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퇴임 후 ‘36시간 인터뷰’ 내용 “트럼프 파격적, 시진핑 현실주의자
오바마, 친구 관계 맺기 어려운 타입 푸틴, 냉정해 보이지만 의외로 싹싹”
아베 신조 회고록. 아마존 갈무리© 경향신문 지난해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생전 인터뷰를 정리한 회고록이 8일 발간됐다. 480쪽 분량의 〈아베 신조 회고록〉에는 그가 총리직에서 퇴임한 이후인 2020년 10월부터 약 1년간 18회에 걸쳐 36시간 동안 응한 인터뷰 내용이 실렸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아베 전 총리가 회고록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 반일을 정권 부양의 재료로 이용하려 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파격적이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현실주의자라고 각각 평가했다고 전했다. 회고록에서 한국 관련 내용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피해자 합의와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북미 정상회담 등을 다룬 부분에 나온다. 아베 전 총리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이해불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문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정권 당시 한일 협정을 재검토한 위원회에 참가했기에 강제동원 배상 판결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지만, 반일을 정권 부양의 재료로 이용하고 싶어했던 ‘확신범’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도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문 정권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였다고 고백했다. 문 전 정권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파기한데 대해선 “감정적인 조치였고 미국의 강한 압박을 초래했다”고 했다.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자신이 사죄까지 했지만, 한국이 약속을 져버렸고, 이로 인해 일본이 도덕적 우위에 섰다고 자평했다. 아베 전 총리는 그동안 역사 문제에 저자세를 보여온 일본의 문제점을 바꾸기 위해 자신이 노력한 덕에 일본이 한국과 중국에 국제법을 준수하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회고록에는 2018년 만난 서훈 당시 국가정보원장과의 대화 내용도 공개됐다. 아베 전 총리는 “서 전 원장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것이고 6·25 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다’ ‘김정은은 훌륭하다’고 말했다”고 했다. 또 “북한이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할 것이라고 했지만, 어디까지가 김정은의 뜻이고 어디부터가 한국의 희망인지 몰랐다”고 했다. 한편 아베 전 총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골프를 치며 관계 맺는데 힘을 쓴 이유에 대해서는 “현실 문제로 일본이 (트럼프의) 표적이 되면 나라 전체가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 대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재임 중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아베에게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와 주일미군 주둔 비용 부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는 “일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다. 친구 같은 관계를 맺기 어려운 타입이었다”고 언급했다. 아베 전 총리는 시진핑 중국 주석에 대해서는 “시 주석이 ‘만약 미국에 태어났다면 미국 공산당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이나 공화당에 입당하겠다’고 말했다”며 “강렬한 리얼리스트(현실주의자)”라고 분석했다. 재임 중 총 27차례 회담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냉정해 보이지만 의외로 싹싹하다”고 평했다. 아베 회고록은 요미우리신문 특별편집위원과 논설부위원장이 썼고, 기타무라 시게루 전 국가안전보장국장이 감수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