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心과 道心
(충북대 평생교육원 김성기교수 담당 여름학기는 중용을 읽는다. 오늘이 두번째로 저 유명한 주희의 <중용장구서>를 읽었다. 복습삼아 조금씩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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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이 글을 읽다보니, 제가 그 동안 그리 어려워하던 '道' 혹은 '道心'에 대해 확연히 집히는 게 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제가 늘 사용하던 <숨어 있는 나>를 가리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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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庸章句序
중용장구서
예기 49篇 중 子思가 지은 제31篇 중용을 주희가 33장구로 나누고 그 머릿말(序)을 붙인 글이다.
中庸何爲而作也?
중용하위이작야?
중용은 어찌하여(왜) 지었는가?
子思子憂道學之失其傳而作也.
자사자우도학지실기전이작야.
자사 선생께서 도학의 전함을 잃을가 근심하여 지었다.
蓋自上古聖神繼天立極而道統之傳有自來矣.
개자상고성신계천입극이도통지전유자래의
(이 부분은 존경하는 페친 김영환교수의 가르침으로 교정하다.)
아주 옛날 성신(三皇五帝)가 하늘(天子의 帝位)를 잇고 지극함(中正)을 세운 이래로 도통의 전함에 절로 유래가 있게 되었다.
其見於經則允執厥中者堯之所以授舜也
기현어경즉윤집궐중자요지소이수순야
그것이 경서에 나타남에 관해 말한다면, "진실로 그 중을 잡아라"는 것인데, 이것은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제위를 물려주실 때 말씀해 주신 것이다.
人心唯危道心唯微唯精唯一允執厥中者舜之所以授禹也
인심유위도심유미유정유일윤집궐중자순지소이수우야.
또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희미하니, 오로지 정성스럽고 한결같아야 진실로 그 중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은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말씀해 주신 것이다.
堯之一言至矣盡矣而舜復益之以三言者則所以明夫堯之一言必如是而後可庶幾也
요지일언지의진의이순부익지이삼언자즉소이명부요지일언필여시이후가서기야
요임금의 한 마디가 지극하고 다 하였다. 그런데도 순이 다시 세 마디를 더 보태 말한 것은, 이와 같이 한 후에야 비로소 요임금 한 마디의 幾微가 거의 드러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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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대로 새겨보려 했으나 아직 미비함을 절로 느낀다.
김영환 교수의 가르침에 따라 자꾸 생각하다 보니, 주희의 간계에 느낌이 간다. 12세기 말(주희 1200년 死)에 전설상의 삼황오제 얘기를 직접 끄지어 내어 보이면 늬가 주희 얘기에 솔깃하여 귀를 기우릴까? 그래 주희는 그 대신 聖神이라는 어휘를, 천자의 제위 대신 소박하고 近思한 天이라는 어휘를 잡아 쓰는 기지를 발휘한다. 이런 느낌은 가당찮은 것인가!?
(20200718 그려)
(20260718 수정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