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파 전투사 개략
히스파니아 전황 (B.C. 207~206)
기원전 207년, 스키피오가 한니발의 동생 하스드루발 바르카를 물리친 바이쿨라 전투 이듬해. 스키피오에게 대항하는 새로운 군세가 나타났다. 카르타고 본토 징집병을 거느린 한노가 상륙해 내륙에 주둔했고, 징병을 위해 발레아레스, 켈트 이베리아를 거쳐온 마고가 합류했다. 하스드루발 기스코는 가데스에서 북진해왔다.
□ 라틴 식민지 ■ 카르타고 동맹 ▽ 광산 X 로마가 승리한 전투 + 로마가 패배한 전투
... 하스드루발의 진격로 B.C. 208~207 --- 한니발의 진격로 B.C. 218~216
스키피오는 군대를 나누어 부장 실라누스에게 1만 명의 보병과 기병 500기를 주어 한노를 기습하게 했고, 자신은 하스드루발을 견제했다. 실라누스는 한노 진영을 기습해 한노와 그 휘하의 카르타고 군을 포로로 잡아들였고, 갈리아 군을 패퇴시켰다. 겁을 집어먹은 하스드루발은 군대를 흩어서 요새마다 병력을 배치하고 남부에 웅크러들었다. 내륙에서의 위협을 제거한 스키피오는 한노를 로마로 압송한 후, 각 요지마다 병사들을 배치해 겨울 숙영 준비를 시키고 자신은 타라코로 갔다.
기원전 206년, 마고가 선동해 카르타고 군은 다시 한번 군세를 일으켰다. 7만 명의 보병과 4천 기의 기병, 그리고 32마리의 전투 코끼리는 하스드루발 지휘 아래 일리파로 북진했다.
스키피오는 북진하는 카르타고 군을 맞아 싸우기 위해 타라코에서 남하했다. 행군 도중에 지원병으로 부족한 병력을 보충했고, 히스파니아 동맹군 또한 대동했다. 하지만 스키피오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로마 연합군 측의 병력은 보병 4만 5천에 기병 3천이었다.
포진 및 서전
로마 연합군은 카르타고 군과 조우하자 카르타고 군 남쪽으로 돌아가 적의 반대편 언덕에 진을 쳤다. 이는 전투 후의 전황마저 고려한 스키피오의 전략적 포석이었다. 적의 탈출구인 가데스 항구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한 것이다.
마고는 진지 구축 중인 로마 군을 기습했다. 하지만 이들은 스키피오가 미리 매복해두었던 기병대에게 저지당했고, 곧이어 쏟아져 나온 로마 군단병들에 의해 격퇴당했다.
카르타고 군이 진지로 쫓겨들어간 후, 양군은 언덕을 사이에 둔 평지에서 여러 날 대치했다. 스키피오는 일부러 늑장을 부려 포진했고, 카르타고 군의 포진 시각 또한 점점 늦어졌다. 스키피오는 카르타고 군이 해이해지는 것을 노렸다.
카르타고 군은 중앙에 아프리카와 카르타고에서 징집한 정예병을, 양익에 비교적 약체인 히스파니아 동맹군, 전투 코끼리를 배치했고, 로마 군 또한 중앙에 정예 로마 군단병을, 양익에 신뢰하지 않는 히스파니아 동맹군을 배치했다. 양군이 서로 여러 날 대치만 하게 되자 하스드루발은 전투 당일의 전투 대형도 계속 이와 같을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이것 역시 스키피오가 노리던 바였다.
교전
카르타고 군이 어느 정도 해이해져 상황 대처에 대한 유연성이 떨어졌다고 판단된 어느 날, 스키피오는 해뜨기 전에 경무장 보병대와 기병대로 하여금 적진을 기습하도록 했고, 스스로 군단을 이끌고 진군했다.
불시에 기습당한 카르타고 군은 아침도 못 먹은 채로 뛰쳐나왔다. 급히 무장을 갖춘 하스드루발이 적진을 봤을 때, 그는 또다시 놀랐다. 로마 군의 전투 대형이 바뀐 것이다. 로마 군은 중앙에 약체 히스파니아 동맹군을, 양익에 정예 로마 군단병을 배치했다. 스키피오의 약간의 조치만으로 카르타고 군은 대형 변화에 전혀 대처할 수 없게 되었다.
로마 군의 진격이 잠시 멈췄다. 카르타고의 병사들이 자신들의 불리한 상황을 머릿 속에 떠올릴 시간을 주고자 스키피오가 취한 행동이었다. 스키피오는 적과 교전 중이던 경무장 보병대와 기병대를 퇴각시켜 양익 로마 군단병 뒤에 예비대로 배치했다.
