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2.
녹색 오줌
아침 기운이 싱그럽다. “안녕하세요.”라고 툭 던지면 똑같은 인사말이 메아리로 되돌아온다. 쪼그리고 앉은 이들이 싱글벙글한다. 남들이 들을 수 있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다. 소곤거리며 주고받는 이야기가 간간이 들리기도 하지만 전부가 먹는 이야기다. 아침에 먹을 상추, 비트, 적겨자, 청경채를 뜯거나 열무를 솎아내는 바쁜 손이 보인다. 쌈채소가 가득한 비닐하우스 안의 아침 풍경은 풍요롭다. 귀농귀촌지원센터의 아침은 늘 이렇게 시작한다.
쌈채소로 풍요롭다. 아침은 상추쌈이다. 숟가락으로 된장 다섯, 고추장 하나, 마늘 세 알 다지고 들기름 반 숟가락 넣어 맛있는 쌈장을 만든다. 검은 작두콩과 좁쌀이 드문드문 섞인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뜸 들인 잡곡밥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이런 걸 향이라 표현하고 싶다. 밥향! 온통 연한 초록으로 티끌 하나 없는 청상추 위에 보슬보슬한 잡곡밥과 쌈장이 떡하니 자리 잡고 앉았다. 꾸깃꾸깃 접어 한입에 쑤셔 넣으며 씹어 재낀다. “꾸어 꾸어 음…” 이런 느낌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사치다. 글로 적는다는 것은 오만을 넘어서 불경스러운 대역죄라 해도 무방하다.
적겨자잎과 비트 차례다. 아침에 먹다 남은 쌈장이 적당해 보인다. 적겨자잎은 알싸한 끝맛이 좋다. 상추보다 두툼한 비트잎은 씹는 맛이 기분을 좋게 한다. 식은밥이지만 쌈채소 스무 장이면 점심 요기도 간단하게 해결이 된다. 저녁 찬으로는 청경채를 데쳐 굴 소스에 볶았다. 비닐하우스 안 네 평 작은 밭은 쌈채소를 생산하는 공장이다. 아니, 세끼를 해결해 주는 반찬 공장이다.
해가 졌다. 이 시간이면 모두가 밭으로 나온다. 비닐하우스와 감자밭, 고구마밭, 고추밭, 옥수수밭에 물을 주는 시간이다. 개인 농토에 물을 흠뻑 뿌려야 일과를 마감하는 것으로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누군가 그렇게 하니 다들 따라서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나는 몰라서 남들처럼 하고 있다.
정자 주변을 얼쩡거린다. 쌈채소 덕분에 반찬 걱정이 없다고 한다. 적상추가 연하고 고소하다고 자랑한다. 아삭이 상추가 더 부드럽고 연하고 달다고 자랑이 자랑을 밟고 선다. 한 달 내내 쌈채소만 먹고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주변이 과하게 공감하니 웃음이 터진다. “요즘은 소변을 보면 녹색입니다.” 봄나물을 많이 먹어 녹색 변을 본적은 여러 번 있지만 초록 소변 이야기는 처음이다. 가도 너무 나갔다. 허풍이다.
“오줌이 녹색이면, 그건 병원 가는 게 맞고요.” 모두가 빵 터졌다.