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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고향을 방문한 사람들이 고향집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조용한 농촌마을 옛말 도로 곳곳 이정표 임시주차장 만원…고향집 배경 기념촬영 발빠른 상인들 먹거리 판매 때 아닌 호황
경북 포항시 흥해읍 덕성1리 '덕실마을'. '조용한 농촌마을'은 어느새 옛말이 되어 버렸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고향마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흥해읍으로 들어서면 몇㎞ 남았다는 안내를 담은 커다란 도로표지판이 줄줄이 이어진다. 방문객을 위해 회관 앞과 당선자의 고향집 앞에는 임시주차장도 마련했다. '대통령 당선자 고향집'이란 표지판도 서 있다. 영낙없는 '포토존'이다. 누구라도 그 표지판 옆에 서서 '증명'사진 한장 '박고' 지나간다. 현재는 사촌 형수 류순옥(76)씨의 집이다. 파란색 기와와 벽돌로 개조된 주택이다.
덕실마을은 흥해읍에서 영덕 방면으로 들어간다. 국도 7호선에서 6㎞가량 떨어져 있다. 이 당선자의 문중인 경주 이씨를 중심으로 사촌형수, 육촌동생, 팔촌형 등 33가구 72명이 살고 있다. 덕실마을회관 앞에는 '덕실인(德室人)이여 꿈을 이루어라'고 쓴 2곒 높이의 표지석이 서있다. 어느 마을에나 있는 비석이건만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덕실마을은 이 당선자가 태어난 곳은 아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1945년 해방직후 귀국, 이 마을 사촌형수 류씨의 집에서 4살때부터 1~2년간 살았을 뿐이다. 그 뒤 포항으로 이사했고, 다시 6·25전쟁 때 잠시 동안 이 마을에서 살았다. 당시는 이 당선자의 할아버지 집이었다. 당선자 가족과 큰집 가족들이 함께 생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촌형수 류순옥씨는 '어린시절 이 당선자'에 대해 "단칸방에 쪼그리고 앉아 공부만하던 모습이 대부분이었고, 나이보다 성숙해서 부모의 뜻을 잘 따랐던 것 같다"며 "가족들이 너무 공부만 하는 이 당선자가 혹시 잘못되지나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이제 대통령이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당선자가 대통령 당선될 꿈을 꾸었다고 했다. "돌아가신 작은아버지(이 당선자 선친)가 꿈에 나타나 금덩어리를 한 차 싣고 와 주민에게 나눠줬고 나에게도 한 개를 줬다. 아들 대통령 만들려고 이러냐고 하니, '그게 아니고 너무 어렵게 살아 평소 술 한잔 나눠먹지 못은 것이 한이 되어 그런다'고 대답했다"고 그는 거짓말 같은 꿈 이야기를 전했다.
포항시에 따르면 대선이 끝난 지난 20일부터 방문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가족 단위의 승용차는 물론이고 관광버스도 하루 3~4대나 찾고 있을 정도다. 안순철(62·대구시)씨는 "노력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고 싶어 손자의 손을 이끌고 왔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은 방명록에 축하 글을 남기고 기념사진을 찍곤 사촌형수 류씨에게 당선자의 어린 시절 등에 대해 묻는다. 같은 말을 하는 것이 귀찮을만도 하건만 류씨는 커피 등을 대접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발빠른 상인들은 어묵과 빵, 밤 등을 팔면서 뜻밖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마을이장 이덕형(55)씨는 "경주 이씨 입향 415년 만에 최고의 경사가 났다"며 "방학이 되면 방문객이 더 늘지 않겠냐"고 말했다.
풍수지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방문도 많다. 당선자의 조부모와 증조부모의 묏자리가 명당이라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묘소는 마을에서 4㎞ 가량 떨어진 신광면 만석리에 있다. 풍수지리를 배우고 있다는 강모(49·경주시)씨는 "마을 자리로는 좁은 편이지만 종을 덮어 놓은 모양의 고주산(주산) 등으로 미뤄볼 때 부와 명예를 가진 큰 인물이 날 만한 자리"라고 평했다. 풍수연구가 정모(58·포항시)씨는 "조부와 증조모 묘소가 후손이 집안을 일으키는 천명을 받는 자리인 회룡고조형"이라고 설명했다.
덕실마을은=포항시 흥해읍 덕성1리 덕실마을은 포항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다. 주민 대부분이 50대 이상으로 논농사와 과수, 한우 사육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조선시대에 전국에 가뭄이 들었을 때도 덕이 있는 사람이 많아 마을의 샘이 마르지 않았다해서 덕실마을이라고 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이 마을에 경주 이씨가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이 발생한 1592년께로 알려졌다. 그 후 경주 김씨, 영천 이씨, 곡강 최씨 등과 함께 마을을 이뤄 415년을 내려 왔지만 최근에는 거의 경주 이씨만 남았다. 마을은 고주산을 뒤로 하고 하천을 앞에 둔 '배산임수'의 지형이며 왼편으로 대나무숲이 감싸안고 있어 아늑하다.
글=박정훈기자 jhpark@ksilbo.co.kr
사진=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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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천이씨가 몇세대나 될까요?
그래도 영천이씨가 계실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