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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만한 책>
'잊혀진 전쟁' 6·25의 진실을 새롭게 일깨우다.
복거일의 신간 ‘굳세어라 금순아를 모른는 이들을 위하여’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제목의 대중가요가 있었다. ‘있었다’라고 쓴 이유는, 노래가 세상에 나온 이후 거의 한 세대 이상의 세월 동안 대중의 애창곡이었고 전쟁을 체험한 세대-특히 실향민에게는 실로 ‘가슴을 저미는’ 노래였는데도 사실상 '잊혀진 노래'나 다름없게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노래방의 가요 목록 책자에서나 겨우 찾아볼수 있는 정도인데 그 ‘굳세어라 금순아’를 제목으로 빌린 책이 나왔다. 6·25 64주년을 즈음해서 발행된 ‘굳세어라 금순아를 모르는 이들을 위하여’ (도서출판 ‘기파랑’발행)가 바로 그 책이다.
책을 펼치기 전 독자는 우선 표지에 쓰인 저자이름이 복거일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겠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논객이면서 소설가인 복거일이 하필 ‘케케묵은’ 유행가 제목을 자기 저서의 제목으로 차용해? 뭐, 그런 의문과 함께 가벼운 에세이 모음 쯤으로 짐작할 듯싶다. 그런데 아니다. 제목 옆에 작은 글씨로 쓰인 부제-‘6·25전쟁의 역사와 교훈’를 확인하고 표지를 펼쳐 목차 제목들을 흝어보노라면 책 내용에 대한 선입견이 틀렸음을 곧 깨닫게 된다.
역사를 가른 9개의 ‘결정적 전투’
12개 장(章)으로 구성된 책은, 제 2장에서부터 제 10장까지 9개장에 걸쳐 6·25 남침전쟁에서 치러졌던 9개의 전투(춘천지구 전투, 다부동 전투, 인천 상륙작전, 운산 전투, 장진호 전투, 흥남 철수작전, 지평리 전투, 임진강 전투, 용문산 전투)에 대해 서술한다. 저자는 이들 전투를 '결정적 전투'라고 규정한다. “(그 전투의) 다른 결말이 전쟁의 흐름을 크게 바꾸었으리라고 생각되면, 그 전투는 ‘결정적 전투’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전투가 크고 치열했어도, 결정적 전투라고 평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의 깊은 독자라면, 백마고지 전투, 피의 능선 전투 등 전쟁체험 세대에게는 너무나 귀에 익은 '큰 전투'는 왜 책속에 취급되지 않았는가라고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저자의 해석으로는, 그 큰 전투들은 전황이 이미 소강상태였던 때에 ‘전선의 정리’와 같은 제한된 목표의 작전으로 치른 전투였다. 따라서 많은 병력들이 투입되어 엄청난 사상자들을 냈지만 전쟁의 진행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데 비해 책에서 다룬 9개의 전투는 전황의 분기점이 될 정도의 ‘결정적 전투’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9개의 전투들을 살피면, '6·25 전쟁의 모습이 또렷이 들어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전투의 기록은, 대체로 작전을 지휘한 장군들의 이름을 중심으로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복거일의 이 책은 조금 다르다. 표지를 열면, 목차에 앞서 적힌 헌사(獻辭)가 이를 미리 짐작케 한다. 헌사는, ‘역사는 기록했지만 정작 도움을 받은 우리는 잊은 영웅' 8명을 열거한다. 토머스 맥페일 Thomas Mcphail 육군 중령(주한미군 군사고문단 KMAG 6사단 파견 선임고문-춘천지구 전투)’을 맨 먼저 적은 뒤에 잇달아 장병 7명의 이름과 계급(중령 2,중위 2,일등 상사 1 일등병 1,대령1명), 소속 부대 그리고 그들이 치른 전투 등을 적시하고, 이어 “1951년 5월의 국군2연대 장병들(용문산 전투)께 깊은 고마움으로 이 작은 책자를 바칩니다.”로 끝맺는다. 저자는 어떻게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들 장병들을 헌사의 대상으로 선정한 것일까. 당연히 전투를 중심으로 한 6·25의 전모에 대해 저자의 연구공력이 그만큼 깊었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책 분량이 210쪽임으로 1개의 전투에 할애된 설명은 평균 20쪽 정도다. 저자는 전투마다 ‘정세-특징-경과- 성과 등 사실(史實)을 지극히 건조한 문장으로 치밀하게 적시·기술하고 이어 그 전투를 저자 나름의 시각으로 평가한다..전투의 상황·경과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 몇 분’식의 기술이 여러 차례 나온다. 그처럼 압축적이면서도 명료한 사실적 기록이 달리 있을까 싶을 정도인데 저자가 책 맨 뒤에 붙인 참고문헌을 눈여겨보면 그런 사실적 설명이 어디서 나왔는가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특이하게도 책 맨 뒤에 기록한 참고문헌 소개도 설명문으로 시작한다. “6·25전쟁에 관한 기본적 사서는 미군전사감실Office of the Chief Military History이 펴낸 '한국전쟁에서의 미군' United States Army in the Korea war이다. 다섯 권으로 된 이 책의 제2권인 애플먼의 '남으로 낙동강, 북으로 압록강' 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 제3권인 모스먼의 '썰물과 밀물' Ebb and Flow, 그리고 제4권인 허미스의 '휴전 천막과 싸우는 전선' Truce Tent and Fighting Front을 읽으면 일단 6·25전쟁에 관한 기본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썼다.