아침 7시경, 로마 군은 드디어 진격하기 시작했다. 로마 군의 이 진격 또한 주목할 만하다. 양군이 700여 미터 정도 접근하자 정예 양익은 바깥쪽으로 사선으로 진군하다 다시 안쪽으로 빠르게 진격했다. 이에 비하여 중앙의 히스파니아 군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진군했다.
양군이 맞닥뜨릴 때 로마 중무장 보병대는 카르타고의 히스파니아 동맹군 대형의 대각선 방향에서 정면으로 부딪쳐갔다. 이런 상황에선 아무래도 적을 대각선 방향에 두고 싸우는 쪽이 불리하다. 산술적으로도 아군 병사 한 명이 대각선 방향의 적 병사 두 명을 상대해야 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로마 중무장 보병대가 카르타고 군의 양익을 공격하는 동안, 그 뒤를 따라오던 로마 기병대와 경보병대는 적의 코끼리를 공격하며 적의 배후로 돌아갔다. 로마 군의 공격에 놀란 코끼리가 카르타고 군 본진에 혼란을 일으킨 데다 카르타고 군의 약체를 로마 군의 정예가 들이치자 카르타고 군의 양익은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카르타고 군의 중앙은 스키피오가 상대적으로 느리게 진군시킨 히스파니아 동맹군을 앞에 둔 채로 양익을 구원하러 갈 수는 없었다. 로마 군의 약체가 카르타고 군의 정예를 고착시키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카르타고 군의 양익이 붕괴되고 주력은 퇴각하기 시작했다. 로마 군의 경보병대와 기병대가 카르타고 군을 포위하려는 순간 갑자기 폭우가 내렸다. 카르타고 군은 간신히 파멸을 면하고 무사히 진지로 퇴각할 수 있었고 로마 군은 적 진지 공략을 포기해야 했다.
추격 및 카르타고 군의 궤멸
하스드루발은 밤을 틈타 진지를 버렸다. 그의 히스파니아 동맹군들도 모조리 달아난 후였다. 카르타고 군은 가데스로 곧바로 도망갈 수 없어 대서양 방향으로 크게 돌아 퇴각해야 했는데, 이는 상술한 바와 같이 스키피오가 퇴로를 막으며 진지를 차렸기 때문이다.
스키피오는 경무장 보병대와 기병대만으로 추격을 시작했는데, 이는 세계 전사상 최초로 전략적 추격전 양상을 띠는 추격이라고 한다. 로마 군의 경보병과 기병대가 적의 발목을 잡자 로마의 중무장 보병 군단도 카르타고 군을 따라 잡았다. 이때부터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카르타고의 7만 대군은 궤멸되었고 오직 6천 가량만이 탈출하여 근처 언덕배기에 진지를 차릴 수 있었지만 곧 와해 양상을 띠었다. 하스드루발은 밤에 부대를 버리고 가데스 항구로 탈출했고 마고도 뒤늦게 따라갔다. 스키피오는 카르타고 패잔병들의 진지 문제 처리를 실라누스에게 맡기고 자신은 타라코로 돌아갔다.
전술전략론
“전쟁사에서 일리파 전투의 승리를 능가하는 지휘력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열세의 무력으로 우세한 무력을 상대로 이렇게 완벽한 승리를 거둔 예는 정말이지 드물다. 이것은 ‘기습’과 ‘집중’의 원칙을 완벽히 적용한 결과이다.”라고 리들 하트는 말했다.
스키피오는 전투 전에 심리전술을 펼쳐 적을 방심시키며 전투를 자신이 원하는 양상으로 이끌었다. 아군의 약체로 적의 정예를 고착시키고 아군의 정예를 적의 약한 곳에 집중시켜 순식간에 적 전열을 붕괴시켰다. 동시에 예비대를 운용하여 포위섬멸전을 시도했지만, 폭우 때문에 성공시키진 못했다.
적의 퇴로를 끊는 첫 포석에서부터 전략적 규모의 추격전으로 적을 따라잡아 완벽하게 궤멸시키는 대목까지. 난 이렇게 완벽한 전투전략의 실례를 또 알지 못한다.
의의
가데스를 제외한 전 히스파니아 전역에서 카르타고 군은 축출당했다. 한니발의 전초 기지였던 히스파니아가 점진적으로 로마의 세력권으로 편입되게 됨으로써 전세는 공화정 로마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한니발은 남부 이탈리아에서 완전히 고립되었고, 스키피오는 이 웅크린 사자를 이탈리아 반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아프리카 본토를 침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