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자주 올립니다.
그래도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2004년 3월이니까...
9년이 곧 되는군요.
그때는 날렵했고...꿈나무였지요.
재미삼아 읽어주십시오.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타이곤, 서울상경기
1. 타이곤, 서울가다
동아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한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토요일 일찍 보따리를 싸서 서울행 새마을 기차를 탔다. 구포역에서 김정학 선생이랑 합류하여 서로 말없이 서울로 향하였다. 말을 많이 하면 기록에 악영향을 줄 것 같아 정학은 평소처럼 의젓하게 신문을 보고 있었다. 스포츠서울인가...앞자리에는 제 선배 일행이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단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돼지 수육을 권하기도 하고 맥주를 권했지만 술은 손사래를 하며 극구 사양하였다. 김정학 선생도 술에는 관심이 없는듯 얌전히 앉아 있었다. 기차는 봄이 오는 들녘을 지나 서울로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가끔 버스로 출발한 달려라 하니와 회장님 등 우리 가야지 동지들과 통화하며 어디쯤 가고 있는지 물어보곤 했다. 창밖은 벌써 어둑해지고 기차는 영등포역에 도착하였고 부산 촌놈 타이곤과 정학은 지하철에서부터 약간 헤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명석한 정학은 예리한 눈치로 방향을 잡고 지하철을 탔다. 우리는 신길역에서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정학은 화곡역으로 향하고 나는 안암 고대병원으로 향하였다. 서울은 지하철 공화국, 지하철을 알면 서울은 반쯤 아는 것이다! 그렇다!
지하철 안의 풍경도 서울답더군. 인종도시답게 여러 인종이 함께 지하철에 앉아 있더라구. 서양인, 러시아 계통, 동남아인 등...
2. 가야지 빨간 체육복으로 문상하다
서울갈 때 몇번을 망설였다.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정장을 해야 하나 마라토너답게 체육복으로 갈 것인가 고민하다가 결국 풀코스 주자답게 체육정장차림으로 가야겠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빨간 한벌의 가야지 체육복을 입은 타이곤은 지하철 안의 뭇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무사히 5호선 공덕역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고 안암역에서 내려 고려대학교 부속병원의 장례예식장으로 들어갔다. 상주들은 슬픔에 젖어 있었고 문상객들은 위로하며 엄숙한 분위기에 젖어 있었지...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난 빨간색 체육복과 빨간 가방....모두 의아하게 쳐다보더구만. 그래도 서울까지 온 나를 반갑게 맞아하는 우리 학교 선생님이 내 손을 덮석 잡고는 반가운 웃음을 보내고 있었지. 그리고 술을 권하는데 참 입장 곤란하더군...오늘밤 밤새 마시라고.....그러나 마라토너는 절제할 줄 알아야 하는 법. 잔을 뿌리치고 세잔만 받아 먹었지. 내일 중요한 경기가 있다고 이봉주와 함께 달린다고! 제가 못할 말 했습니까?
다시 서울 지하철의 긴 구간을 달려 가야지 동지들이 잠들어(?) 있는 신림역 부근의 서연장모텔을 향하여 나의 마라톤은 이미 시작되었지요. 서울 젊은이들은 지하철 안에서도 부산 촌놈이 보기엔 엽기적인 애정행각을 보이더군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당연하듯이 별 관심이 없더군요. 하지만 순수한 혈통, 권위 있는 경상도의 길손서당에서 근본도량을 한 타이곤은 그냥 볼 수 없었지요. 계속 째려보는 수 밖에...
3. 가야지 동지들 만나다
서울의 하늘 아래 어디에서 이렇게 가야지 동지들을 만날 수 있으랴! 서연장모텔에서 동지들은 누워 계시더군요. 길손은 욕실에서 무슨 도를 닦듯이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고 응가 자세로 나를 맞이 하더군요. 같이 나누어 먹으려고 사온 찹쌀떡을 말없이 창가에 두고 말았다. 4시 기상이라는 말을 듣고 군대보다 더 하군...나는 마지막 한개피를 꺼내 물고 복도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화려한 밤을 노려보며 연기를 날려 보냈다. 이 시간 부산의 연산동에서도 가련한 한 청년이 뒷골목을 길 잃은 하이에나처럼 해메고 있겠지...(쾌)락의 (도)시에서 (난) 한(마)리 표범이 되고 싶다고 했던가...그렇게 밤은 깊어갔다. 매화꽃 향기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4. 달리다
가야지 동지들과 팔마회 일원은 버스로 이동하며 말없이 새벽의 서울을 바라 보았다. 광하문에 도착하자 많은 달림이들이 몸을 풀고 있었고 스피커의 굉음은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옷을 맡기고 출발 선상에 섰다. 마지막 그린존에...그리던 이봉주는 그림자도 구경하지 못하고 마스터즈 중에서도 제일 꽁지에 섰다. 드디어 출발 신호가 울리고 나는 서서히 달리기 시작했다. 다가올 불행을 알지도 못한 채...지난 겨울 방학에 가야지 동지들은 성지곡에서 선암사로, 통도사에서, 금정체육공원에서, 밀양댐에서 땀을 흘렸고 달렸다. 나는 실컷 놀았다. 가끔 모이세에서, 표충사 밑 어느 주점에서 땀을 흘리고 했었지...
