤. 전화가 왓다. 이규식이다.
"최유영 모친상이야."
"그래? 아이구 슬퍼라. 빈소가 어딘데?"
"빈소는 유성 선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아마 9일 아침이라나 봐"
"알았어. 카페 게시판에 올릴께"
"근데, 문제는 유영이가 지금 터키 여행중이야. 그것도 부부간이... 급히 서둘러 온다 해도 내일 오후는 돼야할 것 같아"
"알았어. 어쩔 수 없지 뭐. 암튼 대전 동창회서 봐"
전화를 끊고는 오늘은 왜 이렇게 복잡한 거야 하며 한숨을 쉬었다.
즐거운 동창회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부고를 알리는 광고 멘트가 가능한 것일까...
다행히도 오늘은 노트북을 챙겨 떠나는 주말 여행이다.
주말에 이런 일이 생기면 컴퓨터를 찾아 시간을 낭비하곤 한다.
동창회 자리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 노래할 때, 핸드폰으로 카페에 접속하여 '슬픔 나누기'에 부고 글을 올렸다.
'매일 한마디'에도 슬프다는 글을 올렸다.
이때 영문도 모르는 부반장이 동창회에 와서 동창회에 집중하지 않고 왜 해찰하느냐며 핸드폰을 압수해갔다.
늘 그랬듯, 동창 500명에게 문자메시를 날려야하는데 핸드폰으론 안된다.
여흥시간이 끝나 드디어 숙소로 들어왔다. 대통령 숙소로 썼던 비룡대에선 인터넷 접속이 안된다.
그래서 임기응변으로 핸드폰 테더링 기능을 이용하여 wifi AP 를 만들었다.
드디어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접속하게 됐다.
500명에게 그룹메시지를 날렸다.
오타가 생겼다. 최유영을 최규영으로 잘못 썼다.
다시 보냈다. 서산에서 온 심재능 친구는 뭘 그렇게 열심히 또닥또닥 하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빙그레 웃으려 잠을 청했다.
이튿날 일요일. 잠에서 깼다. 오늘 일정은....
사우나, 해장국, 국립묘지참배, 동학사찻집, 윤석철 이재수 부부의 사무실 개소 축하, 점심식사
그리고는 최유영 어머니 빈소 문상이었다.
8일 오후 3시 30분
대신 전달해줄 남연희 최미자 친구의 부의 봉투를 받아 빈소를 찾았다.
영정 앞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찬송을 부르며 뭔가 한참을 외우고 또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끝날 때를 기다리며 화장실에 갔다가 현관에 갔다가 시간을 보내다가
그래도 안끝나기에 기다리는 동안 방명록에 이름이나 적고 부의봉투나 전달하려 하자
누군가 앞에서 악수를 청한다.
시커먼 상복을 입은 유영이었다.
"해외여행 중이라며... 언제 왔어?"
"아까 1시즘 도착했어. 와줘서 고마워"
천주교 신자들이 뭐라고 중얼거리든 말든 그 가운데에 서서 나는 향불을 피우고
넙죽넙죽 큰절을 했다.
뭐라도 먹고 가라는 말에 캔음료 하나를 손에 들고 밖으로 나왔다.
한없이 푸른 한겨울 하늘이 오늘은 슬퍼보였다.
김흥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