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차
풍유, 동식물을 등장시키자
2. 신경림의 우화
우화(Fable)는 동물이나 식물, 비생물을 이용하여 도덕적 명제 또는 인간 행위의 원천을 예시하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흔히 결론에서 화자나 등장인물 중 하나가 경구(Epigram) 형식으로 교훈을 진술합니다. 유아 동화에서 사회풍자까지 여럿입니다. 가장 흔한 것은 동물 우화인데, 동물들은 작품 속에서 그들이 대표하는 인간 유형들처럼 말하고 행동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민간에서 돌아다니는 소재를 취해서 풍자적인 성격을 띤 쥐 무리의 세계를 의인화한 『서동지전』이나 『두껍전』 등이 있습니다. 『서동지전』은 놀고 먹는 가난한 다람쥐가 부자인 서대쥐를 고자질하여 골려주다가 도리어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로 배은망덕한 인간성을 풍자합니다. 두껍전은 노루의 초청으로 여러 동물들이 초청되어 잔치를 하면서 자리다툼을 하다가 두꺼비가 가장 나이 많음을 납득하는 이야기입니다.
신경림은 1990년대 이후 우화적 수법을 많이 사용하여 시를 썼습니다. 주로 동식물의 인격화를 통한 행위들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서술했습니다.
훌쩍 날아올라 온 마을을 굽어본다
더 높이 날아올라
산 넘어 강 건너 이웃 마을까지 내려다본다
더 높이 오르고 더 멀리 나니
바다가 보이고 이웃나라가 보인다
마침내 하늘 끝까지 날아오른다
내려다보니 세상은 온통
검은 땅과 푸른 물뿐
그래서 새는 쇳된 소리로 노래한다
세상은 온통 검은 땅뿐이라고
세상은 온통 푸른물뿐이라고
제가 나서 한때 자라기도 한
더 어두운 골과 깊은 수렁
점점이 핀 고운 꽃들은 보지 못하는
높은 데로만 먼 데로만
날아오르는 우리 시대의 새여
- 신경림, 「우리 시대의 새」 전문
작고 여린 것들을 보지 못하고 더 높이 더 멀리 오르려고만 하는 새를 통해 우리 시대의 모습을 우화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가 삶에 밀착된 현실을 보지 못하고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현실과 동떨어진 거대 담론만 새된 소리로 반복한다는 것을 새의 행위를 통해 우화로 구성한 것입니다.
사마귀와 메뚜기가 물고 뜯고 싸우고 있다
방아깨비와 찌르레기가 여름내 가으내
내 잘났다 네 잘났다 다투고 있다]
뉘 알았으랴 그때
하늘과 땅을 휩쓰는 비와 바람이 몰아쳐
사흘 밤 사흘 낮을 불다 가리라고
이제 들판에는 그것들
부러진 날개 죽지만이 흩어져 있다
토막난 다리와 몸통만이 남아 있다
태풍이 지나간 저녁 들판에서 서 보아라
누가 감히 장담하라
사람의 일 또한 이와 같지 않으리라고
- 신경림, 「태풍이 지나간 저녁 들판에서」 전문
인간의 다툼을 곤충의 다툼 행위를 통해 우화적으로 그린 것입니다. 사람의 행위를 사마귀, 메뚜기, 방아깨비, 찌르레기 등의 행위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곤충들은 같은 공동체인데도 서로 물고 뜯고 싸우다 태풍에 대비하지 못하여 전부 몰살하고 맙니다. 2연에서 사람의 행위도 이와 같다며 우화를 통해 화합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사나운 뿔을 갖고도 한 번도 쓴 일이 없다
외양간에서 논밭까지 고삐에 매여서 그는
뚜벅뚜벅 평생을 그곳만을 오고 간다
때로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보면서도
저쪽에 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쟁기를 끌면서도 주인이 명령하는 대로
이려 하면 가고 워워 하면 서면 된다
콩깍지 여물에 배가 부르면
큰 눈을 꿈벅이며 식식 새김질을 할 뿐이다
도살장 앞에서 죽음을 예감하고
두어 방울 눈물을 떨구기도 하지만 이내
살과 가죽이 분리되어 한쪽은 식탁에 오르고
다른 쪽은 구두가 될 것을 그는 모른다
사나운 뿔은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신경림, 「뿔」 전문
주체적 인간의 삶, 깨우치지 못한 민중의 삶을 동물인 소의 일생을 통해 우화적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소의 평생을 통해 남에게 부림만 당하지 주체적 사고와 행동을 하지 못하는 인간의 비애를 우화를 통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뿔이라는 무기가 있음에도 평생 사용하지 못하고 외양간과 논밭만 오가다 주인의 밥상에 오르는 소를 통해 비주체적 인간의 일생을 보여줍니다.
새 천년이 된들 무엇이 나아지랴
더 강력하고 더 무자비해진 차바퀴에
더 많이 더 빨리 깔려 죽겠지
사람들은 말하겠지
너희들 진한 땀과 피가 아니었던들
어찌 이 세상이 이 만큼 만들어졌겠느냐고
여름 내내 그늘에서 노래로 즐긴 베짱이들이
너희들의 문전을 찾아 구걸하는 그림이 찍힌
낡은 교과서를 뒤적이면서
-신경림, 「개미를 보며」 전문
노동자와 자본가의 속성을 개미와 베짱이를 통해 우화적 수법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개미와 베짱이라는 우화가 그려진 낡은 교과서를 보면서 시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새 천년이라며 국민들이 혹할 만할 장밋빛 계획을 발표하는 정부와 호들갑 떠는 언론을 향해 시인은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더 강력하고 더 무자비한 것으로 상징되는 자본, 거기에 노동자들은 더 많이 깔려 죽을 것이라는 시인의 직관적 예언, 국민들의 피와 땀이 아니었다면 경제가 나아졌겠느냐는 허위적 칭찬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2024. 3. 10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