설렁 설렁 달리자. 절대 무리하지(?) 말자 다짐하고 결의했다. 서울시가지를 구경하며 조선의 거리를 조상들이 걸었던 이 길을 가슴으로 안으며 달리자. 내 영혼과 대화하며 달리자. 5킬로 10킬로까지 도시를 구경하며 길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여유있게 달렸다. KBS카메라가 서 있더군. 몇 몇 사람들이 외쳤지 "어이 카메라맨! 우리도 찍어도" 카메라맨은 본 척도 하지 않더군. 완전히 사람 차별하더군. 10킬로를 지나자 서서히 몸에서 꾸짖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오른쪽 종아리와 대퇴부가 당겨오기 시작하더니 왼쪽 다리의 무릎이 따끔거렸다. 천천히 달리고 있는데도 벌써 연습부족 증상이 오니 갈길은 멀고 힘은 들고 오늘이 비상사태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지 않은가! 억지로 억지로 달리고 있었다. 얼굴은 고통을 이겨내느라 일그러져 있었고 팔은 왜이리 무거운고....그러나 저 앞에 사진사가 보이면 언제 그랬냐는듯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며 마라톤을 즐기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아~~~가증스러운 인간! 무릎은 점점 더 아파오고 아무리 동계훈련이 다소 부실했다 해도 내가 누군가, 지난 가을 경주동아마라톤에서 풀코스를 달린 마라토너가 아닌가! 그때는 너무 조심해서 달려 자신을 통제하느라 신경을 너무 썼는데 이번에는 힘도 한번 못쓰고 벌써 이렇게 망가지는구나.... 20킬로 지점에서 '에라, 에너지나 보충해야겠다~ 초코파이, 바나나, 물, 이온음료 등 닥치는대로 배터지게 먹었다. 이건 마라톤하러 왔는지 먹으러 왔는지...내 인생이 왜이런가 하고 한탄스럽기도...아니, 발바닥 부상으로 고생하는 길손이라도 절둑거리며 어디 앉아있는 것은 아닌가,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없더구만...아하, 그래 30킬로야~ 지난 경주에서도 그곳에서 길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 그래 30킬로까지만 가자~ 그러면 동지가 생긴다. 분명히 발을 손으로 만지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길손을 생각하니 힘이 약간 솟았다~ㅎㅎㅎ
그래 얼마나 좋아~ 길손을 부축하여 회수차를 탈까~ 다른 방법이 있을까~ 분명히 방법이 있을거야, 영악한(!) 길손은 회수차를 타지는 않을거야, 가야지 수석부회장의 명예와 체통이 있지! 평소에 늘 가문을 걱정한 걸로 보아 회수차 안에서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그래, 다른 방법이 있을거야! 길손이 누군가~ 천하가 다 아는 제갈공명이 아닌가! 그러면 나는 부상당한 동지를 위해 레이스를 포기까지 한 의리의 마라톤 동지, 타이곤! 이것은 현대판 관포지교가 아니겠는가! 요런 생각을 하며 나는 불룩해진 배를 어루만지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무릎통증이 약간 줄어들고 있었다. 이런 길손효험이라 했던가~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이제는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많이 먹을 때 알아봤지~ 알아봤어~
길가에서는 서울시민들이 응원을 하고 ROTC후배 부부가 나와 꿀물을 아기들이 먹는 시럽통에 넣어 주는데 빨아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드디어 그렇게도 기다리던 30킬로에 왔다. 그래 길손~길손을 찾아야 해~ 그래 길손밖에 없어~ 길손말고 누가 있겠는가~ sub-3 주자인 회장과 꾸니가 있을리 없고, 날렵하신 김숙환 교감샘, 연습특수부대원 아톰행님이 쳐졌을리도 없고, 그렇다고 나무꾼 상오는 sub-3하겠다고 날라가고 있을게고, 달려라하니, 그 무시무시한 여인이 그럴리 없지 지난 겨울에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그럼 무 박광희~ 아니야 아침에 보니 컨디션이 괜찮아 보였어~겨울동안 술도 절제하고 연습도 충실히 한 것 같아 그리고 알오**출신이잖아~ 그 출신에 그런 사람 없지~ 그렇다고 매향 정택~그 사람은 충실하고 규모있는 사람이야~자기절제를 하는 사람이라구~ 그래 길손뿐이구만~ 그런데 이 사람이 왜 안보여, 어디 숨었나~ 내가 오는 것을 보고 창피해서 숨었구만~ 괜찮아 길손, 나와 같이 가자구~ 길소~~~~온! 아니 제갈공명, 자네 어디있나~
