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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19:103~107(894) 송이 꿀 하나님의 말씀 2022. 12. 11.
국제 예수전도단 설립자 로렌 커닝햄 (Loren D. Cunningham)은 ‘열방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책(The Book that Transforms Nations)’ 을 통해 작은 섬 핏케언(Pitcairn)에서 일어난 혁명을 소개합니다. 1991년 8월 로렌 커닝햄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갬비어에서 사흘간 배를 타고 핏케언이라는 섬을 방문하여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면적 2 평방 마일에 불과 50여명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던 평화로운 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평화로운 섬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1789년 영국 군함 바운티호에서 반란을 일으킨 9명의 반란자들이 배를 탈취하여 도망치다가 원주민들만 살고 있는 이 작은 섬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영국 정부의 처형이 두려워서 배를 불살라 버리고 이 섬에 은둔하여 살기 시작합니다.
9명의 영국 해군들은 섬에서 자생하는 식물의 뿌리로 술 만드는 법을 터득하여 술을 만들어 마십니다. 그 후 싸움과 폭력이 발생하였고, 원주민들과의 갈등에 살인사건까지 발생하게 됩니다. 원주민들 또한 술 만드는 법을 전수받아 술로 인해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합니다.
그런데 섬을 변화시키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도망친 9명 중에 한 사람이었던 존 애덤스가 도망칠 때 훔쳐 나온 해군군수품 상자에서 성경책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폭력과 음주에 찌들어 있던 생활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성경을 읽고서는 원주민들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성경 말씀이 전파되기 시작하자 시기와 다툼, 폭력과 음주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 섬에 사는 사람들 전체가 변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후 100여년의 시간이 지난 뒤 이 섬을 방문했던 2명의 영국 장교는 ‘핏케언섬의 문화가 마치 기독교 황금기의 문화를 보는 것 같았다’는 기록을 영국에다가 보고를 합니다. 커닝햄이 이 섬을 방문했을 때, 섬의 역사를 기록한 박물관에는 애덤스의 낡은 성경책이 보관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 섬의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The Bible changed everything on our island)” 인간이 바꾸지 못하였던 것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기적으로 변화시켰다는 간증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매해 12월 둘째 주일은 성서주일로 지키고 있는 주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서공회주일(Bible Society Sunday)이라는 이름으로 1899년 5월 성령강림주일에 처음으로 지켜졌습니다.
1899년은 복음의 초창기입니다. 즉,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대한민국의 교회에서는 성서주일로 지키면서 성경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깨달았다는 점입니다. 성서주일을 한국에서 처음 주창한 영국성서공회 조선지부 책임자 캔뮤어(사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이웃에게 성경을 보급’하고자 하였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성경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저 중요하게 생각하고 읽으면서 가까이 해야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성경 말씀을 전하는 것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19편은 성경의 중앙에 위치하여 하나님 말씀에 대한 열정과 말씀에 근거한 구원과 복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은 말씀에 대한 매우 사실적 묘사를 통해서 성경 말씀을 성도들이 사랑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03절,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여기의 ‘달다(sweet, 니믈레추)’는 원어로 ‘꿀처럼 매우 달콤하다’라는 뜻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가치를 ‘최고의 당도를 가진 꿀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오늘날 에는 극한의 달콤함을 주는 인공감미료 사카린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만들어진 천연꿀에 비하면 그 달콤함은 비교조차하지 못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혀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달콤함인 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감(五感)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그 뜻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 등의 생물이 느끼는 5가지 능력을 말합니다. 오감이란 ‘시각(눈), 청각(귀), 후각(코), 미각(혀), 촉각(피부)’5감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데 있어서 어느 하나라도 절대 빠져서 안 되는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특히 그 중에서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혀로 느끼는 ‘미각(味覺)’입니다. 음식을 먹을 때에 달고 짠맛 등을 느끼지 못한다면, 식도락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슬픈 인생이 됩니다. 꽁보리밥 한 그릇에 마른 멸치와 된장 하나라도 그 구수한 맛을 느낄 수 있을 때, 그 단촐한 밥상은 천하에서 가장 맛있는 밥상이 됩니다.
