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 것 참 간단하지 않다.
처음 우리 단체를 준비할 때,
우리 지역의 시민사회운동을 정리하고
그 정리를 통해 나아갈 길을 모색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지역 현안도 함께 대응하는
소박한 사회단체의 길을 가는 것을
그 목표였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었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문 연 ‘인문학당’이라는 교실과 함께
‘명상 교실’과 명상 끝난 뒤에 진행한 ‘이야기 성서’,
그리고 ‘이야기 성서’에서 다 다룰 수 없는
성서에 관한 좀 더 깊고 묵직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문을 연 ‘성서학당’,
지역 현안이 있을 때 작은 힘이라도 보탠 일과
몇 번의 상담과 사람들 만나는 일들을 해 왔다.
그렇게 오는 사이 해가 두 번 바뀌고
지난 4월 9일에 셋째 해를 맞이했는데,
걸어온 길을 가만히 되짚어 살피니
사실과 진실, 그리고 진리라고 하는 숲속을 헤치며
내가 무엇이고 누구인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생명을 담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건지를 찾아 헤맨 시간들,
사실은 언제나 명백하지만
그 사실에 의미를 담은 진실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해석의 여지가 생기고
해석에 따라 사실이 왜곡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바로 철학의 문제라는 생각도 드는데
인간과 삶과 세계와 사회를 해석하고 설명하는 논리체계라고 할 수 있는 철학은
때때로 인간이 갖고 있는 근시안적 시각과 시야 때문에
해석하는 과정에서 오류나 왜곡이 일어난 일이 적지 않고
그때마다 오류나 왜곡을 정직하게 시인하며 과감한 수정을 하지 못하고
이런 저런 변명들을 늘어놓으면서 거듭 복잡해진 것이 아닌가 싶고,
진리를 말한다고 하는 영역의 정점에 있는 종교는
취지와 목적은 훌륭하고, 때로 그 취지와 목적에 부합할 때는
견줄 것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숭고하기도 하지만
거기서 생산된 논리가 인간의 탐욕과 뒤섞일 때에는
그보다 더 추악한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타락과 변질을 거듭해 왔다는 점도 보았다.
결국 사실을 말하는 과학의 세계가 가진 명료함이야말로
우리 시대를 정화할 수 있다고 보는데
과학의 태도가 훌륭한 것은
오류나 문제가 있으면 과감함과 용기 그리고 정직함으로
그것을 인정하고 단호하게 폐기처분하거나
수정과 보완을 통해 사용할 수 있으면 치밀한 수정과 보완을 하게 되는데
이때 전통에 권위를 두는 것이 아니라
‘사실 자체’에 그 권위를 세운다는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성실함도 보았다.
그 과학의 길에 위대한 인물이 한둘이 아니지만
가장 꼽을 수 있는 두 인물을 말한다면
아무래도 찰스 다윈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고 보는데
마침 두 분이 돌아가신 날이 4월 18일(아인슈타인), 19일(찰스 다윈)이어서
그동안 혼자 두 분이 돌아가신 날을 기리면서
저 위대한 인물들의 삶과 발견 앞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찾곤 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마당을 넓혀
가까이 있는 지인들과 이 날을 나누고 싶어서
18일은 혼자서 기리고
마침 금요일에 닿은 19일에는 우암동의 작은 식당, '복순네 밥상'을 예약하여
오후 6시 반부터 조촐한 추모행사를 하기로 결정,
많은 이들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일이 있다고 알리는 것은 필요할 것 같아
이렇게 공지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림.
날마다 좋은 날!!!
- 키작은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