5.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어떻게 달렸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길가에 서 있는 나무를 붙잡고 스트레칭을 하다가 '나무야, 나무야~'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래 살아서 돌아가야 해, 굴러서라도 기어서라도 가야 한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정신이 몽롱하다. 무릎은 달릴 때 마다 송곳으로 찌르듯이 아프다. 처절한 사투를 벌이며 나는 달리고 있었다.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저 멀리 잠실 운동장이 보이고 연도에는 서울시민들이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선배님, 28기 ***입니다. 마지막 스퍼트 하시죠' '야 이 친구야, 나 지금 스퍼트하고 있는 중이라고...' 그렇게 골인하였다. 4시간 13분 15초...경주동아대회에서는 절제하느라고 조심 조심 달렸는데...다리에 고통도 별로 없었고 힘든 줄도 모르고 달렸는데...온 몸을 파고드는 짜릿한 고통~ 그래 이 맛이야~ 아~ 즐거운 고통, 이 아름다운 고통,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다리를 질질 끌며 칩을 반납하고 모이기로 한 마사지실 근처에 갔다. 가야지 동지 몇몇 오래동안 기다린 탓인지 지친 기색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느낌이 팍 오더군~ 별로 반가워 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데 길손은 어찌 되었을까? 아니 멀쩡하게 살아서 신기록을 수립했다는 둥, 컨디션이 좋아 심하게 땡겼다는 둥, 무용담을 이야기하며 sub-3에 도전을 해야겠다는 둥,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관포지교는 어떻하고...관중아~ 포숙아~
6. 기념식수하다
가야지 동지들과 팔마회 회원들은 운동장 뒤편 시멘트 위에서 신문지를 깔고 점심을 먹었다. 팔마회에서 준비한 김밥과 수육 등을 안주 삼아 소주를 곁들인 맛난 파티였다. 점심을 끝내고 화장실로 향한 몇몇 동지들은 운동장 입구로 향해 갔다. 그러나 이미 문이 잠겨 있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올림픽기념 나무에 식수(?)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다들 짐작하겠지만 보통 머리로는 안되는 법, 우리는 모두 충분하게 기념식수를 하였다. 마라톤 풀코스를 달린 고수들의 고농도 엑기스만을 받아 먹은 그 나무들은 아마 무럭 무럭 잘 자랄 것이다. 내년에 가서 확인을 꼭 해야겠다. 그런데 달려라하니는? 아직도 궁금하다~
7. 작별 그리고 홀로남기
버스는 바로 부산으로 출발해야 한다. 목욕이라도 같이 하고 가면 좋으련만...나는 밤 8시 새마을을 타고 가야 한다. 떠나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그렇게 가야지 동지들은 떠났다. 나는 홀로 남았다. 이미 모두가 떠난 텅빈 운동장 주변, 왁자지껄하던 축제의 무대는 사라지고 사람들의 잔영만 내 가슴에 남은 채...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 5시간 이상을 무얼하며 보내나~ 보따리를 메고 터덜 터덜 걸었다. 먼저 목욕을 해야겠다. 절룩거리며 주변에서 가까운 목욕탕을 찾았다.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고 나니 한결 가볍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삼성역이다. 코엑스 앞 광장의 벤치에 앉아 서울사람들을 구경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부모들,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 친구들 끼리 깔깔대는 여학생, 서울의 하늘은 흐렸지만 봄이 오고 있었다.