얼마 전에 이웃교회에 시무하시는 목사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코로나 19에 걸렸는데, 걸린 증상이 맛을 느끼는 미각과 냄새를 맡는 후각이 상실되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남들은 맛있는 음식이라고 말하는데, 본인은 정작 음식이 주는 맛을 느끼지 못하고, 냄새를 맡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는 말이 “김목사님, 미각과 후각이 사라지니 사람이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닙디다. 그러니 목사님은 절대 코로나 걸리지 마세요”라고 신신당부를 합디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코로나에 걸려서 미각과 후각을 잃어 버렸어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되어 맛을 느끼고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세상에 있는 다양한 음식의 맛만 느끼는 것에 머물러서 안 됩니다. 성도는 세상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느껴야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것에서 참된 말씀의 맛을 느껴야 합니다.
저는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송이 꿀보다 더 달콤한 맛을 항상 즐기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달콤함을 느끼고,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느끼시길 축원합니다.
1. 나를 가르쳐 올바른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02절,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여기의 ‘가르치셨으므로’라는 말은 ‘인격적인 관계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아버지나 엄마가 자식을 앉혀놓고 한 글자 한 글자를 짚어가며 글을 가르치듯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성경을 사모하는 성도들을 가르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도들이 올바른 길을 걸어가도록 가르쳐 주십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헛갈리는 상황 속에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진리의 길로 가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에 항상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울러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는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그럴 때에 실수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중차대한 결정 순간에서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면 거짓된 것과 죄악을 멀리하라는 가르침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할 수 없다고 선언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말씀의 가르침을 통해 유혹과 탐심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말씀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1900년대 강화 북부마을에 종순일(種純一, 1876-1950)이라는 돈이 많은 유학자가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돈을 빌려 쓰고 살았습니다. 종순일은 돈을 빌려주고 빌려간 사람들에게서 이자를 받음으로서 부를 더 많이 축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유학자가 복음을 받아들인 후, 성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성경을 읽는 중 큰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1만 달란트 탕감받은 사람’의 비유를 읽고서 충격을 받고 큰 고민에 빠집니다. 자신도 사람들에게 돈놀이를 하면서 빚을 놓고 있는데, 성경에 나오는 값없이 탕감을 받은 사람들의 비유가 자기에게 하는 말로 들려 고민에 빠집니다.
하루는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자신에게 빚진 자들을 모두 불러 모읍니다. 빚진 자들은 빚을 다 갚으라는 줄로 알고 떨면서 마당에 서 있습니다. 그때 종순일은 마18장에 기록된 1만달란트 탕감 받은 사람의 비유를 읽어 줍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성경에 나오는 무자비하고 못된 종이 바로 나 자신인 것을 깨달았소.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이 나에게 빚지고 있는 모든 빚을 모두 탕감하기로 하였소. 나의 결심을 이행하기 위하여 나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의 빚 문서를 모두 태워 버리겠소” 이렇게 말하고 모든 빚 문서를 다 불태워 버립니다.
그렇게 성경 말씀을 따르고 실천합니다. 그러던 하루 마 19:21절의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읽고 또 다른 결단을 합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다 처분하여 강화도 지역에 교회를 세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아내와 더불어 전도하러 길을 나섭니다. 강화도에 교회가 많은 것이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국 교회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종순일 목사님은 어린아이처럼 순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행동하신 분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을 보면 이런 어린아이처럼 순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한 없닌 순종과 헌신의 모습으로 일평생을 사신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지요? 나를 가르치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습니다. 내 생각과 내 경험을 먼저 따르고, 세상의 향락과 즐거움을 먼저 따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쩌다 생각나면 체면치레로 따를려고 하는 생각만 잠시잠깐 할 뿐입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생명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따라가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 내 인생의 길을 밝히고 인도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05절,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걸음 앞을 밝히는 등불이고, 내가 걸어가는 길을 환하게 비추는 빛이라고 찬양합니다. 등불이나 빛은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습니다. 작은 빛은 한걸음 앞만 비출 수 있지만, 큰 빛은 멀리 비추어서 더 많고 넓은 지역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여러분들은 멀리 바다를 비추는 등대의 탐조등이나 밤하늘의 적기를 탐지하는 서치라이트를 아실 것입니다. 멀리 가는 것은 수Km를 비춥니다. 하지만 똑같은 등이라고 해도 손전등은 멀리보아야 수 M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 등이고 빛이라는 말은 내 발 앞만 비추는 작은 빛이 아닙니다. 원어(웨오르)의 의미를 살펴 보면, ‘길 전체를 비추는 큰 빛’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생의 걸어가는 길을 비출 때에, 불완전해서 어느 쪽은 비추어지고 어느 쪽은 비추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인도할 때에는 어떤 상황이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하지 않고 완벽하게 적용됩니다.