저자는 이어 우리 육군사관 학교에서 나온 ‘한국전쟁사’, 백선엽 장군의 ‘군과 나‘,맥아더 원수의 회고록 '회상’Reminiscencesrhk, 리지웨이 장군의 회고록 ‘한국전쟁' The Korean War , 중국인 슈 Shu Guang Zhang의 '마오의 군사적 낭만주의: 중국과 한국전쟁’ Mao's Millitary Romanticism:China and the Korea War' 등도 6·25를 이해할 수 있는 문헌으로 소개한 후 국내 발행 책 15개, 일반인이 구해보기 어려운 문서·문헌 등 외국 자료·서적 25개를 적시하고 있다. 복거일의 다른 책이나 논설 몇 편이라도 읽어 본 독자라면 적시된 참고문헌들을 통해 그가 6·25를 치열하게 파악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책 ‘굳세여라 금순아...’의 서술이 제목과는 달리 사록(史錄)으로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이유다.
'황초령 아래에서 얼어 죽은 소녀를 슬퍼한다'
저자는 자신이 6·25전쟁을 겪은 세대들 가운데 가장 어린 세대에 속한다면서 이렇게 돌이켰다. “지금 내 마음에 남은 심상들 가운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또렷해져서 다른 것들을 압도하는 것은, 패주하는 국군들이나 국제연합군들을 따라나선 피난민들이다.” -저자가 "6·25전쟁의 성격과 의의를 무엇보다도 유창하게 말해준다."고 표현한 그 피난민 행렬 속에는 수 많은 고아들이 있었다. 그들의 그 후 인생이 얼마나 신산(辛酸)했을 것인가에 대해 긴 설명이 필요할까. 따라서 저자 나이(1946년생)의 세대야말로 6·25 전쟁에 털끝만치의 책임도 없으면서 가장 혹독한 피해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살아남았다는 건 그래도 천행이다. 무수한 어린 생명이 희생됐다. 줄곧 감상을 배제한 서술로 이어지던 책이 마지막 장-'황초령 아래 얼어죽은 소녀를 슬퍼하며'에 이르면, 말 그대로 읽는 사람의 누선을 자극할 만한 얘기가 나온다.내용은, 당시 미군 1해병연대 1대대 소속이었던 홉킨스William Hopkins 대위의 회상을 요약한 것이다.
-장진호 전투 후 수많은 피난민이 후퇴하는 미군을 따라나섰지만 미군은 그들을 보살필 수가 없었다. 그 때 홉킨스는 어떤 남매가 손을 잡고 길을 가는 것을 보았다. 단발머리를 한 그 소녀는 그에게 어릴 적의 누이를 떠올리게 했다. 중공군의 공격을 받아 부모와 헤어진 모양이었다. 조금 있다가 소녀 혼자 추위에 떨면서 오빠를 찾아 길을 거슬러 올라왔다. 소녀는 눈 속에 넘어지더니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그는 그 소녀를 벙커 안으로 데려와 뜨거운 차와 ‘C레이션’을 주어 원기를 차리게 했다. 후위 작전을 맡은 부대 소속이라 그는 그 소녀를 데리고 있을 처지가 못 되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소녀에게 다시 길을 따라 내려가라고 일렀다. 다음날, 그는 황초령 아래 도로 옆에서 얼어 죽은 그 소녀를 보았다.