8. 민정시찰을 하다
그래 지하철을 타고 일단 영등포역으로 가자~ 지하철 안에서 서울 알마(알오티시마라톤클럽)에서 전화가 몇번이고 왔다. 지금 어디있느냐고, 나는 하얀거짓말을 하였다. '나 지금 부산 가는 중이라고' 오늘은 혼자 있고 싶다. 사람은 때로 혼자 있고 싶은 법, 낯선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 무리 속에서 나 자신을 느끼고 찾고 발견하는 것, 그것 또한 수행이 아니겠는가, 나 자신과 대화하며 몇 시간이고 말없이 지내는 것도 또한 道를 닦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 오늘은 수행을 하자~ 영등포역에 내려 영등포시장과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경방필백화점, 영등포지하상가를 <민정시찰>해 보자.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직접 체험하자. 실물경제(?)도 익히고 민심도 살피자~ 내가 무슨 암행어사인가? 그런데 무거운 가방을 메고 아픈 다리를 끌며 걸어다니기가 힘들었다. GSbooks라는 서점을 발견하고 책 두권을 사고 한 시간 이상 서점에서 잘 놀았다.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일러 영등포역 주변에 앉아 서울사람들 구경 실컷했다. 서울사람들 역시 잘생겼더라, 키도 크고 말씨도 서울말에다 피부도 하얗더라, 야~서울에 살아야겠다. 높은 빌딩, 넓은 거리, 씽씽거리는 지하철, 수많은 공원, 달리기 좋은 강변길 등 야~역시 서울이야, 사람들 입은 옷 좀봐~ 비싸겠네~ 요런 생각을 하고 앉아 있는데 '아저씨'~하고 나를 부른다. 헉~ 이 낯선 서울에서 누가 나를 부르는고, 고개를 들어보니 오래동안 지하에서 생활하신 '지하철 박'이 아닌가~ 나에게 손을 내밀며 '차비~차비~'하며 당당하게 요구한다. 가만 이 사람이 내 이마에 부산 촌놈이라 젹혀 있나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 나한테 와서 이러지~ '어디까지 가는 차비'라고 약간 퉁명스럽게 경상도 말씨로 대답하니 나를 힐끔 보며 중얼중얼거리더군, '나도 가출했는데 잠은 어디서 자야되요'(나의 복장은 충분이 가출생으로 보임-빨간체육복+빨간 가방 + 영등포역 근처에 멍하니 앉아 있음) 나의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한 '지하철 박'은 고약한 향기를 날리며 몸을 돌리더군, 마음이 약해진 나는 소주 값만 주겠다고 약간의 군자금을 주었다. 서울 살만한 곳이 아냐~ 여기 오래 있다간 '지하철 박' 동료들이 몰려 올 것이다. 작전상 후퇴다. 빨리 뜨자~그래 저녁을 먹자, 에너지를 보충하고 영양도 보충하고 술도 한잔한 후 기차에서 잠이나 자자~ 그래 묵으러 가자~
9. 아~모이세
영등포역 주변을 어슬렁 어슬렁거리다가 나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이세''다 모이세'라는 간판이 있지 않은가~ 이렇수가 우리의 聖地 '모이세'가 서울에도 있구나, 나는 극도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당장 식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눈에 익은 메뉴, '모이세 해장국' '모이세 내장탕' '생 삽겹살'......
일단 삽겹살로 영양을 보충하고 소주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그리고 내장탕으로 마무리하자, 아~ 이것은 근본도량 수행이로다~ 수행이야~ 소주 한잔 하며 삼겹살을 입안에 던지니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구나~ 증거를 남기기 위해 디카를 꺼내어 현장을 보존하였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소주 몇잔에 삼겹살 몇점에 나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잠이 쏟아지는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견디기 힘들 정도로...실내는 따뜻하고 내 몸 속으로 들어오는 알콜, 꾸벅 꾸벅 졸았다. 혼자서 먹는 소주와 삽겹살, 자신과 대화하며 서울하늘 아래에서 지나가는 바람과 벗하며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사람은 가끔 혼자 이고 싶은 법, 낯선 곳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처절하게 혼자가 되는 것, 이것 또한 수행이 아닌가~
10. 귀향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제 서울을 떠나는구나. 미련도 없이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가는구나. 동아국제마라톤대회의 아픈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살가운 부산으로 가는구나. 나는 무엇을 얻으러 이곳까지 왔단 말인가~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잃었는가~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며 나는 무엇이었나~ 누구를 위해 달렸고 왜 달려야만 했나~ 그것은 알 수 없다. 참기 힘든 고통을 즐기며 무릎이 퉁퉁 부어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끝까지 달렸다. 아무런 이유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 다만 달렸을 뿐...함께 했던 가야지 동지들과 그리고 각자 자신만의 이유로 함께 달린 수만의 동지들과 이름모를 사람들과 함께 뛰고 걷고 고통을 나누고 격려해주고 마음을 나누었을 뿐...선조들이 걸었고 달렸을 조선의 길 위를 함께 달리고 고통을 나누었을 뿐...가슴으로 안고 두 발로 쓰다듬으며 함께 살아가는 이 땅위에서 그냥 내 삶의 한 역사를 만들었을 뿐...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서 말한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be defeated.)는 말을 가슴에 세길 뿐.....(끝)
(편지)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대회에 참석하지 못한 모든 가야지 동지들에게도 언제나 고마운 말씀을 드립니다. '모이세'라......
2004년 3월 19일 타이곤 이용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