‘맞춤 고객 서비스’라는 말을 서비스 업계에서 자주 사용합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족집게처럼 콕 짚어서 사람 사람마다 필요한 것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서비스라고 말합니다. 말로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서비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시스템도 없고 그런 완벽한 서비스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서비스를 행하는 사람 자체가 부족하고 불완전한 사람이 행동으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걸어가는 내 인생의 앞걸음을 완벽하게 비추어 주시는 말씀이 됩니다. 내 인생의 길을 환하게 비추어서 내가 행여 발견하지 못한 돌부리로 인해 넘어지지 않도록 나를 이끌어 주시는 말씀입니다. 사람마다 걸어가는 길이 다르고, 지향하는 목적과 삶의 스타일이 다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환경과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나를 이끌어 주시는 말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없는 세상은 어둠 자체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은 내가 가는 길을 비추는 빛입니다. 성경은 객관적인 책이 아니라 나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나의 책입니다. 성경이 나의 책이 될 때 말씀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완벽하게 내 길을 비추는 말씀이 된다고 말하지만, 내가 그 말씀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성경 말씀이 송이 꿀보다 더 달고 내 길을 인도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이 된다는 사실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주만공격 총대장의 회심’이라는 책의 주인공 후치다 미쓰오(淵田 美津雄 1902-1976)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을 공격하였던 진주만 공격에 대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전투기와 폭격기로 급습을 하여서 미국에서 큰 피해를 준 것이 바로 진주만 기습공격입니다. 후치다는 진주만 공격에 있어서 공습부대의 비행 총지휘관이었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도라,도라,도라(トラトラトラ, 기습에 성공함)는 말은 후치다가 일본에게 타전된 무전 내용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일본 해군성에서 전쟁 자료를 연구 하는 중, 많은 일본군인들이 미군에 의해 치료를 받으면서 생명을 건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일본은 미군에게 원수와 같은 것인데. 인도적이고 사랑의 모습을 보이는 것에 감동을 받은 후치다는 지인을 통해서 성경을 받게 되고 성경을 읽으면서 인생관이 바뀌게 됩니다.
미군을 증오하고 증오에 사로잡혀 복수심에만 불타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후치다는 자신이 깨달은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귀하고 소중하다고 판단되어 자신의 일생을 바치기로 작정합니다. 그래서 1949년 기독교로 개종한 후 1966년 은퇴하기까지 미국과 일본 각지에서 전도활동에 매진하다가 1976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107절.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심한 고난에 빠져 있을 때에 나를 살아나게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나요?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 또한 언젠가는 이 땅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지만,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되어진 부활의 소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 소망이 주어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말씀은 소망을 얻게 하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는 소생의 능력이 있습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에스겔 골짜기에 이미 죽어버려 마를 대로 말라버린 수많은 뼈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어떤 결과가 나타났나요?
겔 37:10절,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하나님의 말씀이 무수한 해골 뼈들에게 전해지자 그들이 큰 군대로 바뀌어지는 기적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소생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삶에 고난과 역경이 찾아옵니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닥쳐옵니다. 마치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는 것처럼 절망스러운 상황이 오기도 합니다. 저는 2022년 한 해 동안을 언제 꺼질지 모르는 불안감으로 살얼음판을 조심스레 걷는 느낌으로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소생하면서 2023년을 바라볼 수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절망의 수렁에서 건져 올리며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서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재차 확인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행복한 연말연시를 보내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