복거일은 이렇게 썼다. “모든 죽음은 안타깝다. 그러나 열 살이 채 못 된 어린 소녀의 외로운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애처롭다. 개마고원 매서운 바람 속에 남쪽으로, 남쪽으로 걸어 황초령 넘고서 끝내 기진해서 죽은, 나보다 서너 살 위인 그 소녀는 내게 6·25전쟁을 상징한다.” - 비극이 어찌 죽음 뿐이겠는가. 출판사 편집자의 아이디어로 짐작되지만 책 제목으로 궂이 ‘굳세여라 금순아...’를 차용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책의 제 7장 "흥남철수작전'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50년 12월,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을 무릅쓰고 압록강까지 북진하던 국군과 UN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를 하게 되였을 때에, 흥남부두에는 10만명 가까운 북한주민들이 모여 들었다.남으로 피난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 피난민 1만 4천명을 태우고 거제도까지 무사히 항해한 미국의 메레디스 빅토리호의 ‘기적’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러나 “슬프게도 배들이 부족해서 많은 피난민들이 흥남부두에 그대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빅토리호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흥남부두는 , 말하자면 거대한 규모로 펼쳐진 '이산(離散)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離散의 현장 흥남부두에 뿌려진 ‘피 눈물’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었다. 개마고원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속에서 여러날을 견디고도 끝내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의 비극은, 뒤에 강사랑이 작사하고 박시춘이 작곡해서 현인의 목소리로 널리 알려진 ‘굳세어라 금순아’에 담겼다."-. 복거일은 책에서 이처럼 대단히 절제된 문장으로 1953년에 나온 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의 사연을 전하지만 그 노래 말은 이산가족들의 '피 눈물’을 함축한다.노래의 1절은 이렇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목을 놓아 불러 봤다 찾아를 봤다/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드냐/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홀로 왔다.
흥남 부두에서 가까스로 배에 실려 남으로 온 오빠는 대부분 삶을 끝냈거나 기동조차 극도로 불편한 노년에 이르렀고 북에 남겨진 여동생 금순이는 아직 생사를 알 수가 없다. 6·25의 비극은, 그렇게 우리에게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 6·25 전쟁이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모른다는 세대들은 그 상처의 깊이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가.
6·25전쟁 64주년이고 휴전의 해로 부터도 이미 갑년(甲年)을 넘겼다. 복거일의 신간 ‘ 굳세어라 금순아를 모른는 이들을 위하여’는 우리에게 '잊혀진 6·25전쟁'의 실상을 '결정적 전투'에 대한 치밀한 서술을 통해 새롭게 일깨운다. 따라서 단순히 재미삼아 읽을 책은 아니지만 6·25의 진실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보다도 젊은 세대가 읽어야 할 책이다. 그들에게는 노래만 잊혀진게 아니라 6·25 자체가 잊혀지고 있음으로...<한국논단 8월호 게재 예정 -필자: 조규석/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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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6.25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우리 모두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됩니다.
불편한 몸으로도 이런 글을 쓴 복거일선생의 투혼에 감복합니다. 많은 이들의 애독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좋은 글 소개해준 뒷메께도 감사드리고...
서평을 청탁한 잡지 발행인도, 책의 저자도 모두 잘 아는 분들이라서
집필하는 마음자세 자체가 애초에 '情實'을 배제하지 못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마침 우양이 '6-25 특집'방'을 설치했기에 잡지 나오기 전인데도
탈고하자마자 글을 공개했는데 잘 읽어주었다니 사대주의 어법ㅋ으로 thank!! 謝謝!^^
우리 곁에 아직도 이런 좋은 글을 소개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해질 의무가 있겠다. ^^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가 아니라 "행복해질 '의무'가 있다"?- 와~이건 그야말로 맑은샘의 역사적^^ 語錄으로 기록돼야 할 명언이외다.
맑은샘에게도 사대주의 어법ㅋ으로 thank!! 謝謝!^^
@뒷메 당구삼년폐풍월이외다.
堂狗三年吠風月
@맑은샘 소생의 글쓰기도 바로 그것일뿐! 근데 堂狗四十年에 겨우 吠風月이라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